대동문학 제10호 『어머니의 강』 시 무의도 외 9편 청탁 원고
- 시 10편
무의도. 낙동강을 바라보며. 어머니. 복수초로 피었다. 그 겨울. 사곶해변에서. 콩돌해안은. 고란사에서. 목리. 낡은 의자
무의도
임화선
바닷물이 빠진 바다는
철조망에 걸려 있다
철조망에 걸린 파래처럼
내 시도 널려 있다
파래 냄새가 난다
시는 파래인가 보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임화선
빛바랜
긴 광목천을
길게 늘어뜨린 어눌한 몸짓으로 꿈틀댄다
옥양목 저고리 옷고름을
풀어헤친
어머니의 품속처럼 푸근하다
구름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온몸을 휘감는다.
한때는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썩은 악취에 몸살을 앓기도 하다가
죽음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듯
강물은
아직도 천년을 더 흘러갈
그 강물을 따라갈 뿐이다.
어머니
임화선
젊은 시절을 보낸 바닷가를 다시 찾는다
젊음을 기억하는 바다에
동해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되뇌던 그 말
파도의 푸른 출렁거림을
그대로 받아드린
나는 늙었지만
바다는 그대로다
복수초로 피었다
임화선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땅속의 세상은, 맨살로 스며드는 한기 같은
것은, 빡세게, 더 빡세게,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복수의 집념으로 날을
세우고
땅속의 살얼음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 때마다
살얼음 꽃에
추운 겨울나기
허연 무서리 같은 얼음꽃이 날 선 칼날로 필 때마다 그는 날마다 노
랗게 날을 세웠다
캄캄한 땅속에서
낮달을 보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밤의 북두칠성 옆에서 유난히도 밝게 빛나던 별이 노랗게 익어갈 때도
땅속의 별들은 노랗게 살점을 뜯었다 땅속은 참 캄캄하기도 했다
달빛에, 문살을 드러낸 창호지에 먹물이 튕겨 누렁 이빨을 드러낸 누렁
개보다 더 누렁 그림자 막막한 도시의 땅을 비켜나지 못했을 때도 그는
복수의 칼날만 세웠다 노랗게 살점을 감춘 땅에서
달빛과 창호지와 나, 복수의 일념으로 먹을 갈고 날 선 날로 복수의 땅에
서 겨울 땅속을 유영한다
겨울 땅 살점을 뚫고
노랑, 순한 복수초로 피었다
그 겨울
임화선
바람이 불어온다 문풍지의 틈새 사이로
성급한 바람이 지나가고
혹독한 겨울이 지난다
견딜만하다
지나가는 것은 견딜만한 길이고
기억이고 아름다운 이름이다
산촌에도 눈 내리는 겨울이 있다
뚜벅뚜벅
눈은 발자국을 찍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쉬이 내리던 그 겨울
아버지의 함자 중에서
클 태(泰) 목숨 수(壽)처럼 획수가 많아도
지난겨울은 따듯했다
언제나 따뜻하기만 하던
아버지,
그 겨울의
눈발 속으로 오고 있다
사곶해변에서
임화선
모래밭 위에
비행기가 내린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어우러져
바닷물이 얕게 흘러든 해면은
거울 같아서
구름과 물결은 윤슬로 반짝이고
해무가 짙은 해변을 걸으면
발자국은 파도가 따라와서 지운다
썰물 때에는
자연이 주는 완전한 활주로가 되는
사곶해변은
단단한 비밀을 간직한 채
아직도 평평하게 누워 있다
콩돌해안은
임화선
군포의
콩돌해안은
콩을 널어놓은 듯한
콩돌해안은
잘그락거리는
소리에
시간도 잘그락거렸다
고란사에서
임화선
고란사 뜰에 앉아
고란초를 바라본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옛 부여 절집의 고요는
세월을 움켜쥐고
고란사의 종소리는
백마강을 건너
은은히 귓전에서 맴돈다
목리
임화선
저절로 되는 법은 없다 연륜으로 쌓아가는
나무의 나이로 지속되어 지는 어수선함도 없다
망령도 횡령도 지분도 없는 무늬를 만든다
나무에 새겨지는 나이테로 근삿값을 만든다
줄기나 가지에 나타나는 나이테의 동심원
원주율 파이를 생각한다
웅덩이에 돌을 던진다 물결이 파문을
일으킨다 파문이 일면서 무늬가 생긴다
사람도 무늬가 있다 원주율이 있다
나이테의 수가 무늬가 되어 고스란히 찍힌다
주위를 가지런하게 다듬는다. 원주율과 원주율 사이
그다지 무리수를 두지 않고
모순 없는 나무의 무늬로 이어지는
원주율로
계산된
끌로 조각하지 않은 천연무늬의,
낡은 의자
임화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낡은 의자는
낡은 사람이 앉을 것이다
길 가다가
잠시 쉴 곳이 필요한
낡은 의자는
잠시 앉았다가 일어나도 편안한
낡은 의자 같은,
사람이 그리운 날이 있다
오래된 바람이 있다
낡은 기억이 있다
첫댓글
대동문학 제 10호에 광고 『어머니의 강』 을 1면에 광고를 내기로 해서 집에 와서 확인 해 보니 제 9집에 광고가 나와 있어서
제10집에 작품을 싣으려고 『어머니의 강』에서 작품 10편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이관수 편집주간님 참고해 주십시오.
임화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