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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에스라엘 나무 강단 성경의 어휘 연구를 다시 시작합니다. 성경의 어휘를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시리라고 믿고 지나갑니다. 오늘은 스물다섯 번째 시간으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는 어휘를 연구합니다.
가상칠언이라고 하는 이 단어 자체는 성경에 직접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 일곱 마디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들을 한데 묶어서 '십자가 위의 일곱 마디 말씀'이라는 뜻의 가상칠언이라고 부릅니다. 이 마디 한마디를 함께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가상칠언이 먼저 어떤 말씀인지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서도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둘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누가복음 23장에 나옵니다. 성경 원문과 관련하여 왜 이 구절이 독특하게 번역되고 전달되었는지는 오늘 잠깐 설명하고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셋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장에 나오는 구절로,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넷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7장의 말씀으로, 고통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소외감을 체감하며 절규하시는 모습입니다.
다섯째,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장에 나옵니다. 피를 흘리시며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겪으시는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여섯째,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의 말씀으로, 굉장한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곱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일곱 마디 말씀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절규이자 부르짖음인데, 그 말씀들의 의미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하신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용서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그의 옷을 나누어 제비 뽑는 무자비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대단한 용서를 보여주십니다. 베드로가 마태복음 18장에서 "사람이 내게 죄를 범하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490번만 용서하라는 숫자의 제한이 아니라, 얼마든지 무한히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극한의 고통 중에서도 그 무한한 용서의 가르침을 친히 실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누군가를 몇 번이나 용서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몇 번까지 봐주십니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무한히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말씀은 구원을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 좌우에 두 강도(행악자)가 함께 못 박혔습니다. 그중 한 강도가 예수님을 비아냥거리며 조롱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냐? 죽은 사람도 살리고 하더니 지금 십자가에 달려서 왜 죽어가느냐? 당신도 살고 우리도 좀 살려보아라." 그때 전통적으로 우편 강도라고 전해지는 다른 강도(디스마스라는 이름으로 외경에 전해집니다)가 그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기억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고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날 당장 낙원에 가셨을까요? 아닙니다. 일요일 부활하시는 아침에도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번역과 구두점의 문제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원어인 헬라어 문장을 보면 본래 띄어쓰기나 쉼표(구두점)가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이라는 단어를 어느 쪽에 붙여서 쉼표를 찍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내가 내게 말한다, 오늘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로 볼 수도 있고, "진실로 오늘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날 무덤에 머무셨던 사실을 고려하면 후자의 번역이 성경의 전반적인 취지에 더 부합합니다. "너도 나도 죽어가는 이 엄중하고 위기 가득한 오늘, 내가 네게 구원을 보장하노니 네가 장차 나와 함께 낙원에 갈 것이다"라는 엄숙한 약속인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26번 강의에서 이어가겠습니다.
세 번째 하신 말씀은 요한복음 19장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자기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오늘날 우리 언어 개념으로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하면 다소 불효막심하거나 어색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2,000년 전 유대인들의 헬라어 문화권에서 '귀나이(Γύναι, 여자여)'라는 호칭은 여성을 극진히 존중하고 높이는 최고의 경칭이었습니다. 우리 식의 어감으로 바꾸면 "어머님, 보십시오. 아들입니다"라는 취지입니다.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의 가슴 아픈 눈물을 보시며, "내가 인간으로 온 목적을 이루고 있으니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고 위로하시는 깊은 효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서 제자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과 예수님은 어머니들끼리 자매(이모) 관계였기 때문에 사촌 혹은 인척 간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떠나니 이제부터 나의 어머니를 네 어머니로 삼아 잘 봉양해다오" 하고 탁아의 의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자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 평생 효도를 다했다고 전해집니다.
네 번째 말씀은 제9시쯤에 마태복음 27장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아람어 표현이면서, 동시에 구약 시편 22편 1절을 그대로 인용하신 것입니다. "엘리"는 나의 하나님, "라마"는 무엇 때문에, "사박다니"는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인류의 무거운 죄짐을 대신 지셨기 때문에, 죄의 결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전히 분리되는 끊어질 듯한 고통을 실감하시며 외치신 처절한 절규입니다.
사실 시편 22편은 다윗의 시이지만 장차 메시아가 겪을 고난을 미리 노래한 '메시아 예언 시'입니다. 다윗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지금 당하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이 이미 다윗을 통해 예언된 것임을 확증하시듯 그 시편을 입으로 읊조리시며 죄의 분리감을 감내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8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셨습니다. 이 역시 시편 69편 21절의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는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34절을 보면 실제로 쓸개 탄 포도주(신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했으나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입술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갈증 속에서도 마시기를 거절하신 이유는, 바로 전날 밤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포도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그날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셨던 그 약속을 고통 중에서도 기억하시며 끝까지 지키신 것입니다.
여섯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나오는 "다 이루었다"입니다. 신 포도주를 대어 드린 후 주님은 이 장엄한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과연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뜻일까요? 바로 인간 구원에 대하여 구약 성경이 그토록 오래 예언하고, 언약하고, 표상으로 보여주었던 모든 구속 사역을 완전하게 매듭지으셨다는 선언입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사시고, 가르치시고, 마침내 대속의 제물이 되심으로 유월절 어린양의 상징들을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구원받았던 것처럼, 십자가의 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여기에 유월절 어린양과 관련된 시간의 신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나 레위기 등 구약 성경을 보면 양을 잡는 시각을 '해질 때에'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벤 하아르바임(בֵּין הָעַרְבַּיִם)'인데, 직역하면 '두 저녁 사이'라는 뜻입니다. 성경 시대의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정오부터 시작되는 오후의 첫 번째 저녁과, 해가 지는 일몰 시점의 두 번째 저녁이 존재했습니다. 그 '두 저녁 사이'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시각이 바로 '오후 3시', 즉 신약 성경의 표현으로는 '제9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시각이 정확히 마태복음 27장에 제9시(오후 3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유월절 어린양을 잡는 그 정확한 시각 오후 3시에, 우리의 참된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정확히 맞춰 돌아가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채롭고 놀라운 성취입니다.
일곱 번째 마지막 말씀은 누가복음 23장 46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셨습니다.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모든 순종과 사명을 다 마치시고, 자신의 생명과 영혼을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위탁하며 온전한 헌신과 순종으로 마무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상에서의 일곱 마디 말씀, 즉 가상칠언은 주님의 고통과 처절한 희생을 보여주며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이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다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기뻐하며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의 일곱 마디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가상칠언에 대한 명상을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가상칠언(架上七言)의 정의: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이라는 뜻으로, 사복음서에 흩어져 있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7가지를 모아 신앙적·신학적 의미를 연구하는 중요한 어휘입니다.
구원과 용서, 그리고 인간적 고통의 성취:
용서와 구원: 자신을 못 박는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무한한 용서의 실천), 회개하는 한 편 강도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효심과 위탁: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극진히 존중하는 호칭('여자여')으로 위로하시고 제자 요한에게 봉양을 위탁하셨습니다.
대속의 고통: 죄의 대가인 '하나님과의 분리'를 겪으시며 시편 22편("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을 인용해 절규하셨고, 인간적 갈증("내가 목마르다") 속에서도 전날 밤 성만찬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으로서의 정확한 성취:
예수님의 여섯 번째 선언인 "다 이루었다"는 구약의 모든 구원 예언과 표상을 완성하셨다는 대선언입니다.
구약에서 어린양을 잡는 시각으로 명시한 '해질 때(두 저녁 사이, 벤 하아르바임)'는 정확히 오후 3시(제9시)를 뜻하는데, 예수님은 유월절 양의 실체로서 정확히 제9시(오후 3시)에 운명하심으로써 예언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온전한 의탁과 결론: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시며 온전한 순종으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가상칠언은 인류에게 구원과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주님이 치르신 처절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핵심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