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가난뱅이의 선반 기술
⑧작가의 긴 여행#26》0820 관찰작가 나의 리즈시절 AI수정 및 협업
by관찰작가의 여유시간
9시간전
당시 26살 동갑내기 친구가 장가를 가겠다고 했다.
그 친구는 일하다가 손가락 하나가 프레스에 잘려 군대를 못 가고, 그 대신 장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성남시 단대동에 사는 큰누나 집을 자주 오갔다.
매형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소시오패스였다.
나에게는 도움 될 게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과 엮이고 의지하게 되면, 이용당하면서도 단절하기 어려운, 심신이 피곤한 상태가 된다.
군대 가기 전 직장 생활로 모은 돈 30만 원이 있었다.
당시 단대동 땅은 한 평에 3천 원 하던 때였다.
나는 그 돈을 누이에게 맡기며, 주변 땅을 사두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매형이 자꾸 돈을 빌려 쓰자고 했고, 결국 누이는 그 돈을 매형에게 빌려주고 말았다.
전역한 지 반년, 나는 누이 집 근처 중동 산비탈, 우물 있는 집 전세방 30만 원짜리에 혼자 사는 가난뱅이였다.
군대 가기 전, 부모 대신 내가 돌보던 두 여동생이 있었다.
큰애는 어린 나이에, 나보다 두 살 많은 미장이와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는 먹을 게 없으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며 입을 줄이던 시절이었다.
오빠 혼자 살기도 힘든데, 입 하나 줄이겠다는 선택이었다.
막내는 교회에서 피아노를 쳐주며 식모처럼 지냈다.
그때는 국가의 극빈자 지원도 없었다.
거지로 살든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였다.
나에게는 군대 가기 전 6년 동안 미리 익혀둔 선반 기술 하나가 전부였다.
그것이 당시 철공소에서 가장 대우받고, 이직하기 쉽고, 실력이 바로 드러나는 기술이었다.
내 나이에 그 정도 기술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성남에서 천호동, 을지로, 뚝섬까지, 스카우트되어 옮겨 다니며 출퇴근했다.
사장들은 나를 무척 좋아했고,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결혼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처지였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형수가 나에게, 참한 여자가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청했다.
나는 어릴 때 살던 동네로 가서 친구 어머니들을 만나던 중, 딸 시집보낼 걱정을 하는 한 어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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