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야
평일과는 다르게 항상 지겹기만 한 주말, 오늘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틀고 채널을 돌리고 있다. 마음껏 번쩍이던 TV는 무도가요제 재방송에서 멈춰 선다. 저번 주에 밀양에 다녀오느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리모컨을 조용히 내려놓고 시청하기로 한다. 가요제 속의 혁오 밴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팀이었고 아이유는 예뻤다... 그렇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가요제가 아니라 무한도전이니 초점을 가요제에서 무한도전으로 바꿔보자. 무한도전은 매주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질문의 해답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름 그대로 무한'도전'이기에,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기에 그들은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주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내가 지금 쓸데없이 무한도전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도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아직 영화 <베테랑>과 <밀양아리랑>을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딱 여기까지만 읽고 나가주길 바란다.
먼저 영화 <베테랑>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간단히 말하면 임금 체불과 부당한 계약 해지에 항의하는 운전기사에 대한 재벌 3세 조태오의 횡포로 인한 사건을 막대한 자본을 이용하여 덮으려는 신진그룹(대기업)과 그 사건을 해결하려는 일개 형사 서도철의 싸움이다. 서도철은 수사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신진그룹은 피해자 가족에게 위로금 전달, 서도철의 아내에게 뇌물 전달 등으로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려고 하였다가 사건이 커지니 경찰에 압박을 넣고, 서도철을 암살하려고 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수사를 진행했고 사건을 해결하였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만약 현실 속의 사건이었다면, 서도철이 사건을 해결하는 해피엔딩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다. 돈이라는 유혹과 형사라는 직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협에도 그는 그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 속의 해피엔딩을 봤으니 이제 우리의 현실과 조금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해보자.<밀양아리랑>은 신고리원전 3호기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송하는 송전탑 설치지역에서 송전탑을 신속하게 설치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과 밀양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는 밀양 할매, 할배들의 싸움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은 독립영화이다.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삶의 터전과 행복, 그리고 후대의 미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거대한 기업, 정부에 맞선다. 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욕을 하기도 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최선을 다해 저항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어쩌면 그들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중이다. 지금도 그들은 다음 싸움을 준비한다.
내가 소개한 두 영화속에서는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에 도전한다. <베테랑>에서 서도철과 그의 팀은 대기업을 상대하려 하고 <밀양아리랑>에서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부에 맞선다. 길가다 아무나 잡고 물어봐도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실패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이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적이 있을까? 한번 되돌아보자. 내 인생은 어땠는지.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 때, 나의 소심한 성격은 착실하고 성실한 아이로 보이기 충분했고 성적은 또 어느 정도 나와서 모범생 이미지를 가지고 살았다. 그 이미지가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먹혀 착하고 똑똑한 아이로 보였고 나는 나 자신이 아닌 그 이미지를 이용해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 이미지를 벗어나고 싶지 않아서, 못한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하기 싫은 것, 못하는 것, 해보지 않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도전은 잊어버리고 항상 같은 것만 하며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살다보니 나 자신을 '잘하는 사람', '뒤쳐지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해 스트레스는 많이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쯤은 되어있었다. 잘났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시절 나는 주위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전을 버리고 합리화를 선택했다.
주인공에서 엑스트라로 전락하기까지 별로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렇게 지나간 나의 중학교 생활은 제대로 된 것 하나없이 초라했다. 중2병이라고 불리는 중학교 2학년 때, 남들이 창피함, 두려움을 잊고 자신의 흑역사를 생산하며 한껏 팽창할 때, 나는 그들과 다르게 한없이 움츠러 들었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진짜 흑역사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대상에게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남들이 내일을 바라보며 공부하는 만큼 내 앞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게임을 했고 옆반에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지만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볼 용기를 내지 못 했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항상 도전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실패해본 적이 없어서. 공부든 고백이든 실패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나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씩 중학생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누군가는 돌아가고 싶을 만큼 소중한 추억이 담긴 중학교라는 단어 밑에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롤'이라는 게임과 친구 몇 명의 이름뿐일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도전을 버리고 중학생 '나'를 지워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 고1부터 현재까지, 지금의 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짧은 순간들을 되돌아보자.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직도 선생님은 내가 성실한 놈인 줄 알고 있었고 그 착각이 깨지지 않도록 타인맞춤형 인생을 살았다. 이제는 어떤 것에 도전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남은 것은 자기혐오뿐이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에 쳐박혔던 겨울방학. 공부는 물론이고 잠도 포기했고 게임도 포기했다. 그저 천장에 꺼져있는 형광등만 바라보았다. 그 이후에 바뀐 것이 있다면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성실한 척도 포기했고 착한 척도 포기했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인문심화동아리. 동아리 활동을 통해 비록 자발적인 도전은 아니지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만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나를 싫어하지만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다.
무한도전으로 시작해 내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나도 내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짧고 깔끔한 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길어지고 지저분해졌다. 뭐. 그냥 알고 싶었나 보다. 과연 나는 18년 살면서 도전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솔직히 조금 더 포장하고 좋은 말들로 써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 이야기이기에. 또 그렇게 써놓고 보니 씁쓸하기도 했다. 내 인생이 고작 글 몇 줄이면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글의 주제가 '도전'이 된 것에는 작은 계기가 있다. 딱 3년 전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인문고전독서교실에. 영화 <밀양아리랑>을 보면서 다른 이들이 '얼른 이 싸움이 끝나길 바란다.', '우리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와 같은 생각을 할 때, 나는 '저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데 나는 여자한테 말 한 마디 하는데 뭘 그렇게 망설이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베테랑>의 서도철처럼 직업을 포기하는 것도, <밀양아리랑>의 밀양 할머니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용기만 내면 되는 일이다. 앞서 말한 두 영화처럼 대단한 일도,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대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뀔 수는 없지만, 맞서 대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두렵지만 시도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써놓은 이 글처럼 횡설수설하더라도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이다. 세상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니까.
첫댓글 정말 잘 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