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1-38.留盧秦卿(류노진경)/別盧秦卿(별노진경)-司空曙( 사공서 : 또는 郎士元)
<노진경과 이별하며 읊다>
留盧秦卿(류노진경)
司空曙(사공서)
知有前期在(지유전기재),
歡如此夜中(환여차야중)。
無將故人酒(무장고인주),
不及古淳風(불급고순풍)。
앞으로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음을 알지만
이 밤중에 헤어지기는 힘들구나.
오랜 친구가 권하는 송별주 사양치 말게나.
이 술잔 어이 뱃길 막는 맞바람만 못하겠나?
<원문출처> 留盧秦卿/作者:郎士元 司空曙 唐
本作品收錄於《全唐詩/卷248》和《全唐詩/卷292》
一作司空曙詩,一作郎士元詩/ 千家詩 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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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秦卿(노진경) : 사공서의 친구로 인적사항은 알 수 없다.
○ 前期(전기) : 친구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였음을 말한다.
○ 歡如(환여) : ‘難分(난분)’으로 기록한 판본도 있다. ‘헤어지기 어렵다.’<百度百科>
○ 無將(무장) : 반대하는 마음을 품지 마라.
○ 故人(고인) : 오랜 친구. 사공서 자신을 말한다.
○ 古淳風(고순풍) : ‘石尤風(석우풍)’으로 기록한 판본도 있다. 맞바람. 거세게 부는 바다의 역풍의 속칭. 옛날 석씨(石氏)의 딸이 우씨(尤氏)에게 시집갔는데, 우씨가 장사하러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빠져서 죽자, 석씨(石氏)의 딸이 슬퍼하여 병이 들어 유언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큰 바람을 일으켜 남자들의 배가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한 고사(故事)를 인용한 것이다.<江湖紀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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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천가시> 및 <전당시>에 실려 있으며 당나라의 시인 사공서(司空曙)가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이다. <전당시> 卷292-85에는 사공서(司空曙)의 ‘留〈一作別〉盧秦卿’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전당시> 卷248-22에는 낭사원(郎士元)의 ‘留盧秦卿’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바이두백과>에서는 사공서(司空曙)의 ‘留盧秦卿’으로 기록하고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위 시는 <바이두백과(百度百科)>를 인용하였다. 사공서의 창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친구인 노진경과 이별을 하면서 송별주를 마시며 맞바람인 ‘石尤風(석우풍)’을 인용하여 친구가 떠남이 아쉬워 만류하겠다는 간곡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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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百度百科>
留盧秦卿
司空曙
知有前期在,難分此夜中。
無將故人酒,不及石尤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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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一作別〉盧秦卿
司空曙〈(一作郎士元詩。)〉
全唐詩/卷292-85
知有前期在,歡如此夜中。
無將故人酒,不及古淳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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留盧秦卿
郎士元
全唐詩/卷248-22
知有前期在,歡如此夜中。
無將故人酒,不及古淳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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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서(司空曙, 740~790?) : 字는 문명(文明). 하북성(河北省) 광평(廣平) 출생.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의 막료(幕僚)에서 낙양(洛陽)의 주부(主簿), 장림현(長林縣)의 승(丞) 등을 거쳐 좌습유(左拾遺)가 되었으며, 785년경 우부낭중(虞部郞中)에 이르렀다. 인품이 결벽하여 권신(權臣)과 가까이하지 않고 가난을 감수하였다고 한다. 전기(錢起) 등과 함께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시집 《사공문명시집(司空文明詩集)》이 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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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千家詩(천가시)/全唐詩(전당시)]1-38.留盧秦卿(류노진경)/別盧秦卿(별노진경)-司空曙(사공서 : 또는 郎士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