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1절은, 2절부터 나오는 지구에 대한 창조사업과는 별개의 '우주'에 대한 창조를 단 한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우주는 이미 하느님에 의해 창조가 완료된 것임을 알리는 것이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베에트 하아레츠)"
성서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표현이다. 성서의 "창세기"라는 제목은 바로 히브리어 첫번째 단어인 '베레쉬트(בראשׁית)'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베레쉬트(בראשׁית)'는 "태초에"라는 뜻이다. 위 첫번째로 등장하는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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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힘"이란, '엘로아'의 복수형태로 성서에서는 '여호와'로 칭해지는 하느님께만 붙이는 칭호다. '여호와' 하느님 외의 신들은 단순히 '엘로아'로 칭해진다. '엘로힘'은 '장엄, 웅장, 위대한' 등의 뜻을 담고 있는데, 창세기의 첫번 째 자료인 1장 1절 ~2장 3절까지는 하나의 자료(문서)로부터 편집된 것으로 오로지 '엘로힘'이라는 단어만 나온다. 2장 4절부터는 다른 자료(문서)로부터 편집된 것이며, 창세기는 여러 자료를 모세가 편집한 것이다.
성서에서 '엘로힘'이라는 단어와 '여호와'라는 단어는 같은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엘로힘'은 하느님으로 번역되고, '여호와'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자연신과 인격신이란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은 이 두개의 칭호가 사실은 자연신과 인격신의 호칭임을 알게된다.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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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엘로힘(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無)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과학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물리학의 '무(無)'의 개념을 왜곡한다.
예를들면, 무(無)를 어떠한 공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양자 진공'의 상태라고 정의하고 주장을 시작한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양자 진공은 무(無)가 아니다. 이들이 얘기하는 무(無)는 '물질'과 '반물질'이 동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즉 물질과 동수의 반물질이 존재하면 무(無)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반면,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완전한 무(無)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이 주장은 맞는 것일까? 틀렸다. 물질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느님을 '근원'으로 치환해 사용해서 말한다면, 근원은 시작이 없이 존재해야한다. 오늘날 과학은, 우주는 영원히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순환을 이룬다고 말하는 것처럼, '근원'의 힘에 의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면 우주는 결국 '근원'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수축과 팽창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만약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지 않고 빅뱅처럼 어느 특이점에서 우주가 나타났다는 가설 역시도 물질은 '근원'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무(無)'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근원'을 '엘로힘'(하느님)으로 치환하면, 하느님이란 칭호는 자연신을 가리킨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하느님은 인격신이 아닌 자연신을 의미한다. 자연신이 인간사에 개입하고 우주적 섭리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자연신의 분신인 인격신을 통해 작용한다. 이것이 모든 고대 종교에서 가졌던 자연신과 인격신의 개념이다. 따라서 자연신인 '하느님'은 형태를 묘사할 수 없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하느님'이 어떤분인지 묘사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신의 행동과 모습을 그리거나 회자되는 이유는 '인격화된 모습으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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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旅程者는 모든 우주와 '나'는 결국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배출된 원소들의 결합체임을 알아챕니다. '나'를 이룬 원소들은 내 몸에서 끝없이 '성주괴공(性住壞空)을 이루며 새로운 원소들을 가져와 '나'를 이룹니다. 따라서 '근원'으로 부터 출발한 원소들이 다시 온전히 만날 확률은 수억겁이란 시간을 채워도 불가능한 겁니다. 그래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옛말은 예사롭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