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오전 11시 교중미사 중 유초등부 주일학교 어린이 14명을 대상으로 첫 영성체예식이 있었습니다.
첫 영성체란 유아세례나 어린이세례 등 천주교 세례를 받은 어린이가 특정한 사전교리교육을 거쳐 최초로 영성체하는 것을 말하는데, 고대교회에서는 성세성사(聖洗聖事)의 마지막 부분에 그 절정으로 어린이들의 경우에도 첫 영성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동방정교회에서는 성세성사와 함께 영성체가 이루어지며 어린이들에게도 허용됩니다만, 중세기에 이르러 서방교회(가톨릭교회)에서는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성숙성’이 요구되어 유아들의 영성체는 금지되었으며, 1215년, 제4차 라테란(Lateran) 공의회는 이성(理性)을 쓸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어린이가 고해성사(告解聖事)와 함께 첫 영성체할 것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얀세니즘(Jansenism)*의 영향으로 시행되어 오지 못하다가 교황 성 비오(St. Pius) 10세(재위 : 1903∼1914)에 의해 이 문제가 다시 재기되어 고해성사와 함께 첫영성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코르넬리우스 얀센(Cornelius Jansen, 1585년 ~1638년)은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학자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루뱅 대학에서 수학하고, 파리로 이주하여 신학을 연구했으며, 대학 개혁 시대의 가톨릭 비판에 뜻을 두었다. 후에 루뱅 대학 교수가 되어 거작 《아우구스티누스》를 저술했고, 신의 은혜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가톨릭 교회 내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얀세니즘은 그의 사상으로부터 유래했다.
축제의 성격을 가지는 공동의 첫영성체 의식은 17세기에 일정한 기간의 교리 교육과 함께 이루어졌으며, 첫영성체는 사백주일(卸白主日)이 성세경신의 날로 여겨졌기 때문에 보통은 이 날 행해졌는데 관습에 따라 초를 들고 행렬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장엄하게 거행됩니다.
첫 영성체는 영성체에 대한 열망과 지식을 갖출 수 있는 나이(일반적으로 8세 이상의 나이)의 어린이들이 적절한 교리교육을 받은 뒤에 이루어지는데 (새교회법 913조 1항), 본당신부는 어린이들이 첫영성체에 대하여 충분히 준비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지니며, 그 준비가 충분한가 아닌가의 판단은 고해신부 또는 양친, 후견인에 속합니다(새교회법 914조).
그러나 죽을 위험에 있는 어린이들의 경우, 성체를 보통의 빵과 구별할 수 있고 성체에 대한 존경심을 갖추고 있는 한 영성체할 수 있으며, 사제는 성체를 영해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새교회법 913조 2항).
그럼 왜 10살에 첫 영성체를 하는 걸까요? 그리스도의 신비를 제 능력대로 이해하고 주님의 몸을 믿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영할 수 있는 시기가 이 때라고 교회가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부모와 사목자는 어린이가 10살 전후에 영성체를 하도록 배려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첫 영성체 시기는 시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과거 첫 영성체는 세례와 견진과 함께 동시에 이뤄졌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동방정교회에서는 유아에게도 영성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 중반기 서방 교회에서는 성체를 모시는 사람의 개인적 성숙도를 요구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첫 영성체 시기가 점점 늦어졌습니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고해성사와 영성체에 관한 교령을 발표했는데,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사람만이 부활 대축일 즈음에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본래 7살에 하던 첫영성체가 13~14살로 높아진 것이죠. 그런데 이 규정이 현대에 와서 다시 10살 전후에 하는 것으로 수정됐습니다.
올해 10살이 되어 첫영성체를 한 서원동성당 유초등부 주일학교 어린이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다음 페이지로 https://cafe.daum.net/lp0124/dP67/26
첫댓글 제가 어린이들이나 복사 아이들 행사 사진을 찍으면서 고화질의 선명한 사진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제 아들도 2000년 즈음에 서원동성당에서 복사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필름 카메라 시대였고, 조그마한 똑딱이 디카가 보급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지 센서 화소도 높지 않았던 카메라로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어두운 데서 사진을 찍다 보니
흔들리고 어둡고 노이즈가 자글자글, 게다가 얼굴도 희미하니 제대로 나온 사진이 거의 없으니
그 시절을 선명하게 추억하기에는 좀 아쉬운 점이 있죠.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2500만 화소의 고화질 사진을 손쉽게 찍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암튼 시간이 지난 나중에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어 줄 선명한 사진을 남겨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런 점은 스스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