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산경표.
백두산에서 시작돼 금강산, 설악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마루금(능선)이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모양을 담고 있다.
백두대간의 총길이는 1494.3㎞, 3736리에 이른다. 예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은 아직도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의 이름으로 배워온 탓에 지난 백 년 간 잊힌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 지명 등은 1903년 일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14개월간의 지질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든 것이다. 지질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강에 의해 끊어진 산줄기를 모아 산맥으로 분류하는 등 실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분류체계였다.
특히 일본은 우리의 민족정신과 정체성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을 창씨개명을 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지명(산·봉우리·마을 등)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바로 창지개명이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우리 조상들은 산맥이 아니라 산줄기·지맥이란 말을 많이 써왔는데 일제 때부터 산맥이란 이름이 우리말로 굳어졌다"며 지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두산을 한반도의 중심이자 출발점으로 인식한 산경표의 존재가 1980년대 초부터 일반인에게 알려지면서 백두대간이 다시 등장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산맥체계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학계와 전문가 그리고 국민 사이에 끊이지 않았다.
국토연구원이 2005년 위성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통해 재정립한 새산맥지도를 내놓으면서 논란은 커졌다.
이런 논란 끝에 학계에서도 백두대간은 인정받았다. 다만 지형과 지질을 구분해 산맥과 백두대간을 다른 개념으로 봤다.
2013년 최원석 경상대학교 인문한국 교수는 지리학대회에서 '조선 후기의 산줄기 개념과 산보 편찬의 의의' 발표를 통해 "국토연구원이 전통적인 산줄기 개념의 산맥체계를 과학적으로 재정립한 연구 결과를 놓고 대한지리학회가 반박한 것은 정확히 용어와 개념의 혼동에서 발생한 문제"라며 "현대의 지형 및 지질 구조에 바탕을 둔 산맥체계와는 논리적인 인식 토대가 다르지만 전통적 산경체계 역시 문화 역사적 콘텐츠로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교과 과정도 바뀌었다. 성정락 동패고 한국지리 교사는 "2007 개정 교육과정 무렵부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토 인식, 대동여지도, 산지 지형 등의 교육내용을 통해 산경도와 산맥도의 산지 인식 체계를 비교하거나 학습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도 일상 곳곳에서는 우리나라 지형을 이야기할 때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이야기한다. 교과서나 공식문서, 지자체의 홍보자료 등에서 남아 있다.
지명은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의 유산을 상징하고, 사회 구성원의 얼이자 정신의 매개체 역할을 해서 단순한 표기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표현이자 흔적이다.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 정기를 없앤다며 산에 박은 말뚝은 일제 청산 운동으로 뽑혔지만 아직도 우리 정신에 박힌 말뚝은 굳건한 셈이다.
백두대간을 지지하는 학계와 산악인 등은 "식민통치 유산인 산맥을 지우고 백두대간을 복원하자는 제안은 단순히 민족감정 때문만은 아니라"며 "우리 정신문화의 온전한 복권을 위해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