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왕조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차츰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제후들의 세력 확대로 봉건 제도가 흔들리고, 이를 지탱하던 종법제도도 무너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770년에는 서쪽으로부터 사나운 유목민의 침입을 받아 도읍을 호경에서 동쪽 낙읍(지금의 뤄양)으로 옮겼는데, 그 이전을 서주(西周), 그 이후를 동주(東周)로 구별하여 부른다. 그리고 동주는 다시 춘추시대(기원전 770∼기원전 403년)와 전국시대(기원전 403∼기원전 221년)로 구분된다.
춘추 시대에 들어서면서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천자로서의 위력이 없어지고 대신 강력한 제후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된다. 주나라 초기에 1천여 국이나 되던 제후의 수가 마침내는 10여 개국으로 압축되었다. 이 가운데 패권을 잡은 제후를 춘추오패라 하는데 이 오패는 제의 환공, 진의 문공, 초의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이라는 설과 오왕 합려, 월왕 구천 대신 송의 양공과 진의 목공이라는 설이 있다.
첫 번째 패자 제의 환공은 관중과 포숙아의 도움으로 패자가 되어 B.C. 651년 규구에서 제후들을 모아 희맹하였다. 진의 문공은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성복의 대전에서 강력한 라이벌인 초나라 성왕을 물리치고 패자가 되어 천토에서 희맹하였다. 초의 장왕은 필의 전투에서 진을 물리치고 패자로서 인정받았다. 그후 천하의 형세는 진과 초가 남북으로 대치하고 동쪽의 제와 서쪽의 진이 서로 견제하는 4강의 시대로 접어든다. B.C. 546년 송나라 수도에서 '미병회담'이 열려 일종의 정전협상이 체결되면서 중원은 소강 상태에 접어든다. 이때 장강 남쪽에서 오나라, 월나라가 일어났다. 오왕 합려는 오자서, 손무 등의 계책을 써 중원의 초나라, 진나라, 제나라를 위압하고 월나라를 제압하였다. 월왕 구천도 범려의 계책을 써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와 와신상담의 복수전을 흥미롭게 펼친다.
B.C. 453년 강력했던 진나라가 한·위·조 세나라로 분리되면서 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춘추 시대에는 패자들이 힘이 약한 주라라 왕실을 존중한다는 관념이 있었으나, 전국 시대에는 이러한 관념이 없어지고 오로지 힘과 힘이 대결하는 약육강식의 양상이 펼쳐진다. 전국 7웅은 위의 세 나라 외에 진·초·연·제의 7국이다. 이 가운데 초기에 패자의 자리를 다툰 것은 위·제·진 세 나라였다. 제나라는 유명한 병법가 손빈의 계책을 써 위나라 장수 방연을 마릉의 싸움에서 패사시키고, 진의 효공은 법가인 공손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위한 일대 정치개혁을 실시하여 천하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져갔다.
부국강병의 추구와 권모 술수가 소용돌이치며 명군과 명신들, 명장과 맹장들의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근 2백년 동안 계속되는 동안 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여섯나라의 힘은 점점 쇠약해져 차례차례 진나라에 멸망해 버리고 B.C. 221년 제나라가 마지막으로 진나라에 항복함으로써 진의 시황제가 중국 최초의 대통일 국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