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터울의 라벨과 George Gershwin은 공교롭게 1937년 같은 해에 영면한다.
1924년 "Rhapsody in Blue"와 1925년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여 재즈를 클래식에 도입하여 클래식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거쉬인은 자신에게 부족한 클래식 화성학과 관현악법을 배우기 위해 1925년 파리로
향한다. 파리에서 라벨, 스트라빈스키, Nadia Boulange에게 작곡을 배우기를 간청하지만 거쉬인의 정체성인
재즈 기풍이 클래식 기법의 첨가로 훼손될 것을 우려한 라벨과 스트라빈스키는 거절한다. 이들의 교류는 오히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가 거쉬인에게 영향을 받아 재즈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1915년 제1차 세계 대전에 라벨은 고국을 위해 부상자 수송 운전병으로 참여한다. 전쟁 중 생과 사를 넘나들고
많은 극한의 체험을 한 라벨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는다. 1929년 스케치를 시작해 1932년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은 거쉬인의 영향을 받은 곡으로 재즈의 색채를 라벨의 뛰어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가미하여 그 당시
클래식 작곡가 작품의 음악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재즈와 정통 클래식이 혼재하여 부딪치는 오묘한 조화의 소리와
다양한 리듬을 탄생시킨다.
이번 공연의 목관 조합은 플륫에 시카고 심포니 수석에서 베를린 필로 온 Mathieu Dufour와 오보에 영국 출신
Jonathan Kelly, 잉글리쉬혼 Andreas Wittmann, 클라리넷 Andreas Ottensamer, 쁘띳 클라리넷
Walter Seyfarth, 바순 Stefan Schweigert로 이루워 졌고 31년간 베를린 필 악장을 맡은 폴란드 출신
Daniel Stabrawa가 악장을 맡아 연주한다. 베를린 필의 연주에서 프랑스 작곡가의 곡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첫 악장이 시작되자 실망이 앞선다. 수채화같이 가벼운 터치로 그려야 할 곳을 수없이 덧칠해 묵중한
유화의 질감으로 표현하여 독일 오케스트라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인다. 피콜로, 트럼펫, 쁘띳 클라리넷,
플륫, 오보에, 바순, 잉글리쉬혼으로 이어지는 다양하고 섬세한 칼라의 라벨 오케스트레이션이 베를린 필 연주자
들에서 모노톤으로 바뀌어 버린다. 솔리스트 조성진 역시 강렬한 리듬과 엑센트의 변화로 재즈 기법을 받아들여
그려낸 라벨의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밋밋하고 어정쩡한 동양 연주인 표현의 한계를 드러내 보인다.
2악장에서 라벨은 화가 Edvard Munch의 절규 못지않은 라벨 내면세계 깊숙이 자리를 잡고 그를 괴롭혀온
실체를 끄집어내 절규한다. 4분의 3박자 토대 위에 변형된 8분의 6박자의 월츠 리듬이 혼재하면서, 이상의 세계와
라벨이 실지 겪었던 현존하는 인간세계의 참모습을 대비시켜 그로테스크하게 혼돈의 세계를 그려나간다.
2악장 시작 33마디의 긴 호흡을 피아노 솔로에만 의존하여 자신이 겪은 젊었을 때 파리에서의 방황, 그리고
전쟁 참여에서 느낀 고통, 평생 동반자였던 어머니의 죽음 등 자신의 내면세계를 아주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33마디의 길지만 아주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는 피아노 독주에서 피아니스트는 완전 발가벗겨져 무장해제가 된
형태로 표현을 해야 한다. 카덴자에서는 테크닉이란 실오라기라도 걸칠 수 있지만...
동시대 다른 작곡가나 음악인의 삶과는 다른 결로 살아온 라벨의 인생이 함축되어 있는 이 솔로는 대체로 온실 안
세계의 따뜻함 속에서, 다양한 굴곡과 어려움 세계에서 벗어나 생활하는 음악인들이 겪어 보지 못한 인생의
질곡이 숨겨져 있어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런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은 미켈란젤리와 같이 2차 세계
대전에 직접 참여하여 실제로 현실의 전쟁을 체험하고 이후 변화된 다양한 격동의 삶을 겪은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미켈란젤리는 모든 것을 초월하듯 때로는 독백처럼, 때로는 격하게
세계에 맞서 웅변하듯 강렬하고 뚜렷한 톤으로, 한음 한음 깊고 처절한 타건과 초 절제된 페달링으로 라벨을 대변
하여 이 악장을 그려낸다. 조성진은 자신의 심성대로 가식 없는 23세 피아니스트 시각으로 라벨을 그려간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우려 머리를 쥐어 잡고 파리 사창가 거리에 위스키와 시가를 물고 방황했을 처절한 삶의 라벨을
23세의 조성진이 그려내기에는 이 2악장의 무게는 너무 무거워 보인다. 미켈란젤리의 절규적 표현과 대비되어
조성진의 때 묻지 않고, 철없고 순진한 라벨은 오히려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긴 호흡의 피아노 솔로 후 플륫,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이어지는 베를린 필의 소리에서 라벨의 처절한 절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프랑스 출신
플륫의 Mathieu Dufour만이 정확한 라벨의 의도를 표현할 뿐이다. 후반부의 잉글리쉬혼 주제에 조성진은 이 곡을
연주한 많은 다른 피아니스트처럼 주제 밑에 숨어 목소리를 낮춘다. 미켈란젤리는 이 부분에서 주제에 맞서,
현실 세계에 대항하듯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잉글리쉬혼의 이상적 세계에 대항이라도 하듯, 너는 너의 이야기를
해라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당신과 다른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는 듯,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쏟아낸다.
잉글리쉬혼과 템포, 발란스를 무시하면서 투박하고 우직한 터치 곧은 템포로, 꾸밈없는 민낯의 이 언어가
필자는 미켈란젤리가 라벨을 대신해서 세계에 쏟아내고 싶었던 마지막 절규였다고 느끼고 있다.
3악장에서 조성진은 확신에 찬 언어로 라벨의 또 다른 세계를 끄집어낸다. 현란한 기교를 앞세워 빠른 템포를
설정하여 거침없이 오케스트라를 몰아붙여 커다란 소리의 산을 이루어낸다. 콘서트 연주 전문 피아니스트의 절제된
구도자적 생활과 연습량 없이는 그릴 수 없는 견고하게 응집되어 만들어진 소리는 그 칼라의 질이 범접할 수 없는
귀풍의 자태를 가지고 듣는 사람들의 귀를 통해 마음속 깊숙이 파고든다. 이런 조성진만의 목소리는 앞으로
조성진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조성진 음악 정체성의 뿌리가 될 자산이다. 인간의 목소리가 건강 상태에
따라 변하듯, 조성진의 소리 역시 구도자적 삶과 커다란 음악 앞에 조금이라도 자만한다면 많은 천재 음악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듯 냉정한 현실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베를린 관객은 조성진의 데뷔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무게가 느껴지는 조성진의 연주 후 커튼콜 자세는 연주인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어 흐뭇했다. 지휘자 레틀은 온화한 표정으로 앙콜을 유도하고 스스로 바이올린 뒷자리에 앉아
조성진의 드뷔시 "Images 1re série - Reflets dans l'eau" 앙콜 연주를 단원들과 같이 감상하였다.
베를린 필 쁘띳 클라리넷 Walter Seyfarth는 32년간 베를린 필과 함께하고 있는데 근자에 연주력이 눈에 띄게
퇴보한 것이 느껴진다. 이번 공연에서도 참담한 연주력을 보여주어 오케스트라에서 세대교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31년간 악장을 맡은 Daniel Stabrawa도 몇 년 전부터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악장으로써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강력한 단원 노조로 인해 수석 지휘자의 권한이 제한적이라 지휘자가 원하는
단원들로의 세대교체를 원활하게 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을 베를린 필은 안고 있다. 단원들 스스로 자신의 퇴보가
느껴지면 오케스트라 발전을 위해 은퇴하는 전통의 RCO와 대비되어 베를린 필의 정체된 오케스트라 앙상블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번 공연의 평은 조성진의 연주만으로 해 보았다.
2017年 11月 5日 Berlin에서 franciscopaik.
Sa, 04. Nov 2017, 19:00 Uhr - Philharmonie
Berliner Philharmoniker
Simon Rattle Dirigent
Seong-Jin Cho Klavier
Richard Strauss
Don Juan op. 20
Maurice Ravel
Konzert für Klavier und Orchester G-Dur
Johannes Brahms
Symphonie Nr. 4 e-Moll op.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