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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가협회 2012년 연간집 <경남소설>(제7호)에 발표한 박래녀 작가의 단편소설 "고요한 귀로"를 올립니다.
단편소설 고요한 귀로 박래녀
아내가 울고 있다. 식어가는 내 몸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지속시키려고 안간힘을 쏟는다. 앙상한 팔을 주무르고, 어깨를 주무르고 다리를 주무른다. 아내의 손은 갈퀴다. 갈퀴는 바짝 마른 갈비를 긁는다. 아무리 긁어도 갈비는 모이지 않는다. 아내의 갈퀴질은 시원찮다. 아무것도 긁어모을 수도 다독일 수도 없다. 힘이 빠져나간 손가락은 내 굳은 뼈에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한다. 그만두게, 아내여, 제발 그만두게나. 나는 아내의 볼을 쓰다듬는다. 아내는 내 손길을 의식하는지 두 손으로 내 손을 포갠다. 얼굴을 감싸는 아내의 두 볼에 깊은 홈이 파였다. 그 홈으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조차 이제 바짝 말랐다. 나는 어찌 살아요. 영감이 데려가야지요. 나 혼자 살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아내의 넋두리는 바람을 타고 문풍지를 흔든다. 왜 못 살아. 살아 봐. 사실 당신 젊어서 나 버리고 갈까봐 전전긍긍했던 거 아는지 모르겠네. 당신에게 버림받을까 봐 마음 졸이며 산 남자가 나란 걸 당신은 알까. 당신이 나 없이 어찌 사냐니까 왜 이리 기분이 좋은가. 이제야 말이지만 언젠가 당신이 그랬지. 당신 없어도 나 잘 살아. 걱정 붙들어 매슈. 당신이 내게 해 준 게 뭔데. 눈물 보따리밖에 더 준 게 있어? 입이 있으면 말해 봐. 세상 사람들 다 불러놓고 물어 봐. 누구 말이 옳은지. 아내 잘 만나 호강한 사람이 누군데.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세상을 확 뒤집을 수 있다면 제자리에 돌려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겠네.라고 했던 그때, 나 참 무서웠소. 당신이 날 버리고 갈까 봐. 아내도 일흔이 넘은 할망구다. 진이 다 빠진 살가죽에 검버섯이 피었지만 여전히 곱다. 참 곱게 늙어가는 아내다. 고운 아내를 두고 떠난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새삼스럽게 혼자 남을 아내가 안쓰럽다. 울지 말게. 그동안 내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했네. 이제 편하게 좀 더 살다 오게. 십 년을 하루같이 병수발했잖은가. 그 곱던 얼굴이 이렇게 삭았는데. 다시 곱게 치장이라도 해 주고 싶네. 이럴 때 자네 손 잡아줄 핏줄이라도 한 명 있다면 좋으련만. 자네가 싫다고 했지. 이미 내 자식이 셋인데 자네까지 보탤 필요 있겠느냐면서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었지. 자네, 그 마음 아직인가. 후회해 본 적은 없는가. 내 몸을 쓰다듬던 아내가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당신의 식어가는 몸, 온전히 다 식기 전에 하고 싶은 말 다 해야겠어요. 그래요. 영감, 나 울지 않으리다. 당신 말대로 나 당신 찾아가는 날까지 잘 살다 갈게요. 그때 봅시다. 너무 늙은 할망구라 못 알아볼지 모르니까 당신이 끼워 준 이 금반지 꼭 끼고 가리다. 금반지에 새겨진 당신 이름 보면 나란 걸 알겠지요. 아내는 손가락에 낀 한 돈짜리 금반지를 만지작거린다. 언제였던가. 까마득한 날을 거슬러 올라간다. 충주 달천 근처 운두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숨어 살 때다. 행운이라는 땡초 스님과 죽이 맞아서 한 계절을 그 암자에서 났었다. 수염과 머리카락을 기른 기인 행색으로 사군자를 치고 한시를 적어 절을 찾는 관광객에게 팔아 밥벌이를 했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그해 봄, 미술반 학생을 인솔하여 그녀가 왔다. 청바지에 개나리 색 점퍼를 입었던 그녀, 아카시 꽃처럼 청초한 그녀, 내 가슴에 꽂힌 흰 제비꽃이었다. 보라색 제비꽃은 많아도 하얀 제비꽃은 귀하다. 나는 그 제비꽃의 꿀을 빨고 싶어 벌이 되었다. 벌이 되어 그녀에게 날아갔다. 현란한 춤을 추며 그녀 주위를 맴돌다가 결정적인 순간 손등에 독침을 꽂았다. 아야,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화구가 화르르 쏟아졌다. 아이쿠, 저런 벌에 쏘였군요. 이리 오세요. 독기부터 빼야 하니까. 나는 화구와 그림물감, 팔레트 등을 주섬주섬 주워 가슴에 안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하얗고 여린 손등이 금세 붉게 변하더니 두툼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학생 한 명을 불러 각자 좋은 곳을 찾아 그림을 그리라고 지시한 후 순수하게 나를 따라왔다. 여기 잠깐만 앉아 계세요. 약 가져올 테니까. 내가 거처하는 요사채 마루에 그녀를 앉게 하고 공양할멈을 찾아 부엌으로 내달았다. 할매, 할매, 퍼떡 된장 한 보시 주소. 일 났소 일. 큰일 났단 말이오. 경상도 사투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공양간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다. 먼 일 났소? 불난 건 아니겠지요? 불? 하모, 불이 나긴 났소. 여기에. 여기 말이오. 내 가슴을 툭툭 치자 공양간 할머니는 바람 든 무에 칼자국 내듯 퍽퍽하게 웃으며 장독간에 가더니 된장 한 보시를 떠서 내밀었다. 나는 된장에 내 달콤한 사랑의 침을 적당히 섞었다. 그녀는 벌겋게 열이 오른 손등을 쓰다듬으며 눈은 먼 산자락을 맴돌고 있었다. 여기 약이요.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사랑의 침을 섞은 된장을 펴 발랐다. 된장이잖아요?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벌에 쏘였을 때 된장이 최고랍니다. 된장에는 독성을 뽑아내는 약효가 아주 강해요. 암 같은 독종도 고친다는 말 못 들으셨어요? 제가 이래 뵈도 중국 화타의 후손쯤 됩니다. 색깔과 냄새가 좀 거시기 하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세요. 당장 아린 기운이 빠질 테니. 그녀가 웃었다. 복사꽃보다 더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이건 진짜 약이니까 절대로 빼면 안 됩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의 손가락에 내 이름이 새겨진 한 돈짜리 금반지를 끼워 주었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미술 선생을 하던 아내, 긴 생머리에 쌍꺼풀진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 당신 따라갈래요. 나 만난 걸 후회할 거요. 난 쫓기는 몸이거든. 평생 쫓겨 다니거나 잡혀서 감옥살이할 건데. 그래도 날 따라가겠소? 갈래요. 내게 이미 자식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그래도 가겠소? 갈래요. 부모님은 어떻게 하고? 자식이라곤 혈혈단신 당신뿐인데. 그래도 가겠소? 갈래요. 아버지께는 작은 어머니 소생의 아들이 있어요. 그래도 당신은 두분의 고명딸인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하시는 어른인데. 그 어른을 배반할 수 있겠소? 그래도 할 수 없어요. 갈래요. 당신은 작은 가방을 챙겨 나를 따라 나섰지. 그렇게 하나가 된 우리, 인생의 반을 함께했구먼. 당신 지금도 참 곱소. 내 눈에는 아직 이십 대 처녀 모습 그대론 걸. 아내가 웃는다. 아내는 내 말을 듣는다. 내 볼을 만진 아내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를 만진다. 광대뼈 밑에 움푹 들어간 볼에 눈물 한 점 뚝 떨어진다. 당신 만난 걸 후회 안 해요.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당신 얼굴, 참 편안해요. 먼저 가 계세요. 살 만큼 살다 명이 다 되면 당신 따라 갈게요. 어쩌면 나 때문에 평생 독수공방하고 산 당신 아내가 먼저 갈지 모르겠군요. 형님이 먼저 가면 반겨 맞이하고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 아낌없이 쏟아 주시구려. 행이한테 연락을 하려고 해요. 당신 자식들 아무도 안 와도 행이는 오겠지요. 할아버지라고 찾아온 아이는 그 아이가 유일하니. 얼마나 귀하고 늠름한지. 꼭 당신 젊었을 때 모습 같았어요. 착한 사람, 나는 아내의 눈물을 내 손바닥으로 닦아준다. 아내는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떠다 내 머리맡에 놓았다. 장롱에서 네모 반듯한 제법 두툼한 보퉁이를 꺼내더니 보퉁이 벌어진 틈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헝겊 한 장을 꺼냈다. 헝겊을 물에 담근 후 나의 몸에 걸친 옷을 벗긴다. 속옷을 벗겨 내고 젖은 헝겊으로 정성스럽게 내 몸을 닦는다. 뼈와 거죽만 남은 내 몸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닦아낸 후 반듯하게 눕혔다. 아내는 보퉁이를 풀었다. 보퉁이 안에는 속옷과 명주로 만든 바지저고리가 얌전하게 놓여 있다. 아내가 손수 만든 수의다. 내 마지막 가는 길에 입고 갈 옷을 바느질하면서 그녀는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아내의 눈물에는 간기가 없다. 간이 스며들 틈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눈물을 흘리면서도 늘 담담하게 처신했던 아내, 스스로 택한 운명에 순종하며 산 여인, 아내는 지금 나를 마주하고 참선 중이다. 나는 일제 식민지 시절을 살았고, 육이오 동란을 겪었다. 대동아 전쟁이 터졌을 때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도망자가 되었고, 도망자가 되어 지리산으로 피신했다가 빨치산이 되었다. 좌익사상에 물들어 그 그룹에서 꽤 이름을 날렸다. 내 목에 현상금이 붙었다. 육이오 동란이 터졌을 때 나는 붉은 완장을 차고 부하들을 이끌고 자랑스럽게 우리 동네를 접수했다. 덕분에 아내와 원수지간이 되었다. 장인영감 하종호는 우리 면내 지주였다. 방앗간 주인이자 천석지기였다. 아내는 그 장인의 셋째 딸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셋째 딸, 여자는 신식 교육은 물론 학교 문턱도 못 넘을 때 아내는 초등학교를 다닌 인텔리였다. 아내는 나의 초등학교 한 해 선배였다. 어쩌다 눈이 맞았는지 모르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일 때 그녀의 눈에 걸려든 것이 내가 아니었나 싶다. 가난한 자작농이지만 한문 공부를 많이 한 할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은 양반 집안이었고 한학자 집안으로 알려져 있었다. 끌어 내! 나는 호기롭게 소리쳤다. 네 이노옴! 내가 너의 장인이다 이노옴! 장인동무, 양반상놈은 물론 빈부격차가 없는 세상이 왔소. 장인동무가 가진 재산은 모두 당의 것이오. 그러니 몰수하겠소. 당신 딸 덕에 목숨 부지했다는 것만 명심하소. 오늘부터 이 집은 당의 재산이오. 우리가 기거할 것이니 당신 가족은 저 동네 빈 집으로 옮기도록 하시오. 장인 하종호는 부들부들 떨다가 기절하더니 게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죽었다. 나는 잘 죽었다고 생각했다. 만약 살았더라면 온갖 고초를 다 겪었을 것이고 막판에는 대창에 찔려 죽거나 강변에서 총살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경찰과 군인 역시 보복을 했고 우리 역시 그렇게 했다. 경찰과 군인이 빨치산 가족을 죽이면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야음을 타서 동네로 잠입해 그들의 가족을 죽였다. 조국 통일이니 만민 평등 세상이니 하는 것은 구호일 뿐이고 인간 대 인간의 살육전이고 보복전이었다. 적이냐 동지냐,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김일성이냐 이승만이냐, 완전 조폭들 세력 싸움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 나도 미쳤지. 온통 미친놈의 세상에서 정상이라면 오히려 정상이 더 미친 사람이 아닐까. 미쳐야 미치는 거다. 나는 미쳤다. 마르크스, 레닌을 신봉하고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사회주의 광신도가 되어 날뛰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야. 우리 아버지란 말이야. 장인을 자아비판대에 세우는 것이 공산주의라면 나는 절대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 당신은 내 아버지를 죽였어. 당신과 끝이야. 아이들은 내가 데리고 간다. 내 아버지를 죽인 빨갱이를 나도 죽이고 싶어. 아내 하정남은 떠났다. 두 아이를 앞세우고 세 번째 아이를 뱃속에 넣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더 이상 그녀의 남편일 수 없었고, 아이들의 아버지일 수 없었다. 쫓겨 다니느라 용서를 빌 수도 없었고,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들의 울이 될 수도 없었다. 왜냐면 나의 자랑스러운 귀향은 백일몽같이 잠깐 피다 만 꽃이었고, 끝내는 잠수를 타야 했다. 수배자의 운명은 안정이 없다는 거다. 쫓고 쫓기는 급박한 상황이 닥쳐도 절대 침착성을 잃지 말 것, 어떤 자리, 어떤 마을에 살아도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 것, 보통사람처럼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할 것, 간혹 밤중에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고 아내 옆으로 스며들었다가 밖에서 무슨 인기척만 나도 뒷문 봉창을 열고 월담을 할 수 있을 만큼 민첩할 것, 내가 즐겨 한 운동은 역시 달리기와 복싱이었다. 그 덕에 감옥소 안 가고 살아냈다. 딱 한 번 용서를 빌기 위해, 아니,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정남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아내는 고대광실이었던 친정으로 돌아가 장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월담을 했다. 아내의 방은 사전에 염탐을 했던 터라 간단하게 방문을 열었다. 방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임자, 나 왔소. 문 좀 따 주오. 잠깐 할 이야기도 있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한참을 말이 없었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조용하지만 차가운 아내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순사로 있는 삼촌 부르기 전에 가소. 우리 인연을 끝났소. 두 번 다시 나나 아이들을 찾지 마시오. 또 찾아오면 아이들과 자결하겠소.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시오. 당신이 찾지 않으면 내 아이 셋을 온전한 하 씨 집안 아이로 키우겠소. 그때, 나는 알았지. 아내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는 것을. 처음부터 그녀가 나를 택했고 그녀가 나를 내쳤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아무 권한도 행세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를 마음에 두었다고 했다. 나보다 세 살 위였던 그녀, 나 아니면 절대로 시집 안 가겠다고 목을 매는 바람에 매파를 우리 집에 보냈다는 것도 후에 안 사실이었다. 그녀 덕에 나는 부잣집 셋째 사위가 되었고, 대학을 다닐 수 있었고, 일본 유학도 갈 수 있었다. 그 사이 두 아이가 태어났고, 해방이 되었고, 나는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지하 운동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내를 떠났다. 아니, 고향을 떠나 도시로 잠입했다. 경찰과 숨바꼭질은 질겼다. 숨고 또 숨어 다니는 생활이 계속되면서 의식주 해결이 급선무가 되었고, 나는 적당히 사기꾼이 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조국일보 신문기자를 자칭했고, 어떤 단체에서는 한국대학 교수를 자칭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적을 두고 사회주의 물이 들었던 나는 머릿속에 든 게 많았다. 성격상 학구파이기도 했다. 허우대 멀쩡하고 인물 잘생겼겠다, 언변 좋겠다, 일본어만 아니라 문학적 소양까지 고루 갖춘 나는 세상이란 바다를 거치적거릴 것 없이 흘러다녔다. 그렇게 흘러다니던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몸이 병든 것이다. 몸이 쉬라고 경고를 하는데 마음 편하게 쉴 자리는 도시가 아니라 깊고 깊은 산사에 의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람이 땡초 행운 스님이었다. 그를 부산 자갈치시장 옆에 있던 홍등가에서 만났다. 월화라는 술집 작부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건달로 지내던 때였다. 역시 하룻밤 풋정이 그리웠던 스님이 승복 대신 변복을 하고 빡빡 깎은 머리에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홍등가에 나타났다. 그와 나는 첫 대면부터 죽이 맞았다. 보아하니 산승이 하산을 하셨구랴. 도 닦는데 걸림돌 하나가 박혀서 뽑아버리려 왔소이다. 어떻게 뽑을 생각이슈? 뿌리째 몽땅 뽑아내 던지고 가야 싹이 안 돋지요. 섣불리 뽑으려 들다간 가시덩굴에 갇히는 꼴이 되겠소만. 어디 예리한 칼 없소? 있긴 있소만 그 칼은 칼집에 들어서 뽑기가 수월치 않을 게요. 어디 봅시다. 한 번 뽑아봐야 맛을 알지요. 찔리면 치명타를 입을 건데. 목숨이 대순가. 이 풍진 세상 길게 살 필요 있겠소. 그럼 한 번 뽑아 보오. 불러 보소. 월화야, 요석공주 찾아온 원효대사니 극락으로 모셔라. 다음 날, 스님을 따라 운두암으로 떠났었다. 그 암자에서 한 철을 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첫 만남 이후 주말만 되면 간편한 등산복 차림으로 운두암을 찾아왔다. 우리는 행복했다.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손을 잡고 골짝을 헤매고 달천의 크고 작은 산을 탔다. 사랑 놀음에 기둥뿌리가 썩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하루는 행운 스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자네, 쫓기는 중인가? 누군가 우리 절에 수상한 남자가 숨어 산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 모양이야. 낮에 파출소 순경이 왔었네. 이것저것 자네에 대해 묻더군. 아는 게 있어야지. 자네 이름 적어서 신원조회한다고 챙겨갔네. 혹 명지 씨 부모가 자네 뒤를 캐는 것은 아닌지. 명지 씨 부모가 우리 달천의 재력가라네. 부인이 둘이야. 첫째 부인에게 난 딸이 명지 씨라네. 딸 하나만 낳고 단산이 된 모양이야. 명지 어머니께서 가세가 기울긴 해도 반듯한 집 규수를 골라 명지 아버님께 둘째 부인으로 추천했다는군.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고명딸이 바람이 난 것 같으니 그 상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내 추측이네만. 내 행운은 거기서 끝났다. 나는 다시 도피를 해야 할 입장에 섰다. 서른여섯 살의 중년 남자가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처녀랑 눈이 맞아 절간 문설주 내려앉는 줄도 모르다니. 한심하고 또 한심했다. 말없이 바랑을 챙겼다. 짐이라야 간단한 소지품이 다니 쌀 것도 부칠 것도 없었다. 스님이 주는 바랑에 담아 짊어지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그냥 떠나올 수가 없었다. 만나야 했다. 만나서 대충 떠나야 할 사정을 이야기해 놓고 떠나도 떠나야 했다. 나는 간첩이었다. 본의 아니게 간첩 혐의를 쓰고 수배자 명단에 버젓이 올라 있었다. 행운 스님에게 부탁해서 학교에 있는 그녀를 절로 불러 올렸다. 금세라도 경찰이 들이닥칠 것 같아 한시가 급했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었다. 그녀를 만났다. 발그레 홍조까지 띠고 방글방글 웃는 그녀는 한 그루 복숭아 나무였다. 연분홍 꽃이 만발한 복사꽃 나무였다. 선생님, 웬일이래요? 긴한 할 말이 있어서 오라고 했어요. 수업은 끝났어요? 그럼요. 사실 어머니께서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 한다고 일침을 놓긴 했지만. 뭐 어때요. 나도 어른인데. 그래요. 말 하리다. 가능하면 담담하게, 평범하게, 진솔하게, 내 신상 이야기를 했다. 그녀에게만은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차를 따라 마셨다. 내가 간첩 혐의를 받고 쫓기고 있다는 것까지 말하고 나도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그게 다예요? 아니요.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소. 나는 이미 아내와 아이가 셋이오. 비록 아내도 아이도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지만 모두 내 과거 행적으로 빚어진 일이긴 하오만 엄연한 사실이오. 법적으로 나는 유부남이오. 그런 내가 순결하고 깨끗한 그대를 취하려 했으니 미안할 따름이오. 부디 잠깐 나와 노닌 것은 못된 춘정 탓이라 돌리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시오. 그게 다예요? 예. 언제 떠날 거죠? 오늘 밤에라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올 때까지 떠나지 마세요. 꼭 그래 주실 거라 믿습니다. 제 마음을 훔친 벌이니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아니면 평생 찾아다닐 겁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그녀가 차비라도 챙겨다 주려고 그러나 생각했다. 아무리 사기에 능하고, 임기웅변에 능한 다재다능한 문재라도 수중에 동전 한 닢 없이 길을 나선다는 것은 경찰서 찾아가 자수하고 전향서 한 장 쓰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녀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 기다림이 평생 그녀를 내 곁에 묶어 둘 끈이 되었다. 윤명지, 그녀는 그 밤에 나를 따라 지난한 삶을 선택했고 가장이 되어 나를 보호하고 먹여 살렸다. 아내는 단칸 셋방이라도 얻어 들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 그림을 가르쳐 생활고를 면했고 자칫하면 튀어야 하는 내 도피자금을 댔다. 그래도 행복했다우. 잠결에도 당신 발자국 소리는 어찌 그리도 환한지. 골목을 들어서는 당신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안으로 걸어 숟가락을 끼워놨던 문고리를 열어 놨었지요. 당신 몸에서 나는 신선한 냉기가 어쩜 그리도 따뜻하고 좋았는지. 밤새도록 당신 품에 안겨 누웠다 눈을 떠보면 당신 베개만 내 품에 안겨 있곤 했지요. 당신 오면 주려고 준비해 놨던 봉투, 우리만 아는 그 자리를 더듬어 보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지요.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지요. 당신이 어찌 알까요. 당신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있지요. 그때가 언제였던가. 당신이 법으로부터 풀려 자유인이 되었을 때였을 거요. 당신이 부인과 자식에게 돌아가야겠다고 했을 때 가슴이 툭 떨어집디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었었지만 그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놨지요.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런 여자였답니다. 그랬지. 당신이 가라고 했지. 가끔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씩 다녀가면 좋겠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통 못 오면 편지라도 한 번씩 근황을 알려달라고 했었지. 나에게 더 바라는 것이 없다면서. 나와 몇 년을 쭉 함께 산 것으로 평생 살아도 행복할 거라고. 당신은 친정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었지. 진짜 그때 나는 당신을 영영 잃어버리는 줄 알았지. 내가 내 고향, 내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당신도 돌아갔었잖아. 버스터미널에서 당신은 충주 가는 버스 노선 쪽으로, 나는 산청으로 가는 버스 노선 쪽으로 가는데, 당신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군. 그때 알았지. 당신이란 사람에게 칼같이 매서운 면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울면서 나를 바라본다는 것을 알았지만 돌아볼 수 없었어요. 만약 그때 돌아봤다면 당신과 헤어질 수 없을 테니까요. 모질게 마음먹어야 했죠. 왜냐면 당신에겐 나보다 아이들이 소중했기 때문이죠. 늦었지만 아버지 노릇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었소.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으니까. 아내도 자식도 나를 내쳤소. 참 갈 데가 없습디다. 면전에서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왔느냐고 합디다. 나는 빨갱이 자식이 되기 싫어요, 라고 외치는 아들이 있었소. 그랬다. 경찰에 찾아가 전향서에 이름과 도장을 찍고 나왔을 때 나는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반공법에서 풀려 자유인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행복했던 것은 연좌제에 걸렸던 내 자식의 호적에서 빨간 딱지를 떼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전처도 전처 소생의 아들과 딸도 나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다. 나 때문에 그들이 받았던 고초를 어찌 모르겠는가. 수시로 경찰에 불려 다니며 추달받고 시달렸다는 것을 안다. 전처는 하반신을 못 썼다. 경찰의 모진 고문 탓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맞아 죽었다. 그들이 내 가족이란 이름으로 당한 고초는 참으로 컸다. 나는 그들에게 남편과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였다.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뭐 있다고 이제야 나타나. 그 잘난 아버지 노릇 하겠다고? 지나는 개가 웃겠네. 당신은 이미 우리에겐 지워진 이름이야. 제발 좀 우리 살게 해 줘. 여기 안 나타나는 게 우리를 위하는 길이야. 남남으로 돌아서. 우리 아이들에게 빨갱이 자식이란 딱지 떼어주고 가. 당신 때문에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마쳤어. 빨갱이 새끼라고 늘 따돌림당하고, 돌팔매질당했지. 당신이 뭔데.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게 뭔데 이제 와서 남편 노릇하고 아버지 노릇 하려고 해. 꿈에라도 볼까 무섭다. 그들은 치를 떨었다. 가족이 아니었다. 내 영달을 위해 그랬던가. 나라를 구하겠다는 영웅심리 때문이었던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래, 떠나주자. 나는 조용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어주고 나왔다. 다 버렸다. 가족이 나를 버린 것인지, 내가 가족을 버린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풀 수 없이 얽히고설킨 고는 깨끗이 자르는 게 상수다. 내겐 이미 아내가 있지 않는가. 내 생명, 내 사랑, 나는 아내를 찾아 충주로 갔다. 친정에 가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없었다. 봄이었다. 산기슭마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은 산야만 아니었다. 당신을 찾아 떠나는 내 마음에도 연초록 싹이 파릇파릇 돋았어. 이제 나는 거침없이 당신을 사랑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지.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짐 보따리도 홀가분하게 벗어버렸으니 이 세상 어디에 가든 우리 둘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당신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싶었지. 용기 백배였어. 나는 휘파람을 불었어. 지나간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미래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했지. 당신을 만나면 당신과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깊은 골로 들어가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지. 하지만 나는 당신을 만나지 못했어. 대문 앞에서 쫓겨났지. 장인이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나를 밀어냈어. 자네가 여기 무슨 염치로 왔는가. 나는 딸이 없다네. 부모 버리고 남자 따라 야반도주한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라네. 장인은 삽짝에서 나를 돌려 세웠지. 장모님이라도 뵙고 가게 해 주십시오. 그 사람 진작 떠났네. 그 아이 찾아다니다 실성해서 일찌감치 떠났다네. 진짜 그 사람 안 왔습니까. 거짓말해서 무얼 하겠나. 두어 달 전에 오긴 왔었지. 제 어미 묏등에 가 하룻밤을 잤다고 하더군. 다음 날 떠난다기에 잡지 않았네. 자네랑 헤어졌다고 하더군. 자네들 사랑이란 것이 겨우 그 정도였는가? 이제 자유인이 됐으니 그 사람과 남은 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용서하시고 어디 가면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낸들 알겠나. 정처 없이 떠돌다 어디든 마음 맞는 자리를 찾으면 주저앉겠다고 하더군. 장인은 먼눈바라기를 했지. 뒷짐을 지고 그윽한 눈으로 남쪽을 향해 바라보는데 눈물이 크렁크렁 맺혔더군. 나는 알 수 있었어. 장인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 게야. 비록 장모님이 당신 때문에 실성해서 돌아가신 후 둘째 부인과 더불어 살고 있지만 당신 딸을 잊지 않으신 게야. 그래요. 제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잡지 않았어요. 다만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그 사람과 정리한 게냐? 아니요. 그 사람은 가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저는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래, 알았다. 사랑은 사랑한 만큼 고통도 큰 법이다. 네 마음에서 그 사람을 지우면 다시 돌아오너라. 참 마음이 넓고 인자하신 어른이셨어. 그래, 그때 나도 고샅을 나오다가 쓰러졌어. 당신을 찾을 수 없으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어도 죽은 것 같지 않았을 거야. 휘청휘청 고샅을 걸어 나오는데 눈앞이 뿌옇게 변하는 거야.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픽 쓰러졌던 게야. 장인이 나를 부축해서 당신 집에 데리고 들어갔지. 정신을 차렸더니 당신 방이더군. 방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어. 장모님이 밥상을 차려 왔더군. 며칠 쉬었다 가라면서. 꾸역꾸역 그 밥그릇을 비우고 조용히 당신 집을 나왔어. 갈 곳이 없더군. 결국 내가 찾아가서 의탁할 만한 사람은 행운 스님뿐이었어. 달천 운두암! 당신이 왔었지요. 공양주 보살과 함께 살면서 마음의 때가 벗겨지면, 아니, 당신을 지울 수만 있다면 삭발하고 부처님을 섬기겠다고 날마다 백팔 배를 하면서 나를 인도해 달라고 부처님께 매달릴 때였지요. 그때도 이맘 때였던가요? 회색 승복이 흠뻑 젖도록 삼천 배를 목표로 절을 하는데 어떤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어요. 나도 모르게 돌아본 그 자리에 당신이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었지요. 그랬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지천에 아카시아 향기가 풀풀 날리던 봄, 아내와 나는 늘 봄처럼 생동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봄이 우리를 만나게 하고, 봄이 우리를 헤어지게 했다. 봄기운을 빌어 태어난 연분이라서 그럴까. 참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이제 아내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다. 내 병수발하느라 십 년 사이 그 곱던 얼굴이 폭 늙어 파파 할미가 되었는데. 이제 그만 놔 주고 싶다. 아내여, 대문 밖에 나가 보오. 당신이 기다리던 손자가 왔을 게요. 할머니, 저 행운입니다. 검은 정장을 한 손자가 앞장서고 그의 뒤에 검은 정장을 한 건장한 네 남자가 관을 들고 등장했다. 아내는 내 옷깃을 한 번 더 다독여 놓고 밖으로 나가 손님을 집안으로 들였다. 검은 정장을 한 사내 넷은 검은 구두를 벗지 않은 채 방안으로 들어섰고 내 옆에 관을 놓았다. 그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를 이리저리 뒤척이며 무명 끈으로 묶더니 달랑 들어 관에 넣었다. 내 몸은 가볍게 관속에 들어갔고, 파리한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고요했다. 나는 리무진이라는 멋지게 생긴 자가용을 탔다. 꽃상여 타고 가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건만 세상이 달라지면서 꽃상여는 촌스럽다고 없애버린 자리에 리무진이라는 고급 승용차가 등장했다. 나는 그 고급 승용차를 타고 화장터로 향했다. 아내는 내 육체가 든 관 옆에 앉아 손자의 손을 잡고 가만가만 내 삶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너의 할아버지는 불쌍한 사람이란다. 한때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회주의에 빠져 젊음을 탕진했지만 남은 것은 병든 몸이었다. 너의 할아버지 소원은 고향에 돌아와 사람 노릇하고 사는 것이었다. 그 원대로 늘그막에 겨우 자유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지. 고향에 돌아왔지만 자식에게 버림받는 노인으로 외롭게 살다간 사람이 너의 할아버지란다. 할아버지는 늘 너의 아버지를 그리워했단다. 아니, 죄책감에 시달렸지. 가족을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어찌 나라를 지키겠다고 설쳤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하셨지. 너는 너의 할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마라. 참으로 장한 어른이시다.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 장롱 안에 있을 게다. 그걸 아버지께 갖다 드리도록 해라. 그리고 집과 텃밭은 너에게 남겼단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란다. 할머니는 어쩌시려고요? 너의 할아버지랑 같이 갈 곳이 있어. 내 육신도 소멸하면 함께 묻히게 될 자리지. 아내는 말을 끝내고 자꾸만 내 육신이 든 관 위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을 봤다. 아내는 한 그릇도 되지 않는 재를 쓸어 담은 나무 곽을 무슨 보물단지 안듯이 안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손자 행운이가 뒤따랐다. 행운이가 우울한 얼굴로 할머니,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하며 묻자 아내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충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아내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아카시아 꽃처럼, 아니 이십 대 풋풋한 젊음으로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갑시다. 우리들의 자리로. 당신과 함께 아니면 갈 수 없는 그곳으로.
박래여│산청 출생. MBC 전원생활 체험수기 대상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소설, 《현대시문학》 시 등단. 제8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소설 부문), 수필집 《푸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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