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난지도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경기 때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함성이 울려 퍼졌던 바로 그 서울월드컵경기장이다.
한때 서울의 온갖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모아다 세계 최대의 쓰레기산을 만들었던 그 난지도가 이렇게 변한 것이다.
정연희의 소설 <난지도>는 쓰레기로 덮힌 난지도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잠시 그때 그 모습을 살피려고 한다.
"해는 지겹게 길었다.아직도 중천에서 지는 길을 잃은 것처럼 머뭇거리고 있었다.가위에 눌렸을 때처럼 허더거리며
쓰레기의 계곡을 빠져나오자 샛강의 뚝이 발치 저쪽으로 내려다보였고 그 뚝에서 푹꺼진 늪지대에 수백 개의 움막집
속살 뜯긴 굴딱지처럼 널려 있었다.개미굴만 못한 움막이었다.쓰레기 움막이다.천막조각 합판조각 보온재를 땋는 대로
이어붙이고 더러는 깨어진 스레이트를 주워다가 누덕누덕 이어 붙인 지붕도 있었다.각목(角木)에 함석이 섞여 서로
버텨 주기도 했고 무슨 살롱이라는 글씨가 옆으로 누워 있는 문짝도 있었다.
마을로 내려 서는 빈터에도 쓰레기는 마음놓고 흘러내렸다.거대한 쓰레기산이 마을을 향해 점점 밀려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쓰레기산이 움죽움죽 움막마을로 다가오고 있었다.쓰레기산은 굴딱지 같은 움막마을을 무시하고 위엄
있게 몸을 밀어내고 있다.샛강이 죽어버린 것은 오래 전 이야기다."
먼 엣날의 이야기가 아니다.1980년대 난지도는 온통 쓰레기에 덮혀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이곳저곳에 쓰레기가 밀려들고 있고 수백 개의 움막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난지도다.그곳의 샛강도 죽어버렸다고 했다.
'죽음의 땅' 그렇게 죽어가는 그 쓰레기산에 세계 10대 명문축구경기장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선 것이다.
그로부터 이 난지도에 크나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서울은 동쪽과 서쪽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크게 일었다.동쪽 잠실에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몰고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경기로 잠실의 변화는 본격화된다.잠실올림픽메인스타디움이
그 변화의 불길을 당겼다.서쪽 난지도의 변화 역시 스포츠경기장이 변화를 점화(點火)시켰다.
우리나라에 양대 유명 경기장 건축물 잠실올림픽메인스타디움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우리나라 건축사에서
돋보이는 걸작품으로 꼽힌다.서울월드컵경기장 건설을 현장 지휘하였던 진철훈 전 월드컵주경기장건설단장의 평가다.
"80년대 초에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 움을 설계한 건축가는 공간건축의 고 김수근씨다. 한 세대에 올림픽과 월드컵대회를 경험한다는 것은 그 만큼 귀한 것인데 98년 9월에 서울월드컵경기 장 설계자로 선정된 사람은 바로 김수근씨의 수제자인 이공건축의 류춘수씨다. '이공(Beyond Space)'의 의미는 스승이 돌아가신 후 공간을 떠났다는 의미와 '다른공간'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FIFA의 블래터 회장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대해 극찬을 하는 것은 아시아 최대규모의 경기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선수와 관중, 언론보도진 등 경기장이 갖추어야 할 기능측면에서 완벽하고 미려한 외관을 지난 설계의 독창성 때문이다. 그를 수식하는 말은 빈번히 바뀐다.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라는 존경도 있었고, 지금은 '2002년 월드컵주경기장 설계자'이다. 경기장 설계도면은 설계 총괄책임자인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단 한장도 없다. 구석구석 벽면의 색깔까지도 결정한다. 그는 스포츠건축의 일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건축에 합류한 74년부터 스승과 함께 올림픽주경기장 설계에 참여했고 올림픽체조경기장도 설계했다. 말레이시아 시라와크 국제 청소년경기장 기본 설계를 그가 했고 부산 사직야구장, 원주 체육관도 그의 작품이다. 또 지난 92년 국제현상설계로 진행된 중국최대의 건축물인 해남의 868타워 설계자로 선정되어 한국건축가의 명성을 세계로 날리기도 했다. 류춘수씨의 서울 월드컵경기장 설계의 주요 특징은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고유 정서를 형상화한 시대성과 첨단시설을 겸비한 경기장 고유의 기능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경기장의 외양은 방패연, 소반, 팔각 모반, 황포돛배 등의 전통요소를 조합해 상징화한 형태로 거부감 없이 한강주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되도록 설계한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그는 올림픽경기장을 설계했어도 초대장하나 받아보지 못했지만 건축가의 중요도를 인정하고 대우해 줄 때 진정한 건축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월드컵 경기장과 같이 아름답고 역사적인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것은 최고의 건축가 류춘수씨를 만난 행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 류춘수는 처음에 경기장을 상상할 때 원형 관람석을 몇 번이고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방패연 사진을 보았다. 그야말로 등줄기에 전율이 흐르는 착상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 가운데가 여유 있게 뚫린 방패연의 공간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기존의 설계안은 모조리 휴지통으로 던져졌다. 전통의 소반은 경기장 안팎의 콘크리트 구조와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들 그리고 6만여 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의 밑그림이다. 전통의 소반은 그것이 일상적으로 쓰이던 때, 제철 과일이나 약식, 조촐한 술대접 용도였으나 이제 그 기능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내면에 뿌리내린 그 이미지만큼은 경기장 안팎을 두루 감싸는 형상으로 6만여 명의 열정을 담아내는 상징이 되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설계도를 만들 때를 회고하는 류춘수씨의 글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FIFA가 정하는 수많은 건축적 규정을 잘 지킨다고
해서 모든 기능성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이 경기장은 FIFA 기준의
단순한 축구전용 경기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기장은 서부 서울
재개발의 핵이며, 쓰레기 더미 난지도를 거대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서울의 새로운 Open Space의 구심점이다. 그러하기에 이 월드컵경기장은 롯데월드처럼 거대한 Urban Structure로서 다목적 기능의 복합건물이다. 64,000여 관중석 규모의 이 축구전용구장에는 보조경기장과 100여 개의
멤버십 방이 있으며 대회 후에는 10여 개의 중・대형 영화관, 4,500평 규모의 할인매점, 수영장을 포함한 실내 스포츠 시설은 물론 쇼핑 및 전문 식당가가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계획과정의 스케치 원본이 전시될 월드컵기념 박물관도 들어선다.서울월드컵경기장의 턴키 현상설계에 당선된 지 꼭 3년이 지났다. 현상기간 3개월을 전후한 치열한 경쟁의 에피소드는 훗날에 기록할 것이지만, 결국 어려운 전투를 통하여 나는 과분한 영광을 얻었다. 당선 발표 후, 모 일간지에 어떤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우리 설계안에 대해서 “상징성만 있을 뿐 기능성이 없다”라고 혹평을 했다. 기념적 건축의 상징성은 기능성만큼 중요한 디자인 목표이기에 내 건축의 상징성을 평가해 준 셈이다. 고맙기도 하지만, 기능성은 전문성이 없는 그가 논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우리는 안다. 누차 글과 강연을 통해 주장해 왔지만, 본인의 건축은 상징성이나 조형성보다는 평면과 단면도가 우선으로 스케치되는 공간의 질과 기능성을 강조한다."
건축가 류춘수씨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함축하고 있는 건축공간의 개념,그 다섯 개를 강조한다.
- 담음
경기장 시설은 근본적으로 ‘담는다’라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선수들을 담으며, 관중을 담는다. 그리고 전 세계 이를 시청하는 이들의 성원과 염원을 담는 무대이다. 다른 한편, 월드컵 경기장은 단순히 물리적 측면의 시설임을 넘어, 우리문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아 보여주는 큰 그릇이다.
- 소반
낯모르는 과객에게도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했던 넉넉하고 푸근한 심성, 그러한 정성과 풍요로움이 가득 담긴 소반. 선수들의 땀을 담고, 21세기 희망의 축제를 담는 소반. 이러한 이상을 담는 소반이어야겠다.
- 띄움
언어와 인종을 떠나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인간의 삶과 승리를 향한 희망. 새로운 세기에 모든 이의 성원과 희망을 담아 방패연에 띄워 보낸다.
- 황포돛배
한강은 한반도 역사의 증인이다. 근대화의 물결 속에 하얀 백사장과 함께 잃어버린 마포나루와 그곳을 드나들던 황포돛배의 정취. 무명베로 돛을 만들고 그 틈을 막기 위해 황토가루가 칠해진 황포돛배는 비록 지금은 잊혀졌지만, 한강의 역사를 말해주는 대표적 상징물이었음에 틀림없다.
- 사신
동의 청룡, 서의 백호, 남의 주작, 북의 현무.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고 인간의 정주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사신. 주경기장과 같이 4방위가 모두 나름대로의 중요성을 갖는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사신개념의 적용은 상징적 측면뿐만 아니라 대지개발에 있어서 효율적 개념 전개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