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예수 시대 2＞ : 김용옥의 『나는 예수입니다』

[흐르는 등불]

김용옥의 『나는 예수입니다』

1. 전방위적 학문의 세계 속을 노니는 도울 김용옥의 관심 중에서도 기독교와 예수에 대한 정열은 요즘 말대로 “찐”한 진심을 보여준다. 그가 출간한 많은 작품 중에서도 ‘기독교’와 관련된 것들은 어떤 분야의 연구보다도 풍부하고 깊이가 있다. 도올은 그동안에 이루어진 예수 관련 복음서와 기독교 문헌의 주석 작업을 종합하여 ‘예수’의 실체를 드러낸 작품을 완성했다. 『나는 예수입니다』은 예수에 대한 기록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예수의 삶과 그가 지향했던 ‘하느님 나라’의 의미를 추적한다. 도올은 마가복음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들이 나 예수를 알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마가를 타 복음서의 전제가 없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야말로 나 예수의 소박한 모습이 비쳐지고 있는 매우 절제된 작품입니다.”

2. 도울이 정리한 예수에 관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먼저 ‘민중’과의 일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중심의 율법주의와의 단절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바로 민중들의 삶에 희망과 의미를 부여하는 새로운 종말론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의 유대성을 강조한 연구와 대치되는 관점이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를 유대교적 질서 속에서, 유대적 종교 갱신을 추구했던 유대인이라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올은 예수의 주 활동지 갈리리 지역을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와 다른 질서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 태도를 가진 곳으로 설정하고 있다. “나는 유대평야에서 살지 않았고,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토라(율법)의 명령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3. 예수의 ‘민중’ 지향성은 갈리리 전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갈리리 호수 주변은 유대인들만 거주하는 지역이 아니며 다양한 이방인들이 혼합하여 살고 있는 곳이다. 예수의 전도 활동의 시작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친 일이다. 도올은 ‘귀신’을 악령이 아닌 길을 잃은 영이라고 본다. 즉 성령에서 사용한 영이나, 귀신의 영이나 모두 똑같은 ‘프뉴마’라는 헬라어로 표현되는 데, 이것은 ‘영’ 자체의 부정성이 아닌 있어야 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헤메고 있는 영을 ‘더러운 귀신’으로 본 것이다. 귀신의 축출은 민중들을 옥죄고 괴롭히는 잘못된 힘으로부터의 탈출을 상징하고 있다. 거라사 지역의 ‘로마군대’라는 이름의 귀신을 축출한 일도 이러한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귀신’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통해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잘못된 힘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4. 도올은 예수가 ‘유대인’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고통받는 ‘민중’이었지, 유대인이 아니었다. <마가복음>에는 “우리를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자는 모두 우리 편에 서있다. 우리를 위하고 우리와 함께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예수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한 핵심적인 행위와 믿음의 실천이었다. 비록 다른 집단일지라도 옳은 것을 추구한다면 결코 경쟁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예수의 선포 “때가 찼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워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한 현재의 교회에 의해 변모된 폐쇄된 ‘교회’ 신앙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의 삶 속에 깃든 희망과 새로운 질서를 성취하기 위한 변화의 촉구였다. “회개하라”는 잘못을 빌어라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헬라어 ‘메타노이어’로 ‘생각을 바꾸다’, ‘인식을 전환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새 술은 새 부대에”와 같이 그동안 민중을 지배하고 있던 율법적 삶의 태도에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협력 그리고 사랑의 하느님(신)에 대한 진정한 기도의 세계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5. 예수가 수많은 민중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면서 선포했던 ‘하느님 나라’는 바로 치병과 축귀을 통해 성취되는 건강한 민중들의 안정된 삶이 보장된 세계였다. 그것은 죽음 이후의 영역이 아닌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이 곳을 건설하기 위해, 민중들에게 요구된 것이 ‘메타노이어“였으며, ’이웃 사랑‘이었으며, 신에 대한 진실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 속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도, 교회의 구성도, 죽은 후의 천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6. 예수는 ‘율법주의’와의 마지막 대결을 위하여 유월절 예루살렘으로 간다. 예수는 자신의 신념과 신의 명령에 의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얼마나 위험하며 치명적인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수는 ‘성전 전복(정화)’라는 급진적인 행동을 통하여 권력층의 위선을 공격했고,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촉구했다. 예수의 적대자가 예수에게 첫 번째 계율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개의 계율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신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계율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현할 수 있는 ‘신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 그 자체이며 인간의 시비를 뛰어넘습니다. 그것은 절대적 타자이며 우리의 모든 보편적 사유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만이 진정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7. 예수는 성전 전복 이후, 수많은 적대자와의 문답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본질과 율법주의 폐해를 고발하였다. 그것은 성전을 통해 생존하고 있는 수많은 권력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예수를 고발하고 예수를 심판하여 로마 총독을 통해 ‘십자가형’을 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다른 복음서와 같이 여유롭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인간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가복음>이 비록 서두부터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구체적 삶 속에서 고통으로 신음했고,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했던 예수의 모습이 진정으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적인 공포를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8. 하지만 예수의 마지막 실존은 어쩌면 외롭고 쓸쓸한 삶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깨어있으라고 말했지만, 제자들은 높은 벼슬을 꿈꾸고 다퉜으며, 예수의 고통을 같이 하지 못한 채 잠들었으며, 예수가 잡히자 뿔뿔히 달아났거나 그를 부인하였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던 때, 그의 십자가를 들어선 이는 낯선 구레네의 시몬이었고 그의 시체를 무덤에 안치한 이는 산헤드린 출신의 아리마대 요셉이었다. 세레 요한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거둬 장사를 했다는 기록과 달리 예수의 제자들은 비겁했던 것이다.

9. 예수의 민중성과 갈리리 지향의 태도는 죽기 직전의 말씀에서 다시 등장한다. 예수는 부활 후, 갈리리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것이다. 다른 복음서가 예수의 부활을 ‘예루살렘’ 중심으로 설명하였지만, <마가복음>은 갈리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 말 속에 예수의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정신은 갈리리의 민중 전도와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차별없는 포용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적대적 세력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예수의 유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바로 ‘예루살렘’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예수의 갈리리 활동에 대한 해석에 따른 결과였다. 도올은 이러한 논쟁 속으로 들어가 예수의 유대성을 부정하며 보편적인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강조하고 민중과 갈리리 중심의 새로운 질서 선포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10. 도올의 『나는 예수입니다』는 예수에 관한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글 속에는 예수에 관한 다양한 논쟁과 해석적 차이의 문제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성서적 지식과 이해를 갖추고 예수의 삶에 대하여 고민을 한 사람에게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의 삶에 대한 신선하면서도 보편적인 관점을 통한 이해는 예수가 지닌 진정한 삶의 의미를 파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도올의 설명은 결코 현학적이거나 복잡하지 않으며 헬라어의 어원적 의미와 갈리리와 팔레스타인의 지리적 정보를 활용한 예수 활동의 성격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예수에 관한 글은 차고 넘치지만, 도올의 이번 작품은 또 하나의 잉여를 만들었다고 보기 보다는 읽어볼만한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분명 예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접근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보보]

- 맹목적 신앙에 대한 도올의 파헤침은 이성에 따른 논리적 전개를 통해 거짓된 종교의 문제점을 실랄하게 비판한다. 얄팍한 인간의 두려움을 이용해 종교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가장 인간적인 종교를 찾아 삶의 성찰을 추구하는 도올의 학문적 노력은 치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