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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1
19. Psalms [sɑːmz 삼-즈 ] : 시편(詩篇)
* sources : “Good News Translation English Bible Overview” (GNT영어성경 개요)
(Korean Translation : Lee Chang-bok)
1) Psalms Introduction (GNT Bible) : 시편 소개
The book of Psalms is the hymnbook and prayer book of the Bible. Composed by different authors over a long period of time, these hymns and prayers were collected and used by the people of Israel in their worship, and eventually this collection was included in their Scriptures.
시편은 성경의 찬송가이자 기도서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작가가 작곡하고 여러 시인이 지은 이 찬송가와 기도문이 모아져서 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에 사용하여, 결국 모음 시(詩)에 속하는 이 시편은 성경에 수록되게 되었습니다.
These religious poems are of many kinds: there are hymns of praise and worship of God; prayers for help, protection, and salvation; pleas for forgiveness; songs of thanksgiving for God's blessings; and petitions for the punishment of enemies. These prayers are both personal and national; some portray the most intimate feelings of one person, while others represent the needs and feelings of all the people of God.
이 종교시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도움, 보호 및 구원을 위한 기도가 있습니다, 즉 용서의 간구. 하나님의 강복에 대한 감사의 노래. 그리고 적을 처벌해 달라는 탄원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도 있고 국가적인 기도도 있습니다. 어떤 시는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이 간직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와 생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The psalms were used by Jesus, quoted by the writers of the New Testament, and became the treasured book of worship of the Christian Church from its beginning.
신약의 저자들이 인용한 이 시편을 예수께서 사용하기도 하셨으며, 초창기 기독교 교회의 소중한 예배서가 되었습니다.
2) Outline of Contents : 내용 개요
The 150 psalms are grouped into five collections, or books, as follows: 150 편의 시편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시편(詩篇), 즉 다섯 가지 시서(詩書)로 분류됩니다.
Psalms (1–41) : 시편 (1 ~ 41)
Psalms (42–72) : 시편 (42 ~ 72)
Psalms (73–89) : 시편 (73 ~ 89)
Psalms (90–106) : 시편 (90 ~ 106)
Psalms (107–150) : 시편 (107 ~ 150)
*** 요약 2
Summary
Summary of the Book of Psalms
This summary of the book of Psalms provides information about the title, author(s), date of writing, chronology, theme, theology, outline, a brief overview, and the chapters of the Book of Psalms.
요약
시편 요약
이 시편 요약은 시편의 제목, 저자, 저술 날짜, 연대기, 주제, 신학, 개요, 간략한 개요 및 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Title
The titles "Psalms" and "Psalter" come from the Septuagint (the pre-Christian Greek translation of the OT), where they originally referred to stringed instruments (such as harp, lyre and lute), then to songs sung with their accompaniment. The traditional Hebrew title is tehillim (meaning "praises"; see note on Ps 145 title), even though many of the psalms are tephillot (meaning "prayers"). In fact, one of the first collections included in the book was titled "the prayers of David son of Jesse" (72:20).
제목
"시편"이라는 제목은 70인역(기독교 이전의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는 현악기(예: 하프, 거문고 및 류트)를 지칭하다가 반주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지칭했습니다. 전통적인 히브리어 제목은 tehillim("찬양"을 의미; 시 145편 제목에 대한 주석 참조)이지만, 많은 시편이 tephillot("기도"를 의미)입니다. 사실, 이 책에 포함된 첫 번째 모음집 중 하나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72:20)라는 제목이었습니다.
Collection, Arrangement and Date
The Psalter is a collection of collections and represents the final stage in a process that spanned centuries. It was put into its final form by postexilic temple personnel, who completed it probably in the third century b.c. As such, it has often been called the prayer book of the "second" (Zerubbabel's and Herod's) temple and was used in the synagogues as well. But it is more than a treasury of prayers and hymns for liturgical and private use on chosen occasions. Both the scope of its subject matter and the arrangement of the whole collection strongly suggest that this collection was viewed by its final editors as a book of instruction in the faith and in full-orbed godliness -- thus a guide for the life of faith in accordance with the Law, the Prophets and the canonical wisdom literature. By the first century a.d. it was referred to as the "Book of Psalms" (Lk 20:42; Ac 1:20). At that time Psalms appears also to have been used as a title for the entire section of the Hebrew OT canon more commonly known as the "Writings" (see Lk 24:44 and note).
수집, 배열 및 날짜
시편은 모음집이며 수세기에 걸친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냅니다. 시편은 바벨론 포로 이후 사원에서 일하던 전문직원들에 의해 최종형태로 만들어진 것으로, 아마도 기원전 3세기에 완성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종종 "두 번째"(스룹바벨과 헤롯의) 성전의 기도서로 불려 왔으며 회당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해진 행사 때 예배와 사적 용도를 위한 기도와 성가에 사용된 보고寶庫 그 이상입니다. 주제의 범위와 전체 모음집의 배열은 이 모음집이 최종 편집자들에게 믿음과 완전한 경건에 대한 지침서로 간주되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따라서 율법, 예언서 및 정경 지혜 문헌에 따른 신앙 생활의 지침서입니다. 서기 1세기 그 모음집은 "시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눅 20:42; 행 1:20). 그 당시 시편은 일반적으로 "저작집/모음집/문서"(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구약 정경의 전체에 대한 제목으로도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눅 24:44 및 주석 참조).
Many collections preceded this final compilation of the Psalms. In fact, the formation of psalters probably goes back to the early days of the first (Solomon's) temple (or even to the time of David), when the temple liturgy began to take shape. Reference has already been made to "the prayers of David." Additional collections expressly referred to in the present Psalter titles are: (1) the songs and/or psalms "of the Sons of Korah" (Ps 42-49; 84-85; 87-88), (2) the psalms and/or songs "of Asaph" (Ps 50; 73-83) and (3) the songs "of ascents" (Ps 120-134).
시편의 이 최종 편찬에 앞서 많은 모음집이 나왔습니다. 사실, 시편의 형성은 아마도 성전 예배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솔로몬 시대) 성전 초기(또는 심지어 다윗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미 "다윗의 기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현재 시편 제목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추가 모음집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라 아들들의 노래"(시 42-49, 84-85, 87-88), (2) "아삽의" 노래(시 50; 73-83), (3) "올라가는/승천의" 노래(시 120-134).
Other evidence points to further compilations. Ps 1-41 (Book I) make frequent use of the divine name Yahweh ("the Lord"), while Ps 42-72 (Book II) make frequent use of Elohim ("God"). The reason for the Elohim collection in distinction from the Yahweh collection remains a matter of speculation. Moreover, Ps 93-100 appear to be a traditional collection (see "The Lord reigns" in 93:1; 96:10; 97:1; 99:1). Other apparent groupings include Ps 111-118 (a series of Hallelujah psalms; see introduction to Ps 113), Ps 138-145 (all of which include "of David" in their titles) and Ps 146-150 (with their frequent "Praise the Lord"; see NIV text note on 111:1).
다른 증거들은 추가적인 편집을 가리킵니다. 시편 1-41편(제1권)은 신성한 이름 야훼("주님")를 자주 사용하는 반면, 시편 42-72편(제2권)은 엘로힘("하나님")을 자주 사용합니다. 엘로힘 모음집이 야훼 모음집과 구별되는 이유는 추측상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시편 93-100편은 전통적인 모음집으로 보입니다(93:1; 96:10; 97:1; 99:1의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참조). 또다른 가능한 분류로는 시 111-118편(일련의 할렐루야 시편, 시 113편 서론 참조), 시 138-145편(모두 제목에 "다윗의"이 포함됨) 및 시편 146-150편(빈번한 "주를 찬양"; 111:1에 대한 NIV 텍스트 주석 참조)을 포함한 것입니다.
Whether the "Great Hallel" (Ps 120-136) was already a recognized unit is not known.
In its final edition, the Psalter contained 150 psalms. On this the Septuagint (the pre-Christian Greek translation of the OT) and Hebrew texts agree, though they arrive at this number differently. The Septuagint has an extra psalm at the end (but not numbered separately as Ps 151); it also unites Ps 9-10 (see NIV text note on Ps 9) and Ps 114-115 and divides Ps 116 and Ps 147 each into two psalms. Strangely, both the Septuagint and Hebrew texts number Ps 42-43 as two psalms whereas they were evidently originally one (see NIV text note on Ps 42).
"그레이트 할렐"(시편 120-136편)이 이미 공인된 단위였는지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종판에는 150편의 시편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칠십인역(기독교 이전의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과 히브리어 본문은 편수는 다르지만 본문은 일치합니다. 칠십인역은 마지막에 추가 시편이 있습니다(그러나 시편 151편으로 별도로 번호가 매겨지지는 않음). 그것은 또한 시 9-10편(시 9편에 대한 NIV 텍스트 주석 참조)과 시 114-115편을 통합하고 시 116편과 147편을 각각 두 개의 시편으로 나눕니다. 이상하게도 70인역과 히브리어 본문은 둘 다 시편 42-43편을 두 개의 시편으로 열거하고 있지만 원래는 분명히 하나였습니다(시 42편에 대한 NIV 텍스트 주석 참조).
The Great Hallel
Psalm 136 is known as the Great Hallel (the singular form of the more familiar Hallelujah). This word can be translated “Praise.” There are several portions of the book of Psalms that, depending on your translation, begin “Praise the Lord”, or “Hallelujah.” The over-arching theme of the psalter one of praise, and as you move toward the later chapters it is inescapable. What is even more profound is that even in the psalms of lamentation there is some element praise. There is a recognition of God’s ultimate sovereignty in all things, and that in all circumstances we are to praise him. Psalm 136 is a great reminder of that. After every verse is the refrain his love endures forever.
How appropriate then, after the fall and destruction of Babylon, and the pouring out of God’s righteous wrath upon the world, the multitudes shout Hallelujah! God is sovereign. He is in control. Set your gaze not on what is falling apart, but on his face, and then Praise! Hallelujah!
시편 136편은 그레이트 할렐(더 친숙한 할렐루야의 단수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어는 "찬양"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번역에 따라 시편에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또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여러 부분이 있습니다. 시편 1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찬양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욱 심오한 것은 탄식의 시편에도 찬양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에는 하나님의 궁극적 주권이 있으며, 모든 상황에서 우리는 그분을 찬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그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든 구절 뒤에는 그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는 후렴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무너지고 멸망되고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가 세상에 쏟아진 후에 군중이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은 얼마나 적절합니까!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그는 통제하고 계십니다.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찬양하라! 할렐루야!
In its final form the Psalter was divided into five Books (Ps 1-41; 42-72; 73-89; 90-106; 107-150), each of which was provided with a concluding doxology (see 41:13; 72:18-19; 89:52; 106:48; 150). The first two of these Books, as already noted, were probably preexilic. The division of the remaining psalms into three Books, thus attaining the number five, was possibly in imitation of the five books of Moses (otherwise known simply as the Law). At least one of these divisions (between Ps 106-107) seems arbitrary (see introduction to Ps 107). In spite of this five-book division, the Psalter was clearly thought of as a whole, with an introduction (Ps 1-2) and a conclusion (Ps 146-150). Notes throughout the Psalms give additional indications of conscious arrangement (see also chart, p. 1048-1051).
최종 형식에서 시편은 다섯 권으로 나뉘었고(시 1-41; 42-72; 73-89; 90-106; 107-150) 각 책에는 결론 송영이 함께 제공되었습니다(참조 41:13; 72:18-19; 89:52; 106:48; 150).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들 중 처음 두 권은 아마도 바벨론 포로 이전의 것이었을 것입니다. 나머지 시편을 세 책으로 나누어 다섯이라는 수를 얻은 것은 아마도 모세의 다섯 권의 책(또는 간단히 율법서라고도 함)을 모방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 중 적어도 하나(시편 106-107편 사이)는 적어도 자의적으로 보입니다(시편 107편 소개 참조). 이 다섯 권의 책 구분에도 불구하고 시편은 분명히 서론(시 1-2편)과 결론(시 146-150편)이 있는 완성된 체제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시편 전체에 걸친 주석을 살펴보면 시편이 의도적으로 배열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추가로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차트, p. 1048-1051 참조).
Authorship and Titles (or Superscriptions)
Of the 150 psalms, only 34 lack superscriptions of any kind (only 17 in the Septuagint, the pre-Christian Greek translation of the OT). These so-called "orphan" psalms are found mainly in Books III-V, where they tend to occur in clusters: Ps 91; 93-97; 99; 104-107; 111-119; 135-137; 146-150. (In Books I-II, only Ps 1-2; 10; 33; 43; 71 lack titles, and Ps 10 and 43 are actually continuations of the preceding psalms.)
저자 및 제목(또는 표제)
시편 150편 중 머리글이 없는 시편은 34편에 불과합니다(구약의 기독교 이전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에는 17편만 있음). 이러한 소위 "고아" 시편은 주로 제3권-제5권에서 발견되며, 여기서는 무리지어 나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편 91편; 93-97; 99; 104-107; 111-119; 135-137; 146-150. (제1-2권에서는 시편 1-2편, 10편, 33편, 43편, 71편에만 제목이 없고, 10편과 43편은 실제로 이전 시편의 연속입니다.)
The contents of the superscriptions vary but fall into a few broad categories: (1) author, (2) name of collection, (3) type of psalm, (4) musical notations, (5) liturgical notations and (6) brief indications of occasion for composition. For details see notes on the titles of the various psalms.
머리글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광범위한 범주로 나뉩니다: (1) 저자, (2) 모음집 이름, (3) 시편 유형, (4) 음악 기호, (5) 전례 기호, (6) 작곡 기회를 위한 간략한 표시. 자세한 내용은 다양한 시편의 제목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십시오.
Students of the Psalms are not agreed on the antiquity and reliability of these superscriptions. That many of them are at least preexilic appear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Septuagint translators were sometimes unclear as to their meaning. Furthermore, the practice of attaching titles, including the name of the author, is ancient. On the other hand, comparison between the Septuagint and the Hebrew texts shows that the content of some titles was still subject to change well into the postexilic period. Most discussion centers on categories 1 and 6 above.
시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표제의 오래됨과 신뢰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바벨론 포로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은 칠십인역 번역자들이 때때로 그 의미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저자의 이름을 포함하여 제목을 붙이는 관행은 옛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한편, 70인역과 히브리어 본문을 비교하면 일부 제목의 내용이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에도 여전히 변경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논의는 위의 범주 1과 6에 중점을 둡니다.
As for the superscriptions regarding occasion of composition, many of these brief notations of events read as if they had been taken from 1,2 Samuel. Moreover, they are sometimes not easily correlated with the content of the psalms they head. The suspicion therefore arises that they are later attempts to fit the psalms into the real-life events of history. But then why the limited number of such notations, and why the apparent mismatches? The arguments cut both ways.
작성 계기에 관한 머리글의 경우, 이러한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 중 많은 부분이 사무엘상 1,2서에서 가져온 것처럼 읽힙니다. 더욱이 그것들은 때때로 그들이 머리로 삼는 시편의 내용과 쉽게 연관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시편을 역사의 실제 사건에 맞추려는 시도라는 의심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표기법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왜 겉보기에 불일치하는 것일까요? 논쟁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Regarding authorship, opinions are even more divided. The notations themselves are ambiguous since the Hebrew phraseology used, meaning in general "belonging to," can also be taken in the sense of "concerning" or "for the use of" or "dedicated to." The name may refer to the title of a collection of psalms that had been gathered under a certain name (as "Of Asaph" or "Of the Sons of Korah"). To complicate matters, there is evidence within the Psalter that at least some of the psalms were subjected to editorial revision in the course of their transmission. As for Davidic authorship, there can be little doubt that the Psalter contains psalms composed by that noted singer and musician and that there was at one time a "Davidic" psalter.
저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더욱 분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에 속하는"을 의미하는 사용된 히브리 어법이 "관련된" 또는 "~의 사용을 위한" 또는 "~에 바쳐진"의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표기법 자체가 모호합니다. 이 이름은 특정 이름("아삽" 또는 "고라의 자손")으로 수집된 시편 모음의 제목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편에는 적어도 시편 중 일부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편집 수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다윗의 저작에 관해서는 시편이 그 저명한 가수이자 음악가, 바로 다윗이 작곡한 시편을 포함하고 있으며 한때 "다윗" 시편이 있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다윗이 시편을 저작하였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This, however, may have also included psalms written concerning David, or concerning one of the later Davidic kings, or even psalms written in the manner of those he authored. It is also true that the tradition as to which psalms are "Davidic" remains somewhat indefinite, and some "Davidic" psalms seem clearly to reflect later situations (see, e.g., Ps 30 title -- but see also note there; and see introduction to Ps 69 and note on Ps 122 title). Moreover, "David" is sometimes used elsewhere as a collective for the kings of his dynasty, and this could also be true in the psalm titles.
그러나 여기에는 다윗에 관해 기록된 시나 후기 다윗 왕 중 한 사람에 관해 기록된 시, 심지어 그가 저술한 방식으로 기록된 시도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시편이 "다윗의(다윗적인)" 시편인지에 대한 전통(관행/관습)이 다소 불확실하고 일부 "다윗의" 시편은 후기 상황을 분명히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예를 들어, 시편 30편 제목 참조 -- 또한 거기에 있는 설명 참조; 서문 참조, 시편 69편 소개 및 시편 122편 제목 참조). 더욱이 "다윗"은 때때로 다른 곳에서 그의 왕조의 왕들에 대한 공동체명으로 사용되며 이것은 시편 제목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The word Selah is found in 39 psalms, all but two of which (Ps 140; 143, both "Davidic") are in Books I-III. It is also found in Hab 3, a psalm-like poem. Suggestions as to its meaning abound, but honesty must confess ignorance. Most likely, it is a liturgical notation. The common suggestions that it calls for a brief musical interlude or for a brief liturgical response by the congregation are plausible but unproven (the former may be supported by the Septuagint rendering). In some instances its present placement in the Hebrew text is highly questionable.
셀라라는 단어는 시편 39편에서 발견되며, 그 중 두 편(시 140편, 143편, 둘 다 "다윗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I-III권에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과 같은 시집인 Hab 3에서도 발견됩니다. 그 의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지만 솔직히 무지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대부분 전례 표기법일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짧은 음악적 막간이나 회중의 짧은 예배식 응답을 요구한다는 일반적인 견해는 그럴듯하지만 입증되지 않았습니다(전자는 70인역 번역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히브리어 본문에서 그것의 현재 위치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 Selah (/ˈsiːlə(h)/; Biblical Hebrew: סֶלָה, romanized: selā) is a word used 74 times in the Hebrew Bible. Its etymology and precise meaning are unknown, though various interpretations are given. It is probably either a liturgical-musical mark or an instruction on the reading of the text, with the meaning of "stop and listen." Another proposal is that selah can be used to indicate that there is to be a musical interlude at that point in the Psalm. [1] It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form of underlining in preparation for the next paragraph. It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he Hebrew word sela' (סֶלַע) meaning "rock".
*** 셀라(/ˈsiːlə(h)/; 성서 히브리어: סֶלָה, 로마자: selā)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74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 어원과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다양한 해석이 주어집니다. 아마도 "멈추고 들어라"라는 의미의 전례 음악 기호 또는 텍스트 읽기에 대한 지침 일 것입니다. 또 다른 견해로는 시편의 그 지점에 음악적 막간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셀라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다음 단락을 준비하기 위해 밑줄을 긋는 형태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반석"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셀라'(סֶלַע)와 혼동되어서는 안됩니다.
Occurrences
This word occurs 71 times in 39 of the Psalms, and three times in Habakkuk 3: altogether 74 times in the Bible. [2] It is found at the end of Psalms 3, 24, and 46, and in most other cases at the end of a verse, the exceptions being Psalms 55:19, 57:3, and Habakkuk 3:3, 9, 13. At least some of the Psalms were sung accompanied by musical instruments and there are references to this in many chapters. Thirty-one of the thirty-nine psalms with the caption "To the choir-master" include the word selah.
빈도
이 셀라라는 단어는 시편 39편에 71회, 하박국 3장에 3회 : 성경 전체에서 총74회 나옵니다. 그것은 시편 3편, 24편, 46편의 끝 부분에 있으며 대부분의 다른 경우에는 한 구절의 끝 부분에 있습니다. 예외는 시편 55:19, 57:3 및 하박국 3:3, 9, 13입니다. 시편의 일부는 악기 반주로 불려졌으며 많은 장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시편 39편 중 "성가대 지휘자에게"라는 제목이 붙은 총 31편에는 셀라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salm Types
Hebrew superscriptions to the Psalms acquaint us with an ancient system of classification: (1) mizmor ("psalm"); (2) shiggaion (see note on Ps 7 title); (3) miktam (see note on Ps 16 title); (4) shir ("song"); (5) masvkil (see note on Ps 32 title); (6) tephillah ("prayer"); (7) tehillah ("praise"); (8) lehazkir ("for being remembered" -- i.e., before God, a petition); (9) letodah ("for praising" or "for giving thanks"); (10) lelammed ("for teaching"); and (11) shir yedidot ("song of loves" -- i.e., a wedding song). The meaning of many of these terms, however, is uncertain. In addition, some titles contain two of these (especially mizmor and shir), indicating that the types are diversely based and overlapping.
시편 유형
시편에 대한 히브리어 표제는 우리에게 고대 분류 체계를 알려줍니다: (1) 미즈모르("시편"); (2) 쉬그가이온(시편 7편 제목에 대한 주석 참조); (3) 믹탐(시편 16편 제목 참조); (4) 쉬르("노래"); (5) 마스브킬(시편 32편 제목 참조); (6) 테필라("기도"); (7) 테힐라("찬양"); (8) 레하즈킬 ("기억되기 위해" -- 즉, 하나님 앞에서 청원); (9) 레토다("찬양하기 위해" 또는 "감사하기 위해"); (10) 레람메드("가르치기 위해"); 및 (11) 쉴 예디돗 ("사랑의 노래" -- 즉, 결혼 노래). 그러나 이러한 용어의 의미는 불확실합니다. 또한 일부 제목에는 이 중 두 가지(특히 미즈모르 및 쉬르)가 포함되어 유형이 다양하고 중복됨을 나타냅니다.
Analysis of content has given rise to a different classification that has proven useful for study of the Psalms. The main types that can be identified are: (1) prayers of the individual (e.g., Ps 3-7); (2) praise from the individual for God's saving help (e.g., Ps 30; 34); (3) prayers of the community (e.g., Ps 12; 44; 79); (4) praise from the community for God's saving help (e.g., Ps 66; 75); (5) confessions of confidence in the Lord (e.g., Ps 11; 16; 52); (6) hymns in praise of God's majesty and virtues (e.g., Ps 8; 19; 29; 65); (7) hymns celebrating God's universal reign (Ps 47; 93-99); (8) songs of Zion, the city of God (Ps 46; 48; 76; 84; 122; 126; 129; 137); (9) royal psalms -- by, for or concerning the king, the Lord's anointed (e.g., Ps 2; 18; 20; 45; 72; 89; 110); (10) pilgrimage songs (Ps 120-134); (11) liturgical songs (e.g., Ps 15; 24; 68); (12) didactic (instructional) songs (e.g., Ps 1; 34; 37; 73; 112; 119; 128; 133).
내용 분석을 통해 시편 연구에 유용한 것으로 입증된 다른 분류가 생겼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개인의 기도(예: 시 3-7편); (2)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도우심에 대한 개인의 찬양(예, 시 30편, 34편); (3) 공동체의 기도(예, 시 12; 44; 79); (4)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도우심에 대한 공동체의 찬양(예, 시편 66편, 75편); (5) 주님에 대한 확신의 고백(예, 시 11; 16; 52); (6) 하나님의 위엄과 미덕을 찬양하는 찬송(예, 시 8; 19; 29; 65); (7)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찬양하는 찬송(시 47; 93-99); (8) 하나님의 도성 시온의 노래(시 46; 48; 76; 84; 122; 126; 129; 137편); (9) 왕의 시편 --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의해, 그를 위해, 또는 그에 관한 시(예: 시 2; 18; 20; 45; 72; 89; 110); (10) 순례의 노래(시 120-134편); (11) 전례典禮 노래(예: 시편 15편, 24편, 68편) (12) 교훈적인(교육적인) 노래(예: 시편 1; 34; 37; 73; 112; 119; 128; 133).
This classification also involves some overlapping. For example, "prayers of the individual" may include prayers of the king (in his special capacity as king) or even prayers of the community speaking in the collective first person singular. Nevertheless, it is helpful to study a psalm in conjunction with others of the same type. Attempts to fix specific liturgical settings for each type have not been very convincing. For those psalms about which something can be said in this regard see introductions to the individual psalms.
이 분류에는 일부 중복된 부분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개인의 기도"에는 왕의 기도(왕으로서의 특별한 자격으로) 또는 집합적인 1인칭 단수로 말하는 공동체의 기도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을 같은 유형의 다른 시편들과 함께 연구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각 유형에 대한 특정 전례 설정을 수정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는 시편에 대해서는 개별 시편의 서론을 참조하십시오.
Of all these psalm types, the prayers (both of the individual and of the community) are the most complex. Several speech functions are combined to form these appeals to God: (1) address to God: "O Lord," "my God," "my deliverer"; (2) initial appeal: "Arise," "Answer me," "Help," "Save me"; (3) description of distress: "Many are rising against me," "The wicked attack," "I am in distress"; (4) complaint against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How long will you hide your face from me?"; (5) petition: "Be not far from me," "Vindicate me"; (6) motivation for God to hear: "for I take refuge in you," "for your name's sake"; (7) accusation against the adversary: "There is no truth in their mouths," "Ruthless men seek my life" ("the wicked" are often quoted); (8) call for judicial redress: "Let them be put to shame," "Call him to account for his wickedness"; (9) claims of innocence: "I have walked in my integrity," "They hate me without cause"; (10) confessions of sin: "I have sinned against you," "I confess my iniquity"; (11) professions of trust: "You are a shield about me," "You will answer me"; (12) vows to praise for deliverance: "I will sing your might," "My lips will praise you"; (13) calls to praise: "Magnify the Lord with me," "Sing praise to the Lord"; (14) motivations for praise: "for you have delivered me," "for the Lord hears the needy."
이 모든 시편 유형 중에서 기도(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가장 복잡합니다. 여러 담화 기능을 결합하여 여러가지로 신에에 이렇게 호소합니다. (1) 하나님께 호칭: "오 주여",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 (2) 초기 호소: "일어나라", "답변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구해줘"; (3) 고난에 대한 묘사: "많은 사람이 일어나 나를 대적하여", "악인의 공격", "내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4) 하나님께 불평: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언제까지 나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숨길 것입니까?"; (5) 청원: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나를 변호해 주십시오"; (6) 하나님이 들으시는 동기: "내가 주께 피하오니", "주의 이름을 위하여"; (7) 대적에 대한 비난: "그들의 입에는 진실이 없다", "무자비한 자들이 내 생명을 찾는다"("악인"이 자주 인용됨); (8) 사법적 보상을 요청: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그에게 그의 사악함에 대해 책임을 물으소서"; (9) 무죄 주장: "나는 성실하게 걸었습니다." "그들은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합니다." (10) 죄의 고백: "나는 당신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나는 나의 죄악을 고백합니다"; (11) 신뢰의 고백: "당신은 나에 대한 방패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12) 구원을 찬양하겠다고 서원합니다: "당신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나의 입술이 당신을 찬양합니다" ; (13) 찬양을 부르짖습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라", "주님을 찬양하라"; (14) 찬양의 동기: "주께서 나를 구원하셨으니", "여호와께서 궁핍한 자를 들으시므로".
Though not all these appear in every prayer, they all belong to the conventions of prayer in the Psalter, with petition itself being but one (usually brief) element among the rest. On the whole they reflect the then-current conventions of a court trial, the psalmists presenting their cases before the heavenly King/Judge. When beset by wicked adversaries, the petitioners appeal to God for a hearing, describe their situation, plead their innocence ("righteousness"), lodge their accusations against their adversaries, and appeal for deliverance and judicial redress. When suffering at the hands of God (when God is their adversary), they confess their guilt and plead for mercy.
이 모든 것이 모든 기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모두 시편의 기도 관습에 속하며, 청원 자체는 나머지 요소 중 하나(보통 간략한) 요소에 불과합니다. 전반적으로 시편 기자들은 하늘의 왕/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사건을 제시하는 법정 재판의 당시 관습을 반영합니다. 악한 적들에게 곤경에 처했을 때 청원자들은 청문회를 하나님께 요청하고,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의 결백("의로움")을 호소하고, 그들의 적들에 대한 고소를 제기하고, 구원과 사법적 보상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고난을 당할 때(하나님이 그들의 대적일 때) 그들은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구합니다.
Attention to these various speech functions and their role in the psalmists' judicial appeals to the heavenly Judge will significantly aid the reader's understanding of these psalms. It should be noted that reference to "penitential" and "imprecatory" psalms as distinct psalm "types" has no basis in the Psalter collection itself. The former ("penitential") refers to an early Christian selection of seven psalms (6; 32; 38; 51; 102; 130; 143) for liturgical expressions of penitence; the latter ("imprecatory") is based on a misconstrual of one of the speech functions found in the prayers. What are actually appeals to the heavenly Judge for judicial redress (function 8 noted above) are taken to be curses ("imprecation" means "curse") pronounced by the psalmists on their adversaries. See note on 5:10.
이러한 다양한 담화 기능과 하늘의 심판자에 대한 시편 기자의 사법적 호소에서 그들의 역할에 주의를 기울이면 이 시편에 대한 독자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별된 시편 "유형"으로서의 "참회" 및 "저주" 시편에 대한 언급은 시편 모음 자체에 근거가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전자("참회")는 참회의 전례적 표현을 위한 7개의 시편(6; 32; 38; 51; 102; 130; 143)의 초기 기독교 모음집을 말합니다. 후자("저주")는 기도에서 발견되는 담화 기능 중 하나의 오해에 근거합니다. 하늘에 계신 재판관에게 법적 구제를 위해 실제로 호소하는 것(위에서 언급한 담화 기능 8)은 시편 기자들이 적들에게 선언한 저주("저주imprecation"는 "저주curse"를 의미함)로 받아들여집니다. 5:10에 대한 설명을 참조하십시오.
Literary Features
The Psalter is from first to last poetry, even though it contains many prayers and not all OT prayers were poetic (see 1Ki 8:23-53; Ezr 9:6-15; Ne 9:5-37; Da 9:4-19) -- nor, for that matter, was all praise poetic (see 1Ki 8:15-21). The Psalms are impassioned, vivid and concrete; they are rich in images, in simile and metaphor. Assonance, alliteration and wordplays abound in the Hebrew text. Effective use of repetition and the piling up of synonyms and complements to fill out the picture are characteristic. Key words frequently highlight major themes in prayer or song. Enclosure (repetition of a significant word or phrase at the end that occurs at the beginning) frequently wraps up a composition or a unit within it. The notes on the structure of the individual psalms often call attention to literary frames within which the psalm has been set.
문학적 특징
시편은 많은 기도를 포함하고 구약의 모든 기도가 시적인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입니다(참조 왕상 8:23-53; 스 9:6-15; 느 9:5-37; 단 9:4- 19) -- 또한 그 문제에 대해 모든 찬양이 시적인 것이 아닙니다(왕상 8:15-21 참조). 시편은 열정적이고 생생하며 구체적입니다. 시편은 직유와 은유의 이미지가 풍부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유음流音, 두운頭韻 및 재담才談이 많이 있습니다. 반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동의어와 보어를 쌓아 그림을 채우는 것이 특징입니다. 키워드는 자주 기도나 노래의 주요 주제를 강조합니다. 둘러싸기(처음에 나오는 중요한 어구를 끝에 반복하는 것)는 종종 그 안에 있는 구성이나 단위를 마무리합니다. 개별 시편의 구조에 대한 설명은 종종 시편이 설정된 문학적 틀에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 What is assonance?
Assonance is the repetition of vowel sounds in words that are close together in a sentence or verse. For example, “His tender heir might bear his memory” (William Shakespeare, “Sonnet 1”). The “ər” sound in “tender,” “heir,” “bear,” and “memory” is an assonant sound.
유음이란?
유음은 문장이나 구절에서 서로 가까운 단어의 모음 소리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의 부드러운 상속인은 그의 기억을 품을 수 있습니다"(William Shakespeare, "Sonnet 1"). "tender", "heir", "bear", "memory"의 "ər" 소리는 유음입니다.
How is assonance used?
Assonance is used to create rhythm in writing. It has a similar effect to rhyming, so you will often find it in poetry and song lyrics. It can also be used, in both poetry and prose, to create a mood or place emphasis on important words.
유음은 어떻게 사용됩니까?
유음은 글쓰기에서 리듬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운율과 비슷한 효과가 있어서 시나 노래 가사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시와 산문 모두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중요한 단어를 강조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assonance and alliteration?
Both assonance and alliteration use the repetition of sounds to create an effect on the reader. Assonance uses only vowel sounds, but they can be placed anywhere in the word (for example, “Too cool for school”). Alliteration uses vowel or consonant sounds, but only at the beginning of the word (for example, “She sells seashells by the seashore”).
유음과 두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유음과 두운은 소리의 반복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효과를 만듭니다. 유음은 모음 소리만 사용하지만 단어의 아무 곳에나 배치할 수 있습니다(예: "Too cool for school"). 두운은 모음이나 자음 소리를 사용하지만 단어의 시작 부분에서만 사용합니다(예: "She sells seashells by the seashore").
Hebrew poetry lacks rhyme and regular meter. Its most distinctive and pervasive feature is parallelism. Most poetic lines are composed of two (sometimes three) balanced segments (the balance is often loose, with the second segment commonly somewhat shorter than the first). The second segment either echoes (synonymous parallelism), contrasts (antithetic parallelism) or syntactically completes (synthetic parallelism) the first. These three types are generalizations and are not wholly adequate to describe the rich variety that the creativity of the poets has achieved within the basic two-segment line structure. When the second or third segment of a poetic line repeats, echoes or overlaps the content of the preceding segment, it usually intensifies or more sharply focuses the thought or its expression.
히브리 시에는 운율과 규칙적인 운율이 없습니다. 가장 독특하고 널리 퍼진 특징은 병렬 처리입니다. 대부분의 시적 라인은 두 개(때로는 세 개)의 균형 잡힌 부분으로 구성됩니다(균형은 종종 느슨하며 두 번째 부분은 일반적으로 첫 번째 부분보다 다소 짧습니다). 두 번째 부분 반향反響(동의어 병렬 처리), 대조(반대 병렬 처리) 또는 구문적으로 첫 번째 부분을 완성(종합 병렬 처리)합니다. 이 세 가지 유형은 일반화이며 기본 2분할 선 구조 내에서 시인의 창의성이 달성한 풍부한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시적 행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부분이 이전 부분의 내용을 반복하거나 반향하거나 겹칠 때 일반적으로 생각이나 표현을 강화하거나 더 예리하게 집중합니다.
They can serve, however, as rough distinctions that will assist the reader. In the NIV the second and third segments of a line are slightly indented relative to the first.
Determining where the Hebrew poetic lines or line segments begin or end (scanning) is sometimes an uncertain matter. Even the Septuagint (the pre-Christian Greek translation of the OT) at times scans the lines differently from the way the Hebrew texts now available to us do. It is therefore not surprising that modern translations occasionally differ.
그러나 그것들은 독자에게 도움이 될 대략적인 구별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NIV에서 줄의 두 번째 및 세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부분에 비해 약간 들여쓰기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시적 행 또는 행분의 시작 또는 끝(스캐닝)을 결정하는 것은 때때로 불확실한 문제입니다. 심지어 칠십인역(기독교 이전의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도 현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히브리어 본문과 다르게 줄을 훑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 번역이 때때로 다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A related problem is the extremely concise, often elliptical writing style of the Hebrew poets. The syntactical connection of words must at times be inferred simply from context. Where more than one possibility presents itself, translators are confronted with ambiguity. They are not always sure with which line segment a border word or phrase is to be read.
The stanza structure of Hebrew poetry is also a matter of dispute. Occasionally, recurring refrains mark off stanzas, as in Ps 42-43; 57. In Ps 110 two balanced stanzas are divided by their introductory oracles (see also introduction to Ps 132), while Ps 119 devotes eight lines to each letter of the Hebrew alphabet. For the most part, however, no such obvious indicators are present. The NIV has used spaces to mark off poetic paragraphs (called "stanzas" in the notes). Usually this could be done with some confidence, and the reader is advised to be guided by them. But there are a few places where these divisions are questionable -- and are challenged in the notes.
관련된 문제는 히브리 시인들의 매우 간결하고 종종 타원형 문체를 활용한 글쓰기 스타일입니다. 단어의 구문적 연결은 때때로 단순히 문맥에서 추론되어야 합니다. 둘 이상의 가능성이 제시되는 경우 번역가는 모호성에 직면하게 됩니다. 경계 단어나 구를 어떤 선분으로 읽어야 하는지 항상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 시의 스탠자 구조 또한 논쟁거리입니다. 때때로 반복되는 후렴구는 시편 42-43: 57편에서와 같이 연을 구분합니다. 시편 110편에서 두 개의 균형잡힌 연은 서론으로 구분되며(또한 시 132편 서문 참조),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글자에 여덟 행을 할당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명백한 지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NIV는 시적 문단을 표시하기 위해 공백을 사용했습니다(주석에서 "연聯"이라고 함). 일반적으로 이것은 약간의 자신감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으며 독자는 해당 문서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의심스러운 곳이 몇 군데 있으며 주석에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Close study of the Psalms discloses that the authors often composed with an overall design in mind. This is true of the alphabetic acrostics, in which the poet devoted to each letter of the Hebrew alphabet one line segment (as in Ps 111-112), or a single line (as in Ps 25; 34; 145), or two lines (as in Ps 37), or eight lines (as in Ps 119). In addition Ps 33; 38; 103 each have 22 lines, no doubt because of the number of letters in the Hebrew alphabet (see Introduction to Lamentations: Literary Features). The oft-voiced notion that this device was used as a memory aid seems culturally prejudiced and quite unwarranted. Actually people of that time were able to memorize far more readily than most people today.
시편을 면밀히 연구하면 저자들이 종종 전체적인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이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문자에 한 줄(시편 111-112편에서와 같이), 한 줄(시편 25, 34, 145편에서와 같이) 또는 두 줄에 할애한 알파벳 곡예의 경우에 해당됩니다(시 37편에서와 같이), 또는 8행(시 119편에서와 같이). 또한 시편 33편; 38; 103편은 각각 22행으로 되어 있는데, 의심할 여지 없이 히브리어 알파벳의 글자 수 때문입니다(애가 서문: 문학적 특징 참조). 이 장치가 기억력 보조 장치로 사용되었다라고 자주 접하는 허황된 생각은 문화적으로 편견이 있고 매우 타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게 암기할 수 있었습니다.
It is much more likely that the alphabet -- which was relatively recently invented as a simple system of symbols capable of representing in writing the rich and complex patterns of human speech and therefore of inscribing all that can be put into words (one of the greatest intellectual achievements of all time) -- commended itself as a framework on which to hang significant phrases.
인간 언어의 풍부하고 복잡한 패턴을 글로 표현할 수 있고 따라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는 간단한 기호 체계로 비교적 최근에 발명된 알파벳(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적 업적 중 하나)은 중요한 문구를 넣을 수 있는 틀이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자찬自讚했습니다.
Other forms were also used. Ps 44 is a prayer fashioned after the design of a ziggurat (a Babylonian stepped pyramid; see note on Ge 11:4). A sense of symmetry is pervasive. There are psalms that devote the same number of lines to each stanza (as Ps 12; 41), or do so with variation only in the introductory or concluding stanza (as Ps 38; 83; 94). Others match the opening and closing stanzas and balance those between (as Ps 33; 86). A particularly interesting device is to place a key thematic line at the very center, sometimes constructing the whole or part of the poem around that center (see note on 6:6). Still other design features are pointed out in the notes. The authors of the psalms crafted their compositions very carefully. They were heirs of an ancient art (in many details showing that they had inherited a poetic tradition that goes back hundreds of years), and they developed it to a state of high sophistication. Their works are best appreciated when carefully studied and pondered.
다른 형태도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44편은 지구라트(바빌로니아의 계단식 피라미드. 창 11:4 주석 참조)의 디자인을 본뜬 기도입니다. 대칭감이 만연합니다. 각 연에 동일한 수의 행을 할애하거나(시 12, 41편과 같이) 서론 또는 결론 연에서만 변형을 가하는 시편(시 38, 83, 94편)이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시작 및 종료 연을 일치시키고 그 사이의 균형을 맞춥니다(시 33; 86). 특히 흥미로운 장치는 바로 중심에 핵심 주제 라인을 배치하고 때로는 그 중심을 중심으로 시의 전체 또는 일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6:6에 대한 설명 참조). 또 다른 디자인 특징은 주석註釋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들은 매우 신중하게 작곡을 했습니다. 그들은 고대 예술의 계승자였으며(많은 세부 사항에서 그들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적 전통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보여줌) 고도로 세련된 상태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신중하게 연구하고 숙고할 때 그 진수眞髓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Theology: Introduction
The Psalter is for the most part a book of prayer and praise. In it faith speaks to God in prayer and of God in praise. But there are also psalms that are explicitly didactic (instructional) in form and purpose (teaching the way of godliness). As noted above (Collection, Arrangement and Date), the manner in which the whole collection has been arranged suggests that one of its main purposes was instruction in the life of faith, a faith formed and nurtured by the Law, the Prophets and the canonical wisdom literature. Accordingly, the Psalter is theologically rich. Its theology is, however, not abstract or systematic but doxological, confessional and practical. So a summation of that "theology" impoverishes it by translating it into an objective mode.
신학: 서론
시편은 대부분 기도와 찬양의 책입니다. 그 안에서 신앙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말합니다. 그러나 형식과 목적(경건의 길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 명백히 교훈적인(교육적인) 시편도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모음집, 배열 및 연도) 전체 모음이 배열된 방식은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율법, 선지자 그리고 규범적 지혜 문학에 의해 형성되고 양육되는 신앙, 신앙 생활에 대한 교육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시편은 신학적으로 풍부합니다. 그러나 그 신학은 추상적이거나 체계적이지 않고 송영적이고 고백적이며 실제적입니다. 따라서 그 "신학"을 요약하면 그것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번역함으로써 그것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Furthermore, any summation faces a still greater problem. The Psalter is a large collection of independent pieces of many kinds, serving different purposes and composed over the course of many centuries. Not only must a brief summary of its "theology" be selective and incomplete; it will also of necessity be somewhat artificial. It will suggest that each psalm reflects or at least presupposes the "theology" outlined, that there is no "theological" tension or progression within the Psalter. Manifestly this is not so.
게다가 신학을 어떻게 요약하든 여전히 더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시편은 여러 종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구성된 대규모 모음집으로 다양한 목적에 사용되며 수세기에 걸쳐 구성되었습니다. "신학"에 대한 간략한 요약은 선택적이고 불완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다소 인위적일 것입니다. 각각의 시편이 요약된 "신학"을 반영하거나 최소한 전제하며, 시편 내에 "신학적" 긴장이나 전개가 없음을 시사할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지가 않습니다.
Still, the final editors of the Psalter were obviously not eclectic in their selection. They knew that many voices from many times spoke here, but none that in their judgment was incompatible with the Law and the Prophets. No doubt they also assumed that each psalm was to be understood in the light of the collection as a whole. That assumption we may share. Hence something, after all, can be said concerning seven major theological themes that, while admittedly a bit artificial, need not seriously distort and can be helpful to the student of the Psalms.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의 최종 편집자들은 분명히 그들의 선택에 있어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그들은 이와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그들의 판단에 율법과 선지자들과 양립할 수 없는 목소리는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각 시편을 모음집 전체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고 가정했습니다. 그 가정은 우리가 공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소 인위적인 것은 인정하지만 심각하게 왜곡할 필요가 없고 시편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곱 가지 주요 신학적 주제에 관해 결국 무엇인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Theology: Major Themes
Theology: Summary, Messianic Import and Conclusion
Unquestionably the supreme kingship of Yahweh (in which he displays his transcendent greatness and goodness) is the most basic metaphor and most pervasive theological concept in the Psalter -- as in the OT generally. It provides the fundamental perspective in which people are to view themselves, the whole creation, events in "nature" and history, and the future. All creation is Yahweh's one kingdom. To be a creature in the world is to be a part of his kingdom and under his rule. To be a human being in the world is to be dependent on and responsible to him. To proudly deny that fact is the root of all wickedness -- the wickedness that now pervades the world.
신학: 요약, 메시아적 의미와 결론
의심할 여지 없이 야훼의 최고 왕권(그분은 그의 초월적인 위대함과 선하심을 나타내신다)은 구약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시편에서 가장 기본적인 은유이자 가장 널리 퍼진 신학적 개념이다. 그것은 자신, 천지 창조, "자연"과 역사의 사건, 그리고 미래를 보는 근본적인 관점을 제공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야훼의 유일한 왕국입니다. 세상에서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그의 왕국의 일부가 되고 그의 통치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에게 의존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교만하게 부인하는 것이 모든 사악함의 뿌리입니다. 그 사악함은 지금 세상에 만연해 있습니다.
God's election of Israel and subsequently of David and Zion, together with the giving of his word, represent the renewed inbreaking of God's righteous kingdom into this world of rebellion and evil. It initiates the great divide between the righteous nation and the wicked nations, and on a deeper level between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 more significant distinction that cuts even through Israel. In the end this divine enterprise will triumph. Human pride will be humbled, and wrongs will be redressed. The humble will be given the whole earth to possess, and the righteous and peaceable kingdom of God will come to full realization. These theological themes, of course, have profound religious and moral implications. Of these, too, the psalmists spoke.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후 다윗과 시온을 그의 말씀과 함께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왕국이 이 반역과 악의 세상으로 들어가 새롭게 길들이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의로운 나라와 악한 나라들 사이에 큰 분열을 일으키고, 더 큰 수준에서는 의인과 악인 사이에 이스라엘 전체를 가르는 더 중요한 구분을 시작합니다. 결국 이 신성한 사업은 승리할 것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낮아지고 잘못은 시정될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온 땅이 주어질 것이며, 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왕국이 온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신학적 주제에는 심오한 종교적, 도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도 시편 기자들이 말했습니다.
One question that ought yet to be addressed is: Do the Psalms speak of the Christ? Yes, in a variety of ways -- but not as the prophets do. The Psalter was never numbered among the "prophetic" books. On the other hand, when the Psalter was being given its final form, what the psalms said about the Lord and his ways with his people, about the Lord and his ways with the nations, about the Lord and his ways wi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nd what the psalmists said about the Lord's anointed, his temple and his holy city -- all this was understood in light of the prophetic literature (both Former and Latter Prophets). Relative to these matters, the Psalter and the Prophets were mutually reinforcing and interpretive.
아직 해결해야 할 한 가지 질문은 : 시편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는가? 예, 다양한 방법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선지자들이 하는 것처럼은 아닙니다. 시편은 "예언서"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시편이 최종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 때, 시편이 여호와와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길, 여호와와 열방에 대한 그의 길, 여호와와 의인과 악한 자들과 시편 기자들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와 그의 성전과 그의 거룩한성에 대하여 말한 것, 이 모든 것은 예언서(전후기선지서 모두)에 비추어 이해되었습니다.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시편기자들과 선지자들은 서로를 강화하며 해석했습니다.
When the Psalms speak of the king on David's throne, they speak of the king who is being crowned (as in Ps 2; 72; 110 -- though some think 110 is an exception) or is reigning (as in Ps 45) at the time. They proclaim his status as the Lord's anointed and declare what the Lord will accomplish through him and his dynasty. Thus they also speak of the sons of David to come -- and in the exile and the postexilic era, when there was no reigning king, they spoke to Israel only of the great Son of David whom the prophets had announced as the one in whom God's covenant with David would yet be fulfilled. So the NT quotes these psalms as testimonies to Christ, which in their unique way they are. In him they are truly fulfilled.
시편에서 다윗의 보좌에 앉은 왕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왕위에 오른 왕(시 2, 72, 110편에서와 같이 -- 110편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을 말하거나 그 당시에 군림하고 있는 왕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의 지위를 선포하고 여호와께서 그와 그의 왕조를 통해 이루실 일을 선포합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또한 장차 올 다윗의 자손들에 대하여 말하고 또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에 통치하는 왕이 없었을 때에 그들은 선지자들이 다윗과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 될 것이라고 발표한 다윗의 큰 자손에 대해서만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아직 성취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은 이 시편을 그리스도에 대한 간증으로 인용하고 있는데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용합니다. 그분 안에서 그것들이 참으로 성취됩니다.
When in the Psalms righteous sufferers -- who are "righteous" because they are innocent, not having provoked or wronged their adversaries, and because they are among the "humble" who trust in the Lord -- cry out to God in their distress (as in Ps 22; 69), they give voice to the sufferings of God's servants in a hostile and evil world.
These cries became the prayers of God's oppressed "saints," and as such they were taken up into Israel's book of prayers. When Christ came in the flesh, he identified himself with God's "humble" people in the world. He became for them God's righteous servant par excellence, and he shared their sufferings at the hands of the wicked.
시편에서 의로운 고난을 당하는 자들이 - 그들은 결백하고, 그들의 대적을 화나게 하거나 잘못하지 않았으며, 여호와를 신뢰하는 "겸손한" 자들에 속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시 22편과 69편에서와 같이) 그들은 적대적이고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고통에 대해 목소리를 높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억압받는 "성도들"의 기도가 되었고, 그렇게 그 성도들의 기도가 이스라엘의 기도서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을 때, 그는 자신을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겸손한" 백성과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탁월한 하나님의 의로운 종이 되셨고 악인들의 손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Thus these prayers became his prayers also -- uniquely his prayers. In him the suffering and deliverance of which these prayers speak are fulfilled (though they continue to be the prayers also of those who take up their cross and follow him). Similarly, in speaking of God's covenant people, of the city of God, and of the temple in which God dwells, the Psalms ultimately speak of Christ's church. The Psalter is not only the prayer book of the second temple; it is also the enduring prayer book of the people of God. Now, however, it must be used in the light of the new era of redemption that dawned with the first coming of the Messiah and that will be consummated at his second coming.
따라서 이러한 기도는 그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독특하게도 그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 기도가 말하는 고통과 구원이 그분 안에서 성취됩니다(그러나 이 기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시편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 대해 말하면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말합니다. 시편은 두 번째 성전의 기도서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기도서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메시아의 초림과 함께 동이트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구속의 새 시대에 비추어 사용되어야 합니다.
The Second Temple
The Second Temple (Hebrew: בֵּית־הַמִּקְדָּשׁ הַשֵּׁנִי, Bēṯ hamMīqdāš hašŠēnī, transl. 'Second House of the Sanctum'), later known as Herod's Temple, was the reconstructed Temple in Jerusalem between c. 516 BCE and 70 CE. It replaced Solomon's Temple, which had been built at the same location in the United Kingdom of Israel before being inherited by the Kingdom of Judah in c. 930 BCE and then destroyed by the Neo-Babylonian Empire during the Babylonian siege of Jerusalem in c. 587 BCE.[1] Construction on the Second Temple began some time after the Neo-Babylonian Empire was conquered by the Achaemenid Persian Empire; it followed a proclamation by Persian king Cyrus the Great (see Edict of Cyrus) that ended the Babylonian captivity and initiated the return to Zion. In Jewish history, the Second Temple's completion in Persian Judah marks the beginning of the Second Temple period.
According to the Bible, the Second Temple was originally a relatively modest structure built by Jews who had returned from exile in Babylon under the authority of Persian-appointed governor Zerubbabel, the grandson of penultimate Judahite king Jeconiah. However, during the reign of Herod the Great over the Herodian Kingdom of Judea, it was completely refurbished; the original structure was overhauled into the large edifices and façades that are more recognized in modern recreated models.
After standing for approximately 586 years, the Second Temple was destroyed by the Roman Empire during the Roman siege of Jerusalem in 70 CE.[2][a]
제2성전
제2성전(히브리어: בית־המקדש השני→둘째 거룩한 집), 또는 헤롯의 성전은, 기원전 516년 경부터 기원후 70년까지 예루살렘 성전산에 있었던 유대교의 성전으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유다 왕국 점령 당시 기원전 587년에 파괴된, 통일 이스라엘 왕국 시기 솔로몬이 지은 제1성전을 대체하였다. 당시 몰락한 유대 국가는 바빌로니아의 지역으로서 합병되었고 인구 일부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1] 제2성전 건설은 아케메네스 제국의 바빌로니아 점령 이후 키루스 2세 보졸그의 칙령을 통해 유대인들이 유대 땅으로 돌아온 이후 시작되었으며, 제2성전 완공을 통해 유대인 역사에서 제2성전기가 시작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제2성전은 원래 아케메네스 제국에서 임명한 통치자 스룹바벨과 함께 바빌론에서 레반트로 돌아온 유대인 귀환자들이 지은, 그리 크지 않은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헤롯 왕국 시기 헤롯 1세가 대규모로 재건축하여, 기존의 건물은 대규모 신축 건물과 새 외관에 덮혔다. 현대에 있는 모형들은 대부분 이 증축 후의 성전을 묘사하고 있다. 제2성전은 586년간 존속하였으며,[2] 기원후 70년 당시 진행 중이던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보복 삼아 파괴하였다. [내용주 1]
From the NIV Study Bible, Introductions to the Books of the Bible, Psa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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