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303년 스웨덴 우플란드(Uppland)의 총독이며 부유한 지주인 비르거(Birger)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인게보르크(Ingeborg) 사이에서 태어난 성녀 ‘비르지타’는 12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계시와 환시를 체험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로 훗날 네레시아 지방의 총독이 된 18세의 귀족 울프 구드마르손(Ulf Gudmarsson)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 그 자녀들 중의 한 사람이 스웨덴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입니다.
1335년 그녀는 스웨덴의 왕 ‘마뉴스 2세’와 막 결혼한 왕비 ‘나무르의 불랑쉬(Blanche)’의 시녀가 되었는데, ‘비르지타’의 큰딸이 결혼에 실패하고 또 그녀의 막내아들 구드마르(Gudmar)가 1340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노르웨이 트론디엠의 성 올리프 경당으로 순례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순례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궁중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다시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아라스에서 병을 얻었고, 이때 그녀는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환시를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1344년에 남편까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알바스트라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4년을 지내게 됩니다. 이때에도 그녀는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았고, 고해신부는 그녀의 모든 환시가 거짓이 아님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계시에 따라 그녀는 1346년에 바드스테나(Vadstena)에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 수도회'를 세웠고, 마뉴스 왕도 여기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삼위일체회'(비르지타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드스테나는 15세기 스웨덴의 지적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라트비아(Latvia)와 에스토니아(Estonia)의 이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려는 국왕 마뉴스의 지원을 거부하였으며, 당시 아비뇽(Avignon)에 유배 중이던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게 글을 보내어 자신의 환시 내용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그 주요 내용에 따르면, 교황은 안전하게 로마(Roma)로 돌아올 것이며,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에 교황이 중재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지내면서 매우 엄격한 생활과 빈민구제에 온 정열을 쏟았으며, 당시의 심각한 교회와 정치 사이의 여러 문제에 대하여 기탄없는 충고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엄격한 생활과 성덕,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 및 교황의 로마 귀환에 대한 노력 등이 로마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로마 주변의 수도원을 개혁하였고, 당시 그녀의 예언과 고위직책에 대한 탄핵은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는 문제를 위하여 계속 노력하였으나, 우르바누스(Urbanus) 교황만이 잠시 귀향하였고 그의 후임자인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는 여전히 아비뇽에 머물렀습니다.
그녀의 구술로 적은 “계시”라는 책에는 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내용으로 당대에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히 그녀의 시성과 콘스탄츠(Konstanz) 공의회에서 더욱 그러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녀가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그의 체험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교리와도 부합된다고 갑론을박하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후 트렌토(Trento) 공의회는 그녀의 “계시”를 세심히 검토하도록 하였는데, 결국 신자들이 읽어도 좋다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1373년 7월 23일 ‘비르지타’는 로마에서 선종하였으며, 그녀의 유해는 산 로렌초 인 파니스페르나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스웨덴으로 돌아갔습니다. 1391년 교황 보니파시오 9세는 ‘비르지타’를 시성하였으며, 그녀의 딸 바드스테나의 ‘카타리나’ 역시 수녀가 되었으며, 훗날 시성됩니다. 1415년에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비르지타회가 정식 수도회로 인가되었으며, 지금도 그녀는 스웨덴뿐만 아니라 유럽의 수호성녀로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 수난 15기도]
성녀 비르지타는 예수 그리스도가 끔찍한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고자 오랫동안 기도하였는데, 하루는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여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나는 5,480대의 매를 맞았다. 만일 네가 이 매 맞은 고통과 상처를 공경하고자 한다면 매일 주님의 기도 15번과 성모송 15번을 바치고 이 기도를 1년 동안 바쳐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은총을 베풀어 주겠다. 특히 그들 자신의 친척들에게도 일 년간 이 기도를 바치게 한다면, 매 맞은 내 이 상처들을 공경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도는 ‘예수 수난 15기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