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 240628)
어떤 말에 대하여/ 홍성남
계단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한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입구, 냉기가 돌고 있었다. 습한 냄새가 코끝을 스쳐 갔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는 말이 있었다. 망아지로 안겨 들어와 미로에 길들며 자랐다. 앞만 보고 걷는 눈빛이 어두웠다. 출구 없는 지하 감옥에서 물레바퀴를 돌고 있었다. 고슴도치 쳇바퀴처럼. 무릎으로 받는 공기의 무게는 얼마일까. 걷고 또 걷고 소금기가 차곡차곡 몸에 쌓였다. 사람들의 불안한 눈빛도 쌓였다. 소금광산*이었다. 불어난 몸 때문에 이곳을 나갈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햇빛도 없고 나무도 없고 노래도 없는데 어떻게 밥을 먹을 수가 있지? 겨울인데 눈이 쌓이지 않았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오랫동안 나누었다. 눈 내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한 눈과 내 눈이 길게 마주쳤다. 죽어야 나갈 수 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 뒤로 죽은 말이 끝없이 자라고 있었다. 뛰어본 적도 없이 뛰는 연습조차 해본 적도 없이.
*폴란드에 있는 비엘리치카(소금광산)
(시감상)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문장으로 읽지 말아야 한다. 말이라는 것에 시인의 정의는 소통 부재와 그 원인에 대한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다. 소금광산과 겨울에 쌓이지 않는 눈의 상관관계는 대책 없는 말과 필요한 말의 쓰임새에 대한 명쾌한 지적을 하고 있다. 말 뒤로 죽은 말이 끝없이 자라고 있다. 죽은 말은 소금보다 못하다.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오랫동안 나누었다라는 말이 귀에 맴돈다. 아마 지금도 서로 말을 하고 있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말言과 말馬, 눈眼과 눈雪, 시의 확장성과 개연성이 서로 맞물리는 좋은 작품이다.
시집((캄캄한 바다를 자꾸 구두라고 불렀다/ 98쪽) 김포신문 240628 기고
(홍성남 프로필)
한국 수필, 문예바다, 시와 사람 등단, 바다문학상 대상 외 다수 수상, 2024 시집(캄캄한 바다를 자꾸 구두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