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살로니가전서 2장 1-5절. 역경 중의 감사.
1. 지난 시간에는 <좋은 소문난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역경 중에도 감사하자>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역경 중에서도 감사했습니다.
1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you yourselves know, brethren, that our coming to you was not in vain,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Αὐτοὶ γὰρ οἴδατε, ἀδελφοί, τὴν εἴσοδον ἡμῶν τὴν πρὸς ὑμᾶς, ὅτι οὐ κενὴ γέγονεν,
you yourselves for you have known, brethren, the coming of us to you, that not in vain has been
직역하면 ‘왜냐하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 것이 헛되지 않은 것을 너희가 친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친히’(Αὐτοὶ: you yourselves)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헛되지 않은’(οὐ κενὴ γέγονεν)에서 동사(γέγονεν)는 현재완료로서(has been) 과거 방문의 좋은 결과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나니’(οἴδατε)는 현재 완료로서(have known)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형제들아’
육신적으로는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방인이었으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혈통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붙이는 ‘형제’라는 호칭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붙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동일한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령한 ‘형제’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형제들’이란 호칭은 애정어린 호칭이었습니다.
2. ‘헛되지 않은 것을 아나니’
‘헛되지 않은 것을 안다’는 표현은 완료형으로서((γέγονεν:has been) 바울의 복음 전도가 과거에도 헛되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현재도 열매로 남아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51년에 데살로니가에 3주간 복음을 전했는데, 그때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도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후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유대인들과 불신자들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여,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에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로서 소문이 났습니다. (살전 1:5-7)
2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fter we had already suffered and been mistreated in Philippi, as you know, we had the boldness in our God to speak to you the gospel of God amid much opposition.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ἀλλὰ προπαθόντες καὶ ὑβρισθέντες, καθὼς οἴδατε, ἐν Φιλίπποις,
but having previously suffered and having been mistreated, just as you have known, in Philippi
직역하면 ‘그러나 너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빌립보에서 이전에 고난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였으나’란 뜻입니다.
‘아는’(οἴδατε) 현재완료로서(you have known) 과거에 바울이 고난당한 사실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고난을 당하고’(προπαθ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reviously suffered) 바울과 실라가 이전에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 극심하게 고난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능욕을 당하였으나’(ὑβρισθέντες)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mistreated) 바울과 실라가 과거에 빌립보에서 극심하게 능욕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이 당한 ‘고난과 능욕’은 이방인들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ἐπαρρησιασάμεθα ἐν τῷ Θεῷ ἡμῶν, λαλῆσαι πρὸς ὑμᾶς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οῦ Θεοῦ ἐν πολλῷ ἀγῶνι.
we had boldness in the God of us, to speak to you the gospel of the God mid much conflict
직역하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여 많은 싸움 가운데서도 우리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담대하여’(ἐπαρρησιασάμεθα)란 부정과거로서(we had boldness) 과거에 완전히 담대했던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ρρησιάζομαι)은 자유롭고 담대하고 확신 있게 말하다(speak freely or boldly, confidently)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뒤의 ‘말하다’(λαλῆσαι)는 단어와 겹쳐서 ‘담대히 말했다’는 뜻이고, 이 뒤의 단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speak)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당한 ‘많은 싸움’은 유대인들에게 당한 것이었습니다.
1.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먼저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매를 실컷 맞고 감옥에 갇혔어도,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1) 사도행전 16장에 빌립보 전도의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제일 먼저 루디아라는 여성이 바울이 전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주색 옷감 장사를 했는데, 당시 자주색 옷감 장사는 부자를 상대한 장사여서, 루디아도 종업원을 많이 둔 부자였습니다.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강권하면서, 자기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알거든, 자기 집에 들어와서, 거처하면서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가서 전도하는 중에, 어떤 여인이 바울을 자꾸 뒤따라 다니면서, “저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라고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 믿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도 아니고, 남의 집 여자 종으로서, 더구나 귀신이 들려서, 점을 쳐주고 주인을 부자 되게 하는 여자 점쟁이였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모두 그 여자가 귀신 들린 점쟁인 줄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쟁이가 바울이 예수님을 못 전하도록 날마다 방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지방에서 귀신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악랄한 수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마음이 몹시 괴로워서,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버렸습니다.
이처럼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버리니까, 점쟁이는 제정신을 차린 건전한 사람이 되었으나, 그 주인은 돈벌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자 노예인 점쟁이를 통해서 돈벌이를 하던 주인이 돈줄이 끊어지니까, 엄청나게 화가 나서, 바울을 관가에 사회 사범으로 고발했습니다.
바울이 점쟁이 귀신을 쫓아내서 자기 돈벌이가 안 된다고 고발하지 못하고, 바울이 평화로운 사회를 불안케 하는 데모 주동자라고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사회에 불안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실 심문을 해보지도 않고, 바울의 옷을 찢고, 매를 많이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바울과 실라를 깊은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차꼬에 채웠습니다.
이러한 심한 고통과 역경 속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아니면, 당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나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인간적인 지위를 내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핍박당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5:11-12. 나(예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베드로전서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래서, 바울은 한밤중에 감옥에서 기도하다가 감격스러워 하나님께 큰 찬송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원래 감옥에서는 노래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옥에서 노래를 함부로 불렀다가는 간수에게 죽도록 얻어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실라는 감옥 규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격에 벅차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리하였습니다.
빌립보서 1:20.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러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감옥에 진동의 역사를 일으켜서, 감옥 문이 다 열리게 하시고, 차꼬에 묶인 손발도 모두 풀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바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다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감옥을 책임지고 있던 간수, 요즘 말로 교도소장이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로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법률로 죄수 한 명을 놓치면, 간수가 대신 목숨을 잃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포로를 생포했을 때도, 파수병이 포로를 놓치면, 대신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20장에서도, 아합 왕이 아람 왕 벤하닷을 죽이지 않고 살려 보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아합이 죽여야 할 포로를 살려주었으니, 그 대신 아합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교도소장이 자결하려고 하자, 바울이 만류하면서, 죄수가 한 사람도 도망가지 않고, 다 여기 있다고 하면서, 자결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교도소장은 등불을 달라고 하여, 사실을 확인한 후에, 바울 앞에 엎드려서, “선생님 어떻게 하여야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바울 사도가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교도소장과 그 집식구가 그 밤에 모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경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역경 중에서도 감사를 드리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난 것입니다.
시편 50:14-15.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도 박해를 받아서 도망갔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애정이 더욱 컸습니다.
(1)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① 바울 사도는 빌립보 전도를 마치고, 데살로니가에 전도하러 갔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빌립보 전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당분간 목회를 하다가, 다른 곳으로 선교하러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빌립보를 떠나도록, 빌립보 관리들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즉 빌립보 관리들이 바울에게 빌립보를 떠나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전도하러 갔습니다.
② 데살로니가 전도는 안식일을 세 번 지나면서 전도했으니, 약 4주간 전도한 셈입니다.
이 때 바울의 복음 전도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4.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전도했어도, 하나님께서 많은 전도의 결실을 주셔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③ 그런데, 불신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심지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놔두고, 베뢰아로 도망가서 전도했습니다.
바울이 베뢰아로 도망가서 전도하자, 데살로니가의 불신자들은 얼마나 포악한지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바울을 죽이려고 돌을 집어 던졌습니다.
④ 그래서, 바울은 또 다시 베뢰아 전도를 중단하고서, 밤에 배 타고 멀리 남쪽 아덴(아테네)으로 갔습니다.
아덴(아데네)에서 바울 사도는 그처럼 지독한 데살로니가 불신자들의 핍박 속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알아보고 오도록 했습니다. (살전 3:2)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있을 때,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가지고 와서 보고했습니다. (살전 3:6)
⑤ 디모데의 보고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토록 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신앙을 버리지도 않고, 불신자들과 타협하지도 않고, 굳건한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8.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 보고를 듣고,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신앙적 애정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어떤 성경보다도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애정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9-2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3. <바울> 사도만이 아니라, 성경의 많은 인물들도 역경 중에도 원망하지 않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1) <욥>은 재산, 자식, 아내, 건강을 잃었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 <하박국>은 처음에는 불평도 했으나, 진리를 깨닫고서, 아무것 가진 없었어도, 감사를 했습니다.
(3) <다니엘>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중단 없이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4) <요셉>은 유일한 사랑의 대상인 아버지를 잃고, 노예가 되었으나,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모시고 살므로, 총리가 되어 원수인 형들도 용서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의 손길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4.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복음 전도자나 목회자가 한 곳에서만 사역하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도할 때 핍박이 심하면 다른 곳에 가서 전도할 줄도 알아야 하고, 목회자가 한 곳에서 반대를 받으면 다른 곳으로 사역지를 옮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에게 심한 핍박을 받던 중에 한상동 목사님 같은 분들은 감옥에서도 신앙을 지켰는데, 박윤선 목사님 같은 분은 만주로 피난해서 나중에 후학들을 가르치는 큰 성과를 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명 감당하는 데 있어서, 간사와 궤계(속임수)의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3절.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our exhortation does not come from error or impurity or by way of deceit;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ἡ γὰρ παράκλησις ἡμῶν οὐκ ἐκ πλάνης οὐδὲ ἐξ ἀκαθαρσίας οὐδὲ ἐν δόλῳ,
the for exhortation of us not from error nor from impurity not in deceit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고, 속임수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동사가 없으나, 우리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간사함’(πλάνης)은 ‘속임, 오류’(deceit, error)란 뜻인데, 미신이나 마술사의 속임수를 가리킵니다.
‘부정’(ἀκαθαρσίας)은 이방 종교의 성적인 부정이나 물질적인 부정을 가리킵니다.
‘속임수’(δόλῳ)는 육체적 부정이나 물질적 부정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속임수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당시 헬라 궤변철학자들의 궤변술이나 마술사들의 속임수를 가리킵니다.
1. 과거에 통일교나 오늘날 어떤 이단들은 교인들의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빼앗고, 또 장사시키면서, 장차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높은 자리를 주고, 영생도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단의 교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장사를 시키거나 높은 빌딩 옆에서 풀빵 장사를 시키는데, 그 교인들은 장차 그 빌딩을 준다는 교주의 말을 믿는답니다.
2. 요즘은 <종교 장사>를 잘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불교의 절을 10억 주고 사서, 많은 이익금을 남기고, 장사를 잘한답니다.
심지어 어떤 잘못된 교역자는 무허가 신학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노회에 등록도 않고 <개척교회>를 설립하여, 다른 많은 성도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건축하고서도, 교회 재산을 교역자 명의로 등기하고, 심지어 그 개척교회를 팔아서 그 돈을 챙기고, 다시 다른 곳에서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또 여러 사람의 헌금으로 설립한 개척한 교회를 팔아먹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종교 장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오늘 성경이 말씀한 궤계(속임수)에 해당합니다.
3. 그러나,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설립에 성공했으나, 그곳에 머물러 목회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다른 곳으로 선교하러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도 성공했으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목회하지 못하고, 아덴으로 떠나갔습니다.
감사의 방법은 직분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4절.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just as we have been approved by God to be entrusted with the gospel, so we speak, not as pleasing men, but God who examines our hearts.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ἀλλὰ καθὼς δεδοκιμάσμεθα ὑπὸ τοῦ Θεοῦ πιστευθῆναι τὸ εὐαγγέλιον
but just as we have been approved by the God to be entrusted with the gospel,
직역하면 “그러나 이처럼 복음을 위탁받도록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인 용법으로 번역하면 ‘그러나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복음을 위탁받았다’는 뜻입니다.
‘인정을 받아’(δεδοκιμάσμεθα)는 현재완료 수동태로서(we have been approved) 바울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현재까지도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의 원형(δοκιμάζω)은 금은동철을 용광료에 재련해서 순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환난과 핍박으로서 시련하셔서 올바른 복음 전도자로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위탁받았으니’(πιστευ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entrusted) 과거에 하나님께 복음 전도 사명을 분명하게 위탁받은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의 원형(πιστεύω)은 ‘믿는다, 위탁하다’(believe, trust)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믿고 복음 전도를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οὕτως λαλοῦμεν,
so we speak
여기 동사(λαλ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 지금 계속 말하고 있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οὐχ ὡς ἀνθρώποις ἀρέσκοντες,
not as men pleasing
‘기쁘게 하려’(ἀρέσκ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pleasing) 부정어(οὐχ:not)와 함께, 언제나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ἀλλὰ Θεῷ τῷ δοκιμάζοντι τὰς καρδίας ἡμῶν.
but God the (One) examining the hearts of us
‘감찰하시는’(δοκιμάζοντι)은 현재분사로서(examining) 지금 계속 감찰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키는데, 원형(δοκιμάζω)은 시험해서 올바른 것을 입증하는(put to the test, prove, examine) 것을 가리킵니다.
1.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바울은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빌립보 복음 전도에 성공했어도 개인적인 권세와 물질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도 유대인들의 심한 핍박을 받았어도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다른 곳에 가서 복음 전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받아 복음 전도를 위탁받았습니다.
2.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아서, 그 직분을 감당하려고, 사람에게 욕을 먹고 핍박을 당했어도,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만 충성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3. 한편, 바울은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처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4.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10.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디모데후서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5. 직분 주신 것은 그 만큼 사명을 감당하고,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내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5절.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e never came with flattering speech, as you know, nor with a pretext for greed-- God is witness--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쓰지 아니한 것을
οὔτε γάρ ποτε ἐν λόγῳ κολακίας ἐγενήθημεν,
never for at any time with word of flattery were we
직역하면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때에도 결코 아첨의 말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ἐγενήθημεν)는 부정과거 수동태 동사인데(we were) 부정어(οὔτε:never)와 함께, 단연코 아첨의 말로 전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력히 말한 것입니다.
그 원형(γίνομαι)은 ‘되다, 일어나다’(become, come about, happen)는 뜻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καθὼς οἴδατε,
just as you have known
여기 동사(οἴδατε)는 현재완료로서(have known) ‘너희가 지금까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란 뜻입니다.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οὔτε ἐν προφάσει πλεονεξίας,
nor with pretext for greed
동사가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Θεὸς μάρτυς,
God (is) witness
여기도 동사가 없으나 ‘하나님이 증인이시니라’는 뜻입니다.
1.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1) ‘아첨의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말로 아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을 말했습니다. (갈 1:10)
이 복음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아첨의 말이 아닙니다.
(2) ‘탐심의 탈’이란 마음 중심에는 성적인 욕심과 물질적인 탐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면을 쓰고 행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 일부 헬라철학자들이나 유대교 교사들은 가정집에 다니면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혹하여, 성적 욕심을 채웠고, 물질을 착취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6-7.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오늘날 이단자들도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성적 착취와 물질적 착취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악인들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탐심을 감추고 위선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이런 마귀적인 이단자들을 단호히 배격해야 하겠습니다.
2. 또한 교회 직분자들도 교회 직분을 이용해서, 자기의 <탐심>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직분자 여러분!>
교회에서 자기 명예를 높이려 하지 마십시오!
성적인 탐욕을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인 전체가 헌금한 교회 재산을 자기 명의로 등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또한, 헌금한 것은 하나님께 드린 것인데, 나중에 교회 떠나면서, 내놓으라고 하지 마십시오!
3. 그래서, 어떤 교회 어른들은 지도하기를 개척하신 분들은 그 교회에서 터주대감 노릇을 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또 개척하든지, 아니면 다른 교회에 가서 봉사하든지 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하나님이 높임을 받아야 하는데, 개척한 사람이 높임을 받아서, 우상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편 교회를 개척하신 분은 성도들에 대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목회를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통해서 수 많은 교회들을 설립했어도, 탐심을 가지거나 속임수를 쓰지 않고, 한 교회에서 목회자로 교권을 장악하거나, 성도들의 헌금으로 설립된 교회 재산을 자기 명의로 등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교회에서 직분자들로서 진정한 섬김의 도가 무엇인지 배워야 하겠습니다.
즉, 교회에서 섬기는 직분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종들로서, 하나님 앞에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헌금으로, 노력 봉사로, 여러 가지로 봉사하고서도,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하는 빈 마음의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교회에서 직분 맡으신 모든 직분자 여러분!>
지금까지도 주님과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셨거니와, 앞으로는 더 큰 직분을 맡아서, 더욱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나 바울 사도처럼, 역경 중에서도 예수님 모시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어려운 역경을 당하고 계십니까?
신앙적인 핍박입니까?
가정의 불화입니까?
아니면, 건강 문제나, 어려운 경제 문제입니까?
아니면, 자녀의 문제나 남편이나 부모 형제간의 갈등 문제입니까?
어떠한 역경이나 어려움 가운데서도, 바울이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역경 중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사랑의 주님을 모시고 감사함으로 정진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도, 감사로 예배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환난 가운데서 건져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루어주시고, 가정과 자손들에게 큰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