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16장 1-5절. 바울이 디모데를 데리고 전도여행을 함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came also to Derbe and to Lystra. And a disciple was there, named Timothy, the son of a Jewish woman who was a believer, but his father was a Greek,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Κατήντησεν δὲ καὶ εἰς Δέρβην καὶ εἰς Λύστραν.
he came then also to Derbe and to Lystra.
직역하면, ‘그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는 뜻입니다.
‘이르매’(Κατήν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ame) 과거에 더베와 루스드라에 간 확실한 사실을 뜻하고, 원형(καταντάω)는 ‘내려가다, 도착하다, 얼굴을 대하여 만나보다’(come down to, reach, meet face to face)는 뜻입니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καὶ ἰδοὺ, μαθητής τις ἦν ἐκεῖ, ὀνόματι Τιμόθεος,
and behold, disciple certain was being there, named Timothy
직역하면 ‘보라, 거기에 디모데라는 어떤 제자가 있었다)’란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으로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있으니’(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있어온 것을 가리킵니다.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υἱὸς γυναικὸς Ἰουδαίας πιστῆς, πατρὸς δὲ Ἕλληνος,
son of woman Jewish believing, father but greek
직역하면 ‘믿는 유대 여자의 아들이요, 그러나 아버지는 헬라인이라’는 뜻입니다.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was well spoken of by the brethren who were in Lystra and Iconium.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ὃς ἐμαρτυρεῖτο ὑπὸ τῶν ἐν Λύστροις καὶ Ἰκονίῳ ἀδελφῶν.
who was well being spoken of by the in Lustra and Iconiom brothers
직역하면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칭찬받는 자니’(ἐμαρτυρεῖ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well being spoken of) 과거부터 계속 칭찬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며, 원형(μαρτυρέω)는 ‘증언하다, 좋은 보고를 하다’(witness, testify, give a good repor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wanted this man to go with him; and he took him and circumcised him because of the Jews who were in those parts,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τοῦτον ἠθέλησεν ὁ Παῦλος σὺν αὐτῷ ἐξελθεῖν,
this one wanted the Paul with him to go forth
직역하면 ‘이 사람을 바울이 자기와 하메 떠나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떠나고자’(ἐξε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o forth) 단호하게 떠나고자 한 것을 갈기키고, ‘했다’(ἠθέλ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wanted) 반드시 (함께 떠나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καὶ λαβὼν, περιέτεμεν αὐτὸν διὰ τοὺς Ἰουδαίους τοὺς ὄντας ἐν τοῖς τόποις ἐκείνοις·
and having taken, he circumcised him on accont of Jews the being in the parts those
직역하면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그가 데려다가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뜻입니다.
‘있는’(ὄ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현재 거주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데려다가’(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과거에 확실히 데려온 사실을 가리킵니다.
‘할례를 행하니’(περιέτεμ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ircumcised) 과거에 그가(바울이) 확실히 할례를 행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ᾔδεισαν γὰρ ἅπαντες ὅτι Ἕλλην ὁ πατὴρ αὐτοῦ ὑπῆρχεν.
they had known for all that greek the father of him was being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이 모두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 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뜻입니다.
‘헬라인 인 줄’에서 동사(ὑπῆρχε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헬라인이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 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있다, 존재하다, 소유한 상태로 있다’(begin, am, exist, am in possession)는 뜻입니다.
‘앎이러라’(ᾔδεισαν)는 ‘알다’(οἶδα)의 대과거로서(they had known) 미완료과거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미 과거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pluperfect is equivalent to imperfect: L. Key 301).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ile they were passing through the cities, they were delivering the decrees which had been decided upon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were in Jerusalem, for them to observe.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Ὡς δὲ διεπορεύοντο τὰς πόλεις,
while then they were passing through the cities.
직역하면 ‘그 성들을 지나갈 때’란 뜻입니다.
‘지나갈 때’에서 동사(διεπορεύ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passing through) 계속 통과하면서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παρεδίδοσαν αὐτοῖς φυλάσσειν τὰ δόγματα
they were delivering to them to keep the decrees
직역하면 ‘그들이 그 규례들을 그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했다’는 뜻입니다.
‘주어’(παρεδίδο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delivering) 계속 주고 있던 모습을 가리킵니다.
‘지키게 하니’(φυλάσσ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keep) 항상 지키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τὰ κεκριμένα ὑπὸ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πρεσβυτέρων τῶν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the having been decided on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in Jerusalem
직역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그 사도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결정된’이란 뜻입니다.
‘작정한’(κεκριμένα)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decided) 이미 과거에 작정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κρίνω)은 ‘재판하다, 결정하다’(judge, decide)란 뜻입니다.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 churches were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and were increasing in number daily.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Αἱ μὲν οὖν ἐκκλησίαι ἐστερεοῦντο τῇ πίστει
the indeed therefore churches were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직역하면 ‘그러므로 교회들이 믿음에서 굳건해져갔다’는 뜻입니다.
‘더 굳건해지고’(ἐστερεοῦν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ere being strengthened) 계속 굳건해져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καὶ ἐπερίσσευον τῷ ἀριθμῷ καθ’ ἡμέραν.
and they were increasing in the number every day
직역하면 ‘그것들이(교회들이) 숫자적으로 날마다 증가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늘어가니라’(ἐπερίσσευον)은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increasing) 계속 늘어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ερισσεύω)는 ‘넘치다, 풍성하다’(be over and above, overflow, abound)는 의미입니다.
- 설 교 -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바울은 실라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에서 설립했던 교회들을 심방했습니다.
즉 1차 선교 여행에서 설립했던 교회들을 거꾸로 심방해서, 먼저 더베 교회를 심방했고, 다음으로 루스드라 교회를 심방했습니다.
2.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루스드라에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 루스드라는 바울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쳤고, 헬라의 신으로 숭배받기도 했으며,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곳입니다.
그런데 이 루스드라에서 귀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바로 ‘디모데’라는 제자를 얻은 것입니다.
즉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치고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 사건을 보고 충격을 먹어서 평생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고, 바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베드로에게 마가가 믿음의 아들이요 후계자인 것과 같습니다.
3. 디모데는 그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계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쪽으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디모데로 삼대에 걸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딤후 1:5)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언제나 따라다니는 사람은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이 여러 편의 편지를 썼는데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두 통의 편지는 디모데에게 직접 썼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에서는 편지 서두마다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문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 사도가 2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디모데와 함께 써 보낸 편지였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영적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었고, 복음 사역을 하는데, 영적으로 깊은 우정과 사랑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즉 바울의 전도여행 때마다 디모데는 항상 뒤따라 다녔고, 디모데는 바울의 심부름꾼으로 교회들에 파송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를 각각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커다란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통을 겪을 때나 감옥에 갈 때도 언제나 디모데가 바울을 돕고 고락을 같이 했습니다.
말년에 로마 감옥에 투옥되고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가 외에는 다 떠나가고 없으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네게로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딤후4:21)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1. 디모데는 바울을 보고 자기도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루스드라 교회와 이고니온 교회 성도들에게 칭찬 받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을 이어서 속 사도로 충성하고, 에베소 교회를 맡아 시무할 정도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디모데가 헌신의 마음이 불타는 것은 ‘내적 소명’이라고 하고, 성도들에게 칭찬받고 바울에게 부름받는 것을 ‘외적인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에서 사고뭉치가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 못해서 대학 못 가서 신학교 간다든지, 사업에 실패해서 신학교 간다든지, 결혼에 실패해서 신학교 가는 사람은 외적인 소명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때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1. 바울이 디모데를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할례를 행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디모데의 부친은 이방 헬라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참 의아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이방인 할례를 강력하게 반대했고,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사람이라고까지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었다니 도무지 이중적인 처사가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선교 여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할례를 주었습니다.
2.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이방인같이도 하고, 유대인같이도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0-23절.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3. 바울에게 있어서는 할례를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가 중요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할례 문제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할례받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할례받은 상태로 예수님을 믿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할례받지 않은 상태로 예수님을 믿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관심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는 머리를 깎기도 하고 머리를 기를 때는 머리를 기르기도 했습니다.
머리 깎아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깎고, 머리를 길러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기르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바울의 복음 전도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보게 됩니다.
4. 바울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제를 얻기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형제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안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없을 때 자기들이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무어라고 했습니까?
사람들이 바울 자기를 시기해서라도 어찌하든니 복음 전도를 할 수만 있다면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니 자기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빌 1:15-18)
이처럼 바울은 형식과 율법과 행위와 인종과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유대인을 전도할 때는 할례받은 유대인으로서 처신하라. 네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 헬라인을 만났을 때는 무할례자인 것처럼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할례는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오직 예수 복음 전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 전도요 성도들의 믿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이나 문화나 전통의 문제 때문에 복음 전도와 성도들의 믿음을 덜 중요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할례나 음식 같은 것을 상대화시켰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을 본받아, 예수님 복음 전도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는 자유주의가 앞서 있습니다.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1.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여러 성으로 다녀갔습니다.
즉 더베와 루스드라만이 아니라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심방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이 여러 교회들은 소위 <갈라디아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은 더 북쪽으로 길리기아 지방을 돌아보았습니다.
길리기아 지방에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 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성장했던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거 15년 전에는 바울이 이 다소에서 13년간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냈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충만한 복음 전도자요 선교사로 고향에 들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말씀한 대로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 성령님께서 바울을 선교사로 세워서 파송했기 때문에, 이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역을 능력 있게 수행하고, 복음 전도의 열매도 풍성하게 맺으며 일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쓸 데 없는 사람도 성령님께서 세워서 쓰시면 능력이 나타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2.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이방인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했다는 뜻입니다.
즉 15장 28-29절에 기록한 대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의 멍에는 지우지 말고, 다만 불신자 시절에 행하던 우상숭배의 습관을 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습관이란 우상 숭배하면서 짐승을 산 채로 썰어 먹고 피를 마시고, 술 먹고 춤추며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그런 우상숭배의 축제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바울이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를 각 교회들에게 전달하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교인들처럼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면, 이방인 성도들의 믿음이 약해져서 아마 믿음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성도들의 마음을 격려해주고, 율법주의자들이 사도들의 허락이 없이 자의로 할례와 모세 율법을 강요했다고 비판함으로써, 이방인 성도들은 새 힘을 얻고 더욱 믿음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격려해주고, 붙들어주어야 성도들이 더욱 믿음 생활을 힘 있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2. 수가 날마다 더 하니라.
기성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이 굳건해져야 새로운 성도들이 많아지고 교회가 부흥됩니다.
반대로 기성 교인들이 힘이 약해지고, 교회가 소란해지면, 새신자들이 왔다가도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천리만리 도망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항상 성도들을 격려해주고,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설교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고, 심방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보살피듯이 사랑으로 잘 보살피고 항상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사랑을 먹고 성장해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디모데가 바울과 실라 일행의 선교 여행에 동참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유대인 전도를 위해서 할례를 시행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결정한 규례들을 지켜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의 멍에를 씌우지 말게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복음 전도와 성도의 믿음 생활을 우선시해서, 어떤 종교나 문화나 전통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전에 세웠던 교회들을 심방하면서, 교인들의 믿음을 더 굳세게 해주고, 교인들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모든 율법적인 멍에를 다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믿음 생활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성도들과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굳건히 잘하시고, 교회가 부흥되시고, 가정에 행복과 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came also to Derbe and to Lystra. And a disciple was there, named Timothy, the son of a Jewish woman who was a believer, but his father was a Greek,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Κατήντησεν δὲ καὶ εἰς Δέρβην καὶ εἰς Λύστραν.
he came then also to Derbe and to Lystra.
직역하면, ‘그가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갔다’는 뜻입니다.
‘이르매’(Κατήν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ame) 과거에 더베와 루스드라에 간 확실한 사실을 뜻하고, 원형(καταντάω)는 ‘내려가다, 도착하다, 얼굴을 대하여 만나보다’(come down to, reach, meet face to face)는 뜻입니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καὶ ἰδοὺ, μαθητής τις ἦν ἐκεῖ, ὀνόματι Τιμόθεος,
and behold, disciple certain was being there, named Timothy
직역하면 ‘보라, 거기에 디모데라는 어떤 제자가 있었다)’란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확실히 보라는 뜻으로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있으니’(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있어온 것을 가리킵니다.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υἱὸς γυναικὸς Ἰουδαίας πιστῆς, πατρὸς δὲ Ἕλληνος,
son of woman Jewish believing, father but greek
직역하면 ‘믿는 유대 여자의 아들이요, 그러나 아버지는 헬라인이라’는 뜻입니다.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was well spoken of by the brethren who were in Lystra and Iconium.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ὃς ἐμαρτυρεῖτο ὑπὸ τῶν ἐν Λύστροις καὶ Ἰκονίῳ ἀδελφῶν.
who was well being spoken of by the in Lustra and Iconiom brothers
직역하면 ‘그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칭찬받는 자니’(ἐμαρτυρεῖ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well being spoken of) 과거부터 계속 칭찬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며, 원형(μαρτυρέω)는 ‘증언하다, 좋은 보고를 하다’(witness, testify, give a good repor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Paul wanted this man to go with him; and he took him and circumcised him because of the Jews who were in those parts, for they all knew that his father was a Greek.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τοῦτον ἠθέλησεν ὁ Παῦλος σὺν αὐτῷ ἐξελθεῖν,
this one wanted the Paul with him to go forth
직역하면 ‘이 사람을 바울이 자기와 하메 떠나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떠나고자’(ἐξελθ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o forth) 단호하게 떠나고자 한 것을 갈기키고, ‘했다’(ἠθέλ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wanted) 반드시 (함께 떠나고자) 했다는 뜻입니다.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καὶ λαβὼν, περιέτεμεν αὐτὸν διὰ τοὺς Ἰουδαίους τοὺς ὄντας ἐν τοῖς τόποις ἐκείνοις·
and having taken, he circumcised him on accont of Jews the being in the parts those
직역하면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 때문에 그가 데려다가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는 뜻입니다.
‘있는’(ὄ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현재 거주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데려다가’(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과거에 확실히 데려온 사실을 가리킵니다.
‘할례를 행하니’(περιέτεμεν)는 부정과거로서(he circumcised) 과거에 그가(바울이) 확실히 할례를 행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ᾔδεισαν γὰρ ἅπαντες ὅτι Ἕλλην ὁ πατὴρ αὐτοῦ ὑπῆρχεν.
they had known for all that greek the father of him was being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들이 모두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 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뜻입니다.
‘헬라인 인 줄’에서 동사(ὑπῆρχε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헬라인이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 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있다, 존재하다, 소유한 상태로 있다’(begin, am, exist, am in possession)는 뜻입니다.
‘앎이러라’(ᾔδεισαν)는 ‘알다’(οἶδα)의 대과거로서(they had known) 미완료과거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미 과거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pluperfect is equivalent to imperfect: L. Key 301).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ile they were passing through the cities, they were delivering the decrees which had been decided upon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were in Jerusalem, for them to observe.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Ὡς δὲ διεπορεύοντο τὰς πόλεις,
while then they were passing through the cities.
직역하면 ‘그 성들을 지나갈 때’란 뜻입니다.
‘지나갈 때’에서 동사(διεπορεύ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passing through) 계속 통과하면서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παρεδίδοσαν αὐτοῖς φυλάσσειν τὰ δόγματα
they were delivering to them to keep the decrees
직역하면 ‘그들이 그 규례들을 그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했다’는 뜻입니다.
‘주어’(παρεδίδοσα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delivering) 계속 주고 있던 모습을 가리킵니다.
‘지키게 하니’(φυλάσσ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keep) 항상 지키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τὰ κεκριμένα ὑπὸ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πρεσβυτέρων τῶν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the having been decided on by the apostles and elders who in Jerusalem
직역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그 사도들과 장로들에 의해서 결정된’이란 뜻입니다.
‘작정한’(κεκριμένα)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decided) 이미 과거에 작정된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κρίνω)은 ‘재판하다, 결정하다’(judge, decide)란 뜻입니다.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 churches were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and were increasing in number daily.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Αἱ μὲν οὖν ἐκκλησίαι ἐστερεοῦντο τῇ πίστει
the indeed therefore churches were being strengthened in the faith
직역하면 ‘그러므로 교회들이 믿음에서 굳건해져갔다’는 뜻입니다.
‘더 굳건해지고’(ἐστερεοῦν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ere being strengthened) 계속 굳건해져가는 모습을 뜻합니다.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καὶ ἐπερίσσευον τῷ ἀριθμῷ καθ’ ἡμέραν.
and they were increasing in the number every day
직역하면 ‘그것들이(교회들이) 숫자적으로 날마다 증가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늘어가니라’(ἐπερίσσευον)은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increasing) 계속 늘어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ερισσεύω)는 ‘넘치다, 풍성하다’(be over and above, overflow, abound)는 의미입니다.
- 설 교 -
1절.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1.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바울은 실라와 함께 1차 전도 여행에서 설립했던 교회들을 심방했습니다.
즉 1차 선교 여행에서 설립했던 교회들을 거꾸로 심방해서, 먼저 더베 교회를 심방했고, 다음으로 루스드라 교회를 심방했습니다.
2.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루스드라에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 루스드라는 바울이 나면서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쳤고, 헬라의 신으로 숭배받기도 했으며,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곳입니다.
그런데 이 루스드라에서 귀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바로 ‘디모데’라는 제자를 얻은 것입니다.
즉 디모데는 바울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앉은뱅이를 고치고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 사건을 보고 충격을 먹어서 평생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 되었고, 바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베드로에게 마가가 믿음의 아들이요 후계자인 것과 같습니다.
3. 디모데는 그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대계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쪽으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디모데로 삼대에 걸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딤후 1:5)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언제나 따라다니는 사람은 디모데였습니다.
바울이 여러 편의 편지를 썼는데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 두 통의 편지는 디모데에게 직접 썼습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에서는 편지 서두마다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문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후서는 바울 사도가 2차 선교여행 중,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디모데와 함께 써 보낸 편지였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영적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었고, 복음 사역을 하는데, 영적으로 깊은 우정과 사랑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즉 바울의 전도여행 때마다 디모데는 항상 뒤따라 다녔고, 디모데는 바울의 심부름꾼으로 교회들에 파송을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를 각각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커다란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로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통을 겪을 때나 감옥에 갈 때도 언제나 디모데가 바울을 돕고 고락을 같이 했습니다.
말년에 로마 감옥에 투옥되고 죽을 날이 가까웠을 때 바울은 디모데에게 <누가 외에는 다 떠나가고 없으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네게로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딤후4:21)
2절.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1. 디모데는 바울을 보고 자기도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루스드라 교회와 이고니온 교회 성도들에게 칭찬 받는 훌륭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을 이어서 속 사도로 충성하고, 에베소 교회를 맡아 시무할 정도로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디모데가 헌신의 마음이 불타는 것은 ‘내적 소명’이라고 하고, 성도들에게 칭찬받고 바울에게 부름받는 것을 ‘외적인 소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에서 사고뭉치가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 못해서 대학 못 가서 신학교 간다든지, 사업에 실패해서 신학교 간다든지, 결혼에 실패해서 신학교 가는 사람은 외적인 소명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3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때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1. 바울이 디모데를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 할례를 행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디모데의 부친은 이방 헬라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참 의아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에서도 이방인 할례를 강력하게 반대했고, 갈라디아서에서는 할례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사람이라고까지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주었다니 도무지 이중적인 처사가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선교 여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할례를 주었습니다.
2.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 전도를 위해서는 이방인같이도 하고, 유대인같이도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0-23절.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3. 바울에게 있어서는 할례를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가 중요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할례 문제를 초월한 사람입니다.
할례받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할례받은 상태로 예수님을 믿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예수를 믿으려면 할례받지 않은 상태로 예수님을 믿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의 관심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는 머리를 깎기도 하고 머리를 기를 때는 머리를 기르기도 했습니다.
머리 깎아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깎고, 머리를 길러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기르는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바울의 복음 전도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보게 됩니다.
4. 바울에게는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형제를 얻기 위해서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형제를 얻기 위해서는 고기를 안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없을 때 자기들이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하면서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때 바울이 무어라고 했습니까?
사람들이 바울 자기를 시기해서라도 어찌하든니 복음 전도를 할 수만 있다면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니 자기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빌 1:15-18)
이처럼 바울은 형식과 율법과 행위와 인종과 문화와 종교를 뛰어넘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유대인을 전도할 때는 할례받은 유대인으로서 처신하라. 네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 헬라인을 만났을 때는 무할례자인 것처럼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할례는 받을 수도 있고 안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오직 예수 복음 전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 전도요 성도들의 믿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이나 문화나 전통의 문제 때문에 복음 전도와 성도들의 믿음을 덜 중요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위해서는 할례나 음식 같은 것을 상대화시켰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을 본받아, 예수님 복음 전도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율법주의에 사로잡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런 점에서는 자유주의가 앞서 있습니다.
4절.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1.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여러 성으로 다녀갔습니다.
즉 더베와 루스드라만이 아니라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서 1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심방하고 돌아보았습니다.
이 여러 교회들은 소위 <갈라디아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은 더 북쪽으로 길리기아 지방을 돌아보았습니다.
길리기아 지방에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 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성장했던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과거 15년 전에는 바울이 이 다소에서 13년간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냈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 충만한 복음 전도자요 선교사로 고향에 들렀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말씀한 대로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있을 때 성령님께서 바울을 선교사로 세워서 파송했기 때문에, 이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역을 능력 있게 수행하고, 복음 전도의 열매도 풍성하게 맺으며 일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 쓸 데 없는 사람도 성령님께서 세워서 쓰시면 능력이 나타나고,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2.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이방인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서 지키게 했다는 뜻입니다.
즉 15장 28-29절에 기록한 대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의 멍에는 지우지 말고, 다만 불신자 시절에 행하던 우상숭배의 습관을 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 습관이란 우상 숭배하면서 짐승을 목매달아서 썰어 먹고 피를 마시고, 술 먹고 춤추며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그런 우상숭배의 축제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5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1.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바울이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를 각 교회들에게 전달하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고 유대교인들처럼 모세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면, 이방인 성도들의 믿음이 약해져서 아마 믿음 생활을 포기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총회가 이방인 성도들의 마음을 격려해주고, 율법주의자들이 사도들의 허락이 없이 자의로 할례와 모세 율법을 강요했다고 비판함으로써, 이방인 성도들은 새 힘을 얻고 더욱 믿음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을 격려해주고, 붙들어주어야 성도들이 더욱 믿음 생활을 힘 있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2. 수가 날마다 더 하니라.
기성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믿음 생활이 굳건해져야 새로운 성도들이 많아지고 교회가 부흥됩니다.
반대로 기성 교인들이 힘이 약해지고, 교회가 소란해지면, 새신자들이 왔다가도 썰렁한 분위기 때문에 천리만리 도망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항상 성도들을 격려해주고,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설교도 그렇고, 기도도 그렇고, 심방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보살피듯이 사랑으로 잘 보살피고 항상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사랑을 먹고 성장해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디모데가 바울과 실라 일행의 선교 여행에 동참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유대인 전도를 위해서 할례를 시행한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결정한 규례들을 지켜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의 멍에를 씌우지 말게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복음 전도와 성도의 믿음 생활을 우선시해서, 어떤 종교나 문화나 전통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믿음 생활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전에 세웠던 교회들을 심방하면서, 교인들의 믿음을 더 굳세게 해주고, 교인들의 숫자가 불어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모든 율법적인 멍에를 다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믿음 생활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성도들과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굳건히 잘하시고, 교회가 부흥되시고, 가정에 행복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