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내 증인이 되리라.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행1:8)
1. 보혜사 성령
성령은 보혜사이시다. 보혜사는 변호자라는 뜻이다. 물론 보혜사에는 경호자, 위로자, 봉사자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사람을 변호하는 자, 또는 봉사지 쪽으로만 이해하면 자칫 인본주의로 흐를 수 있다. 성령이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래 성령은 사람을 변호하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변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속에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시고 우리의 신상을 지켜 주시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을 도우신다. 성령은 변호하시려고 오신 분이므로 변호하는 자와 함께 변호하시고 도우신다. 우리를 위해 경호와 봉사도 하시지만, 성령은 예수를 변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아무도 뵐 수 없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시고 하늘보다 크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므로 아무도 그분을 뵌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인자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뵐 수 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이 있을까?
짐승의 새끼는 짐승이고 사람의 자식은 사람이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이다. 우리가 아버지를 보지 못했지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믿으면 예수님의 아버지 곧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시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심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곧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혀 주신 복음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이다. 은혜는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에 순전하게 그 말씀을 믿고 받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은 인류 구원의 선언이다. 예수님의 피는 구원의 증거이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무죄가 증명된 것은 그분의 고난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죽음을 그분에게 돌리고 그분의 생명에 연합하여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
요17:3절은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도 알아야지, 하나님은 모르고 예수만 알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알고 믿어 그를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요일2:23절은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기 때문이다.우리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를 통하여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호적에도 나와 있는 역사적인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 천하에 호적령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뵙지 못했지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시인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이가 누구신가? 증거를 받지 않으면 불신앙이다.
고후13:5절에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펴보고 너희 자신을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요일3:24절에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는 자는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은 그 안에 거하시나니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이로써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한다.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증거하시는 분이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시고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심을 증거하신다. 이렇게 성령은 예수님을 변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았다. 곧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계3:20절에서 주님은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음을 통하여 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신앙이고, 이것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우리는 마귀와 귀신을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여긴다. 그러나 거라사인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의 경우, 귀신의 존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군대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막5:12). 하고 간절히 구했다.
당시 귀신은 사람 속에 있고, 돼지는 산 곁에 있었다(막5:1-20). 예수께서 ”가라“하시자 돼지가 산 곁에서 바다로 내달아 몰사했다. 돼지 떼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군대라고 밝힌 귀신이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이 천 마리의 돼지가 바다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한 사람 속에 있는 많은 수의 귀신이 일정한 공간을 거쳐서 돼지에게 들어간 것이다.
이 사건은 귀신이 실존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눅8:28-35). 그러므로 귀신의 실존은 누가 말해줘서 아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통해 각자 경험해서 아는 것이다. 우리는 믿되 알고 믿어야 철저한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로 가셨으나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어 깨닫게 하신 후 비로소 그들에게 나가 역사하도록 하셨다.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는 그분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사람들이 깨달을 수 없었다. 성령이 오셔야만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마13:1-11절에 제자들이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예수님께 ”왜 저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천국에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들어도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은 너희가 깨닫지 못하지만, 후에는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시고,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을 알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는 계속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지만 성령은 제자들 속에 직접 들어오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지만, 성령이 오셔서 우리 속에서 가르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은 믿는 자 속에 오셨고, 우리 속에서 성경의 파노라마를 완성해 주셨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말씀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은혜와 진리가 되심을 깨닫게 된다. 성령이 내주하심으로써 은혜와 진리를 알게 되고 은혜와 진리를 성령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은 진리가 무엇이고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기분이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기분이 나쁘면 은혜를 못 받았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알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는 죄인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정죄되어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십자가는 저주의 나무요, 형벌의 나무요, 율법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도 죽였다. 십자가는 죽이는 도구다.
십자가는 복음의 상징이 아니고 율법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십자가에 달리면 죽는다. 예수님이 죽으셨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심으로써,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을 형벌할 수 없다는 역사적 증거를 남겼다. 천하가 다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바보다 더 지독한 죄인으로 취급하여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망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인민 재판에 의해서 죄인으로 취급당했다. 그들은 의인을 법 없는 자의 손에 맡겨 법없이 죽였다. 사람들은 법으로 그분을 심판하지 않고 그냥 죽였다.
그래서 행3:13-15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분을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그분을 놓아주려고 결심하였을 때에 그 앞에서 그분을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신 분 곧 의로우신 분을 부인하고 살인자를 너희에게 달라고 구하여 생명의 통치자를 죽였도다. 그러나 그분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그 일에 증인이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죄인 취급했으니 누가 저를 구세주로 믿을 수 있겠는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해 봐야 소용이 없다.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에게 살려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처럼 의인만이 죄인을 구할 수 있다.
죄인을 구세주라 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라고 믿었는데 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런데 성령이 오셔서 그를 증거하시자 십자가가 예수를 망각시킬 수 없게 되었다. 복음은 십자가로 망각 되어 버린 예수님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망각시키는 도구요, 성령은 예수를 기억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했고 성령은 예수의 명예를 회복시키신다. 성령은 오셔서 예수가 죄 없는 분이심을 변호하신다. 그래서 성령은 보혜사시며 변호자이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성령이 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변호하시지만, 성령은 예수를 변호하신다. 그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보혜사시고(요일2:1), 성령은 예수의 보혜사시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분을 죄인으로 판정했으니, 그분이 죄인이 아니시라는 것을 어떻게 번복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요5:34절에서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나온 증언은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다만 너희가 구원을 받도록 이것들을 말하노라.“라고 말한다.
그분이 죄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사람은 변호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변호하셔야 한다. 사람은 그를 변호할 수가 없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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