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쯔모쯔 스케치
기억에 그리움을 입히면 추억이 된다. 무성영화처럼 까마득하지도 않은 엊그제 일이다. 그런데도 아스라이 가물거리면서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다. 오늘도 그 장면의 동인들과 함께 코스모스 힐링을 목적으로 주행 중이다. 목적지도 일행도 그날과 같은 방향이어서 오늘과 오버랩 되면서 조금 전 그랬던 것처럼 생생하다. 기억이 추억으로 성숙 되면서 되새김질을 한다.
연꽃 찍으러 출사할 궁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던 듯 정 작가가 연꽃 찍으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한 짐작이고 나 역시 적당한 곳을 물색 중이라 하였더니 머지않은 곳에 알아둔 곳이 있단다. 인근 많은 연 밭 들이 솎기작업을 해서 금년에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던 참이라 주저하지 않고 동의하였다.
연꽃은 평생 찍어도 만족한 장면을 얻지 못했다는 어느 노 작가의 하소연이 연꽃을 대할 때마다 아련하였다.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른 연꽃은 많이 찍는다고 짓무르지 않았다. 말라비틀어진 줄기 하나라도 사진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얼음 위에 널브러진 갈색 이파리라도 사진에 담으면 멋을 내곤 했다.
가는 길에 동승자가 넷으로 불었다. 다른 이유를 붙여서라도 만나고 싶던 얼굴들이라 반가웠다. 지번은 시골이었지만 공장건물이 배경을 차지하는 바람에 전경을 찍는 것은 포기 했다. 그래도 오밀조밀한 재미를 첨가하느라 애를 써봤다. 소녀들에게나 어울릴 포즈로 연출을 시도했으나 예순을 넘긴 여성문사들에겐 어색한 제스처임을 감출 수 없었다.
코스모스 밭은 정성들여 가꾸기는 했으나 면적이 좁았고 당연히 배치도 단조로워서 출렁이는 꽃물결은 볼 수 없었다. 점심 먹고 입곡지에 한번 가보자는 정 작가 제안에 까마득한 옛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20여 년 전 입곡지는 열 손가락 안에 들던 낚시터였다. 상류에 마을도 논도 없어서 물이 맑기로 샘물 같았다. 숲이 깊어 새들과 함께 정답게 밤을 지새웠던 저수지였다.
연밭에 실망한 나들이를 알차게 마무리 짓는 대안이 되었다. 관광지로 개발했으면 휴식공간이 훨씬많이 생겼다. 못을 가로질러 산 중턱을 잇는 육교도 신설했고 공중자전거도 멋져서 제법 투자한 흔적이 보였다. 두 사람이 공중자전거를 타고 싶어 했으나 차례를 많이 기다려야 했다.
의논 끝에 고무보트를 타기로 했다. 예닐곱이 탈만 한 튜브에 D•C 모터를 달아 지극히 안정적 속도로 운행하도록 만들어진 보트가 여러 대 있었다. 정 작가가 준비해온 주먹밥도 있어서 음료수 몇 병 싣고 호수중심으로 운전해 갔다. 느리지만 수면에 손이 닿을 정도로 찰랑찰랑해서 제법 물놀이 맛이 났다. 튜브가 원형으로 제작되어 방향타가 어긋나면서 자꾸 운행금지 한계선을 넘나들었다.
못을 반 바퀴 돌았으니 이제 되돌아서 출발점으로 회귀해야할 위치가 되었다. 그런데 보트가 꼼짝을 않았다. 밧줄이 엉켰다는 직감으로 물밑을 살폈더니 과연 경계표시용 밧줄이 스크루에 엉켜 있었다. 역회전과 정 회전을 반복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보트 어디에도 비상연락처 표시가 없었다. 고함을 지르기에는 너무 멀었다. 비상연락용 깃발도 비치되어있지 않았다. 사고를 알릴 방법이 막연했다.
옷을 벗고 물밑으로 들어가 로프를 걷어내면 될 일이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꼬챙이 하나 손에 쥘 것이 없는 못 가운데서 진퇴양난에 처한 패잔병 꼴이 되었다. 내가 답답했던 것은 내가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한없이 시들어드는 자신에 망연자실 하며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비키보이소.” 바짓가랑이를 둥둥 밀어 올린 최 작가가 보트 난간 위로 올라섰다. 막내라서 항상 앳되게 굴었고 매사가 어리광이었는데 이 순간에 바지를 걷어 올리다니. 말리거나 저지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 저돌적 행동이 최 작가 내면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의 천성에 잠재해 있던 모성본능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보트 천정을 지탱하는 1/2인치 쇠파이프를 붙잡고 다리 하나가 거의 다 물속에 잠겼다. 발가락으로 밧줄을 빗겨 내리느라 안간힘을 썼다. 야영장 텐트에서 함께 밤을 샌 친구가 아침에 솔선수범 라면을 끓이듯 이 천연덕스러운 자태는 그녀 어느 숨결에 숨어 있었던가 싶었다.
다리를 올리게 한 다음 스크루를 돌려봤으나 여전히 진척은 없었다. 다시 다리를 집어넣었다. 힘은 내가 더 쓰였다. 춥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프로펠러에 밧줄이 걸리면 큰 배든 작은 배든 잠수를 해서 해결하더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대금만큼이나 가늘어 보이는 팔로 쇠파이프를 붙잡고 곡괭이자루 같은 다리로 물밑을 휘젓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산골짜기 오락시설을 이용하는 위험이 적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우람한 사내아이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검정 바탕에 흰 글씨로 119라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물속으로 잠수하여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됐습니다.” 했다.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오늘은 그날의 입곡지와 머잖은 소공원에 코스모스를 만나러 왔다. 겅중겅중 힘없는 꽃들에게 오히려 관람객이 위로를 보내야 할 판이다. 코스모스 기 죽이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자는 우스개가 나왔다. 보다 못한 최 작가가 애교를 섞어 “오늘은 꼬쯔모쯔만 보고 가야겠다.”했다. “맞아, 맞아.”모두가 이구동성 맞장구를 쳤다. 오늘 마주한 코스모스는 천덕꾸러기로 생겼으나 꽃보다 마음이 예뻐서 꼬쯔모쯔라 애칭을 붙여주자 싶었다.
이렇게 꼬쯔모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 달 전에 갔던 연밭과 입곡지에 코스모스가 듬성듬성 피어있기라도 한 듯 세월을 뛰어넘은 기억들이 몽타주 되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동행한 문우들이 그제나 지금이나 같았음일까.
최 작가는 티 나지 않게 존재를 빛내 왔음에도 무심결에 웃어 넘겨버린 기억이 하나둘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새롭게 비치는 덕목을 보며 친밀도는 농익어 간다. 최 작가도 이제 환갑이 다 됐으니 어리게만 볼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손자 볼 날도 다돼간다. 오늘 겪은 꼬쯔모쯔 스케치로 최 작가의 멋진 글이 탄생하기를 바라면서 맛있다고 소문난 인근 소고기 국밥집으로 차머리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