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이씨의 한 뿌리가 북한의 황해도 송화(松禾)에 세거하였던 것으로 기록된 문헌에 전공판서(典工判書) 휘 경도(庚道)의 후손은 아직 남한에 없고 다만 지역명이 말해주듯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우리 족보에는 전혀 언급이 없으므로 그 문헌을 정리하여 보니 확실한 그 증거를 여기에 옮겨 보았으며 그 후손이 발견되기를 기원한다.
풍양조씨문헌록 - 편저자【조종운(趙從耘 :1607-1683) 호:송창(松窓)】의 제5편 씨족원류(氏族源流) 77페이지의 재령이씨편이다. 아래좌측사진과 같이 재령이씨의 또 한파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있으며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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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파로써 이수인(李守仁)은 통례문 지후(祗候)이고 원영(元英)의 후(後)로서 일명 수강(守江)이라 하였고 그 아들은 근(根)으로 左右衛保勝郞將으로 부인은 문산군(文山君)문화 유성비(柳成庇)의 따님이다. 根의 아들은 덕유(德裕)이고 추봉(追封) 밀직부사(密直副使)이고 그 아들이 경도(庚道)인데 신우(辛禑)공양왕(恭讓王)때 사람으로 봉익대부(奉翊大夫) 전공판서(典工判書)로서 부인은 토산김씨(兎山金氏)이다. 전공판서공은 2男 3女를 두었다. 현재 아드님은 돈포(敦宲)와 욱(郁)인데 욱이 송화(松禾)에 거주한다고 하며 따님이 출가한 성씨의 족보에는 그 문헌을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
문헌 고찰(考察) 1) 판서공 경도(庚道)의 전실출(前室出) 녀(女)에 압해인 정연(丁衍)의 기록이 있다. 나주정씨 족보에서 [증숙부인재령이씨묘지문]이 실려 있으며 후손 형조판서 정범조(丁範祖, 1833-1898)가 썼다. 부인의 아버지는 봉익대부 전공판서 이경도(李庚道)이며 묘소는 황해도 배천군에 있다고 하며 아들은 정자급(丁子伋)으로 이후 9대손까지 과거에 급제한 특이한 기록을 남긴 대단한 집안이다. 2) 또 판서공의 녀(女)에 하동인 정복주(鄭復周)의 기록도 확인되었다. 하동정씨족보를 상고하면 호가 죽당(竹堂)인 정복주공의 부인에 배 군부인재령이씨 묘미상 무육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아들이 정육을(鄭六乙)로서 이시애의 난에 살해되었으며 손자는 성종조에 일두선생으로 잘 알려진 정여창(鄭汝昌)이다. 3) 전공판서공의 조부는 근(根)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좌우위보승낭장의 직책을 가졌으며 문화유씨보에 따르면 유성비(柳成庇)의 사위 재령인 李根 朗將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가정보에 후손 기록이 없어 안타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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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은공(茅隱公 휘 午)의 장손 이맹현(李孟賢)은 세조 6년인 1460년 춘당대시에서 장원급제하였고 또 판서공(庚道)의 외손 압해인 정자급(丁子伋)은 같은해인 천순 4년(1460년) 서경별시에서 급제하였으므로 시대가 일치하므로 근인(根仁)과 수인(守仁)은 형제분으로 생각된다. 판서공의 아들 욱(郁)은 송화에 거주한다고 하였는데 송화군는 황해도 재령군의 서쪽 해안에 있다.
上) 문화유씨 下)하동정씨
| 압해(나주)정씨(丁氏)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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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좌선생문집(海左先生文集) - 정범조(丁範祖, 1833-1898) 지음 12대조비 증정부인재령이씨묘지문(墓誌文) 『부인은 재령이씨요, 아버지는 봉익대부 전공판서 휘 경도(庚道)이며 어머니는 토산김씨이다. 나주정씨(丁氏) 증통정대부 공조참의 휘 연(衍)에게로 시집와서 손자 휘 수강(壽崗)이 귀하게 됨으로서 증직으로 숙부인(淑夫人)이 되시다. 생졸은 미상이나 묘는 배천군 남면 율학(栗壑) 자좌(子坐)에 있다. 참의공(丁衍)의 강서묘에서 이십리쯤의 거리이다. 아들 자급(子伋)은 문과로 소격서령이고 딸은 대경(大卿) 이귀생(李貴生)에게 시집갔다. 자급의 장남 수곤(壽崑)은 문과로 승문원 교리이고 차남은 수강(壽崗)으로 문과에 병조참판을 지냈다. 나머지는 기록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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