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막을 짓는 일: 손으로 시작하는 예배
많은 유대 공동체는 욤 키푸르(יוֹם כִּפּוּר, Yom Kippur, “속죄일”)가 끝난 뒤 곧바로 수카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절기는 회개에서 멈추지 않고, 회복된 사람이 다시 삶의 공간을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손에 망치를 들고, 나뭇가지를 고르고, 아이들과 장식을 만들며, 가족은 신앙이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수카는 사람의 취향과 지역의 기후에 따라 모양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안정된 벽과 식물성 지붕, 하늘과의 열린 관계가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미국의 넓은 뒷마당, 이스라엘의 아파트 발코니, 유럽의 좁은 도시 공간은 서로 다른 수카를 만들지만, 그 안에서 드리는 감사는 하나의 방향을 향합니다.
1. 수카에서 먹고, 머물고, 손님을 맞다
초막절 동안 식사를 수카에서 하는 관습은 절기를 일상 식탁에 심습니다. 축복의 말은 식사 전후에만 머물지 않고, 식탁의 관계와 분위기까지 다스립니다. 가족은 서로의 한 해를 듣고, 손님은 초대받은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쁨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수카의 벽은 얇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말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전승은 수카에 초대할 손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실제로 함께 앉을 가족과 친구뿐 아니라, 외로운 사람, 이주민, 환자, 가난한 사람, 장례를 치른 사람, 먼 곳에 있는 공동체까지 식탁의 기억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유대 공동체는 지역의 푸드뱅크나 쉼터, 이웃 돌봄과 연결하여 초막절의 환대를 실천합니다. 초막은 장식이 예쁜 공간일수록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의자를 남겨 두지 않는 공간일수록 아름답습니다.
2. 전도서, 다섯 두루마리 중 가을의 거울
초막절에 읽는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코헬렛(קהלת, Qohelet, “회중을 모으는 자·설교자”)이라 불립니다. 코헬렛은 다섯 두루마리, 하메쉬 메길롯(חמש מגילות, Ḥamesh Megillot, “다섯 두루마리”) 가운데 하나이며, 전통적으로 초막절의 안식일이나 중간 절기에 낭독됩니다. 공동체와 지역에 따라 읽는 날은 조금 다르지만, 수확의 계절에 이 책을 펼친다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토라의 기쁨이 울려 퍼지는 자리에서 “헛되고 헛되다”라는 질문이 함께 들려오는 것입니다.
왜 기쁨의 절기에 죽음과 덧없음을 말하는 책을 읽을까요? 초막절은 풍요를 자랑하는 축제가 아니라, 풍요를 선물로 돌려드리는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포도주와 수확, 노동과 지혜가 모두 귀하지만 인간이 그것을 소유하여 영원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 선물로 읽는 순간, 기쁨은 소비가 아니라 감사가 됩니다. 전도서는 기쁨에 장례식의 침묵을 더하여, 기쁨을 얕지 않게 만드는 가을의 거울입니다.
유대 학자 로버트 고르디스(Robert Gordis, 1908–1992)는 코헬렛을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니라 삶의 유한성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지혜 문헌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따라 읽으면, 초막의 얇은 벽은 코헬렛의 질문과 잘 어울립니다. 우리는 잠시 머물고, 열매를 거두고, 다시 떠납니다. 랍비 조나단 색스(Jonathan Sacks, 1948–2020)도 초막절의 기쁨을 소유의 확장이 아니라 나눔과 환대의 기쁨으로 설명했습니다. 기쁨은 더 많이 움켜쥘 때가 아니라,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눌 때 깊어집니다.
일부 유대 전승은 솔로몬이 대규모 토라 낭독의 자리인 하켈(הקהל, Hakhel, “모으다·공적 낭독”)에서 코헬렛을 읽었다고 설명합니다. 역사적 저작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으므로 이 전승을 사실 단정으로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전승은 초막절이 한 가족의 축제가 아니라, 온 백성이 말씀 앞에 모이는 절기라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전도서는 축제의 소음을 잠시 낮추고, “오늘 받은 생명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공동체의 중심에 놓습니다.[1]
그래서 어떤 공동체는 마지막 부분에서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라는 결론을 강조하고, 어떤 공동체는 반복되는 낭독과 노래 속에서 그 여운을 남깁니다. 초막절의 기쁨은 현실을 잊는 환희가 아니라, 유한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성숙한 기쁨입니다.
3. 기도와 찬양: 할렐에서 호샤나까지
수코트에는 할렐(הַלֵּל, Hallel, “찬양”)이 드려지며, 시편 113편부터 118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고백은 풍요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합니다. 회당에서는 룰라브를 들고 할렐을 낭송하며, 구원의 기억과 현재의 필요를 한 호흡 안에 놓습니다.
호샤나(הוֹשַׁעְנָא, Hoshana, “구원하소서”)는 “지금 구원해 주소서”라는 간청입니다. 기쁨과 간구는 서로 반대되지 않습니다. 초막절은 웃는 얼굴로도 세계의 메마름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호샤나의 행렬은 비와 생명, 땅의 회복, 공동체의 구원을 함께 구하는 기도가 됩니다.
4. 호샤나 라바: 마지막 날의 긴 호흡
호샤나 라바(הוֹשַׁעְנָא רַבָּה, Hoshana Rabbah, “큰 호산나”)는 초막절 일곱째 날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이 날 회당에서는 시편과 호샤나 기도를 길게 낭송하고, 버들가지를 들고 행진하며, 생명과 비와 자비를 구합니다. 오늘날의 실천은 공동체마다 다르지만, 초막절의 기쁨이 마지막 날에 더욱 간절한 기도로 깊어진다는 흐름은 공통적입니다.
절기의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기도는 더 넓어집니다. “나만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에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달라”는 기도로, 개인의 걱정에서 공동체의 회복으로, 현재의 안락에서 창조세계의 지속 가능한 미래로 시야가 열립니다.
5. 심핫 토라와 절기의 여운
유대 전례력에서 쉐미니 아쩨렛과 심핫 토라(שִׂמְחַת תּוֹרָה, Simchat Torah, “토라의 기쁨”)가 인접해 지켜지는 공동체에서는 토라 읽기의 한 주기가 끝나고 다시 시작됩니다. 마지막 말과 첫 말이 서로 맞물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이 구조는 초막절이 가르치는 임시성과 영속성의 역설을 잘 보여 줍니다. 초막은 걷히지만 말씀은 계속되고, 절기는 끝나지만 순종은 다음 날 아침 다시 시작됩니다.
◈ 그리스도인에게 남기는 말
우리는 좋은 말씀을 듣고도 바쁜 월요일이면 쉽게 잊습니다. 그러기에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읽고 비를 구하는 유대인의 절기 리듬은, 신앙이 몸의 습관으로 자란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의식을 자기 의무로 삼지 않고도 오늘의 작은 순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식사할 때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놓고, 아픈 이의 이름을 기억해 다시 연락해 보십시오. 기쁨과 간구를 함께 품는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첫 장을 다시 펼치듯, 내일도 사랑을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샬롬샬롬!!!
[1]전도서의 초막절 낭독 전통은 다섯 두루마리 관습과 공동체별 전례에 따라 읽는 날에 차이가 있다. JPS Bible Commentary: Ecclesiastes; Schechter Institute of Jewish Studies의 Sukkot·Kohelet 해설; Robert Gordis, Koheleth: The Man and His World 참조. 하켈과 솔로몬의 연결은 전승적 설명으로 소개하며, 코헬렛의 저작 연대에 관한 학문적 논쟁과 구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