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깊이와 넓이
- 최원현의 <그냥> -
신재기
(문학평론가. 경일대 교수)
최원현 수필 <그냥>(에세이문학 2010.겨울호)에서 보여준 작가의 사색은 섬세하면서도 그 경계가 분명하다. ‘그냥’이란 하나의 단어를 두고 다양한 생각의 끈을 이어가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훌륭한 수필가는 다른 사람이 관심을 잘 보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을 개롭게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것을 거창하다고 말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좋은 수필가가 되려면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아내고,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삶의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해 내며, 대상이 지니는 내면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투시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이 세상 읽기라고 한다면, 그 읽기 방법은 외골수의 한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이 필요하다.
세계를 보는 시선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상의 양 끝에만 고정되지 않고 뮤수한 중간항에까지 미칠 수 있어야 전체를 균형있게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그냥>이라는 작품의 주제다.
우리 삶에도 그냥이면 되는 게 너무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냥’ 하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차거나 덥거나,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라 한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찌 2분법으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으랴.
‘그냥’이란 말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풀이하기 나름이다. 때에 따라서는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거나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극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고 힐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반대로 생각한다.
“요즘의 삶들을 보면 너무나 똑똑하고 정확해서 조금의 미련이나 여유조차 가져볼 수 없이 살벌한 느낌이 들곤 한다.”라고 말한다. 매사에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은 자신감이 있어 좋다. 대상의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앎이고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모든 것은 다양하고 복잡하여 일도양단 하기가 쉽지 않다. 대상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주체의 일방적인 관점에서 명쾌한 구조나 체계로 정리하다 보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분법이나 흑백론이 그 좋은 예다.
작가는 일상생활에서 ‘그냥’이라는 부사를 통해 일도양단의 명쾌한 결정보다는 대상의 다양성을 고려할 수 있는 여유를 권한다, 양 끝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의 필요성을 사색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냥’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두고 깊으면서도 넓은 사색의 땅을 적절하게 파는데 성공했다고 하겠다.
<에세이문학> 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