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22만 관객이 극장을 다녀간 <과속 스캔들>로 대중성을 확보한 감독 강형철의 두 번째 작품. 이 영화 <써니>(2011)로 그는 다시 한 번 흥행감독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야말로 연타석 홈런인 셈. 흥행기록이 말해주듯 영화는 대중친화적인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오래전 학창시절, 지난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고, 그 내용에 푹 빠지게 하면서 ‘7080’세대들의 마음을 훔친다. 강형철 감독은 극중 인물과 설정, 대사 등 여러모로 이전 명화들에서 익숙한 면들을 인용하고, 때론 경의를 표하면서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 기억들에 접속한다. 극중 두 중심인물의 이름을 아예 '(임)나미'와 '하춘화'로 설정한 것부터 그러하다.
한국 가요계의 대모 격인 가수들의 이름을 영화의 인물에 접목해냄으로써 영화가 복고적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복고풍을 최대한 활용한 이 영화는 이야기의 구성이 최대강점, 그 흐름이 가히 압권이다. 이름만 대면 바로 떠오르는 스타배우는 없지만, 출연진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매우 구성지다.
나미 역의 성인과 어린시절을 연기한 유호정과 심은경, 춘화 역의 성인버전과 소녀버전을 보여준 진희경과 강소라, 이 두 핵심인물을 비롯해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이야기 속 인물과의 매칭이 훌륭하다. 텔레비전에서 비교적 자주 본 유호정과 달리 간만에 출연한 진희경은 7공주 '써니'의 영원한 짱으로서 그 중력을 더한다. 그 외의 배우들도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긴 마찬가지.
거기에 더해 재미를 배가시키는 음악은 영화의 방점이라 할 만하다. 7공주 멤버들의 주제곡처럼 영화의 엔딩에 사용된 보니엠(Boney M.)의 '써니'(Sunny)는 단연 최상의 선택, 신나는 디스코 송이지만 졸업 후 흩어졌던 동창절친들이 춘화의 장례식장에 모여, 물심양면으로 서로를 챙기며 정감을 나누는 장면에 이어지는 노래는 극적 감동의 절정을 선사한다. 대모 진압으로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앞 쌈박질 장면에 사용된 사운트랙 송 그룹 조이(Joy)의 '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와 함께 1980년대 유로디스코의 향수를 불러내는 선곡, 당시 롤러스케이트장 최고 인기곡의 감흥이 여전히 유효하다.
동명 주제가를 포함해 나미의 로맨스를 대변하는 <라붐>(La Boum, 1980)의 주제가 리처드 샌더슨(Richard Sanderson)의 '리얼리티'(Reality), 마돈나(Madonna)와 함께 1980년대 여성 팝의 경쟁구도를 형성한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타임 애프터 타임’(Time after Time)과 '걸스 저스트 원 투 해브 펀'(Girls just want to have fun) 등, 친 라이오 성향의 올드 팝송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돼 추억을 소환한다. 참고로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은 턱 앤 패티(Tuck & Patti)의 가창과 반주로 영화의 도입부에 사용됐고, 종영인물자막(End Credit)과 더불어 나오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미의 '빙글빙글', 조덕배의 '꿈에' 등 1980년대를 수놓은 우리 가요들의 등장도 반갑다. '나가수'나 '불후의 명곡' 등 세대를 아우르는 TV예능프로그램들에 익숙한 대중들의 감성을 파고들기에 충분한 포석이다. <써니> 성공의 1등 공신이 탁월한 음악 효과라는 등의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과속스캔들>에 이어 강형철 감독과 호흡을 맞춘 김준석 음악감독, 둘이 함께 일궈낸 쾌심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