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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과 영상 스크랩 두산베어스 - 2000/2001 한국시리즈 (미러클 김인식)
윤아짱(대현) 추천 0 조회 50 13.10.08 10: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그 해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준우승팀이 주인공이던 시즌이 존재했었다. 바로 20세기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의 두산베어스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당시에는 양대리그 1, 2위 팀이 크로스 토너먼트 형식의 7전 4선승제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현대 - 삼성]전은 [두산 - LG]전보다 하루 먼저 시작되었고(10월 19일), 두산이 플레이오프 3차전을 끝냈을 때 현대는 4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KBO 역사상 최고의 강팀으로 평가 받는 2000년 현대는 다승왕(18승) 투수를 무려 3명이나 보유하고 있었고, 최강의 불펜진에 완벽에 가까운 조직력을 갖춘 팀이었다. 게다가 삼성을 상대로 4연승을 하면서 경기 감각도 절정에 있었고 6일간의 충분한 휴식까지, 모든 조건이 최상이었다(두산은 2일 휴식).

 

반면에 두산은 LG와 6차전까지 가는 피말리는 접전을 했고(연장전만 2번), 김동주가 몸에 맞는 볼로 손가락 골절을 당하면서 한국시리즈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투수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더구나 현대 김재박 감독이 김동주를 대신할 엔트리 교체를 허용하지 않아 엔트리 숫자도 현대보다 1명이 적었다. 최악의 조건에서 4번타자까지 결장하게 된 것이다(당시에 김재박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은 상당했다).

 

김동주는 6차전에서 손가락 골절에도 불구하고 1점차로 추격하는 홈런을 치면서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 2000년 한국시리즈 -


[1차전] 선발 등판한 조계현이 5이닝동안 2실점하는 호투를 했으나 김수경, 조웅천을 전혀 공략하지 못하면서, 특히 8회에 등판한 조웅천에게 철저하게 당하면서 0:3으로 완패한다(2이닝 5삼진).

 

조계현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1이닝동안 1실점하는 호투를 했으나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고(팀은 역전패), 1승 2패로 뒤진 4차전에서는 6.2이닝동안 1실점하면서 팀을 위기에서 구해 내기도 했다.

 

조계현의 3일 휴식 선발 등판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되었고, 과거 최강 해태를 이끌었던 진정한 에이스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참고> 조계현은 고교시절부터 급이 다른 투수였다.

 

 

[2차전] 7회까지 리드 당하고 있었고 2:3 박빙의 승부처에서 또 조웅천의 벽에 막히고 만다. 그리고 8회말에 대량 실점하면서 2:8로 대패한다.

 

[3차전] 1:3으로 뒤진 5회말 1사후에 기회가 찾아왔으나 구원 등판한 조웅천의 벽에 또 막히면서 역전의 꿈은 좌절된다. 두산에게 조웅천은 저승사자였다.

 

 

3연패 이후에 팬들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전문가들도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3연패 와중에 엄청난 물량을 퍼 부었기 때문인데, 쉽게 말해서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는 1승도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과연 그럴까?

 

냉정하게 현대와 두산의 전력 차이는 최소한 세 수 이상이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1) 4승을 해야 우승할 수 있다. 면피용 1승은 무책임한 감독들이나 선택하는 전략이다.
(2) 공격력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조직력에서, 특히 투수력에서만 두 수 이상의 차이가 났다.
(3) 현대 선수들은 체력적인 여유가 있었으나 두산 선수들은 전부 지쳐있었다. 여기에서도 한 수 이상의 차이가 났다.

 

야구는 경우수의 스포츠이다. 바둑에 비교하자면 1급 현대와 4급 두산이 7전 4선승제의 시리즈를 하게 된 것이고, 정석의 방법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4승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1% 가능성도 없었다.

 

1% 미만의 확률을 30% 이상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4급의 하수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수를 두는 것이다. 그래야 1급의 상수가 그 의도를 알아채기 힘들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모험, 즉 승부수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며, 진정한 승부사였던 김인식 감독은 바로 그것을 한 것 뿐이다. 전패를 당하더라도 4승의 가능성을 선택했던 것이다. 프로야구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18승 투수 3명이 차례로 등판하는데 무슨 재주로 리드하고 지키는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현대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전승 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조웅천을 무너뜨리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점수차의 리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실제로 조웅천은 3연속 등판했고 상당히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된다. 그래서 김인식 감독이 리드를 당하면서도 엄청난 물량을 투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의 마지막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반전시켜줄 영웅이 필요했는데, 그 영웅은 바로 조계현이었다.

 

 

[4차전] 선발 등판한 조계현이 7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했고, 벼랑 끝에서 두산 타자들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김수경을 5회부터 효과적으로 공략하면서 7회까지 매회 2득점을 하면서 6:0으로 완승한다. 이제는 조웅천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만 남게 된 것이다.

 

 

 

- 조계현은 이날 승리로 한국시리즈 최고령(36세 6개월 2일) 선발승 기록도 수립했다. -



[5차전] 두산은 4회말에 3득점을 하지만 5회초에 5실점을 하면서 역전을 당한다. 역전에 성공한 김재박 감독은 조웅천을 투입하지만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7회말 2사 만루에서 정수근에게 역전 3루타를 허용하면서 무너지게 된다. 이제 한국시리즈의 주도권을 두산이 잡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인식 감독의 야구였다.

 

 

 

 

[6차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접전이었다. 현대가 1회말에 1득점을 하면서 앞서 나갔고 4회초에 두산이 3득점을 하면서 역전에 성공한다. 그러자 6회말에 현대가 2득점을 하면서 다시 동점. 7회초와 8회말에 각각 1득점씩 하면서 다시 동점. 마지막 9회초에 두산이 1득점을 하면서 극적으로 3승 3패 동률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두산 야구에 열광하게 된다.

 

이제 이변이 없는 이상 7차전은 두산의 승리가 될 것이고, 오랜 역사의 메이저리그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결승 시리즈의 리버스 스윕이 연출되기 직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불멸의 최동원이 이루어 낸 84년 한국시리즈를 능가하는 명승부를 허락하지 않았다. 전날까지 체감온도가 영상 15도가 넘었던 날씨가 7차전에는 영하 5도 가까이 떨어졌던 것이다. 두산의 선발 투수는 조계현이었고 현대는 김수경이었다.

 

<참고> 1984년 한국시리즈 - 불멸의 최동원

 

 

[7차전] 두산의 투수진은 사실상 바닥난 상태였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노장 조계현! 반면에 현대는 강속구의 영건 김수경이었다. 4회말 2:2에서 조계현의 변화구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제대로 구사되지 않았고, 퀸란은 3점 홈런으로 20세기 마지막 한국시리즈의 MVP가 된다.

 

 

2000년에 두산은 준우승에 그쳤으나 야구팬들은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과 조계현의 투혼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외에도 김재박 감독의 인터뷰 내용은 한동안 계속해서 회자되기도 했다.

 

3차전 승리 후, "내일 4차전에 깨끗하게 끝내겠다."
4차전 패배 후,
"오늘 수경이가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내일은 반드시 끝내겠다."
5차전 패배 후, "6차전에 반드시 이겨서 홈에서 우승하겠다."
6차전 패배 후, "최선을 다 하겠다." (김재박 감독은 겸연쩍어 했다.)

 

 


- 2001년 한국시리즈 -


2001년 한국시리즈는 2000년과 비교해서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산의 투수력은 심각한 지경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준플레이오프까지 다시 부활되어 있었다. 단순히 확률로만 따지면 1984년 롯데의 우승보다 더 가치있는 우승이 2001년 두산의 우승이었다.

 

준플레이오프를 통과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으나 플레이오프의 상대가 하필이면 현대였다. 2000년과 비교해서 전력이 약해지긴 했으나 그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또한 플레이오프를 통과한다 해도 심각한 전력 손실로 인해 선발 10승 투수도 없었던 두산이 막강 삼성을 누르고 우승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선발 최다승 투수는 6승의 구자운).

 

그런데 비가 내리면서 2차전이 연기 되었고, 과부하되어 있던 투수 운용에 숨통이 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4차전에서 한국 야구사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대형사고를 치게 된다.

 

삼성 이선희 투수 코치의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증명해준다. "어떻게 두산에게 집니까? 두산에 누가 있다고..."

 

 

 

 

두산베어스는 김인식 감독 부임 이후에 95년에는 정규시즌 1개월도 안 남겨둔 상태에서 1위 LG와의 6게임차를 극복하고 우승을 했고, 98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확정되어있던 해태를 눌렀으며, 20세기 마지막 시즌인 2000년과 21세기 첫 시즌인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야구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다.

 
그야말로 기적의 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야구팬들은 이를 두고 미러클 두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러클 두산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미러클 김인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출처> 野生野死 야구에 죽고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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