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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에 빗대어 하고픈 말을 한다
사진은 피사체를 표현한다. 그런데 표현된 피사체는 동시에 찍은 사람을 드러낸다. 피사체라는 소재와 수단을 통해 찍은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나와 피사체 사이의, 카메라와 나의, 내가 찍은 사진을 보는 사람과 나의 대화다. 내 몸 밖에 존재하면서도 나와 가장 밀착되어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는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화의 수단이다.
사진에서 주제란 무엇일까? 누구는 제목과 같은 뜻이라고 여길 것이며, 어떤 이는 사진 속에 담긴 소재를 말할 것이고, 혹자는 사진 속에 담겨 있는, 혹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답할 것이다. 주제는 한 장의 사진에서 드러날 수도 있고, 연작으로 담아낼 수도 있다.
사진의 주제가 제목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제목이 없는 사진은 주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주제가 제목이라는 명시적인 형태로 표현되지 않았어도 주제가 드러날 수 있다. 도리어 제목은 있지만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작업의 일련번호인 숫자를 제목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 촬영 날짜나 장소를 제목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무제’나 ‘Untitled’ 같은 무의미한 제목이 과연 제목이냐는 논란도 있다. 제목은 제목인데 제목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제목이 아니라고 하기도 모호하다.
사진 속에 담긴 소재라 함은 피사체를 말할 것이고, 피사체가 하나일 수도 있지만 여러 개인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주된 피사체를 주제, 이차적이거나 부차적인 피사체를 부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피사체가 없는 사진이란 없을 것이니 이런 경우로 쓰일 때는 모든 사진에는 주제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의 소재와 주제가 일치할 때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아이가 웃는 모습을 소재로 ‘천진난만한 동심’이라는 주제를 표현한다면 일치하겠지만, ‘한국의 산하’와 같은 주제로 한국의 산과 강, 바다 등 소재를 달리하면서 연속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사진 속에 담겨 있는, 혹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주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구체적 형태를 띠는 피사체인 소재를 빌어 표현하는 관념적 혹은 추상적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추함일 수도 있고, 춘하추동과 생로병사와 같은 자연과 생명의 주기일 수도 있고, 맑고 깨끗함이나 쓸쓸함과 외로움, 고독과 같은 상태일 수도 있고, 희로애락 등 감정일 수도 있으며, 개인적 주장이나 정의, 평화와 같은 사회적 메시지일 수도 있다.
사진의 주제를 ‘청계천변의 연인’처럼 제한적이고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겠고, ‘지구촌의 연인’과 같이 광범위하게 잡을 수도 있다. 나아가 청계천변이나 지구촌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사랑’이라는 추상적 주제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주제가 없는 사진도 있을까? 찍은 이가 사진 속에 담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그 주제를 찾을 수 없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찍은 이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느꼈다면 있는 것이 아닐까? 역으로 찍은 이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었으나 사진 속에 그것이 담겨 있고, 보는 이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소개한 사진들은 필자가 ‘닮았다’라는 주제로 찍은 것들인데,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자면 ‘싱크로율’이 높은 광경들이다. 사람과 사람이 닮았다. 사람과 동물이 닮았다. 사람과 사물이 닮았다. 자세가, 동작이, 옷차림이 닮았다. 사진 속에 담아 말하고자 하는 바도 닮았다. 그것을 담았다.
연작(連作, 聯作, series)이란 같은 소재나 주제로 작품을 잇달아 짓는 것, 또는 그런 작품을 말한다. 가장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연작은 같은 소재를 다루는 것일 테고, 조금 더 나아가 다른 소재라 할지라도 비슷한 형태에 주목하는 작업일 것이다. 소재 또는 형태에 공통성이 없더라도 그것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보다 간접적이고 추상 수준이 높은 연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살짝 비틀어 연작에 원용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비슷한 것을 모으고 엮으면 새로운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연작 작업은 새로 시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난 사진들을 활용하는 것부터 할 수도 있다. 여행 사진의 예를 들어보자. 여행지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그냥 일정 기간과 장소라는 공통점만을 지닌 채 스마트폰의 메모리나 컴퓨터의 어느 폴더에 쌓여 있기만 할 것이다.
방치된 사진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보자. 이 사진들을 소재와 주제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자연, 건물, 사람들, 같은 색깔과 같은 큰 범주로 분류할 수도 있고, 꽃, 나무, 간판, 문짝, 창문 등으로 세분화할 수도 있다.
하나의 여행에 대한 사진 분류와 선별 작업을 마무리 짓고, 지난 다른 여행들에서 찍은 사진으로 확대한다면 연작의 내용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지난 여행으로 시작하고 나서, 앞으로 여행을 갈 때는 자신이 정한 소재와 주제들을 염두에 두고 선택하고 집중해서 사진을 찍는다면 여행도 사진도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필자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한 2012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동그란 모양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달(月, moon)이라고 부르며 SNS에 올렸다. 세상의 모든 동그라미들을 하루에도 여러 장씩 꾸준히 수백 여 컷을 올리자 사람들은 필자에게 “달 작가”, “달 사진가”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천장에 달린 온갖 조명에서부터, 아주 가까이서 똑바로 바라본 꽃술, 위에서 내려다본 밥그릇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동그란 것들을 찍어댔다.
완전한 원이나 구의 형태를 지닌 것만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것, 외곽은 뾰족하지만 전체적인 윤곽이 둥근 것들은 모두 달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해를 찍어 놓고도 달이라고 주장했으니, 사실 우겼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사람들은 ‘달 시리즈’를 무척 좋아했다. 풍경이나 건축, 인물 등 특정한 소재나 주제를 꾸준히 찍어 올리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필자처럼 동그란 것만 찍고 그것을 달이란 이름으로 올리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필자가 찍었던 사진과 비슷한 소재 혹은 구도의 사진을 올리며 필자를 흉내냈다거나 필자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며 즐거워했다.
달 사진은 찍어놓고 나면 단순해서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찍는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명을 찍을 때, 피사체의 정중앙에 초점을 맞추고 화면을 꽉 채운 후 사방에 일정한 여백을 남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력과 지구력이 필요했다. 턱을 하늘로 치켜들고 팔과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미친 사람 바라보듯 하는 남들의 시선을 참아내야 했다.
이런 수고가 헛되지 않고 보람되었다. 달 연작 작업을 통해 피사체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익히고, 나만의 작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체득할 수 있었으니 달님은 필자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어주신 스승님이시다. 필자는 예전처럼 달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지만 누군가 새로운 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 또한 언제 달 놀이를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달은 날이면 날마다 언제나 뜨고 질 테니까 말이다.
사진은 그림으로 보는 하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사진 속의 피사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피사체를 통해 찍은 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또한 사진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상상하고 발전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저는 활짝 핀 붉은 장미예요”라는 아주 짧고 단순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예전 같으면 아직 늦봄이었을 텐데 여름 뺨치게 더운 날씨의 연속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웠다. 출근길에 만난 붉은 장미는 탐스럽게 피었지만, 날씨가 이래서인지 왠지 지쳐 보였다”와 같이 제법 길고 복잡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진에 대한 일종의 칭찬처럼 쓰이는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라는 표현이 있다. 모든 사진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음에도 그런 표현을 굳이 따로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보는 이로 하여금 희로애락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전후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거나, 뒷얘기나 속사정이 궁금해지게끔 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의 대화1. 밤이 깊어지면 세상의 주인이 바뀐다
2. 입 다물고 있던 사물들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3. 하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4. 그것은 그들도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대화일 뿐이다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언덕길에 아스팔트를 새로 까느라 이곳저곳이 공사판이었다. 자정이 넘은 초여름의 밤길은 서늘했다. 그날 밤은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사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네 컷의 배열은 그날 밤 12시 19분에서 24분까지 5분 사이에 촬영한 순서 그대로이고, 제목들 또한 그날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실은,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내가 술을 한 잔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에 이야기를, 그것도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단 한 컷만으로 담기에는 어려운 이야기들도 있고, 이야기가 이어지는 구성 또한 재미있다. 신문의 만평처럼 한 컷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지만, 네 컷 만화도 존재하니까 말이다. 나아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엮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야기에 기승전결과 같은 체계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사전에 대본을 짜고 연출한 사진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사진을 찍을 때 이야기로 구성할 것을 염두에 둔다면 어떤 장면은 찍고 어떤 상황은 생략해도 되는지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찍고 나서는 스스로 편집자가 되어 장면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부터 출발하면 된다. 꼭 시간 순으로 배열해야 할 필요는 없다. 또한 꼭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찍은 사진들로만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이지만 그것들 사이에 흐르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면 엮어볼 만하다.
이야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사람이 등장할 수도 있고, 동식물이나 사물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닮은 것을 모을 수도 있고, 이질적인 것을 대비시킬 수도 있다. 듣는 사람이 썩 재미있어하지 않거나, 들려준 순간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사라져버릴지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만드는 동안 내가 즐거웠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리고 새로운 얘기를 또 만들면 되니까.
봄날은 간다 일본 후쿠시마 현 하나미야마(花見山) 공원에 갔을 때였다. 이 두 어르신은 모자와 옷차림, 지팡이도 비슷한데 함께하는 걸음걸이까지 닮아 눈에 띄었다.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수 백설희가 노래한 [봄날은 간다]의 가사 중에서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이라는 대목이 절로 떠오른다.
[네이버 지식백과]스마트폰 카메라로 주제와 이야기가 있는 사진 찍기 - 피사체에 빗대어 하고픈 말을 한다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2014.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