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 5.8 km
소요 시간 3h 7m 36s
이동 시간 2h 59m 55s
휴식 시간 7m 41s
평균 속도 1.9 km/h
최고점 482 m
총 획득고도 402 m
난이도 쉬움
프로로그
눈(雪)은 무슨 색깔일까. 단풍이든 푸른 소나무든 바위든 모든 것을 덮어 버린 눈의 색깔은 흰색이다. 밤(夜)은 무슨 색일까. 아무런 불빛도 비치지 않는 밤은 검은색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도 푸르다. 한여름 나뭇잎은 녹색이고 가을 단풍은 빨갛고 노란 색으로 물든다고 한다.
과연 색(色)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자연현상에서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색에 이름을 붙여서 보통 무지개색깔을 빨주노초파남보라는 일곱가지로 명명하였다. 그러니까 색이라는 것은 사람의 눈에 비친 자연의 현상중에서 빛의 작용에 대해 정의해서 구분해 놓은 약속이다. 음악에서 소리의 높낮이를 도레미파솔라시로 명명한 것처럼 자연속 각 빛의 농도에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아파트단지에는 아직도 다을단풍이 남아 있다
그 밖에 인간은 자연의 현상을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분석하여 설명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사물의 형태에 따라 둥글고 각지고 뽀족하고 뭉툭한 정도에 따라서 숫자를 동원하여 각도(角度)라는 것도 적용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과 추함은 무엇인가. 이는 인간 각 개인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느끼는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똑 같은 사물을 놓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지만 그저 그렇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소리에 매혹되어 몰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루해서 잠을 자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다만, 보편적 아름다움이란 그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바탕을 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빨간색이 어느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칠만큼 증오를 일으키게 하지만 다른 특정지역 특정시대 사람들은 똑 같은 빨간색을 미칠만큼 좋아한다.
목마도 겨울을 맞아 덮석을 입었다.
불교의 반야바라밀다 경전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이말이 단순히 모든 사물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인다라고 해석한다. 어찌 보면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수천년동안 많은 나라에서 유지해온 대표적인 종교의 기본교리의 중요부분임을 감안하면 이 말에 많은 숭고한 뜻을 내포하고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산행기
인천 백병원에서 강화도에 비에스 종합병원을 준공하고 개원식을 갖는 날이다. 스타동기 백승금의 동생이 원장으로 있고 승금이는 행정실장으로 병원의 모든 행정적인 일을 도맡아 한다. 개원식에 근승이와 함께 참여하기로 하고 기왕 강화도에 가는 길에 마니산을 올라 보기로 했다.
새벽 5시 대충 물만 챙겨서 배낭에 넣고 단감을 씻어 차를 타고 가면서 아침대신 먹었다. 산이 그리 높지 않으니 하산해서 해장국 한그릇 먹을 참이었다. 행사가 오후 2시에 예정되어 있으니 미리 가서 둘러보기로 하고 근승이와는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올해 초 아산 꽃 전시장에서 가느다란 줄기 하나 얻어다 화분에 심은 싹소름 꽃이 피었다.
강화도로 넘어가는 초지대교를 지나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강화도로 들어가 마니산 방향으로 가는데 진눈깨비처럼 눈이 내리자 마자 녹아버린다. 가로등에 비치는 눈발이 제법 풍성하다. 우산도 우비도 챙겨 오지 않아 산행이 조금 걱정된다. 잠깐 비를 맞는 것은 괜챦겠지만 서너시간 비를 맞으면 저체온증으로 고생할 수도 있는 일이다.
비와 눈이 섞여서 내린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주변을 둘러 보았다. 주차장에는 내차까지 3대가 주차되어 있다. 눈발인지 빗발인지 어둠속에서 잘 구분이 안된다. 새벽 6시 아직 주변이 깜깜하다. 해돋이를 보는 것은 이미 틀린 일이고 비만 내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차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30분 넘게 잠들었나 보다. 잠에서 깨어나니 앞 유리창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함박눈이 내린다. 올해 첫눈이다.
기상청에서는 비예보가 있었던 터라 눈이 내릴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고 눈앞에 눈을 보면서도 금방 녹아 없어질 진눈깨비 정도로 이해했다. 눈발이 가늘어지고 그 양도 많지 않은 듯 하여 산행 채비를 갖추었다. 스틱은 하나만 들고 가기로 했다. 7시가 가까이 되어 주변 사물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여명이 밝아 온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설경은 마치 흑백사진같다.
내가 차안에서 잠시 잠들어 있는 동안 바깥세상이 바뀌었다. 어스름한 여명속에 눈덮인 풍경이 마치 겨울왕국의 모습이다. 온세상이 하얗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가지를 쭉 뻗은 히말라야시다 나뭇가지에 눈이 두껍게 쌓여 있다. 아직 눈속에 잠들어 있는 세상에 스틱이 아스팔트를 찍는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이미 첫눈치고는 많이 내렸는데도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눈발이 쏱아진다.
계단길을 택했다. 지난번처럼 계단길로 올라갔다가 단군로로 내려올 생각이다. 10시까지 내려오려면 그리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다. 눈이 없다면 어두운 새벽길에 눈여겨 볼만한 풍경도 없을 테니 후다닥 올랐다 내려오면 되겠지만 이렇게 첫눈이 내린 마니산은 내 눈길을 잡아끌 무언가가 있을법하다.
계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에도 아직 햇빛이 들지 않아 눈이 푸른색을 띠고 있다. 길가에 늘어진 가지마다 눈이 얹혀져 있다. 한겨울 눈꽃산행을 온 기분이다. 마침 정상쪽에서 부부인듯한 사람이 내려오길래 부탁하여 사진 한장을 찍었다. 조금 올라왔는데도 바람이 막혀 있던 아래보다 더 추운 느낌이 든다. 길위에는 눈이 푹푹 빠진다. 봄 여름 야생화도 아름답고 가을 단풍도 더없이 예쁘지만 겨울 눈꽃은 그 규모나 아름다움에 있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다.
양쪽으로 트인 능선길로 접어 들자 갑자기 왼쪽에서 세찬 칼바람이 몰아친다. 그 칼바람에 섞인 눈송이가 볼을 때린다. 볼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체온에 금방 녹아 버리지만 그 눈녹은 물은 다시 칼바람에 섞여 통증으로 다가온다. 어지간한 추위에는 내색을 하지 않는데 이런 추위는 좀 색다르다. 칼바람에 섞인 눈발이 얼굴을 계속 때려댄다. 급한 마음에 모자를 벗어 내피를 꺼내 가면을 쓰듯이 얼굴을 가리고 나니 얼굴의 통증은 가라 앉는다. 안경에 눈과 성애가 달라 붙어 시야를 가려 급기야 안경을 벗어 버렸다. 조금 시야가 불편해도 깨끗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훨씬 낫다.
마니산 참성단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겨울철에는 오전 10시에 개방한다는 안내판이 걸려 있다. 작년 봄에 왔을 때처럼 눈내린 벌판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헬기장으로 가 보았다. 그러나 사방은 눈보라와 안개로 인해 겨우 반경 10여미터 정도만 보일 뿐이다. 첫눈 산행을 와서 이처럼 아름다운 설경이나 보면 됐지 거기에 트인 조망까지 기대했던 건 좀 지나친 욕심이었나보다. 속으로 헛웃음을 웃고는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오전 8시 30분 하산은 올라온 길이 아닌 단군코스를 택했다. 지난번 왔던 때와 동일한 코스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소복히 쌓여 있다. 이제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는다. 약 한시간 동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하얀 나뭇가지 위에 부드러운 햇볕이 내려 앉는다. 새벽 어스름빛을 벗어 내고 뽀얗게 세수하고 나온 아침풍경은 더 없이 맑고 깨끗하다. 사방 어느쪽을 보아도 절경이요 어디를 찍어도 작품 사진이 나온다. 파란 소나무마저 눈에 덮이고 나니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짧은 순간 내린 눈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내린 소나무 가지도 여럿 보인다.
계단을 내려와 암릉으로 이어진 길에는 앞서간 사람 발자국이 없으니 이리 저리 살펴가면서 조심해 내려가야 한다. 바위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뒤로 엉덩방아도 찧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래도 눈만 보면 유쾌해진다. 첫눈 소식을 들으며 눈길 교통걱정을 하는 사람은 아저씨라고 하지만 그런 아저씨도 이런 설경을 보면 걱정이 싹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산을 반쯤 내려왔을 때 근승이에게 전화를 했다. 도착하려면 30분쯤 걸릴 것이라 한다. 그러면 마니산 아래 주차장으로 와서 함께 해장국이나 먹자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 바위도 계단도 없는 완만한 흙길이다. 눈 아래는 벌써 녹아서 물이 조금씩 비친다. 그래도 아직 신발에 흙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이제 밑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난다. 모두들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다.
산에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근승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니산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서 한참 가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승금이 병원 근처에서 해장국을 먹기로 약속을 변경했다. 벌써 오전 10시가 가까워 온다.
산아래 진입하는 아스팔트길에는 눈이 거의 녹아 버렸다. 그래도 나무위에는 눈이 잔뜩 쌓여서 나뭇가지가 척척 늘어져 있다. 가을끝까지 매달려 있던 붉은 단풍잎도 눈무게는 어쩔수 없었는지 눈위를 빨갛게 물들였다. 나무에 남아 있는 단풍잎과 나무 아래 눈바닥 위에 흐트러진 빨간 단풍잎이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하다.
이렇게 기대하지도 않았던 올해 첫눈 산행을 마쳤다. 주차장과 도로에는 눈이 거의 다 녹아서 차가 다니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해변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왼쪽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여유있게 보고 싶으나 나를 기다리는 친구를 위해 한눈 팔지 않고 부지런히 달렸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잠깐씩 스치는 산위의 눈풍경은 놓지기 아까울 만치 아름답다.
에필로그
비에스 종합병원 개원식전
병원 옥상에서 바라본 전경
강화도 비에스 종합병원 개원식에 참여하여 신축 병원을 둘러 보고 승금이와 가족들께 인사하고 본행사 시작하기 전 강화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 왔다. 새벽부터 시작한 일정이 오후 3시 집으로 돌아 와서야 끝이 났다. 첫눈 산행으로 꿈같이 아름다웠던 이날 하루는 오래 내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