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헛배
정파 / 심 종 은
아내가 제 때 식사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밥 한 그릇 정도는 거뜬히 비움직도 한데, 입맛이 워낙 까다로운지라 식탁 앞에 서기만 하면 늘 머뭇거린다. 그런데도 살만 피둥피둥 찐다며 넋두리만 잔뜩 늘어놓곤 하는 것이다.
아내가 밥 한술마저 먹으려고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거르고 저녁도 자식들이 먹다 남은 것으로 때우는 게 고작이라면 능히 배가 고플 것이 당연하다. 그 외에는 별로 먹는 것도 없다는데 배만 나온다며 매우 속상해 했다.
밥맛이 당기지 않으면 하다 못해 김치랑 콩나물을 넣고 고추장에 적당히 참기름이라도 쳐서 쓱쓱 비벼먹을 만도 하다. 그런데 밥그릇에 원수진 일도 없건만 아내는 밥상을 차려놓고도 가족들 식사하는 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기 일쑤였다. 그런 아내의 속사정을 생각한다면 거들어주지 못할망정 절대로 빈정거릴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갑자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 얼굴을 돌리며 비시시 웃고 말았다.
요즘은 그렇다 치고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여자들은 밥 한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사실이다. 남존여비 사상에 물들어 부엌일 같은 자디잔 집안 일만 도맡아 일했지, 중요한 가정 대소사에는 감히 끼어 들 생각도 못했다.
자랄 때는 아버지, 혼인하면 남편, 나이 먹어 그나마 늙게 되면 자식한테 의지해서 죽는 그 날까지 오로지 남자들 치다꺼리하느라 한평생을 바쳐왔다. 간혹 부부가 겸상할 수도 있는 일이건만, 그런 시간도 맘껏 주어지지 않았다. 눈치껏 문밖에서 뱅뱅거리며 돌아다녀야 하는 객이나 다름없는 아주 한심한 신세로 전락되어 있었던 게 여자요 아내의 자리였다.
그런데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여자들이 먹지 않는 척할 뿐이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진짜 잘 먹는 것은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신통하게도 요즘은 전기 밥솥이란 게 생겨나 자동으로 밥을 짓게 되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양은솥이나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도 깊은 산골이나 외딴 곳에 가면 장작불 지펴가며 가마솥에 밥을 짓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다.
지금껏 여인네들은 국건더기와 하얀 쌀밥을 집안의 기둥인 남편이나 자식에게 먼저 갖다 바치고, 먹다 남은 국 찌꺼기랑 누룽지로 혼자 끼니를 때우며 버티어 왔다고 한다. 나이 든 할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우습지도 않게 정색을 하며 남자들한테 생색내듯이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가끔은 신세타령으로 서글픈 눈을 지어 보이며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원래 영양분일수록 밑바닥에 가라앉게 마련이라 밥솥이나 국솥 밑바닥에 남겨진 찌꺼기가 오히려 진짜 알짜배기라고 했다. 앙큼하게도 그 고단백 영양덩어리를 지금껏 여자들만 은근슬쩍 독차지해왔다는 것이다. 숭늉이 고소한 것도 그것을 빚은 원재료가 누룽지라서, 진짜 영양분만을 함축해서 만들어진 결정체라 아주 기막히게 맛이 좋다는 것이다.
평생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곧잘 투정부리지만, 찌꺼기만 먹는다고 하는 여자들의 실상을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말만 그렇지 실속은 여자들이 다 차린다는 식이다. 오히려 살이 토실토실 찐 사람이 많은 경우를 예로 든다. 2~30년 전만 해도 생활여유만 생기면 집집마다 식모를 두는 일이 많았다. 주인 여자들은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겨를도 주지 않고, 그들에게 일만 죽도록 시키는 것이 예사였다.
행동이 재빠르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는 날이면, 일 못하는 게 식량만 축낸다고 밥순이, 밥통이라며 욕을 얻어먹는 것이 그 당시에는 아주 흔한 일이었다. 주인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밥을 굶기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바짝 마른 사람은 별로 볼 수가 없었으니 정말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욕을 잔뜩 먹은 죄로 몸이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자들의 몸체가 비대했다는 것은 모두가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라 했다. 이런 말을 이미 전해들은 터라, 배가 나온 아내의 상태를 지켜볼 때,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은 아닌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혀 타당성은 없어 보였다. 지금은 솥이고 그릇이고 현대화되어 가는 마당이라 모두가 신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육신을 움직여야 겨우 사용할 수 있었던 모든 손 도구들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어 간다.
그러니 옛날 어머니 냄새와도 같은 누룽지 맛을 찾아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다 특별요리라 하여 간혹 음식점에서 맛보는 것을 빼놓고는, 요즘 세태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아마도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역설적인 주장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뚱뚱하다며 걸핏하면 아내가 굶기를 예사로 여겨, 눈알이 휑하니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뱃살이 너무 나왔다고 투덜대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만 들어 자주 그곳을 쳐다보게 된다.
“물만 먹어도 배가 나오나 봐요!”
내 배는 ‘술-배’라지만, 아내의 배는 시장할 때마다 물로 채워서 ‘물배’라고 자칭한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물이 하루종일 뱃속에서 무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사는 세상이 워낙 험한 탓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속이 끓는 바람에, 뱃속마저 쓸데없는 공기로 가득 차게 된 것은 아닐까.
“물배는 무슨? 헛-배 아니면, 그거지!”
“그거라니 무슨 말예요?”
“아, 있잖아 못된 게 그것만 가득 찼다고 하는…, 바로 그 배 말이야, 하하…”
아내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며 얼른 돌아서 나오고 말았다.
60년대만 해도 끼니를 굶는 집이 많았다. 그런 가정에 살던 어떤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복통이 일어나 배를 잡고 땅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다가 그만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 애는 집안이 가난하여 굶기를 예사로 알았다. 평소에 먹을 것을 보기만 하면 허기로 꽉 차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허겁지겁이었다. 굶는 날이 더 많아 늘 뱃속에서 쪼로록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먹은 것도 없이 배가 불룩해 있었으니 알쏭달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해부한 그 아이의 뱃속에서는 수천 마리의 회충이 한 덩어리로 똘똘 뭉친 채로 들어앉아 꽈리를 튼 듯 꿈틀대고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마지못해 목숨을 연명해온 어느 가난한 가정의 피맺힌 인생의 역사라 하겠다.
먹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살던 그 당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겠으나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배가 볼록 튀어나온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진짜 문제는 문제였다. 아내가 앓고있는 병은 손을 꼽아봐도 셀 겨를이 없이 최소한 수십 가지는 넘는 것 같았다. 아픈 데가 하도 많아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몸 전체를 돌아가며 아프지 않은 부위가 없다고 한다. 거기에다 신경성 위장염에 변비 통까지…. 그렇다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사기를 통해 뱃속으로 우주여행을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천리안이라면 몰라도 도저히 그 속을 확인해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허 준’이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 다음에야 완치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였다.
병원이나 한의원 가리지 않고 여러 곳을 두루 찾아다녔으나 신통치가 않았다. 간혹 괜찮다 싶어도 얼마 가지 않아 또 재발하곤 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짚어내지 못했다. 이렇듯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어 갈 때마다 각종 검사가 반복되어 끝내는 진짜 생병을 앓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갈대밭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신경통이나 허리 아픈 데는 갈대 속 순이 좋다고 해서다. 그래서 묻고 또 물어, 갈대가 무성하다는 소래 포구 염전터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그 억센 갈대 잎에 살갗을 베여 새빨간 피맛을 보면서도 아내를 위해 정성껏 갈대를 꺾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갈대 숲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소래 포구의 옛 추억을 되살릴 겨를도 없었다. 오던 길에 그저 쓰디쓴 막소주 한 잔에 잠시나마 시름을 달랬을 뿐이다. 어찌 되었건, 약발의 효용가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모든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아프다는 소리도 한 두 번이면 족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병 투정이 되풀이되면 어떤 간병인이든 지치게 마련이다. 조강지처도 등 돌리면 남남이라고들 말하지 않던가. 거의 매일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터라 이제는 나도 완전 무신경이 되어 있었다.
그렇건만 정작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남편을 쳐다보는 아내의 눈초리는 원망의 빛이 그득했다. 한 서리듯 매서운 독기가 불꽃처럼 퉁겨 나오는 아내의 매서움에 나는 혼비백산할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래 뒤돌아 서기 무섭게 재빨리 밖으로 도망치듯 쏜살같이 빠져나오고야 말았다.
“병원을 데리고 가던가, 한의원에 가서 보약을 지어 먹이던가 해야지 하구한 날 이게 무슨 꼴이람!”
길을 걸어가다가도 뒷덜미가 뻣뻣이 당겨지는 걸 느끼며,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곤 했다. 그러면서도 엉뚱하게 불룩 튀어나온 자신의 복부를 새삼스럽게 쳐다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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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배/심종은(박양근 평론)
→ 아내여, 살(肉)을 살(殺)하라
중년 남편의 넉살스런 부부애. “살만 피둥피둥 찐다고 넋두리만 잔뜩 늘어놓으면서 남몰래 영양가 있는 진짜 알짜배기 음식만” 골라먹고,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을 거르고 저녁도 남은 밥”으로 때우면서도 배가 나오는 아내의 중증 증세를 겁도 없이(?) 고발한 글이다.
한때 모 탤런트의 지방 흡입 시술을 두고 연예계가 뒤집히듯 했다. 그만큼 날씬한 몸매는 현대 여성만이 갈구하는 욕구가 아니다. 로마의 여성들도 비만을 두려워하여 음식을 토해내면서 진미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문제는 포식이 아니라 절식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는다는 중년여성들의 체질이다.
이 글의 문학적 장점은 여성의 비만을 역설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누룽지로 끼니를 때운 할머니대의 신세타령을 까발리고, 20여 년 전 가정부였던 식모들의 몸매도 투실했다고 반박한다. 그런 터에 “배가 나온 아내의 상태”를 점검하는 화자는 앙큼한 속임수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아프다는 소리도 한두 번이면 족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병 투정이 되풀이되면 어떤 간병인이든 지치게 마련이다. 조강지처도 등 돌리면 남남이라고들 말하지 않던가. 거의 매일 그 소리를 들어야 하는 터라 이제는 나도 완전 무신경이 되어 있었다. 그렇건만 정작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남편을 쳐다보는 아내의 눈초리는 원망의 빛이 그득했다. 한 서리듯 매서운 독기가 불꽃처럼 퉁겨 나오는 아내의 매서움에 나는 혼비백산할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나이만큼 옷을 입는다는 말이 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물컹한 비곗살이 손에 집히면 비만지수가 무능지수가 아닌가 싶다. 웬만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다음에야 나잇살은 “허준이가 살아 돌아와도 완치”가 불가능하므로 심종은은 이제 지쳤다. 하지만 그는 “눈알이 휑하니 들어간” 아내의 눈총에 혼비백산하는 선량한 남편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놓치지 않는 인간적인 감각을 지녔다.
재치 있는 제목과 직설적인 표현이 후련하도록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헛배>는 중산층의 여유 있는 웃음기를 풍겨준다. 그러나 여성에 대하여 긍정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시각을 풍기는 것은 여성에 의해 핍박받는(?) 남편을 동정하고픈 속셈일지도 모른다.
--- 박양근의 평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