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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청[大廳]마루 원문보기 글쓴이: 금향최세현[서울]
1998년 율려학회를 발족하여 율려사상과 신인간 운동에 앞장섰던 시인 김지하, 2006년도에는『율려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내고 자신이 주창하여 온 생명운동의 새로운 차원에서 율려를 조명하고자 하였습니다. 벌써 20년이 지난 지금의 진행상황은 아쉽게도 파악하기 어려워 김지하 시인이 끌고가고자 하였던 율려와 신인간주의에 대한 당시 인터뷰 자료를 아래에 인용하여 봅니다.
[인용 : 시인 김지하님 인터뷰 자료]
94년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펴내며 생명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했던 김지하 시인이 삼 년여의 침묵을 깨고 ‘율려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율려(律呂)―『천자문』 도입부에 있는 율려조양(律呂調陽)을 출전으로 하는 율려는 우주를 관장하는 중심음을 뜻한다. 김지하 시인은 지난 8월 ‘율려학회’를 조직하고 매월 1회씩 율려를 주제로 한 학술 토론회를 진행하면서, 우주적 휴머니즘으로도 불리는 신인간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구체적 실천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시월 하순, 경기도 일산 자택에서 만난 김지하 시인은 건강해 보였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다. 십여 년 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곧 시도 다시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지난 1년 동안 단학선원에서 기수련을 해온 덕택이었다. 자주 웃음을 섞어가며 근황을 털어놓은 그는 곧바로, 거침없이, 동학과 단학, 생명운동과 율려운동 사이를 연결한 뒤, 미당과 김동리의 정신사적 배경을 들추어내면서 율려문화운동론과 율려문학론의 일단을 내비쳤다.
김지하 시인은 율려학회 제2회 세미나 ‘풍류와 율려’ 초청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는데, 율려의 등장 배경과 개념, 그리고 그 지향이 어느 정도 압축되어 있어서 율려라는 말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먼저 여기에 인용해놓는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요즘 시절은 서서히 거칠고 세상은 험악하며 지구가 병들고 절기가 뒤틀리는 말세가 분명합니다. 세계 대공황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우리의 경제 위기는 장기화되어가고 있고,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식의 손가락을 자르는 아비가 나타나는가 하면 혹독한 기상이변으로 생물 생태계의 혼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옛 사람들은 깊은 명상 속에서 우주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천지의 변화를 관찰하여 율려를 새롭게 했습니다. 새 시대의 중심음, 황종(黃鐘)을 다시 찾아 정하여 예악을 새롭게 일으키고 온갖 제도를 근본적으로 혁파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주의 변화로부터 너무도 멀리 절연되어 있습니다. 우주질서의 조화로운 변화를 인식하고 표현하며 그것을 인간의 마음과 사회질서에 적용하는 율려를 잃어버렸습니다. 오늘의 음악과 예술과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극도의 해체와 타락, 즉 만(慢)입니다. 그러나 만은 또한 새로운 율려의 시작을 예고하기도 합니다.
율려문화운동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라운드라고 토로한 바 있는 그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긴 답변을 내놓았다. 그의 ‘그물망 같은 답변’은 길게 질문할 능력이 부족한 질문자의 다음 질문까지 내포하고 있을 때가 많아서, 질문자는 입을 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됐습니다. 내가 원래 애를 써서 글을 쓰지를 않았어요. 그냥 떠오르면 쓰고 안 떠오르면 안 쓰고, 쓰려고 애쓰지도 않는 게 버릇이 됐어요. 내가 소설가도 아니고.
질문 : 지난해 여름 토지문학관 기공식 때 뵈었을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입니다. 기수련 때문입니까?
몸이 아파서 단학선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나보다 먼저 시작한 아내(김영주씨)가 좋다고 권유해서 지금까지 일 년 다녔지. 그러다가 지난봄부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십 년간 약(신경안정제)을 먹어왔는데 삼 개월 전부터 약도 끊었어요. 정신이 돌아온 거지. 율려학회 시작하고. 이제 겨우 제대로 돌아온 거죠.
질문 : 선생님의 시나 글을 보면 이 문명이 시각이나 머리 쪽에 지나치게 치중돼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번에 『중심의 괴로움』을 다시 읽어보았더니 「줄탁( 啄)」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새삼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녁 몸속에/새파란 별이 뜬다/회음부에 뜬다/가슴 복판에 배꼽에/뇌 속에서도 뜬다”. 지난해 선생님께서 기수련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시나 글에서 기수련을 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몸과 만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문 : 그런데 몸이 그렇게 중요한 주제인 모양이죠?
예. 제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90년대 들어 시와 미술 분야에서도 몸이 주요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나는 신인간주의라고 하는데, 우리가 젊었을 적에 서구식 교육을 받았잖아요. 근대화 이후 우리가 배운 것이 서구식 휴머니즘이라구요. 그런데 이게 뭔가 잘못된 거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단편적이고 단면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는 인간관이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거라고. 그런 인간관을 갖고 사니까 자꾸 문제에 부딪치게 되고 그것이 노출되니까 문제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다, 서구식 휴머니즘은 부분적이다라는 반성이 있었던 거지요. 인간이란 것이 물질적인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인식이지요. 인간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지적이고 과학적이며 영적이고 우주적이다, 이 세 가지 방향이 다 같이 있는 거죠. 그런 인식이 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줄탁( 啄)」 같은 겁니다. 단학에는 각각 정(精) 기(氣) 신(新)을 뜻하는 상·중·하단전이 있는데 이 세 단전이 다 충실해야 한다고. 그 가운데 상단전이 충실해야 완전한 거죠. 여기서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질적인 것 즉 기운, 정서적인 것 즉 지적인 것, 영적인 것 즉 우주적인 것 이 방면이 모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걸 나는 신인간주의, 또는 우주적 인간주의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몸, 특히 몸을 충실히 함으로써 진리를 깨닫는다, 몸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 단학의 기본 캐치프레이즈예요. 그래서 기수련부터 한다고.
질문 : 단학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아는데 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 까?
전부터도 단전 호흡을 하기는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못 했죠. 동학은 수련은 안 하고 머리로만 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는 새로 시작하려고 했는데 그만 아파버렸죠. 그런데 단학을 해보니까 단학이 동학의 현대적 부활이라.
질문 : 매우 중요한 언급으로 보입니다.
최수운, 최해월, 강증산 이후는 단학이에요. 그래서 원시반본한 거라.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오행 사상과 천부경에 근거를 두고 신선도, 풍류도를 현대에 부활시킨 거죠. 심신 수련법이 여기서부터 나온 거라고. 삼일신고에서. 그러니까 나로서는 무슨 단절이 아니라 죽 연속해서 발전해온 것이 되죠.(웃음)
질문 : 수운, 해월, 증산을 단학으로 보시는 겁니까?
결론은 그렇게 나지요. 강증산이 무악산 밑 구리골에 광제국이라는 약굴을 냈는데 그 방에 가보면 벽 양쪽에 최수운 신위와 강증산 신위를 놓고 그 가운데 단군 신위를 붙여놓았어요. 강증산은 원시반본이라는 얘기를 분명히 했다고. 그런데 단군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아요. 단학에서는 단군이 본격적으로 나와요. 2천 년 전 고조선의 마지막 단군, 즉 고열가 단군이 세상이 험하고 악하다며 수도장을 폐관했는데 『환단고기』 같은 걸 보면 2천년대를 약속했다는 것 아닙니까? 2천 년 후에 다시 천부의 역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단학에서는 때가 됐다는 거죠. 홍익인간을 할 수 있는 때가 됐다고 보는 거죠. 세상에서 어떻게 보든지 간에 나로서는 연속성이 생긴 거예요.
질문 : 지난해에 미국 세도나라는 곳에 다녀오신 걸로 압니다.
아주 아름다운 데예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데, 거기가 야바파 인디언들의 성지예요. 붉은 바위산이 비쭉비쭉하게 여러 군데 서 있어요. 볼텍스라고 하는데, 일렉트릭파와 마그네틱파가 지구 내부에서부터 나선형으로 우주 공간으로 올라가는 힘과 우주 공간에서 나선형으로 지구 중심으로 들어가는 힘이 어우러지는 데라는 거라. 히말라야를 비롯해 지구 전체에 스물네 개의 볼텍스가 있다고 하는데, 세도나에 네 개가 모여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거기를 지구의 단전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시월 이맘때쯤 한 달 반 있었고, 지난 2월에도 가서 열흘 머물렀습니다.
질문 : 세도나에서 명상만 했습니까?
수련만 했어요. 그런데 벨 락(Bell Rock)이라고 종처럼 생긴 바위에 올라갔는데 내 몸의 중앙을 수직으로 관통해 땅과 하늘로 이어지는 기운줄이 서는 것 같더라고. 거기서 한 달 반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게 그냥 누우면 잠들고, 눈 뜨면 그냥 일어나게 되더라고.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잠들려면 꽤나 힘이 들었었거든. 몸이 아주 좋아져서 돌아왔어요. 그런데 돌아와서 게을러져서 수련을 안 했더니 다시 가라앉는 거야. 그래서 다시 갔는데, 거기서 누굴 만났느냐면 단학선원의 일지 이승훈 선생과 사물놀이하는 김덕수씨를 만났어요. 거기에서 율려 얘기가 처음 나왔지요. 율려운동을 하자고 해서 김덕수하고 약속을 한 거예요.
질문 : 율려운동이 그렇게 갑자기 태동된 것입니까?
4년쯤 전에 생명문화운동에 필요하다는 취지로 심정수 채희완 김영동 최태연 등이 신풍류회의를 결성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몸이 아파버렸잖아요. 그것의 새로운 형태가 곧 율려문화운동으로 지속되는 거죠.
질문 : 그런데 율려라는 말이 매우 낯섭니다.
그렇죠. 동양 개념인데, 간단히 얘기하자면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율려라고 하죠. 좁게 얘기하면 음악이죠, 우주의 음악. 그러니까 율려란 육율(六律) 육려(六呂) 12음인데, 육률이 양음이고 육려는 음음이죠. 동양이 5음, 12음 그러잖아요. 이걸 합쳐서 율려라고 하는데 『천자문』 『예기』 등 여러 군데에서 나와요. 예를 들어 『주역』에서는 우주가 태극이고 황극이라고 하잖아요? 본체를 황극이라고 하죠. 체인 황극의 용이 곧 율려예요. 그러니까 모든 게 율려지요. 12달, 사계, 8풍, 8박은 물론 우주의 별자리 이동, 사회질서에 이르기까지 전부 율려의 세계라고 하지요. 이 율려의 세계에 맞춰 음악을 짜잖아요. 그러니까 특히 음악을 율려라고 하지요. 예술은 율려입니다. 시도 율려죠.
질문 : 처음에 율려학회를 조직하고, 율려운동을 주창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면 생명운동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명운동과의 단절인가라는 의구심부터 들었습니다. 생명운동과 율려운동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감옥에서 생명 사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와서 단순한 변혁운동에서부터 생명운동으로 입장을 바꿔서 줄곧 해왔잖아요. 한살림운동, 도농직거래운동, 유기농운동, 환경운동이 거기에서 나온 거죠.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살아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 무기물까지도 살아 있는 것으로 느끼는 그런 인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문화운동이 중요하겠다 싶어 생명문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신풍류회의를 시작했던 겁니다. 그런데 내가 아픈 바람에 그게 안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문화운동의 필요성은 늘 있어왔고, 또 내가 생명운동이라는 것의 근본을 짚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지엽적이더라고. 보다 근본을 짚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 했을 때 율려라는 말이 나온 거죠. 내가 구태여 율려라는 말을 중심에 놓는 이유가, 동양에서 『예기』 같은 데 보면, 나라가 망하려고 하면 음악과 예술이 병든다고 하죠. 정치가 문란하고 경제의 빈부 격차가 심하고 사회적으로 무질서해집니다. 인간이 거칠어지고 폭력적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변혁을 하려면 우주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 우주의 변화 한가운데서 황종음이라는 중심음을 찾아야 합니다. 중심음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음악을 느껴야 한다고. 그게 율려죠. 율려에 맞게 음악을 만들고, 그 음악에 터를 두고 예를 만들고, 그 예학에 기초해 정치를 새롭게 시작한다, 동양에서는 그렇게 이해해왔단 말이에요. 문화가, 최초의 음악과 문화가 정치에 선행하는 거라. 우주와 인간의 마음의 관계를 밝히고 그것을 음악과 예술문화로 표현하고 여기에서 도덕을 창출하고 정치와 사회제도를 혁파하자, 이게 동양 세계라. 그러면 동양적인 정치활동, 동양적인 우주관에 기초해서 문화운동을 새로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질문 : 소위 IMF 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가 극도의 정신적 혼란과 패배주의로 빠져들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신문을 열심히 보는데, IMF가 왔다고 하니까 이것만 이겨내면 그 다음에는 천국이 올 것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요. IMF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얘기를 안 한다고. 세계화라는 것은 좋은 거고, 금융자본주의, 소위 돈을 가진 자들이 전 세계질서를 교란하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또는 새로운 금융질서가 나와야 한다는 소리를 계속 합니다. 이렇게 보도하면서도 마치 헤지 펀드가 교란하는 세계자본주의의 이 질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무한경쟁시대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소리를 부끄러움 없이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해서 경쟁력이 중요합니까? 경쟁 없이 살아야죠. 지구인들 전체가 화해롭게 협동하고 살아야지, 무기물까지도 사랑하면서 살아야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완전히 카지노 자본주의라. 사회주의의 견제력이 없어져버리니까 자본주의가 초창기 자본주의처럼 아주 난폭한 형태로 전 세계에 군림하고 있다고. 특히 아시아 지역에 금융 위기가 오면서 우리는 IMF 체제로 들어갔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죠. 아시아의 경제 위기라는 것을 통해서 아시아의 가치가 몰락했다느니 하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미국식 난폭한 금융자본주의, 헤지 펀드들, 핫머니들이 판을 치면서 이렇게 된 건데 어떻게 보면 무질서한 거지. 이런 세계에 살면서 지구는 병들어가고, 보세요, 엘니뇨니, 오존층 파괴니 환경 오염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고, 환경 호르몬이니 해서 생명 자체가 위기에 부딪쳐 있단 말예요. 그리고 문화를 보세요. 서구의 문화도 아니고 완전히 미국식 문화가, 자본주의 상품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헐리우드 영화, 폭력, 섹스, 미국식 록들, 청년문화들 이런 것들이 우리들의 감각적인 생활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그냥 세기말이 아니라 문명 말기라고. 서양 문명이 기울고 있는 거죠.
질문 : 이 문명 말기가 바로 율려문화운동의 토양이겠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 새로운 시작을 어디서 할 것이냐? 우주와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멀어져버렸어요. 아까 제가 얘기했지만 서양식 휴머니즘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 아닙니까? 서양식 휴머니즘은 자연과 인간을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거예요.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훈련시키고 복속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봐왔어요. 그 결과가 이렇게 된 거죠. 그렇다면 자연과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살펴야 할 것 아니냐? 특히 인간의 마음, 영적인 측면과 우주의 변화를 다시 살펴보기 위해서도 율려가 필요한 것 아니냐? 거기에서부터 음악, 예술로 발전하고, 새로 나타난 문화에 의해서 새로운 사회이론, 사회 정치 경제 도구가 나타날 때 동양, 동북아시아로부터 새로운 문화운동이 시작돼 금융자본주의의 폐해, 문명 말기에 처한 세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 과정에서 민족 통일의 바른 길도 찾고, 우리들 생활도 건설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정보지식사회가 온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새로운 문명이 오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문들 가만 보면, 인터넷 페이지 같은 것을 보고 굉장히 들떠가지고 마치 컴퓨터에만 달라붙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들띄운다고. 이건 장사꾼들이 하는 것이거든. 그런데 그것 가지고 무슨 새로운 문명이 옵니까? 그건 하드웨어에 불과해요. 그것을 채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문제가 됩니다. 어떤 문화, 어떤 철학과 예술과 정신적인 지향이 있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과정에서 컴퓨터든 인터넷이든 그 수단이 무슨 새로운 삶을 가져오겠어요?
질문 : 동북아시아가 미래를 이끌 것이란 지적은 4년 전 선생님께서 구상하셨던 동북아 생명운동을 비롯해 그 동안 여기저기서 자주 나온 걸로 압니다.
세도나 같은 데 들어와서 명상하는 미국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고. 아시아적 심성이 아니면 세계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거기에도 과장이 있겠지. 인도가 다르고 한국과 일본이 다른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종합문명이라. 토인비나 인지학교를 세운 신비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도 동아시아로부터 새로운 삶의 흐름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고들 있거든요. 일본의 타카하시 이하오라고, 루돌프 슈타이너를 공부하고 온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얘기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조선사 를 공부하면서 놀랐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보기에 성배 민족이 있다는 거라. 로마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었죠. 그런데 현대에는 새로운 성배 민족이 동아시아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이 민족은 굉장히 영적인 민족이지만 오래 고난을 받고 그 고난 속에서 잉태된, 새 세계에 대한 꿈을 가진 민족이라는 거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일본 민족은 아니라는 거야. 일본 민족은 침략을 했잖아요. 그런데 조선사를 읽다보니까, 동학을 읽다보니까 ‘아, 이 민족이다’ 이렇게 됐다는 거야. 타카하시 이하오가 한국에도 몇 번 들어왔어요. 그때 만났는데 최수운, 강증산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요.
질문 : 4년 전 『틈』과 『생명과 자치』에 담겨졌던 중요한 화두들, 그러니까 공경, 틈, 그늘, 시장의 성화 같은 개념들을 율려운동이 다 끌어안는 것입니까?
그렇죠. 율려운동이 결국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면, 내가 너무 앞질러 얘기하는 건 이상하지만, 율려를 통해 내가 찾으려는 것은 전환시대의 중심음이라. 12음 가운데 황종이라고 있죠. 황종을 중심음이라고 하는데, 시대마다 중심음이 다르다고 해요. 동양에서는 왕조가 변하면 중심음을 새로 찾아 거기에 따라 음악을 혁파하고 제도를 혁파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의 중심음은 뭐냐? 그것이 442메가헤르츠다, 이렇게 어거지로 서양의 음악처럼 중심음을 정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깊이 따져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음악의 중심음이란 척도, 즉 황종척이 동양인의 척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의 황종척은 인간의 마음에서 옵니다. 그걸 찾기 위해서는 깊은 명상이 필요하고 내면으로의 여행이 필요한데 그건 수양과 관련이 있어요. 그건 여러 가지 문제가 나오겠지만 하여튼 내가 보기에 율려의 문제는 어디에 연관되느냐면, 아까 내가 처음에 얘기했던 신인간주의적 우주인식과 문제가 되는 거죠.
질문 : 황종척을 중심으로 한 신인간주의의 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인가요?
예를 들어 우리가 신인간주의적인 사회경제제도를 건설한다고 할 때 과도한 권력이 집중된 중앙정부보다는 분산된 지방정부부터 강화시키고, 지방과 지방 사이에 보다 원활한 무역이나 경제적인 상호 관계 같은 것을 건설해나가는 방향으로 세계화의 실제 내용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어요. 지금과 같은 국민국가, 민족국가를 가지고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잘 안 될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생명운동에서 논의한 바 있는) 지방자치 문제라든가, 시장의 성화 문제도 그때 다시 살아나지 않겠느냐? 시장이라는 것은 소위 이념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던 거고, 제도보다도 수명이 깁니다. 가족과 비슷하다고.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시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거죠. 사회주의자들이 너무 성급했어요. 그러니까 시장은 그대로 두되 지금과 같은 금융자본주의적 시장이 아니라 인간다운 품성을 보장해주는, 그리고 아까 얘기한 신인간주의적인 우주적 인간성, 영적인 인간성을 보장해주고, 착취와 빈곤,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영적인 완성을 보장해주는 사회로 갈 수 있도록 거룩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질문 :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생명운동과 율려운동은 단절이 아니군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무기물까지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이런 인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전에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우주만물 삼라만상의 해방과 구원, 해방과 완성을 위해서 인간이 아주 성숙한 책임을 갖는다는 거죠. 그렇게 해서 과학의 발전을 진정한 해방과 완성을 위해 사용하는, 세계적 차원의 수준 높은 진보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지금 과학은 발전되어 있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주체들이 아주 낡은 휴머니즘과 자국 이기주의, 편협한 인간관을 가지고 거대한 과학기술을 운용하기 때문에 아주 유치하다고. 우주식민지를 생각한다는 식이지. 지식, 정보, 과학기술은 굉장히 발전했는데도 불구하고 17세기의 휴머니즘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간 소수의 인간이 그걸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다는 거예요. 일본 만화나 미국 영화를 가만히 보면 날마다 우주전쟁을 얘기하는데, 정의가 악을 이긴다는 식이라고. 우주에서 서부극이 횡행하는 거야. 얼마나 빈약한 내용이에요?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면 인간의 정신도 그만큼 깊어지고 넓어져야죠. 인간의식이 초의식, 무의식까지 내려가야죠. 이럴 때, 내가 얘기한 바 있는 우리의 풍류 사상, 신선도가 갖고 있는 소위 우주적 휴머니즘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범재신관(汎在神觀)이 필요합니다. 일신도 아니고 범신도 아니고, 일신이면서 범신적인 것. 신이 어디 하늘 같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 내부에 있다는 거죠. 여러 개의 신이 아니라 하나의 신이 있는 거죠. 신성이 인간 안에, 모든 삼라만상 안에 신이 다 있는 거지. 무기물에 마음이 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얘깁니다. 범재신관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우주적 휴머니즘이 가능한 거라.
질문 : 율려와 문학은 어떤 관련을 갖는 것입니까?
그럼 이제부터 문학 얘기로 들어가죠. 그런데 범재신관과 우주적 휴머니즘이 신라의 풍류도, 신선도에 있었다고.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포함삼교(包含三敎)하고 접화군생(接化群生)한다’고 했죠. 이 접화군생이 중요한 말이라고. 접해서 군생을 화한다, 감화시킨다는 거죠. 동학의 포접이 여기에서 나왔는데, 중요한 화두예요. 이게 생명운동이라. 오늘날 병든 지구를 걱정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도모하고 세계화하고 국경을 넘어 휴머니즘을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 모두 접화군생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고대의 『삼국유사』, 신라의 화랑도나 풍류도, 고구려의 조의선인(?), 이와 비슷한 것이 백제에도 있었다고 하고. 고조선에서는 이것이 신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문학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파악할 것이냐? 오늘날 우리 문학이 갈 길을 잃었다면 이런 시기야말로 원시반본, 고대로 돌아가야죠. 다시 한번 풍류도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한번 생각해봐요. 우리 문단에 이상스런 걸림돌이 하나 있다고. 서정주, 김동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를 몰라요. 김동리씨는 그렇다 치고 미당을 어떻게 봅니까? 이건 예스도 아니고 노도 아니야. 사람마다 주목하지. 그렇지만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미당이라. 인정하자니 나쁜 것 같고, 인정 안 하자니 너무 재주가 있는 것 같고. 난처한 사람들입니다. 김동리씨도 똑같아요. 특히 민족문학 한다는 사람들이 미당이나 김동리에 대해서 취급하는 각도, 견해가 없어요. 그런데 이 두 사람 배후에 있는 김범부라는 사람을 잘 봐야 해요. 이 사람은 때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참 천재였다고. 풍류도를 어떻게 해서든 현대화시켜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라. 건국 초기에 국민윤리 같은 걸 보면 어떻게 해서든 화랑도, 풍류도에서 국민윤리의 기본을 파악하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에요. 동학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가졌던 사람이라고. 고대 풍류도의 부활이라든가, 샤머니즘에 대한 재평가, 신선도에 대한 재평가 등 아주 중요한 사람이에요. 아직 민족주의적 한계에서 못 벗어나서 그렇지만 하여튼 이 사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요.
질문 : 김범부와 미당, 김동리씨는 어떤 관계였습니까?
미당과 김동리가 김범부의 영향권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거예요. 미당이 마지막까지 풍류도를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미당 같은 사람으로서는 굉장한 일인데 이 현상을 잘 봐야 합니다. 풍류도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 신인간적인 이해, 우주적 휴머니즘의 이해, 또는 범재신관적 이해, 과학적 인문학이라고 할까, 이런 쪽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이것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죠. 물질적, 지적, 영적인 존재의 통합으로서의 인간이 신인간주의가 보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주적 스케일을 갖고 현실적으로는 물질적인 생활을 하고 노동도 해야 하고 영적으로 명상도 해야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말이죠. 이런 존재로서의 인간관에 기초를 두고 풍류도를 새롭게 현대화하는 노력이 문학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이때 비로소 미당이나 김동리가 껄끄러운 존재가 아니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 아니냐?(웃음) 그러니까 김범부의 노력이 이 두 사람에 와서 삐뚜로 나간 거야. 문학으로 제대로 개화한 것이 아니라 삐뚜로 나간다고.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없잖아요. 이형, 서정주씨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 : 시는 좋죠.
시는 좋은데 자기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죠. 왜 그런지 아세요? 김범부 같은 천재가 공산주의를 우습게 봤거든. 자본주의도 우습게 봤다고. 그 사람은 풍류도 이후에 새로운 민족국가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그러니까 자기들은 그런 생각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거라. 그러니까 아주 떳떳해. 자기가 일제시대 때 잘못한 것도 그저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는 거지, 그렇게 가슴 아픈 것이 없는 거야. 일면의 정당성이 있는 거죠. 그걸 잘 봐야 해요. 미당은 한동안 서라벌 하늘 같은 데 빠졌었죠? 그리고 불교에 빠졌다가 다시 나와서 풍류도로 돌아가는데 미당 같은 사람에게 독점시켜선 안 된다고. 『삼국유사』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인도나 불교, 그리고 중국도 어느 정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말 숨겨져 있어요. 고조선 이래 풍류도나 신선도의 전통이 다시 살아난다면 굉장한 거예요. 특히 향가의 전통 같은 거. 예를 들면 김덕수 사물놀이를 가지고 미국 같은 데서도 야단이죠. 사물놀이 같은 건 아주 부분에 불과하다고. 수제천, 정읍, 동동 같은 것, 향악 계통들, 정악들 이런 걸 연주하면 불란서 같은 데서 그런다는 것 아니에요? ‘저게 사람이 하는 거냐? 저게 사람의 음악이냐?’며 놀란다는 거예요.
질문 : 우리도 백 년 전쯤에 서양음악을 들었다면 그랬지 않았을까요? 저게 사람의 음악이냐?
그런데 그러지는 않았겠죠. 왜냐하면 그때 동도서기론이 나온 걸 보면 역시 동양이 우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동도서기론으로 나눌 게 아니라 둘은 같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동북아시아로부터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서양을 배제한다기보다 서양의 생태주의 사상, 페미니즘, 스피노자의 철학,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인 전통들, 이런 것들과는 결합을 해야죠. 서양에도 정신주의나 우주론, 영적인 전통이 있으니까. 이제 봅시다. 내가 보기에 녹색당이 구라파에서 그 동안 상당히 저조했는데 중도 좌파와 녹색당이 연정하면서 구라파에 새로운 공기가 나타날 것 같아요. 영적이면서 우주적인 새로운 문화가 현실적으로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려고 하는 새로운 풍류, 새로운 신인간주의 운동, 율려운동 같은 것도 우리가 잘 표현하고 잘 해나간다면 서양의 새로운 움직임과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도는 이쪽이고 기는 서양쪽이다라고 꼭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질문 : 내년 봄부터는 시를 쓰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율려와 관련된, 구체적으로 풍류도, 신선도, 중심음 등과 관련된 시를 쓰는 것입니까?
내가 지금 시는 안 쓰는데 예감이 강해요. 예를 들면 밤에 자기 전에 의식이 갑자기 확장되곤 하는데 아직은 참고 있어요. 계속 공부하죠. 내년부터 다시 쓰면 『중심의 괴로움』 중후반과 비슷한 시작이 될 것 같아요. 내용은 많이 달라지겠지만.
질문 : 우리 전통음악과 문학과의 관련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국악에서 거문고 같은 악기는 단순한 소리를 내는 악기가 아니라 하늘과 우주의 변화를 알려주는 신기(神器)라고 보죠. 그런 점에서 볼 때 소금(素琴)이라고도 하는 무현금을 최고로 치죠. 그러니까 소리를 내다가 딱 끊겨. 아쟁도 그렇고. 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리 사이의 침묵으로 본다고. 그런데 서양 음악은 침묵을 넘기지 못한다고. 그게 큰 차이점이야. 중국은 내가 보기에는 서양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우리 나라 음악에는 침묵이 많다고. 무현금 같은 걸 문학에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 지문무자(至文無字)라고, 지극한 글은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풍류, 신인간주의, 우주적 휴머니즘, 범재신관, 이런 것들을 재평가하는 것이 문학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우선 언어관 같은 것도 새롭게 정립되어야 합니다. 이미지, 정보들을 기호화하는 것은 곤란하죠.
질문 : 90년대가 다 저물고 있지만, 90년대 문학은 80년대에 비해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고, 저마다 암중모색의 기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문학을 어떻게 보십니까?
기형도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기형도 이후 죽음에 대한 집착, 세기말적 분위기, 이미지, 화학적 순수 같은 것에 대한 동경 등이 나타나는데 문학뿐만 아니라 청소년 문화, 록, 헤비메탈 이런 데서도 나타나더라고. 이와 반대로 생태시, 환경시 등도 다 아직은 설익은 것들이야. 이 두 흐름이 우주와 인간의 합일, 자연과 인간 간의 근본적인 합일을 통해 신선 사상이나 풍류도, 신인간주의를 회복했을 때 새로운 창조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거예요. 기형도가 꿈은 꿨어요. 자연과의 통로가 뚫리기를 기대하는데 제대로 가질 못했죠. 기형도의 꿈을 세기말적 현상이나 해체 쪽으로 끌고가지 말고 새로운 대안을 꿈꿔야 합니다. 세상이 해체된다고 해서 그것을 반영만 할 것이 아니에요. 삶은 건설해야지. 나는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다고. 내가 책을 읽지 않고 수련을 하지 않고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을 안 가지면 내 삶이 재미가 하나도 없는 거야. 이미지 과잉 시대의 결론은 허무밖에 없어요.
질문 : 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등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민족주의의 역기능을 지적하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김진명의 소설이나 서태지의 음반이 젊은이들 사이에 우상이 되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할 것이 하나 있어요. 거품경제 시대 이후 이상한 의사 제국주의가 나타나고 있어요. 우리가 뿌리를 찾는 것과 의사 제국주의가 이상하게 얽혀 있어요. 이것이 거품경제의 몰락과 함께 없어진다 하더라도 뿌리를 찾는, 조선과 한민족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맥이 무산되어서는 안 돼요. 민족주의 비판과 뿌리찾기를 구별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민족적이면서도 민족적인 것이 아니죠.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홍익인간은 이루어야 하는데 홍익인간이란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을 두루 이롭게 하는 일과, 두루 이롭게 하는 인간, 즉 인간으로서의 개인이라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고. 국가를 창건하는 목적을 홍익인간 이화세계에 두는 민족은 없어요. 인간을 두루 이롭게 한다는 말은, 인간 안에 동식물, 무기물까지 다 포함되는 거니까 우주생명을 전부 접화군생처럼 이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가는 세워진 적이 없죠. 이런 목표를 가지고 세워진 민족이고 국가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이미 민족을 넘어가는 거죠. 우리는 아직은 민족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어요. 통일을 위해서. 예를 들면 지금 이북에서 단군능을 조성하고, 단군 조선의 실체성을 인정하고 역사에 있어서 단군의 위치를 확정하는 노력이 있는 데 비해 남한은 약하다고. 그건 오히려 그쪽에서 배워야 해요. 아니, 우리는 한걸음 더 나가야 해. 환인, 환웅까지도 다 인정해서 아시아 전체를 휩쓸었던 이 문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해요.
질문 : 최근 박노해 시인이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노해 시인이 가는 길을 김지하 시인의 길과 견주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날 따라오는 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를 따라가는 거지.(웃음) 『죽음의 집의 기록』을 보면 도스토예프스키도 감옥에서 변했으니까. 그런데 박노해씨가 어떻게 변할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누구한테 들었더니 그 사람도 단학에 관심이 있다고 하데요. 하여튼간에 뭔가 새롭게 출발해야죠. 전에는 내가 일종의 혁명적 농업주의자였거든. 학생 때 내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때 내가 중시한 것은 마르크시즘의 아시아적 경제 과정이죠. 모택동이라든가 이북은 서양 사회주의와는 상당히 많이 다르죠. 그런 것처럼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20세기는 노동자, 농민, 소시민, 시민, 이런 대중이 압도하는 시대거든. 그런데 과연 이것이 이상적인 세계인가? 이건 생각을 좀 해봐야 해요. 그 뒤의 사회주의를 보세요. 처음에는 군사집단이 들어서고 나중에는 그것이 해이해지면서 지식인 그룹이 다시 차지하거든. 이북은 지금 군사집단이 지배하죠. 그런데 언젠가는 지식인들의 지배가 시작된다고. 그 다음에는 자본가의 지배가 시작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노동자의 지배가 있다가 다음에는 군인이 지배하다가, 동구라파 같은 경우를 보면, 그 다음에 자본가가 지배하는 식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지배에서 어떤 계급이 그 사회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에요. 초계급적인 새로운 지배가 나와야 합니다. 사카하르 같은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는데 초계급적인 영성적인 혁명가, 즉 자기 내부에 영적이면서도 지적인 수련을 받은 사람들은 부패와 손을 안 잡아요. 자기 내부에서 행복해하는 사람은 절대로 부패와 손을 안 잡아. 휴머니티에 대한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기 내부에 신성과 우주를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부패하지 않는다고. 이런 사람들이 사람을 사랑하고 노동자를 사랑하고 이렇게 해서 개혁에 참가하고 교육을 하면서 순환하는 계급의 지배를 빠르게 순환시켜서 초기에 장점이 나타났던 시기에 그 다음 지배의 장점이 나타나는 식으로 상생시키는 거라. 상극이 아니라. 이랬을 때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니까 고조선 시대의 신시도 깨달은 사람의 공동체였죠. 단군 시대, 3천 명에 이르는 지배자들이 신선도를 공부하는 선인이라. 동학도 신선도죠. 그 다음에 강증산이 경세개벽을 주장했던 거고. 박노해씨의 경우에도 노동자들이 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동자 지배에서 지식인 지배, 다시 자본가 지배로 바뀌는 이 악성적 순환을 깨닫고 이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그러니까 상극코스가 아니라 상생코스로 들어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질문 : 선생님께서 먼저 수련을 통해 어떤 경지에 이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아직 초보단계이고.(웃음) 어제도 충북 영동에 있는 수련원에 다녀왔는데 용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지더라고. 그 이전에는 없던 일이야. 그리고 명상을 계속하면 우주의 태초의 창조 이전 모습이 보이는데 아직은 초보적인 거야. 지적인 공부가 동반되지 않는 영적인 수련은 위험해요. 육체적인 단련과 지적인 공부와 영적인 명상이 같이 있어야 한다고. 영적인 것만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그리고 누구나 다 명상을 통해서 우주의식에 도달하지는 못해요. 육체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고, 과학적이고 지적인 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고, 성향이 다들 다르니까 누구나 다 명상으로 깨닫지는 못해. 그러나 노력들은 해야죠. 다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명상으로는 잘 안 되기 때문에 음악이나 예술을 통해서 우주의식에 도달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죠.
질문 :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됩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문화 의병이라고 할까? 문화 쪽에서 새로운 철학, 새로운 철학이 나와야 사람들이 변하지 않겠는가 하는 거죠. 일본 만화영화도 상영하게 되죠? 이게 참 문제라고. 나도 일본 것은 잘 모르는데 가끔 보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폭력, 섹스, 괴기 이런 것을 빼면 뭐가 있어? 젊은 애들한테는 이게 쫙 깔려 있어요. 우리집 애들도 큰놈은 컴퓨터게임 시나리오 쓰고, 작은놈은 고등학생인데 애니메이션 하거든. 애들이 지금 전범으로 삼는 게 전부 일본 거야. 그런데 껍데기, 즉 기술은 발달되어 있으니까 인정을 하겠는데, 그러면 내용이 뭐냐, 폭력적이야. 일본문화 상륙을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에요. 현 정부가 일본문화 개방을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가요. 문화부가 아니라 문화부를 관광부와 묶어놔가지고,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야. 그야말로 정보지식사회에서는, 인터넷 사회에서는 문화가, 소프트웨어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아까도 얘기했지만 아직도 17세기 휴머니즘 단계를 못 넘어간다고. 정의가 악당을 이긴다는 식이라. 그 정도의 유치한 내용을 가지고 이 복잡한 세계화, 우주시대, 초의식 시대의 인간을 이해할 수도 없고 교육할 수도 없다고. 이런 상태에서 일본문화가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은 어떠냐? 내가 율려운동을 하는 것도, 또 우주적 휴머니즘을 주장하는 것도 여기에 척도를 세우기 위한 거예요. 선별 기준이 있어야 하고, 또 우리 쪽에서 반격을 해야 합니다. 문학과 음악, 미술, 무용, 영화, 연극 분야에서 새로운 신인간주의적, 율려적인 문화운동이 일어나야 해요. 그래서 좋은 작품이 창조되어야 하고, 오히려 일본을 가르쳐야 한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증발해버린 이후 지금 전 세계적으로 문화를 지배하는 정신이 없어요. 생태주의자들, 루돌프 바로나 북친, 한스 요나스, 울리히 벡, 그리고 페미니스트들 이런 사람들이 끌고가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새로운 문화적 지도관이 나와야 해요. 일본에 대한 대응, 헐리우드에 대한 대응을 위해 새로운 척도, 새로운 출발이 필요한 거예요. 문학 하는 사람들은 영리하고 예민하니까 문학 쪽에서 새로운 기풍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때가 됐어요. 국내외 정세를 볼 때가 된 것 같아요. 여기 남쪽에서 이런 사상적인 것이 있어야 북쪽까지 아우를 수 있는 적극적인 통일운동이 된다고.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나를 쫓아오던 사람들은 내가 닿을 만하면 도망간다고 해요. 한참 좇아가면 다른 것을 하고 있고… 나는 항상 개척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완성과 영광은 다른 이의 몫이죠’라면서 ‘율려운동은 내 인생의 마지막 라운드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율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전에 하던 것과 단절은 아닌 것 같아요. 연속성이 있는 것 같고. 또 신인간주의라는 틀 속에서, 우주적 인간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과거의 내 생각들, 예를 들어 빈부 문제, 빈곤 문제, 노동자 문제까지도 다 끌어안는 큰 틀을 생각하니까 예전에 내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느끼던 곤혹 같은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내가 생명 사상의 결론을 얻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