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도라지/고사리/시금치 그리고 ‘나물’의 어원
제사상에 오르는 나물은 삼색 그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의 나물이 기본이다. 백(白)은 하양으로 하늘빛 그 태양빛의 색 곧 밝은 하늘 그 뿌리의 색을 상징한다. 두루마리를 하얗게 빠는 자가 천국에 이르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를 상징한다. 우리 근본의 조상 그 뿌리 나물의 상징이다. 황(黃)은 노랑으로 노(얼)가 익어가는 색이다. 그리고 중앙 토(土)의 색으로 황제 나아가 땅을 상징한다. 황제 그 된사람으로 되어가야 할 나의 상징색이고, 줄기 나물의 상징이다. 청(靑)은 푸름 그 파랑으로, 람(藍)·록(綠)·청(靑)의 색이다. 곧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상징이다. 나아가 파랑은 맑게 갠 하늘 빛깔과 같은 색이다. 하늘을 맑게 개야 하는 미래의 희망 그 청사진을 상징한다. 즉, 풀처럼 파릇파릇하게 무수히 돋아나는 후손, 천지의 후손 그 사람과 사람의 후손으로 잎나물의 상징이다.
나물의 어원은 무엇인가? 나물/채(菜)는 채(采)의 풀[초(艹)]을 뜻한다. 채(采)는 캘, 가릴/ 빛깔, 채색/ 용모, 풍채의 뜻과 식읍/채(埰)의 뜻도 있다. 임금이 하사한 전지(田地)가 식읍이듯, 채(采)는 곧 하늘이 내게 물려준 천명 곧 나의 마음밭이다. 나물은 나(얼)가 물들어 있고 천명으로 물려받은 나(얼)이다. 즉, 각자의 천명이 물들어 있는 풀이고, 그 상징이다. 그래서 그 천명을 가려내(찾아) 캐야 하고, 천명이 물든 빛깔 그 채색이며, 천명이 담긴 용모 그 풍채 등의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채(菜)는 '천명[채(采)]이 채워진[채] 풀[초(艹)]'의 얼개이고, '나물'은 '나가 물들어 있는(물려받은) 풀'의 준말이며, 나아가 ‘나를 물들이게 하는(천명의 식읍으로 받은) 곧 먹을 수 있는 식용의 풀’을 뜻한다. 다시 말해 모든 일반적인 풀 중에 나를 물들일 곧 나의 얼을 무르와내게 하는 풀만을 나타낸다.
삼색은 천지인의 상징이고 과거 현재 미래의 상징이다. 뿌리 · 줄기 · 잎 또한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후손을 상징한다. 삼색이면서 뿌리 · 줄기 · 잎의 세 가지를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이다. 특히 뿌리나물 중에서 백색의 도라지를, 줄기나물 중에서 황갈색의 고사리를 그리고 잎나물 중에서 파릇파릇한 녹색의 시금치를 주로 올리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 각각의 어원이 나타내는 의미와 관련된 상징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도라지의 한말글(한자어)는 길경(桔梗)이다. 풀[초(艹)]를 나무[목(木)]로 나타낸 것은 나무의 뜻으로 나타낸 의미가 아니란 반증이다. 즉, 목(木)은 ‘모’그 얼(싹)이 가지를 치는 곧 얼이 나누어지는 뜻의‘나모(<옛>나무)’이듯, 얼이 나누어지는(가지 치는) 뜻으로 나타낸 것이다. 도라지/길(桔)은 길(吉) 글말(음)의 형성자이다. 그러면 ‘길하게[길(吉)] 얼이 나누어지는(가지 치는)[목(木)] 기틀(뿌리)[길] (풀)’의 얼개이다. 그러면 우리말 도라지는 어떤 얼개인가? 얼이 나누어지는 기틀은 항상 돌이켜 보아야 할 근본 바탕의 본새이다. 따라서 도라지는 ‘도ᄅᆞ혀야(<옛>돌이켜야)할[도라] 얼을 지닌 이(풀)[지]’의 준말이다. 즉, 도라지는 근본 그 뿌리를 돌이켜보게 하는 풀을 의미한다.
대개, 굳셀, 곧을, 막힐/경(梗)의 뜻은 어떻게 도라지와 개연성이 닿을 수 있는가? 경(梗)은 다시, 고칠, 바꿀/경(更) 글말의 형성자이다. 나무가 새로운 얼(싹)을 가지 치는 것은 싹눈을 다시 틔워 나누는 일이다. 싹눈을 틔우는 것은 대개 서로 사 오르며 돋아난다. 그 대강을 어림짐작으로 능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무의 싹이 갈리는(나누어지는)[목(木)] 것은 겨누어(견주어) 엇갈리며(어림잡아)/겨냥 보아(겨누어 어름을 보아)[경] 바뀐다(새로워진다)[경(更)]’는 얼개에서 ‘대개, 대강’의 뜻이 되고, ‘나무의 싹이 갈리며[목(木)] 겨냥대어(어떤 목적물에 겨누어 정한 치수와 본새에 맞추어)[경] 고친다[경(更)]’는 얼개에서 ‘곧을’뜻이 유추되었다. 그리고 ‘겨냥내어(실물에 겨누어 치수와 본새를 정하여)[경] 고치다[경(更)]’는 얼개에서 ‘굳셀’뜻도 유추될 수 있다. 굳센 것은 단단하게 정하여 세워진 것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단단하게 굳어져 바뀐 것에서 또한 ‘막힐’뜻도 유추되었다. 심근 경색에서 보듯, 혈관이 굳어져 굳세어지는 것은 막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겨를 ᄒᆞ다(크다, 많다)[<옛>한가롭다]’에서 보듯, ‘겨를(틈) 없다[경]’의 준말에 따라 가차나 전주된 의미일 수도 있다.
우리말 도라지와 견주면, ‘얼이 가지 치는 근본을[목(木)] 겨냥내어[경] 고치다(새로워지다)[경(更)]’는 얼개와 연결된다. 즉, 겨냥내어 보는 것은 돌이키는 행위와 진배없지 않은가? 따라서 길경(桔梗)은 ‘얼이 나누어지는 기틀[길(桔)]을 겨냥내어 다시 고치게 하는[경(梗)]’얼개로, 도라지의 의미를 뜻풀이하여 나타낸 말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제사상에 올리는 의미 또한 명백하다. 항상 조상의 얼을 돌이켜 새로워져야 하고, 그런 다짐의 약속을 상징하는 것이다.
고사리의 한말글은 궐채(蕨菜)이다. 궐(蕨)은 궐(厥) 글말의 형성자이고, 궐(厥)은 ‘바위[엄(厂)]의 과녁을 월거덕(여러 개의 크고 단단한 물건이 서로 거칠게 마구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또는 그 모양)거리며[궐] 파내다[궐(欮)]’는 얼개로, 바위(돌)를 파내듯이 한 쪽에 치우쳐(집중하여) 또는 한 우물을 파듯 ‘파내다’는 뜻이다. 그러면 궐(蕨)은 ‘바위를 파내듯[궐(厥)] 괄한(불기운이 매우 센)[궐] 나물(풀)[초(艹)]’를 의미한다.
생김새와 견주어 우리말 고사리를 보면, ‘고초어(<옛> 곧추세워, 지극히/한결같이 하여) 사리는 이(나물)’이다. 더불어 궐(蕨)과 견주면, 사리는 고사리 손을 사르는(키질/조리질 하는) 손처럼 비유하여, 바위를 파내듯 얼을 파내며 곧추세우는 의미로 나타냈다. 따라서 제사상에 올리는 고사리의 의미는, 하늘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천명을 바위를 파듯 파내며 곧추세우라는 염원과 다짐을 상징하는 뜻이다.
우리말 시금치의 어원은 중국어 적근채(赤根菜/츠건차이)가 변한 말로 알려지고 있지만, 수긍하기는 힘들다. 또 다른 이름 파릉채(菠薐菜)도 원산지인 페르시아에서 유래되어 나타낸 말로 설명한다. 페르시아를 나타내는 파사국(波斯國)에 따른 파(菠)는 수긍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릉(稜)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더불어 시금치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설명하지만, 시금치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는 식물로 그 유입시기가 언제인지는 속단할 수 없으므로, 우리말이 없었다고도 속단할 수 없다. 즉, 시금치가 순수한 우리말이 아니라고 섣불리 속단할 수도 없다.
시금치의 한말글은 파채(菠菜)이다. 파(波)는 ‘물[수(水)]의 살(거죽)[피(皮)]이 파들(파드닥)거리는[파]’얼개로, ‘물결’을 뜻한다. 즉, 새가 날갯짓하듯 너울거리는 현상으로 나타냈다. 시금치는 명아주과에 속하는 생명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곧 잔병이 없고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작물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왕성하게 자라며, 콩나물처럼 어릴 때 오히려 배게(빽빽하게 밀식) 재배하는 편이 발육이 좋고 생육에 따라 솎아내 수확하여 이용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파(菠)는 파도가 밀려오듯 거듭거듭 자라며, 파도가 일렁이듯 솎아내는 특성으로 나타낸 글이다. 즉, ‘물결처럼[파(波)] ᄑᆞ다(<옛>거듭하다)이 퍼뜩(얼른, 곧) 자라고 파헤치며(솎아내는) 파릇파릇 자라는[파] 나물[초(艹)]’의 얼개이다.
시금치/릉(薐)은 릉(稜) 글말의 형성자이고, 릉(稜)은 언덕, 높을, 넘을/릉(夌) 글말의 형성자이다. 그래서 릉(稜)은 ‘벼이삭이[화(禾)]이 높게[릉(夌)] 능청능청(줄이나 가는 막대기 따위가 탄력성 있게 크게 휘어지거나 흔들리는 모양)한[능(릉)]’ 얼개로 ‘모(모서리), 논두렁(밭이랑)’등의 뜻이 되고, ‘벼이삭이[화(禾)] 능준하게(어떤 기준에 차고도 남아 넉넉하게)[능] 뛰어 넘는[릉(夌)]’얼개로 ‘위엄, 서슬, 위광(威光)’등의 뜻이 나타난다. 그래서 특히 임금의 묘(墓)를 릉(陵)이라 하는 까닭이다. 어쨌든 릉(薐) 또한 파도치듯 능청능청 대는 파(菠)처럼 나타낸 의미와 더불어 ‘밭이랑에[릉(稜)] 능준하게(풍성하게) 자라는[능] 나물[초(艹)’의 의미도 담은 글이다. 따라서 ‘벼이삭을 능그듯(곡식 낟알의 껍질을 벗기려고 물을 붓고 애벌 찧듯) 곧 솎아내듯 서슬 퍼런 얼을[릉(稜)]을 능준하게 드러내는[능] 나물[초(艹)’의 의미로 그 상징을 삼아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이다.
파(菠)와 릉(薐)의 뜻으로 우리말 시금치를 보면, ‘사리어[사(시)] 얼의 가치를[금(값)] 치는(체에 담아 흔들어 가루나 액체를 받아 내는) 이(나물)[치]’의 준말이다. 또는 ‘풀무(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질 하듯 조리질하듯 시장질(부라질)로[시] 금을[금] 치는(사리는) 이[치]’의 얼개이다. 즉, 새록새록 파릇파릇 풍성하게 돋아나 솎아내며 수확하는 현상을 색(광산에서 새를 찾기 위해 감돌이나 감흙 또는 복대기의 일부를 떠내어 사발에 담고 물에 일어서 시금(試金)하는 일)을 보는 현상처럼 비유하여 나타낸 말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런 시금치처럼 서슬 퍼런 위엄을 후손에게 보이며 대를 잇게 하고, 그런 위엄을 시금치처럼 넉넉하게 지니어 청출어람하는 후손을 풍성하게 낳으(리)라는 상징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이유이다.
흔히 생동숙서(生東熟西)를 ‘나물은 서쪽 김치는 동쪽’에 진설하는 방법이 정설로 자리매김 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치 또는 나물은 날 것[생(生)] 그대로 무친 나물이나 김치가 있고, 익혀[숙(熟)] 무친 나물과 익힌(숙성시킨)[숙(熟)] 묵은지(김치)가 있듯, 김치나 나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글자 그대로‘날 것은 동쪽, 익힌 것은 서쪽)’의 뜻이다. 즉, 샐러드나 겉절이처럼 날것의 나물이나 김치는 동쪽에, 익힌 나물이나 김치는 서쪽에 진설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얼(해)이 돋는 동녘처럼 파릇파릇 생생하게 돋아난 날 것은 동쪽, 얼이 서리듯 얼이 익은 익힌 것은 서쪽에 진설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방향과 음식이 서로 짝을 이루며 상징하는 근본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