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전시를 다시 찾았다. 오래 오래 전에 왔다가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번에는 한성전시까지 더해 당시 역사를 현재처럼 느끼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핵심은 무령왕릉 관련 유물 전시, 부장품들 진품이 전시되어 바로 그 시대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어준다.
1.방문지대강
명칭 : 국립공주박물관
위치 :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입장료 : 없음
방문일. 2026.2.5.
전시품 : 웅진백제 중심의 충남 역사문화 유물
2. 둘러보기
무령왕릉 전시실이 박물관의 중심이다. 1971년 발굴한 무령왕릉, 1,500년을 잠자다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그런데 맞이가 너무 허술하다. 17시간만에 발굴을 끝내다니. 하지만 비난만 할 수 없을 거 같다. 일제 시대 발굴 조사 사업에는 우리 학자가 하나도 끼지 못했단다. 일본인으로만 구성된 발굴단이 우리 역사를 재단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전문가가 없어 제대로 발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일 같지만, 너무 아쉽다. 속성 발굴로 우리 앞에서 사라진 귀한 흔적들, 무엇이 사라진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한 회한이 이해의 한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여기서 발굴된 진묘수를 공주 상징으로 삼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보로 지정된 지석이 아닌가 한다. 아래는 지석문이다.
寧東大將軍 百濟 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 丙戌朔 七日壬辰 崩 到 乙巳年八月 癸酉朔 十二日甲申 安厝登地 立地如左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나이 62세인 계묘년(523년) 5월 병술 초하루 7일 임진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525년) 8월 계유 초하루 12일 갑신일에 안착하여 등지(상례를 치름)에 모셨으며, 기록은 왼쪽과 같이 기록한다." (제미나이의 도움으로 게재)
실제 무령왕릉은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고분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왕릉 재현본과 실제 왕릉이 나란히 있으니 박물관 관람을 끝내면 바로 이동해 현장감을 놓치지 말고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무령왕릉을 지키고 있던 석수, 이름하여 진묘수가 공주 방문 내내 함께한다.
우리는 도굴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보존된 무령왕릉을 통하여 무령왕을 그대로 만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부장품들은 당시의 문화수준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1500년 전의 역사를 오늘로 만날 수 있는 곳이 공주이다.
진묘수
寧東大將軍 百濟 斯麻王 年六十二歲 癸卯年五月 丙戌朔 七日壬辰 崩 到 乙巳年八月 癸酉朔 十二日甲申 安厝登地 立地如左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나이 62세인 계묘년(523년) 5월 병술 초하루 7일 임진일에 돌아가셨다. 을사년(525년) 8월 계유 초하루 12일 갑신일에 안착하여 등지(상례를 치름)에 모셨으며, 기록은 왼쪽과 같이 기록한다."
왕이 서거한 지 3년만에 정식 장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寧東大將軍은 중국 양나라 무제에게 받은 관직명이다. 동아시아 책봉 제도의 일단을 볼 수 있다. 무령왕의 이름은 사마 斯麻이다. 여기서는 斯麻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무령왕은 시호로 보인다. 삼국사기에서 무령왕이라 했는데, 왜 시호가 지석에는 보이지 않는지 의문이다.
무령왕의 지석은 왕비의 지석과 함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원문]
丙午年十二月 癸未朔 八日庚寅 百濟國王妃 終 居喪在酉地 己酉年二月 癸未朔 十二日甲午 立地 葬送登地 如左
[번역]
"병오년(526년) 12월 계미 초하루 8일 경인일에 백제국 왕비가 돌아가셨다. 유방(酉方, 서쪽)에서 상례를 치르다가, 기유년(529년) 2월 계미 초하루 12일 갑오일에 이곳에 옮겨 장사 지내며, 기록은 왼쪽과 같이 기록한다."
왕비는 무령왕 서거 후 3년 뒤 526년에 서거, 왕과 마찬가지로 3년상을 치른 뒤 529년에 합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장식은 당시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타오르는 불꽃 모양의 장식은 왕의 권력과 백제의 위상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강화되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세관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최상품이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진묘수와 함께 공주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원문]
錢一萬貫 右一件 乙巳年八月十二일 寧東大將軍 百濟斯麻王 向土王土伯土父母 上下衆官二千石 買申地 爲墓 故立券爲證 不從律令
[번역]
"돈 1만 관. 위와 같이 을사년(525년) 8월 12일,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토왕(土王), 토백(土伯), 토부모(土父母), 그리고 천석(二千石)급의 여러 관리에게 申方(신방, 남서쪽)의 땅을 사서 묘로 삼았으므로, 증거를 세워 문서를 만드니 율령(일반적인 법령)에 구애받지 않는다." (AI 도움)
묘지석 뒷면의 기록이다. 일종의 매지권이다. 땅을 샀다는 이 기록과 중국의 오수전이 함께 나와 이 당시의 풍속을 알 수 있게 한다.
왕과 왕비의 관. 크기와 모양이 똑같다. 남녀차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조선왕릉과 같다.
아래는 무령왕릉. 박물관에서 차로 5분 거리다. 오늘은 보지 못했다. 겨울은 4시반에 입장 금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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