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을 되찾은 사울은 곧장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19b-24절 시력과 기력을 회복한 사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수를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메섹의 회당에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전파하는 데 지체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예수님에 대한 생각, 십자가에 대한 해석, 교회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회심이고, 다시 태어난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내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21-23, 29,30절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대변자에서 배교자가 된 사울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향환 살해 위협은 다메섹에서 끝나지 않았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도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은 어쩔 수 없이 고향 다소로 낙향하여 10여 년을 칩거해야 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9:16)이 벌써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자가 예수를 위해 박해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도 이제 예수의 제자입니다. 긴 낙향의 세월조차도 청년 사울을 선교의 선봉장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27,28절 복음 사명을 위한 사울의 행보에 돕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가 있었다면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사울은 다메섹의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19절), 바나바의 중재가 없었다면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교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둘은 박해자 사울에 대한 의혹과 경계를 환대와 연대로 바꾸어준 사람들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주님의 일꾼이 되고 은사를 발휘하며 적절한 자리와 역할을 찾아가도록 중재하며 돕고 있습니까?
31절 예루살렘(6:7)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됩니다.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평안 속에서 견고해지고 그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세상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세상의 위협을 이길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작금의 교회 침체에 대한 진단은 열악한 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경외와 믿음의 실종이 아닐까요? (매일성경, 2024.05/06, p.72-73, 박해자가 사명자가 되다, 사도행전 9:19b-31에서 인용).
① 기력을 되찾은 사울은 곧장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바나바의 중재로 사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시력과 기력을 회복한 사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수를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메섹의 회당에서 동료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전파하는 데 지체하지도, 주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예수님에 대한 생각, 십자가에 대한 해석, 교회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회심이고, 다시 태어난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내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②29,30절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대변자에서 배교자가 된 사울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를 향환 살해 위협은 다메섹에서 끝나지 않았고,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도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사울은 어쩔 수 없이 고향 다소로 낙향하여 10여 년을 칩거해야 했습니다.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9:16)이 벌써 실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를 박해하던 자가 예수를 위해 박해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도 이제 예수의 제자입니다. 긴 낙향의 세월조차도 청년 사울을 선교의 선봉장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시간이었습니다.
③ 복음 사명을 위한 사울의 행보에 돕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에 아나니아가 있었다면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사울은 다메섹의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19절), 바나바의 중재가 없었다면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교제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둘은 박해자 사울에 대한 의혹과 경계를 환대와 연대로 바꾸어준 사람들입니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주님의 일꾼이 되고 은사를 발휘하며 적절한 자리와 역할을 찾아가도록 중재하며 돕고 있습니까?
④ 예루살렘(6:7)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됩니다.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도리어 평안 속에서 견고해지고 그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세상보다 주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세상의 위협을 이길 성령의 위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작금의 교회 침체에 대한 진단은 열악한 여건이나 상황이 아니라, 경외와 믿음의 실종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