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전위´ 이후 17년만에 지하당 조직한 대형 간첩단 사건
2005년 10월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당시 세간에 나돌던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를 거론하며 정부 여당을 질타했다.
그러자 답변에 나선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이렇게 소리쳤다. “색깔론 그만하라.”
그로부터 1년 후인 2006년 10월 ‘일심회’ 간첩단사건이 터졌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6.15 남북공동선언 이래 최대 간첩사건’이라고 했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주모자 장민호가 이적단체인 ‘일심회’를 조직한 것이 2002년이고 정치권과 시민단체에 본격 침투한 것이 2005년께부터로 돼 있다.
당시 제도권으로 진입한 좌파정당 민주노동당의 사무부국장이 일심회에 가입한 것도 2005년이다.
그런가 하면 전교조가 중학생들을 상대로 빨치산 미화교육을 시킨 것도 2005년 10월께다.
간첩들의 암약 시기와 소문이 퍼진 시기가 일치한 점을 고려할 때 당시 민초들이 수군댔던 ‘적화는 됐고 통일만 남았다’는 얘기는 그냥 재미삼아 해본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이 2006년 8월 24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세간에서는 이종석 통일부 장관 얘기를 하면서 인기 TV드라마 ‘주몽’에 등장하는 세작(細作)을 화제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자 현직 장관을 간첩에 비유했다며 국회가 떠들썩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안당국이 최근 북한 노동당 225국(옛 대외연락부)의 지령을 받고 간첩 활동을 해온 5명을 구속하고 40여 명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 중 이 아무개 씨는 민주당 당직자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 당시 임채정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을 지낸 인물이라고 한다.
이 밖에 민노당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연루됐다. 현역 구청장 2명을 포함한 시의원과 구의원 등 10여 명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정계와 관계로까지 파고든 '세작'으로 정가에서 또 한바탕 파란이 일 참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임채정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을 지낸 이 아무개 씨는 1990년대 초반 북한에 포섭돼 최근까지 서울지역 책임자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는 경기 남양주 을 지역구에서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적도 있어 충격을 준다.
이번 간첩단 적발은 1994년 소위 조선노동당의 남조선지하당이었던 ‘구국전위’ 사건 이후 17년 만에 드러난 대형 간첩단 사건이어서 수사 결과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아직은 수사 중이라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북한이 남한의 정치현장 한복판에다 지하당을 구축하려고 획책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 구속된 피의자들이 북한 내부의 직접 지령에 의해 조직을 구축하고 국내 정보 수집 등 간첩 활동을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2000년대 이후에도 간간이 적발됐던 이적단체 구성이나 잠입 탈출 사건 등과 다르다.
아울러 사건 가담자들이 과거에 흔히 등장하던 청년학생이나 재야인사가 아니라 사업가와 노동조합 간부, 야당 당직자, 대학교수 등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고 충격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문제의 반값 등록금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의 간부도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도둑이 제 발 저려한다’고 전에는 공안사건 수사의 경우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다 수사결과가 발표난 뒤에야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하면서 길길이 뛰곤 했는데,
이번엔 수사 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되레 사정 당국에 맞서 미리부터 치고 나오는 작전을 펴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북한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우선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연루돼 있는 간첩단 사건을 놓고 민노당이 공안당국을 먼저 압박하고 나왔다.
민노당은 지난 27일 "이명박 정권과 국정원이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날뛰는 이유는 결국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통합과 연대를 주도하고 있는 민노당을 어떻게든 흠집내보려는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했고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같은 날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장하던 공안 탄압이 재현되고 있다"며 "치졸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당과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다. 관련 인물이 이미 당직을 떠났으니 관련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제1야당 전직 간부가 간첩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민주당은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간첩단 사건을 축소 보도하던 일부 좌파 매체들조차 민노당과 민주당을 편들고 있다.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데도 민노당과 민주당, 일부 좌파매체들이 여러 형태로 이번 간첩단 수사에 쐐기를 박으려 하고 있으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사건은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어 정확한 진상파악이 우선이다. 민노당과 민주당은 수사 중인 사건을 정치공세로 몰아가면 안 된다.
특히 민노당은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무책임하고 선동적인 언행을 자제하고 차제에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안당국은 정치적 논란이나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한 뒤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치권은 정치공세 비난에 앞서 이번 기회에 돌다리도 두드리며 건너듯 스스로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과거 베트남은 월맹 간첩들의 활약으로 월남이 사실상 자멸함으로써 공산화됐다.
반면 서독은 동독이 심어놓은 수많은 고정간첩들의 활동에도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민주국가로의 통일을 이뤘다.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북한의 무모한 책동을 철저히 봉쇄하면서 국력을 키워야 한다.
북한은 그 동안 수많은 간첩들을 남한에 내려 보냈다. 휴전 이후 1999년까지 남한에서 생포, 사살, 자수한 남파간첩 수만도 5천여 명이나 되고 1350여 명이 북한으로 도주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어설픈 햇볕과 포용정책으로 지금 우리 곁에는 얼마나 많은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남한 내부의 북한 고정간첩이 5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손자병법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전쟁이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생사를 결정짓고, 간첩의 활약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깊이 깨닫고 북한의 간첩 색출에 눈을 부라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