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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서민 출신 한신은 백정의 가랑이 밑을 기어 나가는 굴욕과 수모를 견디면서 젊은 날을 보내다가 처음은 초나라 항우 밑에서 있다가 대우를 받지 못하자 도망쳐 유방에게로 갔다. 그곳에서도 도망을 쳤다. 재상 소하가 허겁지겁 그를 찾으러 갔다가 되돌아왔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오른 한왕 유방이 고함을 질렀다.
“귀공까지 도망을 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요?” “아닙니다.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도망친 자를 쫓아갔을 뿐입니다.” 소하의 대답에 유방은 어리둥절했다.
“뭐라고? 도대체 그 놈이 어느 놈이오?” 재상 소하는 정중하게 한신이라고 말했다. 한왕은 다시 화를 내었다. “지금까지 도망친 장수들이 수십 명이나 되는데 귀공은 한 번도 그들을 뒤쫓은 적이 없었소. 그런데 하필이면 보잘것없는 한신 따위를 뒤쫓다니 그게 말이나 되오?”
소하가 말했다. “다른 장군들이라면 얼마든지 새로 임명할 수 있으니 문제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한신은 다시 찾기 어려운 뛰어난 인물입니다. 폐하께서 앞으로 천하를 제패할 뜻을 가지고 계신다면 한신은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문제는 대왕께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자 유방이 말했다. “나의 생각을 경은 잘 알고 있지 않소? 동쪽으로 나아가 천하를 다툴 결심이오. 이런 곳에 언제까지 처박혀 있겠소.”
“그러시다면 한신에게 임무를 주어서 그를 붙잡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분명히 도망을 치고 맙니다.” 소하의 말에 유방이 겨우 승낙을 했다. “경의 얼굴을 봐서 그 자를 장군으로 임명하겠소.” 그러자 소하가 어림없다는 듯이 장군 정도로는 안 된다고 하자 유방은 그렇다면 대장군으로 임명하겠다고 했다. 그때 다시 소하가 앞으로 나섰다.
“대왕께서는 부하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 나쁜 버릇이 계십니다. 대장군을 임명하는 자리를 마치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것 같은 절차로 처리하려 드신다니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한신이 도망친 것도 그런 소홀한 일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진정으로 그를 대장군에 임명할 뜻이라면 좋은 날을 택하여 목욕재계하시고 훌륭한 식장을 마련하여 그에 걸맞은 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왕 유방은 소하의 건의를 허락했다.
장군들은 대장군이 새로 임명된다는 소식을 듣자 저마다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임명된 사람이 한신이라고 하자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장군에 임명된 한신은 유방에게 동쪽 정벌을 제안했다.
“초의 항왕도 알고 보면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정반대의 행동을 취하는 것, 다시 말씀드려서 정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장병의 뜻을 만족시켜 줄 경우엔 천하를 손에 넣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해 8월 한왕은 삼진으로 나아가 관중을 완전히 평정하고 그 여세를 몰아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까지 쳐들어갔다. 그러나 팽성 공격이 시작되고 얼마 가지 않아서 한왕은 대패하여 목숨만 겨우 건져 형양까지 후퇴를 했다. 그때 궁지에 빠진 유방을 구하고 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 준 인물이 바로 한신이었다. 다른 군대를 이끌고 있던 한신은 후퇴하는 한왕과 합류하여 경, 색 일대에서 초나라군을 무찌르고 한나라의 퇴각을 멈추게 하였다.
팽성의 패전에서 한왕이 입은 타격은 실로 컸다. 형세가 불리해진 유방에게 각지의 제후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책왕, 제왕, 조왕, 위왕, 새왕 등등이었다. 좌승상이 된 한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등을 돌린 위, 제, 조를 토벌하였다. 이로써 한나라군의 걱정을 없애고 천하 평정의 기반을 굳건히 하였다.
한나라 4년 한신은 마침내 제나라를 완전히 평정했다. 그는 전장에서 한왕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전했다. ‘제나라는 마음을 잘 바꾸는 나라입니다. 더구나 그 남쪽은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제나라에 새로운 왕을 내세워 진압하지 않으면 앞으로 위험만이 초래할 뿐입니다. 임시로 저를 이곳의 왕으로 봉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즈음 한왕은 초나라의 기습에 몰려 형양에 포위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한신의 사자가 도착한 것이었다. 서한을 받아 읽은 유방은 화가 몹시 치밀었다. “짐이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제 놈은 하루 빨리 원군을 끌고 달려올 생각은 않고 왕이 되고 싶다고?”
옆에 있던 장량과 진평이 한왕의 분노를 만류하고 사자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우리는 지금 최악의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한신에게 안 된다고 해봤자 좋을 리 없습니다. 차라리 그를 왕으로 봉하여 제나라를 잘 지키도록 격려해 두는 것도 한 방편입니다. 그가 행여 모반이라도 일으키는 날이면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것입니다.”
무섭에 이어 제나라 사람 괴통이 찾아와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여 차지하라는 끈질긴 설득에도 한신은 끝내 응하지 않자 괴통은 미친 사람 흉내를 내고 돌아다녔다.
한왕은 고능에서 초나라군의 역습을 받아 궁지에 빠지자 장량이 건의한 대로 한신을 불렀다. 한신은 군사를 몰아 해하에서 항우의 대군을 무찔렀다. 초왕 항우가 죽고 그 전쟁이 끝나자 한왕 유방은 갑자기 한신을 사로잡고 그의 군사도 빼앗아 버렸다.
한나라 5년 정월에 제왕 한신은 초나라로 옮겨 팽성의 동쪽 하비에 도읍을 정했다. 영지로 돌아간 한신은 그 옛날 건달로 배고픈 시절 강가에서 밥을 주었던 노파에게 찾아가 천금을 주었다. 그리고 한때 신세를 졌던 하향 남창의 장정에게 백전을 주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나를 돌봐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돌봐주었어야 했었다”라고 말한 뒤 옛날 자신에게 바짓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게 한 굴욕을 주었던 백정을 찾아가 그를 중위에 임명하고 부하 장군과 대신들에게 경위를 설명했다.
“이 사람이 지난날 나에게 창피를 주었을 때 나는 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 사람을 죽여 봐야 내 이름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꾹 참았었다. 이 사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전쟁 중일 때 항우한테서 도망쳐 온 장군 가운데 종리말(진평의 계략에 의해 항우의 의심을 받자 한나라에 항복한 장군)이 있었다. 본디 그의 고향은 한신의 영지이어서 한신과 가까운 사이였다. 그는 도망쳐 온 뒤 한신의 진영에 있었다. 종리말은 전쟁 중일 때 한왕을 몹시도 괴롭혀서 유방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한왕은 그가 초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체포 명령을 내렸다.
한나라 6년 고조에게 한나라 한신이 모반을 일으켰다고 상소하는 자가 있었다. 그때 고조는 진평의 건의를 받아들여 순행을 빙자하고 제후들을 소집하도록 하되 남쪽의 운몽까지 돌아보기로 하고 각지의 제후에게 ‘진나라에서 만나자, 짐은 운몽에 가리라’ 하고 사자를 보냈다.
고조의 목적은 한신을 체포하는 데 있었다. 한신으로서는 고조의 계략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가 초나라를 방문한다는 말에 문득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한신에게 어떤 사람이 건의했다. “종리말을 처치한 뒤에 폐하를 만나십시오. 폐하는 몹시 흐뭇해하실 겁니다.”
한신은 종리말을 불러서 그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한왕이 지금 초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오. 한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를 잡아 갈 생각이라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겠소. 그러나 내일은 당신 차례가 될 것이오.” 그렇게 말하고 종리말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고 말았다.
한신은 종리말의 목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서 고조를 만났다. 한고조는 즉석에서 병사들에게 명하여 한신을 체포하여 수행원의 수레에 가두어 버렸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게 마련이고 하늘에 잡을 새가 없어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게 마련이며 적국을 모두 쳐 없앤 뒤에는 모신들을 죽이게 마련이라는 말이 옳기는 옳소이다. 천하가 평정된 이상 저 같은 자는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겠습니다.”
한신이 항변하자. 고조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 그대의 모반을 밀고한 자가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고 고조는 한신을 가두어 낙양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뒤 공적을 참작하여 죄를 용서하고 녹봉을 왕에서 후로 격하시켜 회음후라 부르게 했다.
한신은 자신에 대한 한고조의 경계가 심한 것을 알고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그의 거둥에도 배행하지 않았다. 그는 고조를 원망하는 마음과 분함이 날이 갈수록 더하였다. 자기가 주발이나 관영 따위와 같은 인간으로 취급당하는 것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장군 번쾌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번쾌는 한신을 맞이하여 신하의 예를 갖추고 스스로 낮추어 신이라 불렀다.
“대왕께서 신의 집에 다 들러 주시다니 황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신은 번쾌의 집을 나서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웃었다.
“오래 살다보니 끝내는 번쾌 따위와 같은 위치가 되고 말았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항우가 죽고 한왕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자 유방은 계략을 세워 한신을 잡아들였다가 그의 공적을 참작하여 왕에서 후로 격하시켰다. 한신은 그 울분을 삭히며 자신을 비하하고 다녔다.
고조와 한신의 사이에 조금은 자유로울 때였다. 두 군신은 잡담을 나누며 장군들을 평가하다가 고조가 한신에게 물었다.
“짐에게는 몇 만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역량이 있다고 보는가?”
한신이 답했다. “폐하께서는 십 만 정도이겠지요.”
“그렇다면 귀공은?” 고조가 한신에게 말했다.
“저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군사들을 부리는 데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 말에 고조가 웃었다.
“그런데 귀공은 왜 나에게 붙잡혔는가?”
“폐하는 병사들의 장이 되실 역량은 없습니다만 장수의 장이 되실 힘은 갖추고 계십니다. 제가 체포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더욱이 폐하의 경우는 그 재능이 저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타고난 것이어서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 아뢰었다.
거록의 태수로 임명된 진희가 한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때 한신은 그의 손을 잡고 마당을 거닐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그러면서 진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소?” 하고 묻자 진희가 응했다.
“당신이 부임하는 곳은 천하의 정병들이 모여 있는 땅이오. 그대에 대한 폐하의 신임은 두텁소. 설사 당신을 모함하는 자가 나타나더라도 폐하께서는 약간 의심해 보는 정도일 거요. 그러나 그런 소리가 계속 들려오면 그때는 폐하께서도 화가 나 토벌의 군사를 동원하여 몸소 지휘를 맡을 것이오. 그때 내가 도성에서 당신과 내응하여 일을 벌이면 천하는 우리의 손에 넘어 오리라 보는데 어떻소?”
일찍이 진희는 한신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유혹도 솔직히 받아들였다.
“뜻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한나라 10년에 진희가 반기를 들었다. 고조는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는데 한신은 병을 핑계대고 나서지 않았으며 은밀히 진희에게 사자를 보냈다. 그 내용은 도성에서 군사를 일으켜 호응하겠다는 뜻이었다.
한신은 곧 부하들을 불러 대책을 강구했다.
결과는 칙명을 사칭하여 여러 곳에 갇혀 있는 도형수들을 밤중에 모두 풀어 주고 도성 안을 혼란스럽게 만든 뒤 그 틈을 타서 여후와 황태자를 기습한다는 작전이 세워졌다. 각자의 부서 책임자도 결정되었으므로 이제는 진희의 회답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부하 가운데 일의 도모를 앞두고 부정을 저지른 자가 있어 한신이 그를 처형할 목적으로 잡아 가두어 놓았는데 그의 아우 되는 자가 여후에게 달려가 한신의 음모 사실을 밀고해 버렸다.
그 밀고를 전해들은 여후는 곧바로 한신을 불러들일까 생각하다가 생각을 달리했다. 한신이 순순히 나타날지 의문이었다. 그리하여 상국인 소하와 의논하여 신하를 전선에 있는 고조가 보낸 사자로 위장시켜 진희는 이미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여러 제후들과 신하들 사이에 퍼뜨리게 했다.
그러자 열후들과 대신들이 축하하기 위해 궁성으로 몰려들었다. 소하는 시치미를 뚝 떼고 한신에게도 사람을 보냈다.
“병중인 것은 알지만 이런 때는 무리를 해서라도 입궐하여 축하를 드리는 것이 신하의 도리가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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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예년기온과 비슷한 날씨가 이어진데요
신록의 계절인 6월의시작!! 아름다운 행복 만들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