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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부터 자유로워지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자신을 역사의 행위자로 보아야 한다. 세계적 사건들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주인공으로 말이다. 역사의 ‘군사화’가 빼앗으려는 것이 바로 그런 주인정신이다.
지금 우리는 매우 긴 역사적 사이클의 한 굽이가 시작되는 지점에 서 있다. 그 굽이가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지는 물론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경화(硬化)주의 경제에서 가상 신용화폐로 돌아섰던 때를 보자. ‘축의 시대’가 끝나고 중세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 당시 급격한 이동이 일련의 재앙을 낳았다.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우리가 그런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가상통화로의 복귀가 제국과 주둔군의 규모를 축소하고 채권자들의 약탈행위를 제한할 보다 큰 기구의 조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도 전혀 모르고 어떤 기구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어도 좋을 이유가 있다. 아니,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런 것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놓았다. 내가 이 책을 통해 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세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미래를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실현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고, 시대에 맞춰 넓게 보고 장대하게 사고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묻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있었던 2개의 대중운동 사이클에 대해 논했다. 첫 번째 사이클(1945~1978)은 국가들 사이의 평등권 요구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 사이클(1978~2008)은 자본주의를 누릴 권리에 관한 것이었다. 중동 지역의 경우 첫 번째 사이클 동안엔 글로벌 질서에 직접 도전했던 대중운동이 마르크스주의에 고취되는 경향을 보였고, 두 번째 사이클에서는 급진적인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이런 사실이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이슬람이 언제나 부채를 사회적 원칙의 중심에 놓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슬람의 호소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실을 솔직하게 직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이라크라 불리는 나라에선 지난 5,000년 동안 극적인 도덕 및 금융 혁신이 두 차례 이상 일어났다. 첫 번째 혁신이 바로 이자를 물리는 부채의 발명이었다. B.C. 3000년 경에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 혁신은 A.D. 800년경에 일어났다. 이자를 물리는 부채를 명백히 부정한 첨단 상업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우리가 또 다른 혁신을 이룰 수 있을까?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겐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라크인이라고 하면 광신자 아니면 희생자들(남의 영토를 점령한 국가들은 언제나 점령지의 시민들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에 반대한 노동계층의 운동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인 ‘사드리스트’(Sadrist)가 그 이름을 현대 이슬람 경제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무하마드 바키르 알사드르(Muhammad Baqir al-Sadr)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말이지, 오늘날 이슬람 경제학 중 상당 부분은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어떠한 의미로 보나 이슬람 경제학은 자본주의에 직접적인 도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종류의 대중운동들 사이에선 예를 들어 임금노동의 지위에 대한 온갖 대화가 진솔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 가부장적 반란의 청교도적 유산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드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처사일 것이다. 아니면 페미니즘에서 돌파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슬람 페미니즘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그것도 아니면 전혀 기대하지 않은 영역에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놀랄만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673)
사고의 혁명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익숙했던 사고의 카테고리들 중 많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카테고리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시장에 대한 논의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가와 시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그릇된 가설에 대해 길게 논의한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가설이 지난 몇 세기 동안 정치 이데올로기를 지배해온 까닭에 이젠 다른 주장을 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버렸다.
시장의 역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역사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초기의 시장들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정교한 행정체계의 부산물인 것 같다. 그 시장들은 주로 신용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현금시장이 생긴 것은 전쟁을 통해서였다. 다시 말하지만, 현금시장은 주로 군인들에게 보급품과 월급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세금과 공물정책을 통해 생겨났다. 공물의 경우에는 다른 측면에서도 매우 유익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 포퓰리즘이라 불릴 수 있는 사상이 처음 출현한 것은 신용시스템으로 돌아간 중세 들어서의 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시장 포퓰리즘이란 시장들이 인도양의 이슬람 사회의 시장처럼 국가 밖에, 국가 너머에, 또 국가에 맞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상을 말한다. 이 사상은 그 후 15세기 중국에서 대규모 은(銀)반란이 일어났을 때 다시 나타났다. 시장 포퓰리즘은 대체로 상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의 행정조직에 맞서 보통 사람들과 공동전선을 펼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그러나 시장 포퓰리즘은 모순투성이다. 왜냐하면 시장이 여전히 국가의 존재에 어느 정도 의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장의 관계들이 단순한 계산 외의 다른 무엇인가에 바탕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명예나 신뢰의 규범, 그리고 종국적으로 ‘인간경제’의 전형이랄 수 있는 공동체와 상호부조의 규범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경쟁을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밀어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애덤 스미스가 부채가 없는 시장 유토피아를 창조해낸 것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유토피아적인 요소들과 기독교 서구사회의 특징인 시장의 군사적 성향을 결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유토피아를 제시할 수 있었던 스미스는 분명 통찰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모든 영향력 있는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자신의 시대에 윤곽을 드러내고 있던 정신을 포착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두 가지 포퓰리즘 즉 국가와 시장 포퓰리즘 사이를 끝없이 오간 정치적 속임수였다. 그런데도 국가와 시장 포퓰리즘이 같은 동물의 왼쪽 옆구리와 오른쪽 옆구리에 대해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주된 이유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폭력의 유산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비틀어놓았기 때문이다. 전쟁과 정복, 노예제도는 인간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꾼 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제도 중에서 어느 정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제6장 말미에서 한 이야기, 즉 “자유”라는 개념까지도 로마의 노예제도를 거치면서 친구를 사귀고 다른 사람들과 도덕적 관계를 맺을 능력에서 절대적 권리로 바뀌어버렸다는 한 이야기도 가장 극적인 예의 하나일 뿐이다. 이 예는 더없이 음흉하기도 한데, 그 이유는 자유의 개념이 그렇게 변질된 탓에 의미 있는 인간의 자유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강조했듯이, 공산주의가 모든 인간관계의 바탕일 수 있다. 실제로 현실 생활을 보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김없이 공산주의가 보인다. 그런 한편으로 모든 인간관계에는 언제나 어떤 교환시스템이 있고 또 계급시스템도 있다. 이 교환시스템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며, 그 형태 중 많은 것들은 전혀 새롭지 않다. 지금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교환은 매우 특별한 형태의 계산적인 교환이다. 내가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어떤 사람에게 호의를 빚지는 것과 누군가에게 부채를 지는 것의 차이는 부채의 경우 금액이 정확히 계산된다는 점이다. 계산은 등가(等價)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런 등가는 오직 사람들이 강제로 자신의 환경에서 철저히 배제될 때만 이뤄지는 것 같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물건과 똑같은 것으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로로 잡힌 당신의 동생을 돌려받으려면 담비 가죽 7장과 은가락지 큰 것 2개를 내놓아라.” “곡식 150부셀을 융자받으려면 담보로 당신의 세 딸 중 하나를 내놓아라.”
이런 사실들이 시장을 최고 형태의 인간의 자유로 보려던 시도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비인간적인 상업시장은 절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치 주문처럼 외는 것이 물물교환의 신화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조금만 돌아봐도 그 신화는 금방 허물어지고 만다. 물건들이 가득찬 집을 보고선 대뜸 내다팔면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틀림없이 도둑이었을 것이다. 강도, 약탈에 나선 군인들, 그 다음에는 아마 빚 수금원들이 아마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았을 것이다. 금이나 은 덩어리들이 통일된 형태의 통화가 된 것은 이제 막 도시와 마을을 약탈하고 돌아온 군인들의 손을 통해서였다. 그 금과 은 덩어리는 카시미르의 신들이나 아즈텍의 갑옷 가슴받이, 아니면 바빌로니아 여자들의 발찌 등 역사가 담긴 예술품들을 녹인 것이었다. 이 예술품들은 약탈자들의 손에 녹여지면서 역사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금이나 은 덩어리들이 통화로 쓰이게 된 것은 바로 그 역사성의 결여 때문이었다. 이제 어딜 가도 출처를 의심받지 않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세상을 숫자로 바꿔놓는 시스템은 오직 무력으로만, 말하자면 칼과 곤봉 또는 오늘날의 무인항공기가 투하하는 “스마트 폭탄”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시스템은 끊임없이 사랑을 부채로 바꿔야만 유지가 가능하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쓸 때보다 더 도발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라도 이 문제를 확실히 밝혀두는 것이 중요하다. 시장이 폭력적 뿌리에서 자유로워지자 자연스럽게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말하자면 명예와 신뢰와 상호연결의 네트워크로 성장한 것과 똑같이, 강압적인 시스템을 고수할 경우 그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협동과 창의성, 신뢰의 산물들이 다시 숫자로 바뀐다. 따라서 이 세상을 냉혹한 계산의 연속으로 상상하게 된다. 더 나아가 강압적인 시스템들은 인간의 사교성 자체를 부채로 바꿔놓음으로써 아예 우리의 존재의 바탕을 비행(非行)과 죄와 범죄의 문제로, 그리하여 세상을 불평등한 곳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될 경우 불평등을 극복하는 길은 모든 것을 무효로 돌릴 중대한 격변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회에 무슨 빚을 지고 있지?”라고 묻거나 “자연이나 우주의 다른 존재에 진 빚”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엉터리 해결책이다. 그것은 우리를 우주와 떼어놓은 바로 그 도덕적 논리에서 무언가를 구하려는 절망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위기를 안겨준 그 행태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엉터리 해결책의 바탕에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과 아주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까닭에 다른 모든 인간 존재들이나 다른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심지어 우주까지도 내팽개쳤다가 다시 협상을 벌이면 된다는 생각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삶 자체를 그릇된 전제에 근거한 무엇인가로, 오래 전에 만기가 도래한 융자로 보게 되고, 그리하여 존재 자체를 범죄로 보게 되었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서 진짜 범죄가 있다면, 그것은 곧 기만이다. 그 전제 자체가 기만인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협상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건방진 것이 달리 있을까? 당연히 그런 협상은 불가능하다. 만일 ‘절대적인 존재’와 어떠한 관계라도 맺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인간의 시간 밖에 존재하는 어떤 원칙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의 신학자들이 정확히 인식했듯이, ‘절대적인 존재’를 마주할 때 거기에는 부채 같은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671~678)
[출처] 부채: 그 첫 5,000년
Debt: The First 5,000 Years(2011)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2021년 재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