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포도원교회에 한 여학생이 나타났다.
그녀의 이름은...
이서.
교회에 새 친구가 오면 예배를 마치고 광고 시간에 간단하게 소개하고 환영을 한다.
이번에 온 새 친구는 중1 여학생이다.
진월동에 이사 왔단다.
새한 아파트.
우정아파트 옆에 협진 아파트와 그 너머에 새한 아파트가 새로 생겼다.
여학생이 나와서 인사하는데 이럴 수가 너무 예쁘다.
피부가 너무 하얗고 눈이 동그랗다.
동그랗다를 넘어 땡그랗다.
세상에~ 내 가슴이 나도 모르게 콩닥콩닥한다.
아무리 진정시켜 보아도 도저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남학생들이 그리 생각하겠지?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만 그 여학생을 예쁘다고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쁜 여학생의 마음은 어떠할까?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고 예뻐서 남학생들이 좋아해 주고 따르는 그 느낌은...
어딜 가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싸의 기분을.
나는 절대 알 수 없다.
나는 아직은 영화 속 주연이 아닌, 그냥 평범한 조연 중 한 명일 뿐이니깐.
이서가 교회에 새로 온 후로 나는 더 열심히 교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예배뿐만이 아니라 각종 모임에...
그 당시에는 주말에 딱히 할 것이 집에서 티비 보는 것 말고는 없었다.
내가 지금도 그렇지만 티비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교회 주말 모임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종교가 기독교인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안전한 공간에서의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 아니었을까?
그런 동료 문화가 형성되는 시대였던 것 같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나 PC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주말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고.
이서도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과의 만남이 필요했는지 교회 활동에 열심이다.
교회에서 하는 성가대, 토요 모임, 성경 읽기 등 각종 모임에 열심히 참석한다.
외모도 예쁘고 믿음도 좋은가 보다.
와~ 더 좋아지는 건 왜일까?
모임에 나가 이서가 오는지 안 오는지는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이서가 오면 내 기분은 너무 좋았고 혹시 오지 않으면 많이도 아쉬웠다.
이서가 참석하는 모임인지의 여부에 따라 나도 참석 여부가 결정되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 그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다고나 할까?
인간은 갈대라고 누가 그랬는데...
블레즈 파스칼이 '팡세'에서 그랬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갈수록 작아지기는커녕 커지기만 한다.
그러면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가 없을 때가 온다.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이 그랬다.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을 새워서 편지란 것을 써보았다.
어느 책에선가 "밤에 쓴 편지는 아침에 읽지 말라."고.
그때 내가 그랬다.
밤늦게 말랑한 감성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적어나갔고 아침에 읽어 보니 너무 했다.
극단적으로 감성적인 글이 적혀 있었다.
내 몸이 다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난 이게 내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밤에 쓴 편지를 끝내 한자도 고치지 않았다.
밤에 표현된 그 마음이 소중했기에.
이성이 아니라 감성을 따르기로 했다.
교회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이서와 나는 교회에서 집까지의 방향이 같다.
이서는 우정아파트를 지나 나보다 조금 더 간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집으로 출발한 이서를 뒤에서 눈치 못 채게 따라갔다.
(지금 같으면 딱 스토킹이다.)
추운 겨울이라 발을 동동거리며 앞에 가는 분홍색 파카를 입은 이서를 따라갔다.
분홍색 파카라 잘 보인다.
혹시 앞에 가는 이서가 알아챘다면 어리숙한 교회 오빠가 자기를 따라온다고 얼마나 이상하게 생각했을까?
아니면 알아도 모른 채 했으려나?
교회에서 우정아파트까지 거의 다 다다를 무렵 난 "이서야~" 했다.
마치 지금 막 앞에 가는 이서를 알아챈 것처럼...
(그렇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안 쪽팔린다.)
이서는 내가 따라오는 걸 전혀 몰랐는지 "응? 오빠." 이랬다.
(하긴 방향이 같아서 내가 내 집 가는 건데 뭐...)
나는 이서 앞에 쭈뼛쭈뼛 선다.
주머니에선 어제 쓴 편지를 꼼지락대며 만지작대는 내 손이 갈 곳을 잃은 듯 방황하고 있다.
실제로는 1~2초 정도 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나에게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내 내면에서는 이 기다란 시간 동안 갈등을 하고 있다.
편지를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무 부끄럽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내 가슴은 엄청나게 빠르게 콩딱콩딱 뛰고 있다.
드디어 용기를 낸다.
"자 이거." 편지를 이서에게 건넨다.
내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다.
나만 알 수 있게.
이서는 "뭐야 이거?"
난 너무 부끄러워 뭐라 대답할 줄 모른 채 "읽어봐." 이 한마디만 남긴 채 얼른 우정아파트 쪽을 향하여 뒤돌아 뛰어간다.
한참을 뛰어서야 뒤돌아 "이서야 잘 가~ 그리고 넌 머리 묶는 게 예뻐."라고 크게 말한다.
그제야 이서는 새한아파트를 향해 걸어간다.
걸어가는 이서의 뒷모습을 보며 난 인제야 안심을 한다.
목표를 힘들게 달성한 듯.
아마 그때 눈이 내리지 않았나 싶다.
그래야 더 아름다우니깐.
내 기억은 그렇게 나를 왜곡시킨다.
나에게 유리하게끔.
집으로 걸어가는 분홍색 파카를 난 그대로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교회에서 이서를 보았는데 머리를 묶고 왔다.
와 정말 기뻤다.
설마 내 한마디에 머리를 묶고 오진 않았겠지만...
그 당시 내 말 때문에 이서가 머리를 묶고 온 것이라고 그런 착각에 스스로 빠졌다.
짧은 머리를 묶은 이서는 참 예뻤다.
편지에 대한 답장은 없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이서는 남학생들로부터 참 많이도 편지를 받았겠지.
이서는 예뻐서 나 같은 남학생들이 많았을 테니깐.
그냥 한 통의 편지에 불과했겠지.
그렇게 그냥 자연스럽게 그 사건은 지나간다.
그 후의 이서는 날 똑같이 대하더라.
나 스스로 생각하기를.
첫째, 그래 잘했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해 본 경험 그 자체는 가치 있다.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둘째, 예전처럼 대해 주어 고맙다.
고백해서 성공했다면 과연 진짜 좋았을까?
아니야.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나이기에 서툴렀을 것이고 헤어지기도 했겠지?
그럼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평소처럼 이서를 볼 수 없겠지?
이 자체로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마음을 접었다.
그러니 편해지더라.
하지만 좋아했던 마음은 예쁘고 소중하게 내 마음에 간직했다.
지나고 나서 알았다.
교회 대부분 남학생들이 이서를 좋아했단다.
마치 난 '아 그래?' 하고 아닌 척했지만...
그리고 또 누구는 이서랑 실제로 사귀기도 했단다.
그중 한 명은 내 친구다.
부러웠다.
같이 다니는 게 부러웠고 손잡는 것도 부러웠다.
그 친구는 그 당시 나름 잘 나가던 인싸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고 하지만 너무너무 부러웠다.
근데 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내가 찾은 나만의 도피인 것 같다.
난 정말 그 이후로 열심히 공부했다.
이후로 내 친구와 이서는 계속 사귀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듣기로 대학생 때까지 사귀었다고 하던데...
내 친구가 아직 결혼한다고 연락이 없는걸. 보면 어느 순간 사귀다가 헤어진 것 같다.
이서도 결혼했다고 우연히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그 이후의 이야기와 사연들은 잘 모르겠다.
나도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 가고 취업 준비하고 하면서 교회를 옮겨 자연스레 그 당시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아프게 지나갔다.
살면서 이서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씩 궁금했다.
내가 올해 44살이니 이서는 아마 지금 43살이겠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어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이를 예쁘고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겠지?
교회도 잘 다니고 있겠고.
아직도 광주 진월동에 살까?
교회에서 나와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했던 소중한 좋아했던 동생.
만나지는 못해도 어디선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