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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 (동영상), 기원전 771년, 주 유왕의 죽음과 함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됩니다. 기존의 가치도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하면서 약자의 삶이 철저히 짓밟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과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에 밑거름이 됩니다. 절망적이기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 세상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짓밟히는 이들의 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생각의 폭발을 보여준 그들을 우리는 제자백가라 부릅니다.
내레이션: (동영상), 기원전 517년, 공자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인 노 나라를 떠나 제 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울음소리), 여인의 울음소리를 따라간 공자 일행은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죠. 공자가 제자인 자로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여인의 사연은 기구했습니다.
로저 에임스/하와이대 철학과 교수: 여인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살고 있습니다. 그 호랑이가 저희 시아버님을 죽여서 저는 시아버님을 위해 울고 있습니다. 그 후엔 호랑이가 제 남편을 죽여 저는 남편을 위해 울고 있습니다. 그 다음엔 호랑이가 제 아들을 죽여서 저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립니다. 공자가 물었습니다. 왜 여기를 떠나 호랑이가 없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여인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가혹하고 악독한 정치가 없기에 저는 이곳에 삽니다.
내레이션: 공자가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잘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곡부시/중국 산동성), 공자의 고향인 노 나라의 옛 수도는 현재 곡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곳곳에 공자의 동상이 남아있고 아직도 공자에 대한 제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묘 대성전/산동성 곡부시), (동영상), (공자 문화제/곡부 공묘), (공림/산동성 곡부 시), 더불어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이 이곳이 공자의 고향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4대 聖人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지금도 아들인 백어, 손자인 자사와 함께 이곳 공림에 묻혀 있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뛰어난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자공이 6년간 스승의 묘소를 지켰던 자리도 남아 있죠. (자공려묘처(子貢廬墓處)),
두웨이밍/북경대 고등인문연구원 교수: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무척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또한 공자의 제자들 중 그는 정치적으로도 많은 활약을 보였고 그 영향력도 상당히 큰 편이었습니다. 제자들 중 자공은 특히나 뛰어났습니다. 그는 종종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내레이션: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병사, 즉 군사력과, 식량, 즉 경제력, 그리고 백성의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자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부득이 하게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냐고요.
공자: 먼저 군사를 버리거라. 다음으로 경제를 버리거라. 예부터 사람은 모두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내레이션: 인간이 서로를 믿을 수 없고 또 백성이 나라를 믿을 수 없다면 그런 사회는 망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신정근/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공자가 초점을 둔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키우면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자가 생각할 때는 그게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한 나라만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렇다면 군사력과 경제력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공자가 좀더 깊이 생각한 것은 뭐냐 하면 경제력과 군사력 이외에 더 나라를 사랑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뭘까 했을 때 신뢰라든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소통과 공감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자가 비중을 두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레이션: (동영상), 신뢰, 하지만 때는 난세였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죠. 명백한 약탈과 살육조차 승자의 정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곤 했습니다. 弱肉强食의 세상이 되면 통치자들은 백성을 富國强兵을 위한 수단으로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깁니다. 당연히 백성들도 살아남기 위한 生存競爭 속에 오로지 증오심만을 키우게 돼죠. 인간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인간적인 관계는 모두 파괴됩니다. 이런 참혹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요. 아니~ 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인간들 중엔 과연 믿을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요? 늠늠한 장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出將入相, 전장에 나가서는 장수요 돌아와서는 재상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같았죠. 물론 그를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여자에게 그는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전투에서 그는 어이 없이 참패를 당했습니다. 진노한 임금은 그의 두 다리를 잘라버리는 월형을 가했습니다. 몸도 불구가 된 것이죠. 찬란했던 순간은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남자는 이제 불구의 몸으로 가난과 싸우며 평생을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과연 여자는 남자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제 대답을 듣기 전에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사실 한 가지를 더 알려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그 남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여자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마 많은 분들의 의견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아니 같은 대답이라고 하더라도 대답의 강도는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누구도 어머니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죠.
두웨이밍: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명확합니다.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은 인간의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감정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핵심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그 자체로도 매우 깊은 도덕적 가치가 있습니다.
로저 에임스: 우리는 사랑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배웁니다. 만약 아이를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동안 격리 시키면 이 아이는 사회적으로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받아야만 하고, 사랑 받으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가족관계는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출발점입니다.
스티븐 앵글/웨슬리안대 철학과 교수: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아들, 딸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형제,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가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가족을 넘어섭니다. 좋은 친구나 좋은 백성, 군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는 좋은 시민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또 다른 새로운 관계들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항상 가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내레이션: (동영상), 이렇게 공자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인 부모의 자식사랑에서 그리고 그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식의 감사하는 마음에서 파괴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땅에는 자식에게 가혹한 부모도 있기 마련입니다. 욕망에 눈이 멀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조차 장담할 수 없게 돼죠. 기원전 408년 위 나라는 중산국에 대한 전쟁을 시작합니다. 위 나라의 장군은 악양이었습니다. 그는 이름없는 시골 선비였던 자신을 장군으로 임명한 위 나라의 임금 문후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는 결의로 가득했죠.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하지만 약소국이었던 중산국은 한창 팽창하고 있던 위 나라의 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전쟁 동영상), 그런데 악양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의 아들인 악서가 바로 적국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산국의 왕은 악양에게 군대를 돌리지 않으면 악서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악양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개의치 않겠다. 죽일테면 죽여라 였죠. 아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이 통하지 않자 중산국에서는 더 강력한 수단을 들고 나옵니다.
로저 에임스: 중산국은 악양의 아들을 포로로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들을 죽인 후 국을 만들어 아버지인 억양에게 보낸 것입니다.
내레이션: 이 잔혹한 행위에 대한 악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의 행동은 경악할만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고기로 끓인 고깃국을 단숨에 들이킨 것입니다 (전투 동영상), 결국 아들의 고깃국까지 먹어가며 결연한 의지를 보인 악양의 공격에 중산국은 패배합니다. 아마 악양은 스스로의 행위를 大義滅親, 즉 큰 일을 위해 가족까지 희생한다는 논리로 정당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중산국을 정복했다는 소식에 위 나라 임금이었던 문호는 크게 기뻐합니다. 위 문호가 신하인 도사찬에게 말합니다. (대나무 두루마리 들고 읽다),
문후/왕: 악양이 나를 위해 제 자식의 고기를 먹었소
내레이션: 그러나 신하의 대답은 차가웠습니다.
도사찬/신하: 제 자식의 고기까지 먹을 정도라면 누군들 먹지 못하겠습니까.
양궈롱/화동사범대 철학과 교수: 유가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봤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악양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유가는 가족관계를 무척 중시한다고 부자자효(父慈子孝)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관계입니다. 자식을 먹는다는 것은 악양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 기본적인 가족관계를 일체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기동/성균관대 유학대학 교수: 인간이 아닌 거죠. 욕심의 화신인데요. 그것을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악마죠. 그 악마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는 거죠. 아마 부인의 고기도 먹을 수 있고 부모의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욕심을 채우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되는 세상은 악마의 세상으로 바뀌죠. 굉장히 무서운 세상이 될 텐데요. 걱정이 되는 거죠. 그래서 비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에 충성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인데 그것에 속으면 안 됩니다.
내레이션: 악양의 예가 아니더라도 욕망에 눈이 멀면 인간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조차 잔인한 짓을 하곤 합니다. 춘추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식을 살마 권력자에게 바치거나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가족을 돌보지 않은 자들이 속출했죠. 이것은 공자에게 있어서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가족조차 사랑하지 않은 인간은 구제할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5세기초, 공자는 노 나라에서 지금으로 보면 법무부 장관쯤에 해당하는 대사구의 벼슬에 있었습니다. 이때 특이한 소송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고발한 것입니다. 당시 실권자였던 계환자는 不孝莫甚한 아들을 잡아 죽여서 一罰百戒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영상), 하지만 공자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공자: 정치를 하겠다면서 어찌 살인을 하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선을 원하면 백성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공자는 오히려 父子를 같은 감옥 안에 가두어두고 3개월간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소송을 건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죠.
양궈롱: (공자가) 3개월간 옥에 가두고 거들떠 보지 않은 이유는 부자간 소송은 시비를 가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옳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아들이 옳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백민정/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그 소송사건을 곧 바로 처리하지 않고 무관심한 듯이 몇 개월 동안 옥에 가두어 뒀는데, 그 사이에 부모가 마음을 바꿔서 내 자식은 나의 거울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소송을 철회했고 몇 개월 뒤에 공자가 그들 둘 사이에 분란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사면하고 석방을 했죠.
내레이션: 당시의 실권자였던 계환자는 공자가 입으로는 효를 이야기 하면서 불효자를 벌하지 않아 자신을 속였다고 노발대발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공자에게는 아버지와 다툰 아들에게 형벌을 내려서 정의를 바로 잡는 것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가족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백민정: 공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부모 자식 간의 기본적인 애정의 감정, 이것을 지킬 수 없으면 그것에서 확장된 이웃이나 마을의 타인 관계, 국가의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상실된다고 우려했던 것 같아요. 부모 자식 간의 애정조차도 지키고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 살아갈 때 분란이나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그 사람을 용서하거나 이해하거나 용납함으로써 같이 살아갈 수 있겠느냐, 그 시작점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켜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모범을 후대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레이션: 결국 가족은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호수의 동심원이 퍼지는 것처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죠. 만약 우리 모두가 함께 물방울이 되어 호수에 내린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 곧 대동사회가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야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과연 이것 만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확장이 가능한 걸까요. 공자와 자공의 또 다른 대화에서 우리는 공자가 제시하는 대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원칙에 대해 물었습니다. 공자의 대답은 서(恕)였습니다.
양궈롱: 공자는 서(恕)를 말씀하셨는데 서는 구체적으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을 뜻합니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웨이밍: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입니다. 즉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이죠.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한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티븐 앵글: 현대 유학자들은 恕를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 괴로움이나 고통, 걱정을 느낀다면 관련이 있습니다. 또는 서를 공감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중요한 개념이라고 봅니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도덕적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죠.
내레이션: 이처럼 공자는 서, 즉 공감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심을 넘어서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공자의 뒤를 이어 인간의 공감능력을 자기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은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가 등장합니다. 孟子입니다. 우선, 맹자가 전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죠. (달리는 어린이 동영상),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사랑스럽군요. 아마 나비를 잡으려는 것 같죠. 아~ 이런~ 앞에 있는 우물이 안 보이나 봅니다. 큰 일이 날 것 같군요. (어른이 뛰어옴),
브라이언 노든/바사대 철학과 교수: 맹자는 서구 철학 용어로 사고실험을 이용했습니다. 갑자기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 아이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놀라고 惻隱之心을 느낄 것입니다.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물에 빠진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직접적인 감정이자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보이게 되는 반응입니다. 맹자는 이와 같은 직접적인 반응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도 어떤 비극이나 차 사고를 목격했을 때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영향을 받고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때문에 맹자의 惻隱之心과 공자의 恕는 사실상 같은 개념입니다.
신정근: 그게 뭐냐하면 人類愛 라는 거죠. 내가 저 사람과 관계가 없다고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기본적인 조건에서 박탈됐을 때 당하는 그 고통에 내가 그러한 고통에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惻隱之心이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해서는 안 된다 라는 恕의 논리와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 거죠.
내레이션: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이 공감하는 마음은 단지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어느날 제나라 선왕이 정자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가 한 마리 울며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왕: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소주인: 흔종에 제물로 쓰려고 합니다. (釁鐘-종을 주조할 때 희생의 피를 바르는 종교적 의식),
내레이션: 왕은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소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 놓아주어라, 벌벌 떨며 죄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볼 수 없구나.
소주인: 그러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지요?
왕: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
소주인: 그리 하겠나이다.
내레이션: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이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불쌍하기로 따진다면 소만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겠습니까. 제나라 백성들도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사실은 소보다 양이 값이 싸서 바꾼 것이라고 왕이 참 인색하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하지만 맹자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맹자: 상심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곧 仁의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금수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 죽는 모습은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죽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는 먹지 못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백정민: 군자들은 푸줏간에 가지 말고 모르는 척하면서 고기를 잘 먹어라 마음의 주저 없이 먹어라. 이런 말을 하고자 한 거냐? 그런 것은 아니겠죠. 막상 그 현장을 목격하면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차마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심 때문에 고기를 못 먹게 되니 푸줏간을 멀리하는 건데 이것은 뭘 설명하려고 한 것이냐면 인간이 측은지심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로 이렇게 자기 주변에 제일 가까이 있는 존재로 부터 발현될 수 밖에 없다. 그게 인간의 실존적 삶의 모습이고 인간관계의 모습이다. 가장 친한 사람이 양친이잖아요, 친친(親親). 그래서 가장 친한 양친에게 이런 측은지심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많이 실현할 수 밖에 없다고 본 거예요.
내레이션: 이 이야기는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브라이언 노든: 명자는 소에게 가졌던 그 마음, 측은지심을 백성들에게 확장시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진정한 왕이 될 것입니다. 맹자의 요점은 동물들에게 친절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소에게 보인 측은지심이 백성들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양궈롱: 이러한 연민의 마음, 불인인지심 (不忍人之心)을 정치에 활용하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어진 정치, 인정(仁政)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이양역우(以羊易牛)의 일화는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연민의 마음을 출발점으로 해서 어진 정치를 하는 정치적 이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내레이션: 좋은 정치의 기초도 결국 공감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이죠. 반면,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 그의 애첩 달기의 일화는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잔인한 자의 폭주를 보여줍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군으로 불리는 주왕의 문제점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오히려 두뇌가 명석하고 재능과 체력이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습니다. 주왕과 달기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형벌을 내렸습니다.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칠한 달구워진 구리기둥을 얹은 다음, 죄수들을 걷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거워 했죠.
양궈롱: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뜨겁게 달군 쇠를 몸에 대면 어떤 느낌일까요? 측은지심이 있다면 그런 형벌을 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주왕은 측은지심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두웨이밍: 잔혹한 형벌을 많이 시행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매우 위험한 인물입니다. 이들이 측은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습니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는 겁니다. 혁명이란 이와 같이 측은지심이 없는 군주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맹자는 의심을 받습니다. 어떻게 신하가 군주를 죽일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주(紂)왕과 걸(桀)왕 역시 군주였지만 결국 신하에게 살해 당했습니다. 이때 맹자가 무척 중요한 대답을 합니다.
맹자: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 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잔적한 사람을 일개 필부라 이르니 일개 필부인 주(紂)를 주살했다고는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고는 듣지 못했습니다.
내레이션: 맹자가 만났던 또 다른 임금인 양혜 왕과의 대화도 임금의 측은지심 혹은 공감능력에 대한 맹자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안핑 친/예일대 역사학과 교수: 오랫 동안 왕위를 지킨 양혜 왕은 야망이 컸습니다. 오랜 기간 위나라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똑똑한 왕이었지만 과한 욕심을 부렸습니다. 말년에 양혜왕은 여러 큰 전쟁에 뛰어듭니다. 패배의 와중에 전장에서 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맹자가 만난 양혜왕은 애처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스티븐 앵글: 양혜왕은 자신이 좋은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맹자에게 말하기를 한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에 식량을 배급하거나 양식이 넉넉한 곳으로 백성들을 이주시킬 겁니다. 주변의 다른 왕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른 왕들에 비하면 자신은 훌륭한 왕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이 더 승승장구하지 못 하는지 묻습니다.
내레이션: 맹자는 대답합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병사 하나가 탈영해서 도망을 갑니다. 백 걸음을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병사가 탈영을 합니다. 한 50 걸음쯤 도망가다가 앞선 병사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두번째 병사가 첫번째 병사에게 소리 칩니다. 야~ 비겁한 놈아~ 맹자는 말합니다. 두 병사에게 차이가 있습니까? 당연히 없죠.
스티븐 앵글: 도망친 거리가 아니라 달아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양혜왕이 주변의 다른 왕들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군사적 성과를 바란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왕을 칭송하는 것은 오십보 달아난 병사를 칭찬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양혜왕은 다른 왕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레이션: 맹자는 덧붙입니다. 효과를 보려면 백성들이 왕을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왕께서 말씀하신 애민정책이란 결국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게 목적입니다. 왕께서는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고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왕을 믿지 못하니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공자가 이야기한 백성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치란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는 지도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참혹한 이 세상도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두웨이밍: 유가 사상의 특징은 입세(入世), 즉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곳이 우리의 생명의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의 게임의 규칙과 권력 구조와 불합리환 현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세상을 등져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새와 짐승과 무리 지어 함께 살 수는 없다. 사람을 위해 애통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애통하겠느냐 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 인간이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바로 인간을 통해서 입니다. 인간이 자각을 통해 제도를 도입하고 새로운 가치와 지원을 창조하여 인류사회의 안정과 인간 존재의 미래와 번영을 지켜내야 합니다.
로저 에임스: 하지만 우리는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국제적 테러리즘, 식량과 물부족, 그리고 인구 폭발의 시대입니다. 모두 측은지심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중국이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측은지심을 갖고 다른 문화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됩니다. 상생하는 것입니다. 독자적으로 행동하면 승자와 패자가 생깁니다. 이 상황에서는 모두 패자가 됩니다.
내레이션: 돌이켜 보면 공자의 삶도 패배의 연속이었습니다. 고향인 노 나라를 떠나 자신의 꿈을 받아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지만 공자는 결국 상갓집 개라는 조롱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은 것은 아무리 참혹한 세상이 온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공감하는 마음만은 끝내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끝. (EBS 다규프라임 제자백가, 절망을 이기는 철학 1439회 공자,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 에서 정리).
① 기원전 771년, 주 유왕의 죽음과 함께 춘추전국시대가 시작된다. 기존의 가치도 무너지고 전쟁이 일상화 하면서 약자의 삶이 철저히 짓밟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절망과 어둠은 오히려 새로운 생각에 밑거름이 된다. 절망적이기에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희망을 찾아나선 이들, 세상의 고통에서 눈 돌리지 않고 짓밟히는 이들의 편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사람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생각의 폭발을 보여준 그들을 우리는 제자백가라 부른다. 기원전 517년, 공자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고향인 노 나라를 떠나 제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여인의 울음소리를 따라간 공자 일행은 무덤 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한다. 공자가 제자인 자로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했다. 여인의 사연은 기구했다. 여인 말했다. 이곳에는 사나운 호랑이가 살고 있다. 그 호랑이가 저희 시아버님을 죽여서 저는 시아버님을 위해 울고 있다. 그 후엔 호랑이가 제 남편을 죽여 저는 남편을 위해 울고 있다. 그 다음엔 호랑이가 제 아들을 죽여서 저는 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자가 물었다. 왜 여기를 떠나 호랑이가 없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않는가? 그러자 여인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가혹하고 악독한 정치가 없기에 저는 이곳에 산다.
② 공자가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말한다. 잘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무섭다. 공자의 고향인 노 나라의 옛 수도는 현재 곡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곳곳에 공자의 동상이 남아있고 아직도 공자에 대한 제사가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이 이곳이 공자의 고향임을 증명하고 있다. 인류의 4대 聖人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공자는 지금도 아들인 백어, 손자인 자사와 함께 이곳 공림에 묻혀 있다. 그리고 공자의 뛰어난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자공이 6년간 스승의 묘소를 지켰던 자리도 남아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무척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사업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다. 또한 공자의 제자들 중 그는 정치적으로도 많은 활약을 보였고 그 영향력도 상당히 큰 편이었다. 제자들 중 자공은 특히나 뛰어났다. 그는 종종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다. 공자는 병사, 즉 군사력과, 식량, 즉 경제력, 그리고 백성의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부득이 하게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냐고. 공자는 먼저 군사를 버리거라. 다음으로 경제를 버리거라. 예부터 사람은 모두 다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다.
③ 인간이 서로를 믿을 수 없고 또 백성이 나라를 믿을 수 없다면 그런 사회는 망하는 수 밖에 없다. 공자가 초점을 둔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면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는데 공자가 생각할 때는 그게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거다. 왜냐하면 한 나라만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할 테니까. 그렇다면 군사력과 경제력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공자가 좀더 깊이 생각한 것은 뭐냐 하면 경제력과 군사력 이외에 더 나라를 사랑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뭘까 했을 때 신뢰라든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소통과 공감 이런 것들에 대해서 공자가 비중을 두었다. 신뢰, 하지만 때는 난세였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명백한 약탈과 살육조차 승자의 정당한 권리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弱肉强食의 세상이 되면 통치자들은 백성을 富國强兵을 위한 수단으로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당연히 백성들도 살아남기 위한 生存競爭 속에 오로지 증오심만을 키우게 된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인간적인 관계는 모두 파괴된다. 이런 참혹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까. 아니~ 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인간들 중엔 과연 믿을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④ 늠늠한 장부가 한 사람 있었다. 出將入相, 전장에 나가서는 장수요 돌아와서는 재상이라는 말은 아마도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그를 특별히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다. 여자에게 그는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전투에서 그는 어이 없이 참패를 당했다. 진노한 임금은 그의 두 다리를 잘라버리는 월형을 가했다. 몸도 불구가 된 것이다. 찬란했던 순간은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남자는 이제 불구의 몸으로 가난과 싸우며 평생을 보내야 한다.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해 보라. 과연 여자는 남자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이제 대답을 듣기 전에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사실 한 가지를 더 알려 드리겠다. 여자는 그 남자의 어머니였다. 여자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안 순간 아마 많은 분들의 의견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같은 대답이라고 하더라도 대답의 강도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누구도 어머니의 사랑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명확하다.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사랑은 인간의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감정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그 자체로도 매우 깊은 도덕적 가치가 있다. 우리는 사랑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배운다. 만약 아이를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동안 격리 시키면 이 아이는 사회적으로 위태로울 수 있다. 아이들은 사랑받아야만 하고, 사랑 받으면서 사랑을 배운다. 가족관계는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출발점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은 아들, 딸이 되는 것이다. 좋은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가족과 관련이 있다. 물론 나중에는 가족을 넘어선다. 좋은 친구나 좋은 백성, 군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좋은 시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 다른 새로운 관계들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공자는 항상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⑥ 이렇게 공자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인 부모의 자식사랑에서 그리고 그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식의 감사하는 마음에서 파괴된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에 대한 신뢰를 되찾을 가능성을 본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땅에는 자식에게 가혹한 부모도 있기 마련이다. 욕망에 눈이 멀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기원전 408년 위 나라는 중산국에 대한 전쟁을 시작한다. 위 나라의 장군은 악양이었다. 그는 이름없는 시골 선비였던 자신을 장군으로 임명한 위 나라의 임금 문후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하겠다는 결의로 가득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하지만 약소국이었던 중산국은 한창 팽창하고 있던 위 나라의 군대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악양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다. 그의 아들인 악서가 바로 적국에 있었다. 중산국의 왕은 악양에게 군대를 돌리지 않으면 악서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악양의 대답은 단호했다. 개의치 않겠다. 죽일테면 죽여라. 아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이 통하지 않자 중산국에서는 더 강력한 수단을 들고 나왔다.
⑦ 중산국은 악양의 아들을 포로로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 아들을 죽인 후 국을 만들어 아버지인 억양에게 보낸 것이다. 이 잔혹한 행위에 대한 악양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의 행동은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아들의 고기로 끓인 고깃국을 단숨에 들이킨 것이다. 결국 아들의 고깃국까지 먹어가며 결연한 의지를 보인 악양의 공격에 중산국은 패배한다. 아마 악양은 스스로의 행위를 大義滅親, 즉 큰 일을 위해 가족까지 희생한다는 논리로 정당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산국을 정복했다는 소식에 위 나라 임금이었던 문호는 크게 기뻐했다. 위 문호가 신하인 도사찬에게 말한다. 악양이 나를 위해 제 자식의 고기를 먹었소. 그러나 신하의 대답은 차가웠다. 제 자식의 고기까지 먹을 정도라면 누군들 먹지 못하겠습니까. 유가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봤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악양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없는 사람이다. 앞서 유가는 가족관계를 무척 중시한다고 부자자효(父慈子孝)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관계다. 자식을 먹는다는 것은 악양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 기본적인 가족관계를 일체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이 아닌 거다. 욕심의 화신이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악마다. 그 악마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다. 아마 부인의 고기도 먹을 수 있고 부모의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욕심을 채우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세상은 악마의 세상으로 바뀐다. 굉장히 무서운 세상이 된다. 걱정이 된다. 비판할 수 밖에 없다. 국가에 충성했다는 것은 핑계일 뿐인데 그것에 속으면 안 된다.
⑧ 악양의 예가 아니더라도 욕망에 눈이 멀면 인간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조차 잔인한 짓을 하곤 한다. 춘추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식을 살마서 권력자에게 바치거나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해 가족을 돌보지 않은 자들이 속출했다. 이것은 공자에게 있어서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이었다. 가족조차 사랑하지 않은 인간은 구제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원전 5세기초, 공자는 노 나라에서 지금으로 보면 법무부 장관쯤에 해당하는 대사구의 벼슬에 있었다. 이때 특이한 소송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고발한 것이다. 당시 실권자였던 계환자는 不孝莫甚한 아들을 잡아 죽여서 一罰百戒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자의 반응은 의외였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어찌 살인을 하려고 하십니까. 당신이 선을 원하면 백성도 선해집니다. 공자는 오히려 父子를 같은 감옥 안에 가두어두고 3개월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소송을 건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다. 공자가 3개월간 옥에 가두고 거들떠 보지 않은 이유는 부자간 소송은 시비를 가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옳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고, 반대로 아들이 옳고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 소송사건을 곧 바로 처리하지 않고 무관심한 듯이 몇 개월 동안 옥에 가두어 뒀는데, 그 사이에 부모가 마음을 바꿔서 내 자식은 나의 거울과 마찬가지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소송을 철회했고 몇 개월 뒤에 공자가 그들 둘 사이에 분란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사면하고 석방을 했다.
⑨ 당시의 실권자였던 계환자는 공자가 입으로는 孝를 이야기 하면서 不孝子를 벌하지 않아 자신을 속였다고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공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자에게는 아버지와 다툰 아들에게 형벌을 내려서 정의를 바로 잡는 것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가족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공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부모 자식 간의 기본적인 애정의 감정, 이것을 지킬 수 없으면 그것에서 확장된 이웃이나 마을의 타인 관계, 국가의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 백성들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상실된다고 우려했던 것 이다. 부모 자식 간의 애정조차도 지키고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 공동체 내에서 타인과 살아갈 때 분란이나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그 사람을 용서하거나 이해하거나 용납함으로써 같이 살아갈 수 있겠느냐, 그 시작점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켜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모범을 후대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결국 가족은 출발점이다. 그리고 호수의 동심원이 퍼지는 것처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 인간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함께 물방울이 되어 호수에 내린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 곧 대동사회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야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과연 이것 만으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⑩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확장이 가능한 걸까. 공자와 자공의 또 다른 대화에서 우리는 공자가 제시하는 대답을 찾아볼 수 있다.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원칙에 대해 물었다. 공자의 대답은 서(恕)였다. 공자는 서(恕)를 말씀하셨는데 서는 구체적으로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을 뜻한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을 합한 글자다. 즉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비교하는 것이다. 질문을 한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유학자들은 恕를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공감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서 괴로움이나 고통, 걱정을 느낀다면 관련이 있다. 또는 서를 공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단순히 머리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상대가 처한 상황을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중요한 개념이라고 본다.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도덕적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공자는 서, 즉 공감이라는 인간의 능력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이기심을 넘어서고자 했다.
⑪ 그리고 공자의 뒤를 이어 인간의 공감능력을 자기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은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철학자가 등장한다. 孟子다. 우선, 맹자가 전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어린 아이가 있다. 사랑스럽다. 아마 나비를 잡으려는 것 같다. 아~ 이런~ 앞에 있는 우물이 안 보이나 보다. 큰 일이 날 것 같다. 맹자는 서구 철학 용어로 사고실험을 이용했다. 갑자기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 아이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놀라고 惻隱之心을 느낄 것이다.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함이 아니다. 우물에 빠진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직접적인 감정이자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보이게 되는 반응이다. 맹자는 이와 같은 직접적인 반응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어떤 비극이나 차 사고를 목격했을 때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설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영향을 받고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때문에 맹자의 惻隱之心과 공자의 恕는 사실상 같은 개념이다. 그게 뭐냐하면 人類愛 라는 거다. 내가 저 사람과 관계가 없다고 해도,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기본적인 조건에서 박탈됐을 때 당하는 그 고통에 내가 그러한 고통에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이 惻隱之心이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과해서는 안 된다 라는 恕의 논리와 연결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이 공감하는 마음은 단지 인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⑫ 어느날 제나라 선왕이 정자에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소가 한 마리 울며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된다.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흔종에 제물로 쓰려고 합니다. 釁鐘은 종을 주조할 때 희생의 피를 바르는 종교적 의식, 왕은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소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놓아주어라, 벌벌 떨며 죄없이 끌려가는 모습을 나는 차마 볼 수 없구나. 그러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지?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 그리 하겠나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불쌍하기로 따진다면 소만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겠는가. 제나라 백성들도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이다. 사실은 소보다 양이 값이 싸서 바꾼 것이라고 왕이 참 인색하다고 소문이 났다. 하지만 맹자의 생각은 좀 달랐다. 상심하지 마시오, 이것이 곧 仁의 방법이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자는 금수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 죽는 모습은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죽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는 먹지 못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이다. 군자들은 푸줏간에 가지 말고 모르는 척하면서 고기를 잘 먹어라. 마음의 주저 없이 먹어라. 이런 말을 하고자 한 거냐? 그런 것은 아니다. 막상 그 현장을 목격하면 고기를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차마 불쌍하게 여기는 동정심 때문에 고기를 못 먹게 되니 푸줏간을 멀리하라는 건데 이것은 뭘 설명하려고 한 것이냐면 인간의 측은지심을 실현하는 방법이 바로 이렇게 자기 주변에 제일 가까이 있는 존재로 부터 발현될 수 밖에 없다. 그게 인간의 실존적 삶의 모습이고 인간관계의 모습이다. 가장 친한 사람이 양친이다, 친친(親親). 그래서 가장 친한 양친에게 이런 측은지심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많이 실현할 수 밖에 없다고 본 거다.
⑬ 이 이야기는 또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다. 명자는 소에게 가졌던 그 마음, 측은지심을 백성들에게 확장시키라고 말한다. 그러면 진정한 왕이 될 것이다. 맹자의 요점은 동물들에게 친절하라는 것이다. 왕이 소에게 보인 측은지심이 백성들에게 향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연민의 마음, 불인인지심 (不忍人之心)을 정치에 활용하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어진 정치, 인정(仁政)을 펼칠 수 있다. 이양역우(以羊易牛)의 일화는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연민의 마음을 출발점으로 해서 어진 정치를 하는 정치적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좋은 정치의 기초도 결국 공감능력에 달려있다. 반면, 은 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과 그의 애첩 달기의 일화는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잔인한 자의 폭주를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폭군으로 불리는 주왕의 문제점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오히려 두뇌가 명석하고 재능과 체력이 뛰어나 맹수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다. 주왕과 달기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포락지형(炮烙之刑)이라는 형벌을 내렸다. 불구덩이 위에 기름을 칠한 달구워진 구리기둥을 얹은 다음, 죄수들을 그 위에서 걷게 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거워 했다. 한번 상상해 보라. 뜨겁게 달군 쇠를 몸에 대면 어떤 느낌일까? 측은지심이 있다면 그런 형벌을 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주왕은 측은지심이 부족한 사람이다. 잔혹한 형벌을 많이 시행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이들이 측은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이란 이와 같이 측은지심이 없는 군주를 없애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맹자는 의심을 받는다. 어떻게 신하가 군주를 죽일 수 있느냐. 주(紂)왕과 걸(桀)왕 역시 군주였지만 결국 신하에게 살해 당했다. 이때 맹자가 무척 중요한 대답을 한다.
⑭ 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 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한다. 잔적한 사람을 일개 필부라 이르니 일개 필부인 주(紂)를 주살했다고는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고는 듣지 못했다. 맹자가 만났던 또 다른 임금인 양혜 왕과의 대화도 임금의 측은지심 혹은 공감능력에 대한 맹자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오랫 동안 왕위를 지킨 양혜 왕은 야망이 컸다. 오랜 기간 위나라 왕으로 군림했다. 그는 똑똑한 왕이었지만 과한 욕심을 부렸다. 말년에 양혜왕은 여러 큰 전쟁에 뛰어든다. 패배의 와중에 전장에서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 맹자가 만난 양혜왕은 애처로운 인물이었다. 양혜왕은 자신이 좋은 왕이라고 생각했다. 맹자에게 말하기를 한 지역에 흉년이 들면 그곳에 식량을 배급하거나 양식이 넉넉한 곳으로 백성들을 이주시킬 거다. 주변의 다른 왕들은 이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왕들에 비하면 자신은 훌륭한 왕이다. 그런데 왜 자신이 더 승승장구하지 못 하는지 묻는다. 맹자는 대답한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예를 들겠다. 전쟁터에 나간 병사 하나가 탈영해서 도망을 갔다. 백 걸음을 달아났다. 그런데 또 다른 병사가 탈영을 한다. 한 50 걸음쯤 도망가다가 앞선 병사를 발견했다. 그러나 두번째 병사가 첫번째 병사에게 소리 친다. 야~ 비겁한 놈아~ 맹자는 말한다. 두 병사에게 차이가 있나? 당연히 없다. 도망친 거리가 아니라 달아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양혜왕이 주변의 다른 왕들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군사적 성과를 바란다는 점이 근본적인 문제다. 잘못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왕을 칭송하는 것은 오십보 달아난 병사를 칭찬하는 것과 같다. 사실 양혜왕은 다른 왕들과 다를 바가 없다.
⑮ 맹자는 덧붙인다. 효과를 보려면 백성들이 왕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왕께서 말씀하신 애민정책이란 결국 백성들을 전쟁터로 내모는게 목적이다. 왕께서는 백성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고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이 없다. 그러니 백성들이 왕을 믿지 못하니 효과가 없는 것이다. 결국 공자가 이야기한 백성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정치란 백성의 고통에 공감하는 지도자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참혹한 이 세상도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유가 사상의 특징은 입세(入世), 즉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이곳이 우리의 생명의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의 게임의 규칙과 권력 구조와 불합리환 현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변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세상을 등져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새와 짐승과 무리 지어 함께 살 수는 없다. 사람을 위해 애통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 애통하겠느냐 라는 말이 있다. 나는 한 인간이고 그렇다면 무엇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바로 인간을 통해서다. 인간이 자각을 통해 제도를 도입하고 새로운 가치와 지원을 창조하여 인류사회의 안정과 인간 존재의 미래와 번영을 지켜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최악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국제적 테러리즘, 식량과 물부족, 그리고 인구 폭발의 시대다. 모두 측은지심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다.
⒜ 우리는 인간이 상호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한국, 중국이 단독으로 지구 온난화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함께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측은지심을 갖고 다른 문화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된다. 相生하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행동하면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이 상황에서는 모두 패자가 된다. 돌이켜 보면 공자의 삶도 패배의 연속이었다. 고향인 노 나라를 떠나 자신의 꿈을 받아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지만 공자는 결국 상갓집 개라는 조롱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런 조롱에도 불구하고 공자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은 것은 아무리 참혹한 세상이 온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공감하는 마음만은 끝내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