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20 ㅡ
유민미술관 (건축여행2) (사소)
유민미술관은 제주 서귀포 섭지코지 휘닉스파크안에 위치해 있다. 언뜻 보면 거의 존재감이 없을 정도로 입구만 겨우 보일뿐, 평지에서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 완만한 오름 능선과 바다가 이어지는 곡선의 평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낮은 모습으로 숨은 듯하다. 설계자의 제주 지역과 지형의 고유성한 생태를 존중하는 건축 철학은 단단하게 채워진 방문자의 마음의 빗장을 슬그머니 열게 한다. 가을날 평일 사람이 많지 않은 날을 골라 미술관 입장권을 끊고 들어갔다.
들어서자 필로티의 세개의 기둥.
그 안으로 들어오는 제주 가을 하늘과 억새.
마치 응접실처럼 조용하다.
단절된 벽을 따라 들어간다.
고요하게 숨겨진 전혀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시야가 휑하다.
낮은 제주의 야생 정원 공터에 풀과 억새가 넓고 파아란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흔들릴 뿐이다.
'미술관은 어디 있을까?'
현무암 돌담이 바깥 세계를 완전히 가려 먼 오름만 막막히 보일 뿐이다. 갈대와 억새 사이 현무암 판석위를 걷다보면 엘리베이터 박스 같은 작은 백색 구조물이 저기 보인다. (지하에 빛을 끌어당기는 창)
다시 막아선 벽과 네모난 입구.
이제는 양쪽 사선 지붕을 타고 흘러 담으로 떨어지는 물의 세계이다. 검은 벽을 타고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물소리만이 또 한 층의 세계로 진입함을 알린다. 물의 커튼을 통과한다.
그 끝 정면.
가지런한 더 높은 먹빛 벽이 막아선다.
가운데 오로지 가로로 뚫린 사각 프레임에 성산일출봉과 바다만을 담아 놨다.
안도 다다오는 노출콘크리트 대신 제주의 바람과 습기가 밴 먹색 현무암을 이용해 한국의 제주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또한 방문자를 요란하게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 앞에 '공허'를 세우고 비워냈다. 그 후 무채색 벽. 담. 문으로 한동안 외면하고 대신 침묵하게 하였다.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덧 기쁨도 슬픔도 없는 무념 무상의 수도자가 된 것 같다.
막고 트면서 방문자에게 직선의 불편을 권장하는 건축가는 외부를 차단하고 담앞에 머물게하고 수직으로 압도했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좁고 낯선 길을 걷게 했다. 직선의 벽은 비로서 트여 하늘이거나 구름이거나 그림자. 그리고 성산 일출봉 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미술관으로 진입할수록 하늘만 남긴 채 점 점 어두운 세계로 인도했다. 절제는 마음을 번잡함에서 멀어지게 하고 고요하게 한다. 그리고 한 층 한 모퉁이를 걸어 내려갈수록 다섯 자 아홉 자 돌담은 높아지고 사람은 깊어진다. 오로지 검은 벽에 기대고 그림자에 의지하여 안식한다.
갇힌 곳에서 올려다본 하늘.
바람은 흔적이 없다.
가슴이 잠시 웅장해지고 담담해진다.
고요해진다.
숙연해진다.
전시장 안에는 유민 홍진기님이 평생 수집한 프랑스 북동부 중심으로 일어난 아르누보 낭시파 유리공예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에밀 갈레. 가브리엘 아르지 루소 등의 덩굴식물이나 담쟁이로 형상화된 작품이 어두운 곳에서 유려한 곡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데 덴마크 건축가 요한 칼슨이 전시를 설계했다 한다. 그런데 나뭇잎이나 포도 꽃 등 장식성이 강한 아르누보의 곡선은 주로 직선과 무장식미의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조응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치 유리공예들이 억지 참선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기교나 화려함이 갇혀버린 꼴이랄까? ( 작품의 역사적 가치와 무관한 장식을 선호하지 않는 필자의 미의식이 많이 개입된 사견일 가능성도 있다. ) 왜 미술관만이 존재하는 느낌인지 설명할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았다.
전시회를 본 후 돌아와 설계 전공자에게 답사 후 느낌을 털어놨다.
“ 안도 다다오가 유민 전시물을 고려하지 않았던 느낌인데 안도가 잘못한 걸까요? ”
그랬더니 전공자분은 이리저리 생각하시다가
“아마 안도가 잘못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였다.
'그럼 왜일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검색으로 찾아본 정보에서 그 의문이 조금 풀렸다. 원래 안도 다다오가 2008년 지니어스 로사이라는 명상센터로 설계해 사용된 곳인데 2017년 유민 홍진기 님이 유리공예품 컬렉선 상설 전시관으로 바꾸면서 유민 미술관이 되었던 것이다.
미술관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 묵언 수행을 걷는 수도사의 길, 걷는 불편함으로 속세의 고민을 덜어내는 치유의 길로 느껴졌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요한 미술관, 제주의 빛 물 바람 침묵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유민 미술관에서 한나절 머물러 보시길 권한다.
※ 이후 유민 홍진기에 대해 알아보니 중앙일보 회장 홍석현의 아버지다. 맏딸 홍라희는 이건희의 부인이 되었다. 홍진기는 4.19혁명 때 계엄령을 건의하고 시민에게 발포를 결정한 내무부장관으로 한국 현대사의 굴절에 기여한 인물이다. 안도 다다오 '빈자의 건축'이 우리나라 부자의 자본으로 올려진 모습이다.거개의 예술이 소유의 역사이려니...사전 정보를 모르고 간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민미술관 #제주 미술관 #안도다다오 #제주여행
첫댓글 안도와 유민의 어색한 만남이네요.
어울리지 않음을 발견한 사소님의 식견이 놀랍습니다!
ㅎ 아마츄어의 개인적인 느낌이라 조심스럽구요. 전문가는 어찌 보실지 궁금한데 이걸 말해주시는 분이 없는데 언젠가 기회가 오면 좋겠어요.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유민 미술관, 안도 타다오라는 명성에 눌리지 않으려고 심드렁하게 들어섰다가, '아~!'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