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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그 이후의 은혜
누가복음 17:11~19 I.
그 다음엔 16세기 성자로 불려지던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가 당시 명문대학 컨티넨탈대학 교정에서 한 법과대학생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네리가 이 학생에게 묻습니다.
학생은 왜 법과대학에 들어왔는가?
법학박사가 되고 훌륭한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리며 살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몇 번의 질문이 흘러간 다음에 말 문이 막혀버리고 말았습니 다.
저도 죽겠네요.
그 다음은?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이 학생이 오히려 필립 네리에게 묻습니다.
교수님 그 다음에 저는 어떻게 될까요?
복음을 전하고 인생을 논하게 됩 니다.
청출어람.
이 학생이 네리의 제자가 되어서 16세기에 또 다른 성자 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열 명의 나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병이 낫고 기적을 맛본 다음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가?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고 혹은 고난을 견뎌내고 질병으로부터 놓임 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그 다음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느냐?
은혜 입은 그 이후 의 더 큰 은혜를 아는가?
오늘 설교 제목이 “은혜, 그 이후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다음에 여러분은 어찌 되었습니까?
병이 놓임 받음 다음에 여러분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습니까?
제직이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 항존직 직 분자가 되었습니다.
기름부음을 경험한 다음에 여러분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고 있습니까 하는 도전입니다.
병원 엠블란스 구급차를 운전하는 젊은 집사님이 계십니다.
걸핏하면 불 평입니다.
위험한 운전을 감당해야 하는 일 자체가 불만스럽기 짝이 없습 니다.
위험수당이 적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어느날 둘째 아기가 태어났습 니다.
간호사가 아기 손가락을 셉니다.
하나 둘 셋 넷...열. 발가락을 세 어서... 열. 아이가 정상이예요.
당연한 말이 어쩌면 그렇게 감사한지 눈물 이 핑 돌았습니다.
자신에게 감사한 것이 많은데 불평했구나.
그리고 생 각해 보니 감사해야 되는데 불평했구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는 시간에 원망했구나.
자신에게 감사한 것이 너무나도 많이 있었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병원에 내려놓으며 발을 동 동 구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온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피투성 이가 된 채 실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작은 병원에서 더이상 자신이 없다고 포기해 버린 환자를 큰 병원으로 옮겨주면서... 그러고 보니 하루하루가 감사이고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II. 본문 :
받은 은혜 안고 예수께로 오늘 본문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어느 구석진 마을에 나환자들이 모여 살고 있 었습니다.
대부분 유대인들인데 평상시 같으면 상종도 하지 않았을 사마리아 사람 도 한 사람 끼어 있었습니다.
동병상련일까요?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입니다.
달려 나왔습니다만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나병 환자들이 일반사람들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저만큼 일반인들이 오면 입에 손을 대고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면서 그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자기 자신이 나환자란 사실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2-3)
이 한마디 말 속에 피맺힌 한이 서려 있습니다.
이 나환자들의 고통이 서려 있습 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병입니다.
보고싶은 가족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 습니다.
저주받은 병으로 취급되어졌습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치료의 길 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희망이, 꿈이 산산조각이 났 습니다.
미래가, 용기가 다 부서졌습니다.
예수께서 이 고통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
간혹 기적적으로 나병이 낳았을 때 그것을 확인해 주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가 서 보이라” 이 얼마나 애매한 말씀입니까?
병을 고쳐 주시겠다는 건지 고쳐주지 아니하시겠다는 건지?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지만 열 명의 나환자들이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 죽으리 라 배짱과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14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부르짖을 때에도 나환자입니다.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이때도 나환자입니다.
용기를 내서 가보자.
걸 어가는 그 순간에도 나환자입니다.
마음속에 내적인 갈등을 이겨내고 가다가 깨끗 함을 받았다. 그 얘기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한센씨 병이 나았다는 건 그 당시엔 죽음의 자리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저주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자리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했느냐?
그 다음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를 입습니다.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때 위기가 있습니 다.
병만 낫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은혜를 입고 그 다음에 은혜를 모르고 살 아간다면 그건 은혜가 아닙니다. 더 큰 저주일 수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노력하고 지혜를 얻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자 되어서 돈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주님을 놓쳤습니다.
그것을 어찌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여기 감사하며 돌아왔던 이방인 한 사람만이 기적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 다.
이 땅에서 병고침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된 것입니다.
땅의 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이 땅에서 어떤 은혜, 어떤 축복, 어떤 기적을 경험하든지 그 모든 것 들 품에 안고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린 그 축복, 기적, 주님께로 돌아와야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신학자들과 무신론자 니이체가 “하나님 죽음의 신학”을 놓고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 다.
신학자들의 입을 막아버린 니이체의 말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니 성경속에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계시더라. 예수님이 계실 때에 예 수님 곁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더라.
온 우주를 보니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이 죽은 것이 분명하다.
예수 믿 는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을 지팡이 정도로 생각하더라는 겁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겪고 병들고 상처입고 쓰러지고 넘어져 예수를 지팡이처럼 의지 하다가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 응답받은 다음에는 절대자가 필요하지 않 으면 지팡이를 버리듯이 믿음을, 진리를, 예수를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 사람들, 큰 복을 받았다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니 다른 바가 별로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니 하나님이 계셨다면 누군가 하나님을 죽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III. 그 아홉은 어디로?
병만 고침 받고 도망간 아홉 명의 유대인들도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 소서”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실 때 에 제사장을 찾아갈 용기도 뱃장도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 나은 이후에 한 사람 이방인처럼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기 전에 이 사마리아인이 아홉 명 유대인에게 권면하지 않았을까요?
뿔뿔이 제 갈길 가는 사람들을 보고 이보시오.
우리 몸이 나았어요. 우리 몸이 깨 끗해졌어요.
우리를 고쳐주신 그분께 가서 감사해야 되지 않을까요?
나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갑시다. 감사드립시다.
권면하지 않았겠어요.
병이 나은 다음 아홉 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다음에 그들이 뭘 했을까요?
동 일한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다른 본문을 아무리 뒤 져보아도 이 아홉 명이 돌아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이 없습 니다.
하나님은 성경은 은혜를 잊고도 감사치 않고 각자 제 길로 간 이 사람들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기록은 아무런 가치 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오래전에 이 본문으로 성경공부를 하다가 짓궂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홉 명이 어디 갔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① 정말 나았는지 며칠 기다려 보자. 재발이 안 되어야 나은 것 아니겠는가?
경과 를 지켜본 다음에 찾아가 감사를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감사는 즉시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먼저 하는 것입니다.
따지 고 곱씹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② 이 몸을 가지고 예수님께 갈 수 없지 않느냐.
집에 가서 목욕하고 새 옷 입고, 계란 줄이라도 사 들고 예수님께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자. 생각했을 것입니다. 감 사는 격식이 아니고 즉각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③ 그분이 말씀 한 마디 했다고 깨끗이 나았겠어?
그런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거야.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부지런했잖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언덕에 올라 가서 운동도 했지, 쑥도 제일 많이 캐 먹었지. 민간요법이란 요법은 다 해봤지.
이 게 다 효험이 거기에 있어서 그랬을 거야.
모든 찬양을 민간요법과 자기의 노력에 돌리고 맙니다.
④ 예수가 한게 뭐 있나?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 그거 누가 못해. 감사 까지 할게 뭐 있겠어.
그 자리를 떠난 겁니다.
⑤ 제사장에게 가 보이라 말씀하신 것은 신분의 보장을 받으라는 얘기인데 출세 한 다음에 가야지. 성공한 다음에 명함도 근사하게 찍어서 어깨에 힘 좀 주고 가 야 되지 않겠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깨에 힘주고 하는 헌신, 하나님 앞 에 폼잡기 위해 하는 감사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⑥ 나병환자로 있을 때 상처 받은게 많습니다.
무시하는 사람, 돌 던지는 아이들, 배신한 친구들 일일이 찾아다니며 복수하다가 예수님께 가는 기회를 잃어버렸습니 다.
⑦ 제사장으로부터 고침받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펄쩍 펄쩍 뛰면서 야호! 야호! 소리를 지르며 동리에 들어갔더니 옛날 친구들이 반겨 맞아 줍니다. 그 친구들 손잡고 술집에 가서 똑! 한잔! 동창 금희 만나 똑! 한잔! 또 동창 명선이가 있어서 똑! 한잔! 그러느냐고 감사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⑧ 보고 싶은 사람 찾아다닙니다.
집에 갔다가 처갓집에 갔다가 외갓집에 갔다가 고모네 집에 갔다가 이모네 집에 갔다가.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생, 내일은 중학교 동창생,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들 여기저기 만나고 다니다가 예수님 만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⑨ 집에 들어갔더니 왠지 찬바람이 쌩~ 붑니다. 아내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습니 다.
건너 마을로 재혼해서 갔대요. 찾아갔더니 이사 갔대요.
도망간 아내 찾아다니 다가 예수님께 갈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성경에 없는 얘기이지요. 저혼자 그렇게 상상 해 본 것입니다만 얼마든지 있 을 수 있는 얘기아닙니까? 우선순위입니다. 먼저의 문제입니다.
IV. 믿음이 아닐 수 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우리가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믿음 아닌 가짜가 얼마든지 있 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선생이여 나 좀 고쳐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
부르짖는 것, 나병이 낫는 것 엄청난 기적, 예수님 만나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는다 하더라. 치유의 능력을 믿는 것 그것 믿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성경적인 지식도 얼마든 지 지식에 끝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 다. 중국 종교국에 신학박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 믿습니다. 교회 달려나와 부르짖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통곡하고 애원했습니다.
자기 한으 로 끝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와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 귀한 일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믿음, 진정한 은혜로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을지언정 눈 물 자체가 믿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선교사님이 서툰말로 설교를 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앞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선교사 님이 묻습니다. “할머니 제 설교 어디에 은혜가 되셨어요?”
할머니가 하 시는 말씀이
“선교사님의 눈을 보니까 며칠 전에 죽은 우리 고양이 생각 이 나서 내가 눈물을 흘렸노라고.” 여러분 교회 와서 울 때 자기 한이 서러움에 울고 끝날 수도 있다는 사 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통로를 주셨는데 거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지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신비적인 능력으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그 기 적! 그것으로 끝나면 허탕입니다.
내가 누리는 축복, 경험 그 이후의 은혜의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닫혔던 사업의 문이 열렸습니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것이 곧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은혜 그 이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병을 고침받은 은혜, 그 이후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감사하는 은혜였습니다. 예수께로 돌아와 칭찬받고 구원받은 은혜였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까지 가야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 그 이후의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일본의 우쭈무라 간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저주하실 때 질병과 고통, 실패와 아 픔으로 하시는게 아니라 그 영혼이 메마르고 거칠어져서 감사하지 않게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저주하고 진노하실 때,
로마서 1:21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마땅히 감사해야 되는데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게 저주라는 겁니다.
하 나님의 진노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딤후 3:1) 있을 터인데 개인적인 말세도 있고, 역사적인 말 세도 있습니다.
시대적인 말세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가 이 세상 사람들이 걱 정, 근심, 염려, 온갖 시름, 불평, 원망으로 꽉 차 있고 감사가 없는 시대가 오면 말 세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가다가 나도 모르게 내 영혼에 감사가 없습니다. 만사가 불평입니다.
모든게 짜증, 원망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사로 꽉 차도 모자랄 사람이 불평과 원망만 늘어놓고 있으면 인생 다 됐구나. 인생 말세구나.
그러면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딤후3:2의 말씀입니다.
가난할 때 돈 벌면 감사할 것 같은데 돈 있을 때 감사합니까?
지금 당하는 고난 이것 해결해 주면 감사할 것 같지요?
고난 오기 전에 감사했습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질병 이것 나으면 감사할 것 같지요?
그 병 없고 건강할 때 감사했습니까?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고난 가운데 질병 가운데 고통 가운 데 가난한 가운데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경우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기억하세요.
감사의 시제는 지금 이 시간입니다.
now in here.
지금 이 자리에서 드리는게 감사입니다.
환경 조건 달라지면 감사하리라. 가짜 믿음입니다.
V. 은혜를 아는 사람들의 삶 어거스틴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여기에 하나를 더하 라고 하면 나는 “감사”를 더하겠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감사는 항상 있을 것인 데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믿음”항상 있어야 됩니다. “소망”어떤 상황 속에 서도 있어야 됩니다. “사랑”어떤 상황속에서도 사라져서는 안된다. “감사”있을 것인 데... 할렐루야! 인생에 고난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이었습니다. 인생의 고난은 내 가 달라져 하나님을 평생 섬길 수 있는 복으로 가는 다리였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살아 얻은 복이 있습니다. 새벽형 인간 이 된 것입니다. 60년을 새벽에 일어나 남들보다 평생 하루 두 세 시간을 더 살았 습니다. 그 시간은 내가 공부하고 하나님 만나고 내 인생의 발전을 위해서 애쓰는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시간입니다. 왜 새벽형 인간이 되었을까요? 제일 먼저 새벽에 눈을 뜬 것은 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제가 어린 나이에 양계장을 했습니다. 새벽 4시만 되면 수탉이 웁니다. 그러면 부스럭거리고 일어나는 겁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에는 우리 집 앞에 논마지기들이 있었습니다. 천수답입니다. 위에서 도랑을 타고 물이 내려옵니다. 위에서부터 물을 댑니다. 새벽녘이 되어야 우 리집에 물이 도착합니다. 그걸 막고 우리 논으로 물이 흘러가게끔 해야 됩니다. 그 일은 제가 하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우리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일을 하시 니까, 또 하루종일 일하시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제가 하는 겁니다. 봄, 여름에는 물고를 관리하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습니다. ② 가을이 되면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감나 무가 없습니다. 가을이 되면 감홍시가 익어서 떨어집니다. 땅바닥에 떨어지면 홍시는 못 먹습니다. 짚더미에 떨어진 것, 지붕에 떨어진 것, 풀숲에 떨어진 것들을 새벽에 뛰어다니면 서, 담을 넘어다니면서 홍시를 줍는 겁니다. 어머니 밤늦게 공장에서 돌아오시면 배 고프실텐데, 우리 어머니 먹어야지. 나도 배고플 때 우리 엄마 걱정하지 않도록 내 가 홍시 먹었다고 얘기해야지. 우리집에 홍시가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홍시가 아 닌 것들은 놔두면 겨우내 홍시가 되어가면서 우리 집에 양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③ 겨울이 되면 우리집 앞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뻗어있습니다. 우리 마을 뒷동산에 소나무들이 큰소나무들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소나무가지 가 얼어요. 물이 흘러가니까 꽁꽁 업니다. 눈이 밤새도록 눈이 내리면 소나무 가지가 눈을 못 견디고 우지끈 부러져서 땅에 떨어집니다. 설해목입니다. 눈 내리는 날 부러진 나뭇가지 설해목입니다. 새벽에 어린아이가 일어나서 새해목을 새끼로 묶어서 어깨에 짊머지고 미끄럼타고 눈 타 고 집으로 끌어다 놉니다. 앞동산에서 뒷동산에서 설해목을 주워다 놓습니다. 마르 면 톱질을 하고 도끼로 쪼개놓습니다. 어린아이가 새벽에 일어나는게 습관이 된 겁니다. 6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고난을 하나님을 접촉하는 만남의 시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은혜 그 이후의 은 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도전합니다. 어떤 은혜를 경험했느냐. 병 나았느냐. 사업의 문이 열려졌느냐. 고난이 사라지더 냐. 남들이 갖지 못한 기적을 경험했느냐. 그 아홉은 어디 갔느냐. 병 나은 것만 감사할래. 구원받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느냐. 천국을 소유하지 않았느냐.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하느니라. 할 렐루야. 한 이방인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할 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9) 육신의 병도 고치고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천국까지 복으로 얻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바꿀 수 없는 것 얻어야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 말고 영원한 가치 얻 어야 이것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받은 가장 큰 은혜는 예수님을 얻은 복입니다. 세상 다 얻고 예수님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세상 다 잃고 예수님 얻었으면 다 얻은 것입니다. 영원한 복은 오직 예수 안에 있습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비참한 가정환경 때문에 불행과 가난에 이골이 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술, 담배를 가르쳐주던 이웃 형이 아버지 역할, 술선생, 담배선생이 되었습니 다. 이 형이 대학에 입학했다고 너덜너덜 해진 참고 도서를 갖다주었습 니다. 그 참고 도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보니 기독 교대학입니다. 전도를 받아 여학생 만나고 싶어 CCC 여름캠프에 참석을 했습니다. 재미있을 리가 없지요. 도망가다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 김준 곤 목사님의 설교를 듣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입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죄인입니다. 박사학위 10개를 가져도 똑똑한 죄인입니다. 낫놓고 기억자를 몰라도 무식한 죄인입니다. 미스코리아도 예쁜 죄인입니다. 아 무리 많이 가져도 부자죄인입니다. 거지가 되어도 가난한 죄인입니다. 이 한마디에 장애인 누나를 때린 일이 기억나 섬광처럼 지나가고 주마등 처럼 지나갑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합니다. 하나님 앞에 용 서해 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 사해서 CCC간사로 헌신합니다.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중국 땅을 찾아가 26년동안 복음을 전합니다. 목사가 되어 지금도 복음을 전합니다. 지난 목요일 이 자리에 섰던 이승제목사님 얘기 아닙니까? 여러분 지금 실패하고 계십니까? 실패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와서 주 님 만나면 그게 은혜입니다. 성공하고도 예수 잃어버리면 망한 겁니다. 성공하고 도 예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 성공을 주님께 돌려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는 죄를 짓고도 예수께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면 용서 받습니다. 그 죄가 은혜 이 후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돌아오면 더 큰 길 만들길 만들어지고 더 큰 기적이 여러분 앞에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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