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발상지 이집트는 국가 전체가 노천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유적이 많아, 일년내내 관광객들이 북세통을 이룬다. 이집트색은 황로색이다. 내가 이집드를 찾았을 땐, 해가 지중해를 강하게 두드려 대고 있었다. 바다위에 녹은 은같은 강렬한 빛을 통해,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교통질서는 엉망에 빵빵대는 경적소리, 버스 문은 열어 놓은 채 달린다. 창문을 올리면 땀이 줄줄, 코끝으로 넘어 온 매연은 기도를 거쳐서 폐로, 이내 내 새끼발가락의 모세혈관까지 닿는다. 호객꾼들까지 달라붙어 끈적인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이집트에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건 무리다. 이집트는 겨울과 여름 두 계절만 있다. 나일 강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 적도 부근에서 발원하여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를 흐르는 아프리카 최대의 강이다. 나일 강 상류에 올라가면 이집트 문명의 옛 도시가 즐비하다. 나일 강 크루즈를 올라 아스완의 팔레 신전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봉헌된 신전이다. 팔레 신전을 ’나일강의 진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1971년 아스완댐 건설로 ’아킬리아‘섬으로 이전하였다. 무더위 때문에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하여야 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아침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 빈속에 (5월엔 45도, 7-8월엔 더 오르는) 무더위를 마주하게 되면 일사병 초기 증상에 쇼크현상이 찾아 올 수 있다. 아스완 하이댐은 이집트의 젖줄이다. 이집트 국토 90% 이상이 사막, 불모의 땅이다, 나머지 10% 정도가 나일 강 유역이다. 메마른 이집트에서 보석 같은 존재이다. 팔레 신전을 시작으로 ’콤옴보‘ 에드푸 등의 소도시를 찾아들면 이집트를 지배한 파라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적들은 나일 강 6400km, 강변에 그리고 이집트의 삶속에 강건하게 공존한다. 강 위에는‘ 팔루카’라는 오트 배가 삼각돛을 세우고 미끄러지듯 물 위를 오가고, 저녁이면 강물이 핑크색으로 출렁거린다..
이집트 최남단 수단 국경 접경지역에 자리한 ‘아부심벨신전’도 아스완에서 출발한다. 아부심벨신전은 암굴신전으로 유적을 처음 발견한 목동의 이름이다. 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 왕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이집트 최대 규모의 유적이다. (크리스티앙 자킈의 ‘람세스’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콤옴보 신전은 악어와 매를 모신 곳으로 기원전 332년에 세워졌다. 악어의 머리를 한 ’소백‘은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나일강의 물과 홍수의 신으로 등장한다. 또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역시 신성한 하늘의 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콤옴보를 지나 북쪽으로 향하면 ’에드푸‘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이곳은 하늘의 신, 호루스를 모시는 신전으로 기원전 337년에 건설되었다. 내부에는 대규모 도서관과 향수를 만들던 공간이 있다. 고대 이집트 유적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신전으로 신전 곳곳의 벽화에는 호루스의 조각을 볼 수 있다. ’카르나크‘ ’룩소르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중동과 아프리카 교차 지점에 있는 이집트의정식 명칭은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북동쪽으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북쪽과 동쪽으로 지중해와 홍해가 있다.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 반도(베두인족 살아)가 이스라엘과 접경하여 중동지방에 걸쳐있다. 역사와 문명의 도시인 이집트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오늘날 아랍과 중동지역에서 정치적, 문화적인 중심 국가를 이룬다. 아랍어론 ‘미스르(Misr)’라고 부른다. 오래전 카톨릭 성경에는 ‘애굽’이란 이름으로 나오는데 국기는 삼색기에 고대 이집트의 신인 호루스, 매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카이로(Cairo 승리‘란 뜻)
수도 카이로는 세계 6위의 도시권이며, 고대 이집트와 관련 기사 피라미드 건축군과 멤피스 고성이 이 지역에 위치한다. 카이로가 나일 강 삼각주 부근에 있어, 중동과 아랍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영화음악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2위의 고등대학인 ‘알 아자르 대학이 ’있다. 많은 국제 언론, 기업, 조직이 도시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으며, 아랍연맹의 대부분이 카이로에 있다. 높은 수준의 오염과 교통에 시달리며 카이로 지하철은 매년 10억 명이 이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하철중 하나다. 카이로의 시장통은 영화 ‘레이더스’의 유명한 한 장면이다. 영화 속의 시장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카이로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인 ‘칸 엘 칼릴리’ 시장(바자르)에 찾아가 보는 게 좋겠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의 아들. ‘알 칼릴리 ’왕자가 세운 유서 깊은 이 시장은 이집트에서도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아랍권에서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단다. 6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답게 1500개가 넘는 점포와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영화는 튀니지의 한 시장, 이곳에서 영화 속의 그 곳은 찾기 힘들다. 카이로의 방문 시기는 11월에서 3월까지가 적기다. 이집트에선 무엇을 하든 흥정이 필수다.
카이로에 살던 무슬림 여자들은 눈도 막고, 귀도 막은 채 살기만 했을까? 1935년 카이로에 머물던 영국인 장교인 존 케이어 앤더슨이 17세기에 지어진 두 채의 집을 구입해 연결하고 터키양식, 파라오 양식, 중국 양식 등으로 꾸며 완성한 집은 현재 게에어 앤더슨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그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얼핏 벽장같이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좁고 긴 비밀의 방이 있다. 연회를 열면 손님들이 모여드는 거실의 천정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방은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는 작은 창문이나 작은 나무 조각을 이어 만든 장식인 ‘마샤라베야로’ 가려져 있다. 여자들은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호기심을 채웠다.
가자지구
이집트 4왕조 시대,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리왕 3대의 피라미드가 모여 있는 곳이다. 카프레 왕 피라미드가 있는 곳엔 그 많은 스핑크스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스핑크스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고대 이집트에는 지역마다 수호신이 있었고, 왕들도 숭배하는 신이 달랐다. 하지만 모든 신중에서도 태양신 ‘라’의 지위가 가장 높았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을 시간별로 다르게 불렀다. 아침엔 ‘케프리’ 정오엔 ‘라’ 저녁엔 ‘아툼’ 이들중 ‘라’는 모든 생명을 만들어 내는 존재로 받들여졌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낙타다. 당나귀처럼 비틀거리고, 백조처럼 목을 흔드는 이 묘한 짐승은 암만 봐도 물리지 않는다. 이집트 낙타의 슬프고도 고귀하고, 약간의 짓궂어 보이는 눈에 나는 항상 감동을 받는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카이로 남서쪽에 있는 이집트 제4왕조 제2대왕인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5M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개 쌓아올려 만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다. 이 피라미드는 4500년 전의 건축물인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는 각 변의 오차가 아주 미세하다는 것, 두 번째는 피라미드가 세워진 시기가 철이 발견되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250만개의 돌을 필요한 크기대로 자르고 다듬는데 이용된 도구가 겨우 돌과 구리로 만든 연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그 돌을 쌓기 위해 발휘된 뛰어난 건축술이다.
이집트 전통의상을 입은 관리인이 피라미드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일직선에 가까운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피라미드 안을 살펴보았다. 지하에 꾸며 놓은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커다란 집이다. 이방저방 구경하며 지하 셰계에서도 영생을 꿈꿨던 파라오들의 셰계를 이해해 본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여했던 수학자 몽즈는 대 피라미드의 채적을 계산하여 프링스의 국경을 3M의 높이에 0.3M의 폭을 가진 담으로 둘러 칠 수 있는 양이라 환산했다. 그토록 큰 규모의 건물을 변변한 도구 없이 지어 올렸다는 것은 신비에 가깝다. 네 번째는 높이 20CM,폭 22CM의 천제창이다. 진정 놀라운 점은 기원전 2500년에서 2400년경의 오리온자리 세 별에 정확히 맞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천문학의 발달수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왕가의 계곡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야자나무를 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내가 바람에 실려 저 진흙땅에 이식된 듯, 향기가 나는 해안, 야생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 쉰 목소리, 흐느적거리는 듯 한 하얀 가운, 두툼한 입술사이로 번쩍이는 상아색 치아, 먼지가 덮힌 발과 반짝이는 목걸이와, 팔찌, 잠을 자다가 갑자기 베토벤 교향곡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온 느낌이다.
나일 강의 서안은 죽은 자들을 위한 투명한 공간이다. 하트셉스트 신전에서 조금 떨어진 왕가의 계곡에 도착하면 꼬마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기차를 타면 파라오의 무덤들이 있는 계곡으로 이동한다. 이집트 고 왕국 시대, 중 왕국 시대에는 주로 피라미드로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 안은 주로 긴 복도와 매장실로 이루어져 있고. 무덤 입구에서 매장실 까지 뻗어있는 복도의 벽과 천정에는 수많은 신에게 고하는 벽화와 상형문자로 덛혀 있다. 파란색 바탕에 황금색 별들로 둘러싸인 상형문자가 보인다.
무덤 내부 벽엔 문자로 가득하다.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들은 섬세함이 돋보인다. 마치 벽지처럼 보인다. 이집트하면 바로 이 상형문자가 연상된다. 상형문자 그걸 바. 라보고 있으면 압박감이 느껴진다. 절세의 미인이 옷을 벗었을 때, 그 몸에는 빈틈없이 문자로 가득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 문자가 신경이 쓰여 여인의 벗은 몸이 나체로 보이지 않았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고 다채로운 상형문자, 이집트 문명은 미지의 정신을 가진 문명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문자를 만들 수 있을까? 원래 상형문자는 대중과는 무관한 전문가들의 언어였지만 , 문지 이상으로 디자인이 좋다. 이집트는 그래픽 디자인을 이미 완성한 상태였다
피라미드는 아름답고 완벽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완벽한 디자인을 지상에 표현하기 위해선 방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피라미드의 디자인이 아니라 노예들의 처절한 노력을 평가했다. 문명은 그런 형태를 만들어 내는 재능이 아니라 그런 아이디어를 실제화한 강제 노동의 시스템을 존경한다.
얼굴은 옆에서 바라 본 모습이지만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상반신은 전면을 향하고 있으나 유방은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얼굴은 횡면, 상반신은 정면, 하반신은 다시 횡면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린 인물상과 이 문자는 잘 어울린다. 둥근 얼굴에 눈이 크고 피부색이 검어 친근감을 준다. 그걸 바라보면 이들과 함께 뒤섞여 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정도다. 하지만 얼굴엔 전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기념사진이나 여권 사진처럼 느껴진다.
하늘의 여신‘누드’와 대기의 신 ‘게브’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중에 이시스(모든 신의 어머니)와 오시리스(죽음과 부활을 관장하는 이시스의 남편), 세트, 네프티스, 아누비스(자칼모습), 호루스(매의 얼굴)가 있다.
그러나 이곳의 부조에 등장하는 여신은 감정을 전혀 나타내고 있지 않다. ‘세트’ 가 최후의 한 조각, 4조각 중 한 조각을 찾지 못해 부활하지 못하고 , 울면서 이곳저곳을 떠돌며, 남편의 시신을 찾는 여신의 존재는 로맨틱하고 에로틱하다. 신화는 감정으로 가득하다, 분노와 탄식, 질투와 복수, 그러나 이곳의 미술은 그것을 감정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았다. 벽화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하는, 이집트인들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3500년전 여왕 ‘하트셉수트’는 20년간 이집트를 지배했으며 이집트 최고 전성기를 가져왔다. 하트셉수트 신전을 보면 이 아름다운 건축물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녀의 패기와 위용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녀의제전 역시 웅장한 규모, 무덤에 부속된 ‘죽은 팔라오의 집을 의미하는 제전은 36여개가 모여 있다. 무려 15년에 걸쳐 완공된 신전은 거대한 열주들의 행렬, 3층짜리 건물 곳곳엔 벽화와 200개가 넘는 조각상, 벽화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다. 당시 천제 건축가 ’세넌무트‘가 얼마나 많은 번뇌와 고뇌로 이 건물을 지었단 말인가? 돌 하나하나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정성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신전은 너무나 완벽했다.
아! 지금 낙타등을 타고 달리고 있다면, 앞에는 붉은 하늘과 갈색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타오르는 지평선 위로 물결이 이는 듯한 풍경이 가히없이 펼쳐져 있겠지. 하얀 방에서 하얀 시트가 덮힌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고 싶었다. 건초로 배를 채우는 당나귀처럼, 색깔들을 집어삼켜 배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여왕도 내가 앉은 돌계단에 서서 자신만의 신전을 보며 미소 짓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