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작아 7살에 입학을 할 수 없어 8살 때부터 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아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회룡리 이효동(90) 할아버지는 1930년에 고금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37년에 졸업했다. 회룡리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4km 정도다. 매일 2시간(왕복)을 걸어서 한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
이씨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는 일제시대였다. 조선어는 일주일에 1시간정도였다. 나머지 수업은 일본관 관련된 수업을 했다. 선생님은 총 8명 중 조선사람은 6명, 교장과 선생님 2명은 일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교실은 총 8개 정도가 있었다. 6개는 학년별 교실로 사용하고 선생님들의 교무실, 나머지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해 시험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수업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상급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이 평균 3명 정도였다. 입학도 80여명이 입학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50여명 정도 졸업했다”고 회고했다.
이씨 할아버지는 또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은 주로 야구와 비슷한 게임을 했다. 축구는 학교 예산이 없어 축구공을 가지고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해본 기억은 없다. 운동장은 넓지 않았지만 철봉, 그네 등 있었다”고 덧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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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내용 실어준 고중칠님 감사하고요. 세분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하신분중에 오병희 어르신은 우리동창 상정리 오 금단 아버님 일세 지금은 광주에 살고 있을걸...
그래맞어 오병희 할아버지는 금단이 아버지 되세... 내 여동생 시아버지도 되시고 ㅎㅎㅎ
그렇게....그렇게...형제 지간 이시고 부모사이고...축하드립니다...선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