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틱낫한 스님 저
*일곱
해바라기가 보이는가?
< 신은 존재하는가? >
🌱서양 신학과 철학에서는 무언가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은 존재 하는가?’라는 질문에 몰두합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2000년 넘게 토론해 왔지만 만족스러운 결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이 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궁극은 존재와 비존재 모두를 초월한다고 2000년 훨씬 이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신이 궁극적인 존재라면 신은 존재와 비존재 모두를 초월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존재와 부재는 동일한 현실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존재’라는 관점은 하나의 극단적 관점이며,
‘비존재’라는 관점은 그 반대의 극단적 관점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관념을 모두 초월해야 합니다.
이때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용어가 도움이 됩니다.
‘존재(being)'라는 단어에 ‘상(inter)' 라는 접두사를 더하면 비존재의 반대말이 아닌 용어를 갖추게 됩니다.
상호존재에는 반대말이 없기 때문에 이 용어를 사용하면 이분법적 사고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존재‘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상호존재‘라는 용어는 우리가 존재라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따라서 상호존재라는 관념은 비록 그 또한 하나의 관념이지만 궁극적인 진리로 나아가는 대 도움이 됩니다.
상호존재는 당신이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당신은 오로지 더불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상호존재는 관습적 진리를 궁극적 진리에 연결해서 당신을 공으로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
공은 궁극적 진리,
다시 말해서 현실의 참된 본성을 상징합니다.
궁극적 진리의 단계에서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존재와 비존재라는 관념도 없어집니다.
🌱존재와 비존재라는 관념은 서로 정반대이므로 이 관념을 사용하면 사물의 존재 여부를 놓고 싸우거나 논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인 진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공’과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사용했을 때 공,
즉 비어있음에는 반대말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비어 있음이 충만함의 반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비어 있음이 곧 충만함입니다.
당신은 분리된 자아가 비어 있지만 이와 동시에 온 우주로 가득차 있습니다.
따라서 ‘공’은 ‘신(God)'과 동등하다고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신은 궁극이며,
공 또한 궁극입니다.
비어 있음은 일체의 관념이나 개념이 부재하는 상태입니다.
관념이나 개념으로는 신을 묘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신이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말해도 당치 않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당치
않습니다.
궁극에는 존재와 비존재라는 관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2000년이 넘도록 줄곧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존재냐 비존재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의 관념을 초월하는 수행을 하고,
현실의 진 면목을 보기 위해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 경계를 지웁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부처님은 그것을 존재와 비존재를 초월하는 관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정견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누군가 당신의 존재 여부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존재나 비존재에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오로지 삼라만상과 더불어 존재할 따름입니다!”
정견은 빠르고 단순한 지혜입니다.
우리는 토론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처럼 정견은 우리가 침을 튀겨가며 설전을 벌이지 않고 에너지와 잉크를 아끼도록 도와줍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 수핼의 인연공덕으로
보리사 뜨락에 아이들 웃음이 가득하기를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하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거두어 줄 수 있기를
이 수행의 인연공덕으로
세세생생 부처님법 만난 은혜 갚고 살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연아 합장정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