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跂者不立,
(서 있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사람은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서 있을 수 없게 되며,
擧踵, 曰跂. 跂者, 本欲增高, 而反不能自立.
(서 있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일, 이른바 “기跂”이다. (서 있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사람은 (눈이 보는) 높이를 일부러 일삼아 늘리고자 하는 바를 근본으로 삼는 사람인데, 따라서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바”로 되돌아가게 된다.
跨者不行.
(걸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다리를 벌려 걷는 사람은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걸어갈 수 없게 된다.
張脚, 曰跨. 跨者, 本欲增濶, 反不能自行.
(걸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다리를 벌려 걷는 일, 이른바 “과跨”이다. (걸어가는 데 있어서, 일부러 일삼아) 다리를 벌려 걷는 사람은 (걸어가는 데 있어서, 다리가 걷는) 길이를 일부러 일삼아 늘리고자 하는 바를 근본으로 삼는 사람인데, (따라서)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걸어갈” 수 “없는 바”로 되돌아가게 된다.
凡此兩句, 皆引起下文四句, 猶詩之有興.
덧붙여, 이 2문장은 모두 다음 4문장을 (끌어) 당기고 (불러) 일으키는 문장으로서, 『시경詩經』이 가지고 있는 ‘흥(興;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유사한 다른 것을 앞서 일컬어 미리 분위기를 조성하는 문장형식)’과 같다.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見, 賢遍反.
일부러 일삼아 (자신을) 나타내거나 드러내는 사람은 또렷하게 살피지 못하게 되고, 일부러 일삼아 (자신이 알아차린 바를) 옳다고 말하는 사람은 뚜렷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며, 일부러 일삼아 (상대를) 징벌懲罰하는 사람은 (자신이) 공적功績을 가지는 바가 없게 되고, 일부러 일삼아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자리하는 바가)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부자견不自見의 견見은 음音이 현賢과 같다.
自見, 謂自表顯之也.
“자견自見”은 이른바 “일부러 일삼아” 자신을 나타나게 하고 드러나게 한다는 말이다.
其於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行, 去聲.
그것은 도道에 있어서, 이른바 (상한 음식과 같이) 몸을 망가뜨리는 음식이자, (쓸데없이 몸에 자라난) 사마귀와 같은 행위로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싫어한다. 췌행贅行의 행行은 거성(去聲; 4聲)의 행(行; 행위)이다.
餘食, 食之殘者也. 贅行, 行之疣者也. 盖食, 本美矣. 其殘, 則可穢也. 行, 本善矣. 其疣, 則可厭也.
“여식餘食”은 “음식”이기는 하지만, (상한 음식과 같이) 몸을 망가뜨리는 음식이다. “췌행贅行”은 “행위”이기는 하지만, (쓸데없이 몸에 자라난) 사마귀와 같은 행위이다. 이른바, “음식”은 (몸을) 아름답게 하는 바로 여겨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이 (상한 음식과 같이) 몸을 망가뜨리는 바이게 되면, (그것은 몸을) 더럽게 하는 바로 여겨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바이게 된다. “행위”는 (몸을 위해) 좋은 바로 여겨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바이다. (그러나) 그것이 (쓸데없이 몸에 자라난) 사마귀와 같은 바이게 되면, (그것은 몸을 위해) 꺼리는 바로 여겨지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바이게 된다.
言此以明上文之意, 是, 亦道也. 而自是, 則爲餘贅于道也.
이른바, 이것으로써 앞 문장의 뜻을 밝히건대, “(자신이 알아차린 바를) 옳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도道”에 맞는 바이다. 그러나 “(자신이 알아차린 바를) 일부러 일삼아 옳다고 말하는 것”은 이른바 (상한 음식과 같이) 몸을 망가뜨리는 바나, (쓸데없이 몸에 자라나는) 사마귀를 일삼는 일이다. “도道”에 있어서.
人心物情, 莫不憎惡於此, 所以不彰, 無功, 不長也.
사람의 마음이나 사물의 마음은 그러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거나 “싫어하지” 않는 바가 없는데, (그러한 사람은) “뚜렷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고”, “공적功績을 가지는 바가 없게 되며”, “(자리하는 바가) 오래 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老子, 盖於物情人心, 諳練孰揣. 故其言, 若是剌骨.
(덧붙여) 노자는 이른바 이렇듯 사물의 마음이나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느끼며, 헤아리고, 깨달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 일컬음이 이른바 이렇듯 뼈에 사무치는 것이다.
故有道者不處也.
따라서 도道를 가진 사람은 (그러한 바에) 자리하지 않는 것이다.
以其, 非道. 故有道者, 不居也.
이른바, 상한 “음식”과 같고, 쓸데없이 몸에 자라난 사마귀와 같은 “행위”) 그것은 “도道”에 맞지 않는 바이다. “따라서 도道를 가진 사람”은 (그것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右第二十三章. 自第十七章至此, 凡七章, 爲一節. 而象少陽. 之含七.
여기까지가 제23장에 대한 풀이이다. (덧붙여) 제17장에서부터 이 장에 이르는, 이른바 7개의 장은 하나의 주제를 일삼는다. 이른바, (“도道”의) ‘소양(少陽;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有爲이 적은 양陽)’(으로서의 모양과 모습)을 상징한다. (이 7개의 장은) 그것이 함축된 장들이다.
첫댓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모두 저의 부족함 탓입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