〇 6·25 전쟁보다 동란이 합당한 이유
- 한반도에 태어나 살면서 전쟁을 경험하지 아니한 축복받은 세대이지만 북한은 핵실험을 할 것이라고 하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이명박 정부때와 비슷하게 고물가행진이 이어지고 있고, 여당은 안정적인 정부운영을 위하기 보다는 세력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보이고, 야당은 필요이상의 비난과 욕심을 부리고 있어서 염려가 되어 6·25 전쟁에 대한 자료를 살펴 보았습니다.
- 2022. 6. 14. 박진 장관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마쳤음을 거듭 확인하면서 핵실험 강행시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습니다. 어려서는 6·25사변, 6·25동란이라고 했습니다. 사전적의미는 [사변(事變) 선전 포고도 없이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무력 충돌], [동란(動亂) 폭동, 반란, 전쟁 따위가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지는 일]로 설명합니다. 197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정한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서 6·25사변일로 기록하였으나, 현재는 공식적으로 '6·25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방송공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남측을 미국의 괴뢰정권, 미국의 하수인들이 지배하는 악의소굴, 미 군정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침략당한 영토라는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쪽에 잔존하는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조국의 남반부를 해방시키자는 의미에서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UN군 사령부에서 The Korean War라고 한 것이 영어식 표기가 되었고,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견은 선전포고도 없이 느닷없이 전면 남침하였기 때문에 사변이고, 전쟁에서는 국민 모두가 단결하여 적과 싸우지만 대한민국내 좌익이 침략한 북한을 도와 군인과 경찰과 그 가족을 학살하여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전쟁보다는 6·25동란이 잠자는 의식을 깨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6·25사변, 6·25동란, 6·25전쟁은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침한 전쟁이라고 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한 내 좌파세력과 연합하여 일으킨 전쟁이기 때문에 6·25동란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6·25동란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근거
1) 6·25전쟁때 폭격이나 상호전투에 의해서가 아니라, 죽창, 낫, 몽둥이등으로 동족상잔이 많았기 때문이다. 6·25전쟁이라고 하면 전투가 없었던 후방에서 사망한 민간인 죽음의 의미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6·25동란에 관한 비밀자료들을 넘겨 받았다. 이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은 스탈린이나 모택동에게 승인을 받기 이전인 1949년 초부터 이미 전쟁 준비에 착수한 자료가 있다. 김일성은 전쟁 승리를 자신하면서 스탈린을 설득했는데, 후르시쵸프회고록에 따르면, “그(김일성)는 남한에 한 두 번 자극을 주기만 하면 내란이 일어나서 인민의 힘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3)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형근 장군이 ‘군번 1번의 외길 인생’이라는 자신의 회고록(1993년)에서 6.25 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의를 지적했다.
"군번 1번의 외길 인생 이형근 회고록"(중앙일보사) 제55쪽-57쪽에 군수뇌부에 숨어있는 간첩을 의심하는 10대 불가사의가 기록돼 있다. 그 전문을 게재한다.
나는 여기서 6.25전쟁 전후에 나타난 10대 불가사의를 지적함으로써 향후 국가방위를 위한 교훈으로 삼고 싶다. 그것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나는 6.25 초전의 전후 사정을 종합 판단할 때 군 내외에서 좌익분자들이 긴밀하게 합작, 국군의 작전을 오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러면 통적(通敵) 분자가 과연 누구냐? 나로서는 수상하다고 느껴온 사람이 있지만 심증만 갖고 꼭 집어 거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들 가운데는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가 확증을 제시할 것으로 믿으며 바로 이런 증언이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라 믿는다.
나는 나의 생전에 이 문제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가 진행되기를 갈망하며 이런 연구가 시작되면 나도 후세를 위해 밝힐 것은 밝힐 각오다. 이 연구에서 반드시 풀려야 할 가칭 10대 미스터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선부대의 적정보고를 군 수뇌부에서 묵살 내지 무시했다는 점이다.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5월께는 내가 지휘한 8사단뿐만 아니라 다른 사단에서도 적의 대규모 남침 징후가 보인다는 보고가 잇달았을 것이다. 8사단의 경우, 1950년 3-5월 태백산맥으로 침투한 이호재 부대의 잔당과 김무현 유격대를 토벌하던 중 생포한 포로들의 심문 결과 이구동성으로 적의 대규모 남침을 거듭 예고했기 때문에 이 정보를 육본에 누차 보고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둘째, 각급 주요 지휘관의 이른바 6.10 인사이동이다. 6.25가 발발하기 불과 2주일 전, 중앙 요직을 포함한 전후방 사단장과 연대장급의 대대적인 교류와 이동이 단행되었다.
셋째, 전후방 부대의 대대적인 교대다. 6.13-6.20일에 걸친 전후방부대 이동 역시 가장 부적절한 조치였다. 전투를 지휘해야 할 지휘관들이 적정, 지형은 물론 부하들의 신상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넷째, 북의 평화공세에 대해 남은 6.11~23일간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그 이유는 6.10일 "조국통일 특사 체포 사건"에 대해 평양방송이 맹렬한 비난과 무력행사 위협을 해왔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6.23일은 김일성 장군이 남침준비를 완료하고 대기하도록 결정된 날이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북측은 남북협상을 위해 특사 3명을 파견할 것이니 남측에서 메시지물을 받으라 했다. 남측은 이들을 그날 38선 남방 1km 지점에서 맞아 메시지를 인수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엔 감사 위원단에게도 수교할 문서가 있다면서 서울로 들어가겠다고 떼를 썼다. 우리 경찰이 이들을 체포했는데 북측은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렇게 남북이 티격태격거리고 있는데도 육본은 6.24일 0시부터(남침 4시간 전에) 비상경계태세를 해제해버린 것이다.
다섯째,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육본은 비상경계 해제와 더불어 전 장병의 2분의1에게 휴가를 주어 외출과 외박을 시켰다.
여섯째, 육군 장교클럽 댄스파티다. 6.24일 밤 육군 장교 클럽 낙성 파티를 연다고 전후방 고급장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참석 장교들은 6.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으며 일부 미 고문관과 장교들은 2차를 가기도 했다. 나도 초청장을 받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엉뚱한 짓이어서 불참했다.
일곱째, 적의 남침 직후 우리 병력을 서울 북방에 축차 투입해 장병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지만 군사적 기초 상식을 깬 작전지휘였다.
여덟째, 적의 공세로 국군이 퇴각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6.25-27일 우리 방송은 국군이 반격, 북진중이라고 허위 방송함으로써 군부는 물론 국민들까지 상황판단을 그르치게 했다. (서울 북방에서 접전 중이던 국군이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수많은 애국인사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서울에서 참살 당했다).
아홉째, 한강교의 조기 폭파다. 전술 원칙상 교량폭파나 차단은 퇴각군의 퇴로를 막기 위해 추격군이 감행하는 법인데 한강교는 우리측이, 그것도 한강 이북의 국군만 믿던 많은 시민 그리고 병력과 군수물자를 방치한 채, 서둘러 폭파했다. 더구나 대통령, 정부고관, 육군참모총장이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한강 이남으로 도피한 후 한강교를 폭파했다는 것은 전술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반역행위였다.
열번째, 공병감 최창식 대령의 조기 사형집행이다. 최대령은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에 복종, 폭파했을 뿐인데 이에 책임을 지고 1950.9.21일 비밀리에 처형됐다.
이형근 대장이 위에서 열거한 10가지 불가사의 말고도 회자 되는 불가사는 6.25 남침 사실을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채병덕에게 보고하자 전속부관 라엄광은 주무시는 총장님을 깨울 수 없다며 끝내 알리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런 부관을 군법회의에 회부하지 않은 채병덕 장군도 수상했다. 수많은 예비역 장군들이 채병덕 장군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〇 북한에서는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정부와 미국은 즉각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발표하였습니다. 대한민국내에는 북한의 김일성을 찬양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만 전쟁이 난다면 6‧25 동란과 같은 내부에서 교란이 일어나지 아니하도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와 인류, 교회와 한국교회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신 곳에서 작더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행동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양극의 흐름속에서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편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