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의병 정신으로 극복하자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제2 천연두라 할 만큼 인류에게 피해를 남기는 질병이다. 농경사회 시절에 코로나19가 발생했다면 별로 걱정되지 않는 질병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호흡으로 옮기는 병으로 접촉만 없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역을 중시하는 생활환경으로 엄청난 사회문제로 발전할 전염 바이러스다. 자연발생도 아닐 것 같은 바이러스로 인체의 결함을 용케 알고 있는 바이러스라 생각된다. 자연 발생의 바이러스라면 환경요인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열대지방에서 발생했다면 한대지방에서 맥을 출 수 없는 바이러스 생활사가 먼저여야 한다. 그런데 짧은 기간에 세계 전역으로 국지적 저항환경 없이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인위적인 냄새가 풍긴다. 보호시설에서 만들어진 병균은 자연의 외부환경 적응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일이다. 오직 인체만 공략하는 인체 외부환경의 요인은 아랑곳없는 형태다. 인체의 질병에 대한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바이러스기 때문이다. 인체와 인체로 건너는 내부 연결로 특이의 활발한 변종을 유발하며 항체생성을 막고 경로를 감춤이다. 그래서 백신이나 치료 약의 생산이 어려움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염하면서 다른 동물의 매개체가 없다는 것도 의심이 가는 일이다.
인류사회가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니 사회라는 사람과 접촉을 피할 수 없는 환경의 결함이다. 지금의 사회생활에서 사람이 접촉 관계를 외면하고서는 살아가기 힘이 든다. 사회라는 문화가 너무 과장 효과 기대로 인해 부작용이 생기는 이치를 나타내는 일이다. 편리함만 생각했지 위험의 극한상황이 다가오는 일은 몰랐다. 속도를 너무 빠르게 달려온 문명발전이 오히려 멈춤의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다급하게 멈추어야 하고 만나지 말아야 살아남는 시대라는 경고가 나타난 일이다. 선진문화라고 자랑하던 서구 문명이 코로나바이러스로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은 하루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기도 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사회를 공포로 떨게 한 천연두보다 더 잔혹한 질병일 수도 있다. 그래도 천연두는 자연 발생에서 종두라는 백신의 자연생태 상대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위적인 것이라면 이런 자연 발생 백신도 찾기 어려워진다.
인류는 오만하게도 신의 영역으로 알았던 종의 생산에 탐을 내기 시작했다. 유전자조작이라는 미명 아래 종자갱신으로 유전자 서열분석과 새로운 물질을 만들기 시작한 욕망이다. 조상보다 전혀 다른 종자를 만들어내는 시작이 인류의 걱정거리라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래서 식물이 아닌 동물에서 일을 저지르다가 이제는 미생물에서 악성 병균의 바이러스 새로운 종을 출현하게 한 실수에 이르렀다. 탄저병 균을 전쟁 무기로 이용하려는 세력도 생기는 욕망이 넘친다. 마치 한국전쟁 때 인해전술 같은 불길한 생각이 도사리는 느낌이다. 세균 살상 무기는 인류를 마지막 이 지구에서 사라지게 할 위험요소다. 인간의 야망이 그칠 줄 모른다면 자멸의 길을 가는 위기다. 권력의 야망에 사로잡히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노리는 일뿐이다. 사랑이 없는 정신에는 적으로 보이면 못 할 짓이 없다.
코로나 발생 반년이 지난 지금 지구촌에 천만 명이 넘어가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휩쓸고 있다. 감춤 없이 그대로 밝힌다면 얼마나 더 증가할 것인가? 이보다는 훨씬 많은 놀라움이 기다릴 뿐이다. 백신도 없고 치료 약도 없으니 그냥 증상 호전 약으로 견디는 일이 한심하다. 그렇게도 자랑하던 문화발전도 코로나바이러스에는 속수무책이다. 세계 인류를 단번에 몰살할 핵무기는 만들었어도 코로나바이러스를 멸살할 능력은 상실했나 의심스럽다. 인류는 지금까지 자구책 없이 살아온 느낌이다. 자연 발생한 천연두는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를 발명하여 인류의 환란을 이겨냈다. 천연두는 아마도 5천 년을 누리며 인류를 괴롭힌 바이러스였다.
인류의 절박함을 만든 것은 역시 사람의 실수다. 이런 위급한 가운데도 뉴질랜드는 코로나바이러스 종식 선언을 한 나라다. 외부 유입의 통제강화로 강하게 밀어붙여 성공한 사례다. 이런 코로나바이러스 난리에도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시책은 어려움도 많았을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이나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교통수단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에는 오히려 전염을 가속시키는 계기였다. 밀폐된 공간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전염의 도움이고 대중교통이 병의 매개 역활을 하는 기능으로 여겨진다. 교회의 집단예배가 감염의 통로였고 이태원처럼 유흥업소가 위험을 조장한 일이기도 했다. 사람끼리 서로 만남이 반갑고 복된 행복감으로 알았으나 이제 서로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어 슬픈 느낌이다. 국민 개인이 알아서 농경시대처럼 거리를 두는 생활로 국가적인 통제력보다 앞서야 이 난국을 이겨낼 수 있다. 나라가 못하면 국민 개인이라도 임진왜란 때 의병처럼 극한상황의 위기에서 국민과 나라를 지켜야 할 일이다. ( 글 : 박용 202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