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한 돐이 조금 지나서 나는 남의 집 문간방에 세들어 살았다.
그 시절 그 골목에는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동네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다정하게 지낸 것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큰애는 언제나 잠이 일찍 깼다. 애가 아니라 아직 아가였는데도 잠을 그리 많이 자는 편이 아니었다.
다른 집들은 부엌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올까 말까한 시간에 우리집 아가는 어제저녁 내가 깨끗히 닦아놓은 파란색 고무신을 끌고 그 서툰 걸음걸이로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뒤뚱거리며 걸어가다 열린 대문이 있으면 서슴치 않고 걸어들어갔고 , 대청 마루에 올라갔다. 대부분 거기 어항이 놓여 있었다.
아가는 대뜸 어항에 손을 집어넣고 금붕어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대부분 도망을 갔지만 어쩌다 멍청한 놈들이 아가의 조그만 손안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가는 으하핳! 아릇한 웃음을 터뜨리며 좋아 했다. 행복해보였다. 나는 기겁을 했다. 아가는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올까 겁도 났다. 무엇보다도 금붕어가 아가의 손에서 죽으면 어떻게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는 아가 손을 활짝 펴서 금붕어를 어항에 풀어주고 얼른 아가를 안고 그 집을 나왔다. 그때까지도 그집 안주인은 부엌에서 내다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어항도 유행이었던가. 어항을 갖춘 집이 그 집뿐이 아니었다. 아가는 어느 집이건 어항을 먼나면 여간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희색이 만면하여 어항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항에 손을 집어넣고 금붕어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어쩌다 주인이 보게되는 일도 있지만 그 시절 인심이랄까. 아가가 너무 귀여워서일까. 누구 한 사람 아가의 붕어 잡는 손을 말리거나 야단치는 일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
얼마후 작은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이제는 세살이 되어 제법 자기 의사 표시도.할 줄 알 게 된 아이의 기호를 존중하여 나는 가장 먼저 어항을 구입했다. 아이와 함께 가서 예쁜 놈으로 사왔다. 그게 무슨 종류인지, 기르는 방법이라든지 그런 것은 묻지도 않고 무작정 금붕어를 기르게 되었다.
자꾸 죽어나갔다. 예쁜 금붕어의 죽음은 아이와 나에게 별로 유쾌한 사건이 아니었다. 은근히 짖궂은, 어항에 손을 집어 넣어 붕어를 움켜쥐는 아이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인가. 예쁜 것은 손으로 만지고 촉각으로 즐기고 싶은 아이의 마음인가. 그것은 어항속 환경을 교란시켜 금붕어들이 스트레스에 빠지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어항 청소는 나에게 번거로웠다. 무겁고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 얼마 못가 나는 어항과 금붕어를 포기했다. 그리고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갔다.
지난 겨울 친구 집에 갔다가 아주 조그만 금붕어 구피새끼를 보았다. 그 손톱만한 생물이 어항속에서 노니는 것을 보자 나는 욕심이 생겼다. 이전에 실패한 붕어기르기를 다시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금방 낳은 쿠피새끼 6마리를 종이컵에 담아들고 득의양양하게 귀가했다 .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려 어항과 먹이, 어항에 넣을 수초도 샀다.구피새끼를 바라보며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즐거웠다.
석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아주 작은, 너무 작아서 먼지 같은 구피 새끼들이 한 마리, 두 마리, 수십 마리가 속속 나와 어항속을 유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경이였다. 작은 뜰채로 새끼들을 다른 어항으로 신속히 옮겨주어야 했다. 에미 구피가 새끼를 눈깜짝할 사이 잡아먹다니 무서웠다. 지가 낳은 새끼를 냉큼 집어삼키는 모습이 흉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낳은 것이 자그마치 60~80여 마리나 되는 것 같았다. 너무나 작아서 셀 수도 없었다. 새로운 새끼를 얼른 발견 못하면 어미가 제 새끼를 낼름 잡아먹으므로 내 손동작이 여간 빠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잡아먹어도 엄청난 개체수 증가는 일종의 외경이었다.
구피 가족이 수백으로 증가해서 대형 어항을 사올까 궁리중이다. 구피 4대가 형성된 것이다. 어항을 사오지 말고 구피와 결별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딸애는 내 의도를 헤아린듯, 어항 몇 개를 새로 구입했다. 어항 4개에 각각 나온 순서대로 숫컷과 암컷을 분리, 새끼를 더 이상 낳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다. 그게 최선의 방법일까. 나는 딸에게 구피를 인계했고 더 이상은 붕어기르기가 번거롭게 느껴져 방임했다.
오늘 아침 암컷 전용 어항에서 숫컷이 4마리나 발견되었다. 안되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 일이 바빠서 무심했더니 암컷 어항에서 수컷 구피의 아름다운 지느러미가 유난히 눈에 잡힌 것이다. 암컷보다 날렵하고 예쁘기는 했다. 나는 조그만 뜰채를 사용하여 숫컷 4마리를 겨우 건져 수컷 전용 어항으로 옮겨 주었다. 기동성이 좋은 수컷 찾아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혹 이것이 자연법칙을 거스리는 일은 아닐까. 그러나 어항 청소를 도맡은 딸의 말처럼 무작정 물고기식구를 늘리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3개월에 한번 씩 그 여러 마리 암컷이 자주 새끼를 출산하면 희소가치가 떨어진다. 흔한 것은 귀한 것이 못 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큰애의 어릴 때 생각만 하고 붕어기르기를 낭만적으로 여긴 것같아 구피가족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수컷이고 암컷이고 나는 호수공원에 몽땅 데려다 줄 거라고 딸에게 말했다 너른. 공간에 가서 맘껏 헤엄치라고. 그러나 구피도 생명인데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하나? 호수에는 팔뚝 만한 잉어도 살고 있는데 행여 큰 고기에게 잡혀먹히면 어찌하나?
오늘은 이쯤에서 구피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 감기 끝에 악마구리처럼 달라붙은 기침때문에 괜히 더 피곤하다. 먼저 내 심하게 터져나오는 기침을 개선해야 한다.
첫댓글 변영희 선생님 ! 어항 물고기 기르는 취미도 갖고 계시내요.
그런데 건강이 최고이니 내몸부터 추스리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금붕어에 대한 환상이었던지도. 투명한 유리 항아리에서 날렵하게 그 예쁜 지느러마를 흔들면서 유영游泳하는 모습에 반했겠지요? 그런데 무슨 새끼를 그렇게 많이 낳는지 어안이 벙벙!
건강이 첫째! 라는 말씀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