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문을 통과 부산항 나들이 / 이재곤
아이고, 오랜만이네, 그간 잘 지냈는가?
동대구역 3번 출구 앞에 백발(白髮)의 노중년(老中年) 여남은 명이 모여 만면(滿面)에 웃음 띤 얼굴로 다정다감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모처럼 기회가 되어 부산시(釜山市)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같이 먹고 추억담도 나누며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러 가려고 모인 고등학교 동기들이다. 모두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이고 나들이에 편한 치장(治粧)을 하고 나았다.
거의 현직에서 물러나 조금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하루를 느긋하게 보낼 계획으로 부산행 완행열차를 탔다. 기차를 탄 기억이 일 년은 넘은 것 같아 어색하다. 기차 안은 조용하다.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니 정말 평화롭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부산스럽고 어수선한 우리 일상생활 주변과는 전혀 다름이 느껴진다.
이틀 전 하루 동안 내린 비로 논밭이 촉촉이 적셔있고 시냇물과 강물은 그득하게 유유히 흘러가고 녹음이 짙어진 산은 한층 더 푸르니 세상이 풍요로워 보인다. 차창 밖 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완행열차는 조용히 내달리며 경산역 밀양역 구포역을 거쳐 부산역에 도착했다.
금요일 오전인데도 부산역(釜山驛)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생동감이 넘치고 사람들이 저마다 활발히 움직이는 모습에 덩달아 내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부산시(釜山市)에 사는 동기 두 명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아주며 앞장서 안내를 했다.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 뒤를 따라가듯 안내하는 친구를 따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예약한 자갈치 시장에 있는 식당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자갈치 시장역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며 잠깐 이동하는데 소문난 전통시장이라 찾는 이가 많아 혼잡하고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줄을 이었다. 우리는 외국 사람을 쳐다보고 외국 사람은 힐끔힐끔 우리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며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갔다.
예약한 식당 앞에서 부산시에 사는 또 한 친구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며 식당 이층으로 안내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3년을 한 반에서 지낸 동기이고 고향이 같은 군내라 정이 남다르다. 식탁에는 이미 밑반찬이 차려져 있고 금방 바다회 쟁반이 춤을 추고 불이 난다. 새콤달콤한 회 초장에 찍어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싱싱한 바다 생선회를 먹어 본 지가 언제이던가 기억도 아련하다. 소주와 맥주로 건배사를 하고 분위기를 띄우며 입맛을 돋구었다.
뒤이어 생선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으며 목소리가 큰 친구, 농담을 잘하는 친구 그동안 쌓였던 추억담을 나누고 나이가 팔십 줄에 들어서니만큼 건강 관리 이야기가 이어지고 웃음소리로 식당 안을 가득 채우며 회포(懷抱)를 풀었다.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회와 매운탕으로 식사를 마치고 영도다리가 가까이 보이는 바닷가에 나가서 비릿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두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부산시에 사는 친구의 안내로 줄을 서서 걸어가며 자갈치 시장을 돌아 인근의 국제시장을 거쳐 가는데 전통시장은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아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야 했다.
이어서 용두산공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공원까지는 도로에서 걸어 오르는 계단 외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있었다. 여기서 다리 건강에 자신이 있는 친구와 없는 친구가 구분되었다. 계단으로 걸어 오르는 친구는 박수를 받았다.
공원에 오르니 공원 표식 비석이 의기양양하게 우리를 맞이하는데 대중가요 “용두산 엘레지”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 말자 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 발 디뎌 언약하던......” 공원은 잘 가꾸어져 관목(灌木)들은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고 봄꽃들은 만개하여 하늘을 품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하다. 공원을 잠시 둘러보고 공원 표식 비석 앞에 모여 단체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이나마 저마다의 동심으로 돌아가 멎진 포즈로 연출을 했다.
하늘 높이 솟아 부산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전망대에 올라 볼까 말까로 잠시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다 같이 오르기로 하여 입장료를 지불하고 올랐다. 마음이 긴장된다. 전망대에 올라 부산항을 한 바퀴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려온다. 저 멀리 수평선에 바닷물이 반짝이고 아파트는 우후죽순같이 솟아있어도 발아래 까마득하게 보인다.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기차 예약 시간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안고 내려왔다.
부산시에 사는 친구들의 안내로 구경을 잘 마치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부산역에 도착해 불과 네 시간 정도의 짧은 만남의 애틋함은 가을에 다시 만나기로 서로 위로하며 헤어졌다. 다시 완행열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해 역내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자주 연락하자, 건강해라, 안녕히!
하루의 짧은 나들이를 하는 동안 각종 문(門)을 통과했다. 시내버스 승하차, 지하철 출입 승하차, 완행열차 승하차, 식당 출입, 용두산 전망대 출입 및 승강기 출입 등 수십 번의 문을 들락날락 통과했는데 손으로 직접 문을 여닫은 일은 없었다. 거의 반자동과 자동문(自動門)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 까딱없이 자동문 시대에 살고 있고 갈수록 자동문은 늘어나고 완벽해질 것이라 손가락이 무뎌질까 소심한 마음에 걱정이 되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