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의 전개
2)실상염불
實相(dharmatā)이란 만물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법화경』에는 진리 당체로 사용하는 말이 제법실상(dharmāṇāṃ-dharmatā)이다. 「안락행품」에는 "보살마하살이 일체법공을 관함이 여실상·불전도·부동·불퇴·불전·여허공·무소유성이다."라고 설한다. 일곱 가지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실상이며, 허공과 같고 무소유성이라 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경』에는 제법의 진실한 뜻을 알고, 제법실상을 얻으며, 진실한 뜻에 통달하고, 여실하게 일체법을 알기에 불(佛)이라고 설한다. 이렇게 실상이라는 진실한 도리와 이치를 깨달으면 불이라 칭하는 것이다. 『열반경』에는 '무상지상(無相之相)'을 실상이라 하며, 동의어로 법계·제일의제·제일의공 등을 설하고 있다.
세친의 『법화경』 주석에는 "실상이라는 것은 여래장 법신의 체는 불변한다는 뜻이다."라고 하며, 『대지도론』에는 "모든 보살은 불타와 실상의 반야바라밀을 경애하고, 염불삼매의 업을 닦아 나는 곳마다 늘 모든 불타를 만난다."고 설한다.
이처럼 실상이란 진리 자체를 나타내는 중도·반야바라밀·진여 등과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무주는 아래와 같이 설하고 있다.
이것은 현상적인 가유(假有)나 허무에 집착하는 무(無)를 다 떠나서, 중도실상의 진여불성 자리 이른바 법신자리를 생각하는 염불인 것이다. 따라서 진여불성 자리를 생각하는 실상염불이 참다운 본질적인 염불이다. 이른바 법의 실상, 내 인간 생명의 실상, 우주 생명의 실상, 이것을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다.
인용문에는 중도실상의 진여불성인 법신자리를 염하는 것이 실상염불이라 하며, 이것이 참다운 염불이고 실상을 관찰하는 것이라 설한다. 칭명염불이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왕생하게 된다면, 실상염불은 진여불성을 관념하여 내재하는 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후자는 자성을 밝히는 면에서 선(禪)과 다르지 않으므로 염불선이라 칭하기도 한다. 아래의 법문이 두 가지 유형을 대비시키고 있다.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염불한 인연으로 서원을 따라 타방의 불토(佛土)에 나며, 항상 불타를 친견하고 영원히 악도를 여읜다. … 만약 저 부처·진여·법신을 관하여 항상 부지런히 수습하면, 필경에 득생하여 정정(正定)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인용문의 앞 구절은 칭명염불로 왕생극락을 설하는 것이고, 뒤 구절은 진여불성을 관하는 실상염불로 염불선이라 할 수 있다. 위의 법문은 마음에서 진여법신(眞如法身)을 보면 분명히 왕생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해도 마음으로 전념하여 염불한 공덕으로 왕생한다고 설한다. 양자 모두 왕생하지만 진여법신을 보면 필경에 왕생을 덧붙이며, 또 진여법신을 전자의 타방불과 비교하여 자성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타방불을 친견하는 것은 염불이고, 자성불을 보는 것은 염불선이라 할 수 있다.
실상염불은 보조 지눌(1158~1210)의 『염불요문』이 좋은 본보기이다. 지눌은 참된 염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십종염불은 모두 일념진각(一念眞覺)에서 발현되어 생각의 지극한 공(功)으로 이뤄진다. 염(念)이라는 것은 지킴이며, 참된 성품을 보존하여 자라게 한다. 요컨대 지킴은 잊지 않는 것이다. 불은 깨달음이니 진심을 살피고 비추어, 항상 깨달아 어둡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무념의 일념으로 깨달으면 원만하고 밝으며, 원만하고 밝다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것이다. 이것을 참된 염불이라 한다.
열 가지 염불은 일념의 진각(眞覺)에서 발생하여 지극한 공력(功力)으로 이뤄지며, 염(念)은 지킴이고 잊지 않음으로써 보호하여 성장하는 것이다. 불은 깨달음이며 진심(眞心)을 살피고 비추어 늘 깨달아 어둡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또 무념의 일념을 깨달아 원만하고 밝으면, 망상이 끊어진 참된 염불이라 하였다.
이러한 염불은 다분히 유심적(唯心的)이고 선적(禪的)이라 할 수 있다. 열 가지 염불 가운데 처음은 삼업을 정화하는 세 가지) 염불, 다음은 어묵동정(語默動靜)의 네 가지 염불이다. 나머지 세 가지는 관상(觀想)·무심(無心)·진여염불로, 실상염불과 관련되므로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덟째인 관상염불은 아미타불의 광명이 충만하여 몸과 마음을 비춘다고 생각하고, 지성스런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 한다.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온 종일 항상 공경하고 어리석지 않는 것이다.
아홉째인 무심(無心)염불은 염불의 공덕이 무르익어 무심삼매로 무념의 염(念)이 되며, 들지 않아도 들게 되고 무사(無思)의 지혜가 원만해 무공용(無功用)이 이뤄진다.
열째인 진여염불은 염불의 마음이 지극하여 일체를 요달하여 단박에 깨쳐, 본래 성품이 나타나고 법계의 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원문에는 흠념(欽念)·경념(敬念)·심념(深念)·상념(想念)·전념(專念)·정념(情念)·묵념(默念)·극념(極念) 등, 공경의 염(念)에서 점점 정밀하게 깊어져 여덟째가 지극한 염(念)이 된다. 마치 보살십지의 제팔지 부동지에서 무생법인을 얻는 부동의 경지와 비교된다. 아홉째에 이르러 무심이 되고 열째는 진여와 하나 되는데, 이 단계가 실상염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행의 열 단계처럼 삼업 청정을 시작으로 마음이 진여가 되는 경지를 설한다.
이 같은 십종염불의 특징으로 첫째는 서방 아미타불을 적시하고 있고, 둘째는 삼학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염불체계이며, 셋째는 무심·진여·돈공(頓空) 등의 선적(禪的)인 요소가 결합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시는 정토와 선을 겸수하는 풍토였고, 조선시대 삼문(三門)수행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종념불은 당대 규봉 종밀(780~841)이 참회를 위해, 생사의 마음을 깨기 위하여 불타를 염하는 수행이었다. 또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를 통해 법계일상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대표적인 염불의 분류로 인식되며 아래와 같이 설한다.
염불 일문(一門)은 수행에 중요한 나루터이고 마음을 섭수하는 핵심이다. 이로 인해 염불의 뜻을 간략히 밝히면, 염(念)은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음의 뜻으로 본체는 바로 혜(慧)이다. 이제 염이라는 것을 곧 알기 쉽게 명칭을 밝힌다. 염불은 같지 않은데 모두 네 가지이다. 첫째는 칭명념(稱名念)이고, 둘째는 관상념(觀像念)이며, 셋째는 관상념(觀想念)이고, 넷째는 실상념(實相念)이다.
종밀은 선과 화엄을 겸수한 선지식답게 염의 본체가 지혜임을 밝히고, 불타의 명호를 분명하게 억념하여 잊지 않음은 본질이 반야라고 한다. 이것은 문자반야(文字般若)에 해당하며 명호는 무량한 공덕으로 왕생극락하게 하는 것이다. 굳이 구별하면 칭명염불은 본원(本願)에 의한 왕생으로 지(止)의 측면이 많고, 실상염불은 자성을 보는 관점에서 혜(慧)의 측면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종밀은 생사의 악연을 여의고, 보리의 정도(正道)에 수순하려면 반드시 염불해야 함을 강조한다. 첫째, 칭명념은 오직 불타의 명호를 부르며 『문수반야경』을 전거로 삼고, 둘째, 관상념(觀像念)은 여래의 불상을 관하며 『보적경』의 설법을 인용한다. 셋째, 관상념(觀想念)은 불타의 형상을 관하는 한 가지 상과 전신을 관하는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관불삼매경』과 후자는『좌선삼매경』을 인용하고 있다. 넷째, 실상념(實相念)은 법신을 관하며 자신과 일체법의 진실한 자성을 관하는 것이다. 『문수반야경』·『대지도론』·『점찰경』·『무량수경』등을 전거로 삼는다. 또 법신은 있지도 않고 공(空)하지도 않으므로, 중도실상의 생명인 광명을 관조하는 것이다.
『능엄경』에는 사종염불을 삼승으로 구분하며, 칭명염불은 성문승, 관상(觀像)염불은 벽지불, 관상(觀想)염불은 보살승, 실상염불은 불승(佛乘)이라 한다. 또 『아미타경주』에는 칭명염불은 자구(字句)가 분명한 것이고, 관상(觀像)염불은 대상을 공경함이며, 관상(觀想)염불은 서방의 선정에 들어감이고, 실상염불은 불타의 도리를 깊게 관하는 것이라 한다.
또 명대 운서 주굉(1535~1615)은 사종염불이 다르지만 구경(究竟)에는 실상으로 귀결되며, 칭명염불은 『아미타경』에 관상(觀想)염불은 『관무량수경』에 설한다고 한다.
이처럼 사종염불은 근기에 따라 점차로 수행하며, 천행(淺行)에서 심행(深行)까지 구경에는 실상념에 이른다. 결국 종밀이 원하는 바는 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행삼매나 자성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무주도 이와 유사한 사종염불을 설하고 있다. 첫째는 부처의 명호를 외우는 칭명염불이고, 둘째는 부처의 원만 덕상인 32상 80종호를 관찰하는 관상(觀像)염불이며, 셋째는 부처의 자비 공덕과 지혜 광명을 생각하는관상(觀想)염불이고, 넷째는 진여불성의 법신 자리를 염하는 실상염불이라는 것이라 하였다.
한편 용수는 『십주비바사론』에서 색신염불·법신염불·실상염불 등의 세 가지를 설한다. 색신염불은 불타의 32상 80종호를 염하는 것이고, 법신염불은 불타의 공덕인 사십불공법을 염하는 것이다. 실상염불은 색신과 법신에도 탐착하지 않는 모든 법이 허공 같음을 아는 것이며, 차례대로 쉬운 색신염불에서 궁극인 실상염불까지 도달하게 한다. 어떤 법도 집착하면 불법에 어긋나는 것임을 알수 있고, 사종염불과 비교하면 칭명만 없고 나머지는 다 포함된다.
지의도 오종염불을 설하는데 첫째, 칭명왕생염불삼매문 둘째, 관상멸죄염불삼매문 셋째, 제경유심염불삼매문 넷째, 심경구리염불삼매문 다섯째, 성기원통염불삼매문 등이다. 첫째는 칭명염불, 둘째는 관상(觀像)염불, 셋째는 관상(觀想)염불, 넷째는 법신염불, 다섯째는 실상염불에 대응할 수 있다. 관념염불의 추이를 보면 구체적 사상(事象)의 관념에서, 추상적인 이념을 관상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밀교에도 불타의 찬탄 게송이나 진실의(眞實義)를 염하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음성염송이고, 둘째는 금강염송으로 입을 닫고 혀를 움직여 묵송(黙誦)하는 것이다. 셋째는 삼마지염송으로 심염송(心念誦)이다. 넷째는 진실염송으로 자의(字義)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네 가지 염송의 힘으로 일체 죄장과 고액을 멸해 일체 공덕을 성취하게 된다.
밀교의 진언 염송 또한 염불과 차이는 있지만, 사종염불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음성으로 하는 것은 칭명과 같고, 둘째와 셋째는 묵송과 고요하게 마음을 관하는 염송이며, 넷째는 실상과 같은 뜻의 진실염송이므로 실상염불과 유사하다. 즉, 진실염송은 염하는 소리를 자기만 들릴 정도로 하며, 정신을 집중하여 고요한 마음으로 문자의 실상을 관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고성에서 저음과 심송(心誦)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종염불은 염불 수행이라는 매개를 통하여, 수행을 성취해 가는 과정을 네 단계로 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성을 깨치는 실상으로 인도하여 구경에 이르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종염불은 '보리방편문' 독송과도 연관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칭명은 정독(精讀)하는 것이고 둘째, 관상(觀像은 외우는 것이며 셋째, 관상(觀想)은 내용을 관찰하는 것이고 넷째, 실상은 실상을 체득하는 것으로 유사하게 대응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보리방편문' 독송과 관상(觀相)으로, 실상관(實相觀)을 체득하여 구경에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금강심론』에는 직접적인 염불의 설법은 하지 않으며, 근본선을 위주로 염(念)·지(止)·관(觀)의 통합 수행을 지향하고, 밀교의 관행과 실증적인 수증론(修證論)을 전개하고 있다. 또 종파적인 수행과 사상을 지양하고 통불교적 수행론을 설하며, 그러한 사상이나 수행도 실천을 위해 대표적인 수행법이 필요하다. 바로 마지막 절에서 살펴볼 "보리방편문으로 염하고 관하는 수행"이라는 뜻이다.
<『금강심론』 수행론 연구/ 박기남(普圓)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