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D; (1696, 다바르)
말하다 speak
다바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말하다'를 의미하며, '말하다, 선언하다, 담화하다, 명령하다, 약속하다, 경고하다, 위협하다, 노래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150회 나온다(창 8:15, 창 12:4, 출 9:13, 출 9:35, 출 11:2 등).
어떤 사전 편찬자들은 히브리어 dbr에 대한 두개의 어근을 구별하고 있다.
1. 동일한 의미의 아랍어 두부르(dub[u]r)와 아카디아어의 다바루(dabaru, 도로 밀치다 to push back)와 관계되며 '뒤에 있다' to be behind, '되돌리다' to turn back란 의미가 그 첫째 뜻이다. 이 단어 어근의 파생어들은 데비르(rybiD] , 1687, 뒷방 back chamber), 도베르(rBeDo , 1699, [외딴 장소] 목장[remote place] pasture), 도베로트(1702, [배 뒤에 달린] 뗏목 raft[dragged behind the ship]), 미드바르(rB;d]mi , 4057, 스텝 지대 steppe)를 포함하고 있다.
2. 두번째로 "말" word이란 뜻은 대부분 명사 다바르(rb;D; , 1697, 말 word, 사물, 일 thing)와 피엘(piel) 형의 동사("말하다" to speak, "연설하다" address)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어원적으로 dbr Ⅱ에 관계된 말은 디브라(hr;b]DI , 1700, 사물, 일 thing)와 딥베르(dibber, 이 단어는 진기하게 쓰이는 명사형), 그리고 미드바르(rB;d]mi , 4057, 입 mouth, 이 단어는 도구를 나타내는 멤[mem]을 수반함)이다. 시엘리그만(Seeligman, VT. 14:80)은 답베레트(말 word)를 어근 Ⅰ에서 유래를 찾고 있지만 이 단어를 어근 Ⅱ의 파생어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다. BDB와 GB는 두 개의 상이한 어근에서 동사로 등장하는 것 같이 dbr를 구분하지 않는 반면, KB는 욥 19:18, 대하 22:10에서는 피엘(Piel) 형으로, 시 18:47[H48], 시 47:3[4]에서는 히필(Hiphil) 형으로 어근 Ⅰ을 dbr에 부여한다. 여기에서는 이 동사에 대한 견해를 추정 어근 Ⅱ에 국한시킨다.
dbr에 대한 어원적 해명이 오늘날까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아카디아어(Akkadian)는 히브리 단어들과 놀랍게도 비슷한 의미를지닌 것으로 단어 다바부(dababu)의 명사형 및 동사형을 소유하고 있다. 이 단어는 실명사로 '연설' speech, 혹은 '법률적 문제' legal matter와, 동사로서 '말하다' speak를 의미한다(CAD.D.2-14). 그러나 히브리어도 또한 명사 딥바(hB:Di , 1681, 속삭임 whispering, 중상 slander)에서 입증된 어근 dbb를 지니고 있다. 아카디아(Akkadia)의 dbb와 히브리어 dbr간의 유사성이 우연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어원적인 연관성에 의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 단어 어근은 라기스(Lachish) 패각과 실로암 턴넬(Siloam Tunnel) 비문에서 나온다. 히브리어 밖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페니키아-카르타고어(Phoenieian-Punic)와 명사 디브라(일 matter)의 형태로 아람어 성서에서 나오고 있다.
다바르(rb'D; , 1696)는 거의 전적으로 피엘(Piel), 푸알(Pual), 힛파엘(Hithpael), 칼(Qal)의 분사로 사용되는 것같이 아마 다바르(rb;D; , 1697)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동사인 것같다. 우가릿어(Ugaritic)에는 다바르(rb;D; , 1697, 말하다 to speak)의 용례에 대한 증거가 없으나(또한 아마르[말하다 say]에 대한 증거도 없다), 미드바르 Ⅱ(rB;d]mi , 4057, 황야 wilderness)의 용례는 가지고 있다.
어떤 언어에서든지 말하는 것에 대한 기본 동사와 '말' word에 대한 명사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절대적 중요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동사 다바르(rb'D; , 1696)와 명사 다바르(rb;D; , 1697)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러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TWNT에서 프록쉬(Procksch)는 명사형이 기본 어형이며 이 동사가 이 명사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2,500회 이상 사용되는데, 명사로 1,400회 이상 사용되며 동사로는 1,100회 이상 사용된다. 이 단어들은 셈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이 단어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어떤 단어들은 사상의 범위가 넓고 언어 전달자들, 특히 어떤 개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로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흠정역 성서에서 다바르는 약 30개의 상이한 단어들로 번역되고 있으며, 다바르는 80개 이상의 상이한 단어들로 번역하고 있다. 이들 중 몇몇 단어들은 동의어로 사용되나, 그러나 대다수 단어들은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단어들은 사고 과정, 의사전달 혹은 의사 전달자의 주제나 수단에 대한 약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사 다바르는 말에 관한 사항이나 문제에 의해 감당될 수 있는 어떤 것에서부터 하나님 말씀의 가장 숭고하고 생생한 의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 걸쳐 포괄한다. 많은 동의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찬양되는 시편 119편에서 발견된다. 확실히 가장 중요한 동의어들은 다음과 같다. 아마르(말하다 to say), 그리고 남성, 여성형으로 에메르와 이므라가 있는데 뒤의 두 단어는 거의 반드시 '말씀' word으로 번역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동의어에 대한 이론에서 거들스톤(Girdlestone)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아마르(말하다 to say), 밀라(말 word), 나암(발언하다 utter), 페(입 mouth), 토라(율법 law), 다트(칙령 edict), 호크(법령 statute), 차와(명령하다 command), 피크쿠딤(비난하다 charge), 오라흐(길 way), 데레크(길 path), 미시파트(심판 judgment), 오드(증거 testimony).
여기의 동의어의 목록에서 네번째까지의 단어들은 어근 다바르의 일상적 용법을 언급하고 있다. 단어 아마르(말하다 to say)는 다바르와 거의 비슷하지만 그러나 대체로 언급된 사항이 뒤따르고 있다. 밀라(말 word)는 오랫동안 후기에 아람어화된 동의어로 불리어졌으나 지금은 단순히 시적이면서 비일반적인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암'은 선지자의 신탁을 의미하는 명사형 '네움'에 국한되어 있다. 단어 '페'(입 mouth)는 말을 위한 언어 기관에 대한 단순히 비유적 용법이다. 거들스톤(Girdlestone)의 목록에서 나머지 단어들, 즉 칙령(edict), 법령(statute), 명령(command) 등은 몇몇 문맥에서 다바르에 의하여 표시되는 권위 있는 말에 대한 각기 다른 표현들이다.
['mr(아마르, 말하다 to say)는 dbr에 가장 가까운 동의어지만 그러나 이 단어의 근본 의미는 명백하게 dbr(Piel형)에 비하여 두드러진다. 'mr(아마르)의 경우에 있어서 그 초점은 언급된 것의 내용에 있으나 dbr의 경우에 있어서 일차적인 관심은 말하는 활동, 즉 어휘나 구절들을 내뱉은 것에 부여된다. 'mr는(언급된 것에 관한 내용을 전달함이 없이) 독립적으로 사용될 수 없는 반면에, 딥베르는 그렇게 사용될 수 있다(참조, 창 24:14, 욥 1:16, 욥 16:4, 6). 더욱이 'mr는 의인화된 여러가지주어를 지닐 수 있는 반면에(땅, 동물들, 나무들, 밤, 불, 작품 등등), dbr는 거의 항상 주어로서 사람이나 사람의 언어 기관(입, 입술, 혀 등등)을 지닌다. 이 단어들은 또한 언급되는 것에 따라 구별되어진다. 'mr의 경우에 이 단어는 약한 전치사 레(le)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족한 반면에, dbr는 대체로 강한 전치사 엘(el)을 요구하고 있다(le보다 약 10회 이상).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가치에 관한 대부분의 문제를 포함하는 dbr의 목적어로서 언급된 것에 관한 중요성을 약화시키지 않는다. 주로 피엘형으로 사용된 몇몇 다른 동사들에서처럼 칼(Qal)의 사용은 능동 분사에서 거의 독립적으로 쓰이며 대체로 계명을 말하거나 내적인 충동을 설명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다음과 같은 것들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다. 진리(시 15:2), 허위/거짓말(렘 40:16, 시 5:6[H7], 시 58:3[H4], 시 63:11[H12], 시 101:7), 의롭게 행함(사 33:15, 사 45:19, 시 16:13), 안위(에 10:3), 어리석음(사 9:17[16]), 오만(시 31:18[H19]). 이 단어는 또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천사들(창 16:13, 슥 1:9, 13, 19[H2:2] 등)과 영속적인 존경의 말(민 27:7, 민 36:5)에서 사용되고 있다. B.K.W.]
흠정역 성서에서 다바르의 일반적이지 않은 번역은 다음과 같은 용례들을 포함한다. 대하 10:13(여기에서 르호보암은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답하고 있다)에서 아나(대답하다 answer)의 유사어로 "고하다"(대하 10:14),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잠 18:23), 렘 4:12과 렘 39;5에서 '심판을 베풀다', '심문하다'(미시파팀과 더불어), '말하게 하다'(에 1:22), '청혼을 받다'(아 8:8). 흠정역 성서는 시 18:47에서 '복종케 하다'라는 말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몇몇 개념은 여기에서 이 문장의 첫 부분의 '보수하다'와 병치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찬송은 사무엘하 22장에서도 나오는데 여기에서(삼하 22:48) "복종케하다"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다바르를 대신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시 18:47과 시 47:3에서 다바르에 대한 '복종하다' subdue라는 드문 의미를 확증시키고 있다. 또한 현대의 번역들은 이러한 구절들에서 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바르에 대한 구약성경의 용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포는 계속하여 반복되는 것으로(약 400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모세오경은 모두 다바르에 대한 번역으로서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싣고 있다. 즉,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약속하셨다', '주님께서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대변인은 모세가 다음과 같은 말로 미리암과 아론에 의해 도전받은 것과 같이 간혹 도전받았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민 12:2).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말씀과 대변인을 지지하셨다.
- B.K.WALTKE. (p.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