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예약 상담문의 02-900-8276
체질 다이어트 / 디스크, 관절염/ 체질진료/전통 침
스마트 한의원(4호선 쌍문역 3번)
최면 催眠 hypnosis
최면(hypnosi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잠의 신을 뜻하는 'hypnos'인데 최면을 잠의 일종으로 생각한것 같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최면사가 연예인에게 최면을 걸고 “무엇이 보이느냐?”, “ 당신은 누구냐?”등의 질문을 한적이 있다. 연예인들은 자신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공주라든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왕자라든지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에 최면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사람의 전생입니다”라고 말했다.
방송 이후 전생을 알고 싶다면서 최면사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최면사가 사용했던 “레드썬”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져 나갔다. 이처럼 최면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최면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방송이 언제나 그렇듯 최면 역시 연출일 뿐이라면서 일종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면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학계에서도 나타난다. 여전히 최면을 사이비과학 정도로 치부하면서 최면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면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자인 심리학자들이 최면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면은 의식 상태가 실제로 변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현상 자체를 과학과 비과학으로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미디어의 영향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최면과 전생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최면의 목적은 전생을 체험하는 것이며, 전생의 존재는 최면이 입증하고 있다는 식이다. 이것은 분명한 오해이고 왜곡이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심리학자들과 정신의학자들이 최면에 대한 연구를 꺼리는 것도 이와 같은 인식 때문일지 모르겠다.
최면을 전생과 연관시키지 않는 서구사회에서는 최면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하버드대학병원에서는 마취 대신 최면을 이용해 수술을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환자는 최면 상태에서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할뿐더러 마취를 하지 않은 덕분에 회복도 매우 빨랐다. 이뿐만이 아니라 금연이나 다이어트에도 최면은 보험이 적용되는 보조치료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심리치료에도 최면을 사용할 수 있는데, 정신분석의 프로이트 역시 초기에는 최면을 사용했다. 물론 프로이트는 얼마 못가 최면을 포기하고 자유 연상을 도입했다. 이에 대해 정신분석 지지자들은 최면이 좋은 도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최면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프로이트가 최면에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최면이 효과적인 이유는 암시(suggestion) 때문이다. 암시란 최면 상태에서 최면사의 지시나 말에 영향을 받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최면 상태중에 수술을 하는 경우에는 외과의사가 집도하고 있을 때에도 최면사는 환자에게 지속적으로 암시를 준다. 환자가 몸을 이완하도록 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수술로 인한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최면이 적용되는 또 다른 분야는 범죄수사다.
최면은 우리가 의식적으로는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핵심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최면을 종종 사용한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경우 피해자나 피의자에게 최면을 걸기도 한다.
2003년 10월 어느 날, 결혼한 지 2개월밖에 안 된 새신랑이 강도의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유일하게 범인을 목격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하지만 남편이 칼에 찔리는 것을 직접 본 부인은 심리적인 충격 때문에 범인의 얼굴을 전혀 기억할 수가 없는 심인성 기억상실증을 겪었다. 이때 부인에게 최면을 건 뒤 그때의 장면과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고, 결국 몽타주를 그려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최면이 언제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2004년 7월, 연쇄살인 범인 유영철에 대한 최면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영철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진술이 명확하지 않아 유영철에게 최면을 걸었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최면은 수면을 의미하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지만 분명히 수면(잠)과는 다르다.
수면보다는 각성된 의식 상태, 고도로 집중한 상태다. 최면에 유도된 사람들은 최면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대부분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최면이 수면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최면이란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략 25% 정도의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최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듯하다.
최면이라는 신기한 현상은 분명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도구다.
단지 신기한 면만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는 일은 심히 우려스럽다.
심리학도 그렇지만 최면도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으로 언제나 조심스럽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최면은 다음의 과정을 따른다.
상황에 따라서 최면전 대화와 같은 부가적인 요소가 들어간다.:
인덕션(Induction)
얕은 변성의식 상태를 유도한다.
디프닝(Deepening)
변성의식 상태를 심화시킨다.
체인지 워크(Change Work)
마음을 변화시킨다.
엑스덕션(Exduction)
각성의식 상태로 되돌아온다.
최면상태를 일으키는 기술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피술자가 기꺼이 응하고 협조적이면서 시술자를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피술자는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시선을 어떤 물체에 고정시키도록 권유받는다.
시술자는 피술자에게 긴장이 점점 풀리고 눈이 피곤해진다고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계속 암시한다.
곧 피술자의 눈이 피로한 기색을 나타내고, 시술자는 눈이 감길 것이라고 암시한다.
그러면 피술자는 눈이 감기고, 축 늘어지며 심호흡을 하는 등 완전히 이완된 징후를 보이면서 최면상태로 빠지게 된다. 피술자가 그는 최면상태에 빠질 수 있고 시술자가 유능하고 믿을 만하며 그가 겪는 일이 안전하고 적절하며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믿을 때, 최면상태에 대한 반응성이 가장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최면상태로의 유도에 앞서 피술자와 시술자 사이에 적절한 신뢰감이 확립되어야 한다.
보통 최면상태로의 유도는 모든 피술자가 거의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간단한 암시들을 시술자가 하면서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는 피술자나 시술자 누구도 피술자의 행동이 최면반응인지 또는 단순한 협조인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 다음에는 점차적으로 지각이나 기억을 점점 왜곡시킬 것을 요구하는 암시(예를 들면 피술자가 눈을 뜨기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는 등)를 주거나 다른 유도법을 이용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단 몇 초가 걸릴 수도 있다.
이러한 결과 나타나는 최면현상은 최면의 목적이나 최면상태의 깊이에 따라 피술자마다, 그리고 최면상태마다 다르다. 최면상태는 고정된 영구적인 현상이 아니라 얕은 최면상태에서부터 깊은 최면상태까지 정도가 매우 다른 현상이다. 그러나 보통 모든 최면상태의 행동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말 그대로 이해하고 행동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피술자에게서 볼 수 있는 놀랄 만한 능력은 부분적으로 피술자의 주의가 가까이에 있는 과제나 상황에 한정되기 때문이며, 그결과 주의를 딴데로 돌리거나 심지어 관계가 없는 사건들에 항상 의식이 돌려지는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시술자가 주는 자극이나 암시에 대해 민감성과 감수성이 매우 높아진 상태인 암시감응성은 최면상태의 중심적인 현상이다. 시술자는 적절한 암시로 피술자에게 매우 광범위한 심리적·감각적·운동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암시를 받아들이고 암시에 대해 반응함으로써 피술자는 말을 못하거나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고, 마비되거나 환각을 일으키고, 망상에 빠지거나 기억상실증이 되거나, 통증이나 불편한 체위에도 무감각해질 수도 있으며, 시술자가 암시한 특정 상황에서 피술자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이거나 바람직한 다양한 행동반응을 보여줄 수도 있다.
최면상태에 빠져 있던 피술자에게서 이끌어낼 수 있는 한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최면 후의 암시와 행동이다.
이것은 피술자가 최면상태에 있을 때 그에게 준 암시와 지시를 시간이 흐른 후에도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면상태에서 적절한 기억상실을 유도하면, 그 사람은 지시받은 행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자신의 충동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최면후 암시는 행동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의지와 비교할 때,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특별히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피술자들은 흔히 깊은 최면상태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최면성 건망증(posthypnotic amnesia)은 이름 그대로 깊은 최면상태로 인해 저절로 일어나거나, 또는 최면상태에서 시술자가 한 암시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건망증은 최면상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포함하거나 선택된 몇 항목만을 포함할 수도 있고, 최면상태와는 관련없는 문제로 인해 나타날 수도 있다. 후최면성 건망증은 최면상태에서 적절한 암시로 성공적으로 없앨 수 있다.
반대로 기억증진, 즉 일상적인 능력을 뛰어넘는 기억력은 최면상태 행동의 또다른 양상이다.
예를 들어 최면상태에서는 판단력 없이 무조건 노력하려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형성된 판단으로 인한 억제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피술자는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경험과 심지어 깊이 억눌렸던 경험들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고, 그 경험을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일상적인 의식상태에서는 그 경험들을 다시 잊어버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뛰어난 능력으로 의식상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기억들을 회복할 수 있으며, 프로이트가 자기 환자들의 무의식에 깔린 기억들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매우 유용했던 것도 바로 이 능력이었다.
최면은 세계 전역에서 의학·정신과학·치과학·심리학 등의 협회들에서 치료법의 하나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면은 사람들을 마취시키거나 약물반응을 향상시킬 때 또는 필요한 투여량을 줄이는 데 가장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분만시에 유용한데 이는 약물사용으로 인한 태아의 생리적 기능 손상을 피하면서 산모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최면의 다른 방법으로는 다루기 힘든 통증, 예를 들어 말기 암환자의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도 큰 효과가 있다고 인정받고 있다. 또한 치과치료의 공포를 줄이는 데도 유용하다.
치과의사들이 다루기 가장 힘든 사람들이 흔히 최면의 암시에 가장 잘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신신체의학분야에서도 최면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어왔다.
환자들은 긴장을 풀고, 시술자 없이도 일부 형태의 고혈압이나 두통, 기능질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운동을 하도록 훈련받는다. 정신치료에서도 최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감정적인 정화(catharsis)를 시키기 위해 괴로웠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기술은 전투에서 부상당한 사람들 같은 외상성신경증을 완화시키는 데 매우 유용한 치료법이다.
최면상태를 유도하는 데 특별한 기술이나 훈련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의학적인 치료수단으로 사용할 때는 최면을
사용하지 않고도 의학적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유능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만이 사용해야 한다.
의학협회에서는 최면 후에 불리한 반응을 겪을 위험성 때문에 최면이 흥미거리로 사용되는 것을 계속 금지했고
실제 몇 개의 국가에서는 상업적인 과시나 기타 최면을 대중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시켰다.
1. 최면의 방법
먼저 최면 상태에 돌입하기 위한 암시를 걸기 위한 매개가 필요하다. 집중을 유도하기 위함인데,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코인을 줄에 매달아 일정 주기로 흔들어서 이에 집중을 유도하는 것이 흔히 보이는 모습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매개는 뭐가 되어도 집중만 유도하면 되기 때문에 뭐가 되어도 된다. 지포라이터나 태엽시계를 이용할 수도 있고, 메트로놈을 이용하기도 한다. 최면을 잘 걸기 위해서는 최면에 걸리는 쪽이 최면을 거는 쪽을 신뢰해야 한다. 이 신뢰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 인간관계에서 작용하는 믿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 사람은 나를 최면에 걸 수 있다"는 좀 더 포괄적인 영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위를 가질 수록 최면을 걸기 쉽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 신뢰가 없으면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 번 최면을 거는 것에 성공하면 이후로는 특정 행동이나 감각을 유도할 수 있다. 포인트는 최면을 거는 쪽이 상대의 최면상태를 의식하지 않고 마치 의식의 저편에서 목소리를 던지듯이 일정한 톤과 관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최면을 거는 쪽에서 이를 무시하고 최면에 걸린 쪽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면 곧바로 쌍방 모두에게 혼란이 올 수 있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처음에 목적했던 몇 가지 행동을 유도하고 최면상태를 종료하기 위한 절차를 밟으면 최면이 종료된다. 보통 최면을 건쪽에서 특정한 행동(박수를 치는 식으로)을 했을 때 최면에서 깨어나게 된다고 전달을 한 뒤에 그 행동을 실시하면 곧 최면에 걸렸던 사람은 최면에서 깨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최면 상태에서의 변화
1) 정신적 변화
피암시성: 최면 상태에서는 평소에 비해 암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서 암시란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는 외부 자극으로, 흔히 최면에서 "당신은 이제부터 ○○을(를) 할(볼, 느낄) 것입니다"라고 하는 그 자극이다. 이 암시가 내담자 본인의 가치관에 반하지 않는 조건 하에 있으면 내담자는 이 암시대로 따른다. 따라서 제아무리 암시로 살인 같은 것을 시켜도 내담자가 행할 가능성은 극히 적다. 만약 정말로 암시에 따라 살인을 했으면 이는 내담자가 평소부터 무의식적으로 살인에 대해 어느 정도 관대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그 사람은 굳이 최면으로 암시를 주고 말고 할 것 없이 평소에도 수틀려서 눈 돌아가면 살인을 자기도 모르게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최면에 아무리 깊게 빠져 있어도 도덕적인 사람은 어디까지나 도덕적으로 행동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얼마든지 나쁘게 행동할 수 있다.
감각 전이: 피암시성에 따른 것으로서, 암시에 따라 특정한 맛을 느낀다거나 특정한 감각을 느낀다고 받아들이면 내담자는 실제로 그 자극을 느낀다. 이를 통해 내담자가 느끼기에 초콜릿을 마늘로 바꾼다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또한 강력한 몰입에 따른 결과다
2) 신체적 변화
신체적인 변화는 엄밀히 말하면 최면 자체에서 나타난다기보다는 부수적으로 유도하는 깊이 이완된 트랜스 상태에서 나타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깊이 이완된 상태는 최면을 위한 수단 정도이지, 최면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아래 현대 최면 부분에서 말하는 '뒤돌려차기로 불을 켜는' 과정이 이 이완 과정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최면에서 이 상태를 유도하므로 편의상 이 항목에 기술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 둬야 할 것은, 아래 신체적 변화들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아래 변화 중 어느 하나, 또는 많은 부분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이 최면에 빠지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체 근육 이완: 최면에 들기 위해 깊고 편안하게 이완된 상태를 유도하면 우선 몸의 각종 근육들이 이완된다. 힘 없이 축 늘어진다는 느낌으로, 이에 따라 상체의 고개가 푹 숙여지거나 옆으로 젖혀지기도 한다.
혈관 확장: 신체가 이완됨에 따라 혈관도 함께 이완된다. 그 결과, 목이나 팔, 손등 등에 혈관이 두드러져 보이며, 목이나 팔의 경우, 맥박이 뛰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모세혈관 역시 확장되는데, 이 때문에 혈액이 잘 돌아 내담자의 몸이 평소보다 따뜻해질 수 있고, 얼굴 등 신체 일부가 붉어질 수 있다. 또한 이때 내담자의 눈을 열어 보면 어느 정도 충혈이 일어나 있을 수 있는데, 이 역시 내담자가 졸리거나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 모세혈관이 이완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눈물 맺힘: 역시 신체 이완의 결과 중 하나로, 눈물샘이 이완되며 평소보다 많은 눈물이 분비된다. 이를 영어로는 'glassy eyes' 또는 'teary eyes', 'watery eyes'라 부르는데, 이 현상이 나타난다고 내담자가 슬픔에 잠겨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역시 성급한 판단이다.
비자발적인 근육 움직임: 신체가 이완된 상태에서는 내담자가 의도하지 않은 근육 떨림이 나타날 수 있다. 주로 팔이나 다리, 눈 주변, 볼 등에서 관찰된다. 이는 굳이 최면을 받지 않아도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편하게 누워서 온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어느샌가 팔이나 다리 쪽 근육이 이따금씩 움찔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통제 상실: 흔히 '카탈렙시(catalepsy)'라고 말하는 것으로, 내담자는 외부에서 유도하는 자세 외에는 아무런 자세도 취하지 않으려고 한다. 최면술사가 내담자의 팔을 들었다가 놓아도 마치 시체처럼 툭 떨어진다. 이때 피암시성에 따라 내담자에게 특정한 불편한 자세를 취하게 해도 내담자는 그 자세를 유지한다. 예를 들어, 이 상태에서 내담자에게 선 채로 다리를 약간 굽힌 채 팔을 앞으로 뻗고 있으라고 하면 그 자세를 유지한다. 심지어 여기에 또 다른 암시로 그 자세가 아주 편안하다는 암시까지 부여하면 정말로 내담자는 그 상태로 편안하게 있는다. 여기서 더 심화되어 나아가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과거 외국의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한 채 수술을 받은 사례가 있다.
급속 안구 운동(REM: Rapid Eye Movement): 흔히 렘수면에서 나타난다는 그 렘 맞다. 그렇다고 내담자가 자는 건 아니고, 외부 암시에 따라 무언가를 볼 때 이를 추적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사실,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또렷하게 상상해 보라 하면 누구든 쉽게 보이는 반응인 만큼 특별할 것도 없다.
눈꺼풀 떨림: 눈꺼풀이 거의 감긴 채 떠질 듯 말 듯 떨리기를 반복하는 상태이다. 가벼운 최면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 상태 변화: 신체가 이완되면서 평소 비대칭적인 얼굴이 조금은 더 대칭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혈관 확장을 이유로 얼굴이 붉어질 수도 있으며, 오히려 창백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얼굴의 각종 근육들이 풀어짐에 따라 무표정하면서도 평소보다 평탄하고 매끄러운 얼굴이 되는데, 이 때문에 영미권 자료에서는 간혹 이를 두고 조금은 마네킹과 같아진다고(looks like a mannequin) 표현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 외에도 다양한 변화들이 있을 수 있는데, 처음에 말했듯이 이와 같은 신체적 변화들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 따라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나타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얼굴빛만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혈관 확장으로 상기될 수 있지만 반대인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지표들을 맹신하기보다는 그냥 참고용으로 보는 게 좋다.
3. 최면 감수성
최면 감수성은 매우 고전적인 이론으로, 요즘의 최면가들 사이에서 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최면 감수성은 엘먼에 의해 최면 계약으로 대체되어, 계약이 이루어진 상태에서는 누구나 최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 보편적이다. 또는 잠입 최면으로 최면을 하되, 최면이라는 프레임을 세팅하지 않음으로서 최면에 대한 저항을 우회할 수 있다. 사실상 폐기처분 된 개념이다.
최면 감수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최면에 잘 걸리는지 여부는 최면술사의 실력이나 최면유도 방식과는 관계가 없다. 오로지 최면에 걸리는 당사자의 특성에 달려 있으며 ,당사자 스스로 최면에서 깨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 설명이 모든 최면가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는 오로지 최면 감수성이 뛰어난 이에 준하는 것이고 당연히 최면술사의 실력과 최면유도방식에 따라 잘 걸리지 않는 이들도 잘 걸릴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
최면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에게 최면을 잘 걸수 있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다만 술마시고 클럽에 놀러간 사람들이 다음날 '아... 미쳤다 내가 왜....'하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신나서 최면현상을 일으키고 받아들이고 이러한 과정이 1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 그 흐름의 관성으로 평소의 불가능했던 행동과 의지에 반하는 가치관도 심을 수 있다. 애당초 그렇지 않으면 기존에 있던 습관을 고친다는 행위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올뿐만 아니라, 최면이 아니더라도 분위기로 인해 평소의 나와는 다른 행동을 하게되는 현상을 부정하게 된다.
4. 최면의 실제
「최면」 이란 과연 무엇일까? 최면의 정의를 내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나 전문가들조차 「최면은 이것이다.」라고 확신하여 하나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변화된 의식 상태」, 「고도의 집중상태」,「피 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트랜스 상태 등과 같은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다.
누구나 여러 번 최면을 경험했었음에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인데 아마 당신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나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진 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찌개가 넘쳐흐르는 것을 미처 몰랐다거나, 재미있는 책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에 열중해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팔려 엄마가 들어와 있는 것도 몰랐다, 등의 일들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이미 최면 상태로 접어들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어떠한 생각이나 하나의 대상, 감각적인 자극에 몰입되면
지각에 이상이나 변동을 일으키는「변화된 의식 상태」가 된다.
이때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미처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런 현상을 「자연 최면」이라고 말하며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과는 구분되지만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다만, 자신도 모르게 들어갔다가 자신도 모르게 깨어나는 자연 최면 상태에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유도되는 최면에서처럼 최면 상태를 유지해서 잠재의식에 유용한 암시를 주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등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렇게 독특한 의식 상태로 이끌기 위해 갖가지 유도 암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것을 「최면」 또는, 「최면 유도법」 이라고 한다.
고도의 집중 상태
최면 상태란 어떤 대상에 주의를 강하게 집중시키면 의식이 협착되고 잠재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잡고 달릴 때, 속도의 개념이 없이 무심한 상태에서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또, 차 안에서 신문, 잡지에 몰두한 채 순식간에 도착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정신이 하나의 자극 대상에만 고도로 집중된 상태가 바로 최면 상태이다.
즉 우리의 의식을 10이라고 한다면 9개의 의식은 잠들고 1개의 의식만이 깨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음성이 모두 들리고 현실감각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지만 의식 수준이 낮아져서 무비판적이고 주의가 암시에만 극단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태이다.
트랜스 상태
최면 상태에서는 긴장이 풀려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고, 몽롱해지며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는 근심. 걱정, 불안이 모두 사라지고 정신도 신체도 무통 상태無痛가 되며 굉장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최면의 심도가 깊어졌을 경우에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상태를 최면성 트랜스Hypnotic trance라고 한다.
피최면자는 이 상태가 너무 좋아서 계속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면에서 깨어난다는 암시를 받으면 깨어나지 않으려고 저항을 보이는 피최면자를 볼 수 있다.
피암시성이 높아진 상태
어떤 하나의 대상에 극단적으로 몰입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의식이 협착되어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좌뇌의 활동은 줄어들고, 직관적이고 감상적인 우뇌의 기능이 활성화되며 의식과 잠재의식으로의 통로가 열려 잠재의식이 도출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피암시성이 대단히 높아져서 오감을 통한 현실의 인식능력이나 초감각적 지각, 운동감각, 기억, 감정 등이 피험자에 따라 각성 시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최면 상태에서 적절한 암시를 줄 때 목표하는 바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또한,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는 비 활성화된 잠재능력을 일깨워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거나 무의식 분석을 통한 심리 진단 및 여러 방면으로의 활용이 가능해진다.
5. 최면에 대한 오해
흔히 「최면」하면 사람을 잠들게 해서 의식을 잃게 한 다음 마음대로 조종한다거나 마술魔術이나 마법魔法과도 같은 신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최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신비스러운 모습만 보아 왔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와 편견임을 밝혀 둔다.
최면이 이렇게 신비한 초능력 같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받아 온 데는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 쓰인 「에베르스 파피루스」라는 의학서에는「잠자는 사원」이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주술사, 샤먼, 치유사, 신관, 종교 지도자들이 주문을 외면 순식간에 병이 낫게 된다는 초현실적인 설명이 되어 있다.
이 「잠자는 사원」은 현대적으로 볼 때 최면요법의 진료소와 같은 것인데, 최면요법과는 명확하게 다른 점 이하나 있다. 그것은 시술자인 그들이 최면에 대해서 올바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최면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신이 환자의 몸으로 들어가 기적을 일으키는 현상」 으로 민중에게 설명했다.
결국 사람들은 최면의 과학성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신들린 힘으로 납득해 시술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최면을 이렇게 오해하는 데는 「최면술」이라는 용어 탓이기도 한데, 그것은 「Hypnosis;최면」라는 단어를
누군가 「최면술」이라고 번역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본래「술;術」이란 뜻은「꾀 술」로써 마술, 요술과 같이 꾀를 부려 사람의 눈을 속이는 기술로 혼동해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어 사용에 있어 「최면술」이라는 말은「최면」또는「최면 유도법」으로 바꾸고,
「최면을 건다.」 라는 말은 마치 요술(妖術)에 걸리는 것 같은 관념을 불러일으키기 쉬우므로 「최면으로 유도한다.」 라는 말로, 「최면에 걸린다.」는 「최면(상태)으로 들어간다.」 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 최면은 과학이다
최면(催眠 : hypnosis)에 관심을 두는 자기 자신을 지식인답지 않다고 생각 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면이 비과학적인 기괴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면의 과학성을 깨닫고 나면 최면은 신비적, 초능력,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초능력(extrasensory perception;ESP)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낸다.
그러나 최면은 그런 특수한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학의 한 분야인 심리학의 영역에서 연구되어
왔으며 이미 정신의학의 견지(見地)에서 카운슬링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신경증의 치료에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또 최면을 영력(靈力) 같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오해이며
누구나 과학적, 체계적 방법만 익히면 자신의 문제 해결은 물론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된다.
영국(1955)이나 미국(1958)의 의학 협회에서는 노이로제, 심신증(心身症), 심인성 질환, 기타 일반 내과, 외과, 산부인과, 치과 등의 치료에 최면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의학 및 치의학 전공생들이 최면 교육을 받도록 하는 정책을 두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세계 유명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교수(敎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놀랄 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세계 보건 기구(WHO)에서는 치료의 유용한 수단으로 공인하고 있다. 또 미국의 하버드 대학 내에는 최면 전문 클리닉 센터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최면은 교육이나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성격 개선은 물론 각종 습벽 교정 등 행동요법으로써도 대단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 밖에도 기억력 증진, 창의력 계발, 심신의 건강 증진, 범죄 수사 등 일상생활 속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최면은 마법이나 초능력이 아니라 인간 정신 내부에 작용하여 잠들어 있는 잠재의식을 일깨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자 과학이다.
7. 잠재의식을 조절하는 테크닉
우리는 종종 무의식중에 콧노래를 부르거나,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누른다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한쪽 다리를 떠는 행동 등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행위가 일어났음을 말한다.
또 다리를 떠는 행동은 주변 사람이 지적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다리를 떠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의식이 존재 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무의식적인 행동은 의식으로 컨트롤(control)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다.」라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면은 바로 이 무의식(잠재의식)에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나 행동 패턴을 교정할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의식인 일반 의식 상태에서는 잠재의식과의 교류가 어려우나 최면의 기법을 통해서 잠재의식을 조절하여 부정적인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습벽이나 공포,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여 자신이 원하는 삶의 패턴으로 재편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최면에 대한 의문점
최면은 어떻게 하나?
최면 상태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옆자리 커플의 팝콘 먹는 소리도 안 들리고 정신없이 영화 내용에 몰입된다.
마음의 한 부분(무의식)은 영화 속에 들어가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다른 한 부분(표면 의식)은 자신이 지금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끝난 후에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고 영화 속에 남는 사람이 없듯 최면 상태도 마찬가지다.
최면 상태에서는 이완과 집중도 상태에 따라 표면 의식 운동이 제한되어 거의 수면 시와 같이 편안한 이완 상태를 경험하는가 하면 오히려 각성 시보다 더욱 고도로 일정 부분의 의식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 또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경우 등 다양한 의식 상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최면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시각이나 청각, 관념 운동법(ideomotor Action) 등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는데 주로 어떤 물체의 심상(心想), 관념(觀念) 혹은 단조롭게 반복되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
최면을 유도하는 수단은 바로 암시 이다.
또, 유도 암시(暗示)는 주로 언어가 사용되며 명상 음악 등이 보조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최면은 안전한가?
최면 중에는 의지력을 잃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은 없다.
최면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통제력을 잃고 최면자에게 지배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면 중에 일어난 일들을 깨어난 후에는 전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이 숨기고 싶은 사적인 비밀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면은 피최면자의 협조 없이 유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로 들어간다 해도 일부 의식이 깨어 있어 최면자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며 깨어난 후에는 최면 중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최면자가 피최면자에게 부도덕한 위험한 암시를 주게 되면 암시를 거부하고 깨워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의지만 있으면 깨어날 수도 있다.
최면이 안 되는 사람도 있나 ?
최면 감수성(피암시성)은 개인에 따라 높고 낮은 차이가 있어 최면이 잘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최면 감수성은 민감, 보통, 둔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감수성이 낮은 사람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하면 대부분 최면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들의 암시 감수성은 매스컴의 보도를 믿고, 광고를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등의 일상 행동으로도 잘 표현되고 있듯이 보통 인간이면 다소라도 암시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
꼭두각시 오해
최면 상태에 원하지 않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게 되는가?
「최면 상태에 최면자가 시키는 대로 한다.」 라고 하는 것은 오해이다. 피최면자의 기분에 거슬리는 불리한 암시를 줄 때는 거부되게 마련이다.
인간의 보호 본능은 어떤 상황에서든 반사적으로 작동하는데, 최면에서도 마찬가지로 피최면자에게 불리한 암시를 주면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최면자는 피최면자가 바라지 않는 행위, 즉 도덕이나 윤리에 반한 행위를 강박해서 하게 할 수 없게 된다. 최면은 선용(善用)할 때에 한하여 그 위력과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피최면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숨은 능력을 일깨워 줄 뿐이다.
비밀 노출 오해
최면 상태에 비밀을 말하거나 항상 진실만을 말하는가? 피최면자는 자기의 의지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직 최면자의 협력을 받아 목표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피최면자는 최면 상태에도 자기의 생득적(生得的) 심리와 습관에 따라 도덕적인 면으로나 비도덕적인 면으로 기울어 있다.
따라서 깨어 있을 때와 같이 자신의 사생활이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얼마든지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진실하지 않은 경우 최면에 걸린 동안에도 거짓말을 한다.
못 깨어나면 오해
최면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얕은 최면 상태에 피최면자가 깨어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깨어날 수 있고, 또 아무리 깊은 최면의 경우라도 각성 암시에 의해 반드시 깨어날 수 있다.
만약 깨우지 않고 두면 최면에서 수면으로 바뀌어 한동안 자다가 깨어나게 된다.
또한, 최면에서 깨어나면 최면 중에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최면자의 각성 암시에 깨어나지 않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피최면자가 싫어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면 상태로 들어가 보니 대단히 기분이 좋아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생각에서 각성 암시를 거부하는 경우.
둘째, 최면사가 부도덕한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최면자의 암시에 저항하고 있는 경우.
셋째, 피최면자가 최면 상태에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경우.
이런 경우에 최면자는 피최면자에게 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인가를 질문하여, 원인이 명확해지고 이해되었을 때 최면을 종결시키는 추가 각성(覺醒) 암시를 주면 쉽사리 깨어나게 된다.
9. 단계별 최면 현상
최면 중에서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개인 최면 감수성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최면의 심도에 따라서도 다르다.
최면 상태에서의 특이한 변화라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급속 안구 운동, 최면자에게 협력하려는 의존적 신뢰
관계인 라포(rapport)형성, 신체의 극단적 경직이나 깊은 이완(弛緩) 현상인 카타랩시(catalepsy), 감정 표현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서적 변화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피최면자는 언제든 말을 한다든지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며 스스로 눈을 뜰 수도 있다.
이 상태에서는 실제로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최면자가 최면 유도 전에 피최면자에게 「최면에 들어가도 의식을 잃는 일은 없다.」 라고 설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최면에 들어가면 의식이 사라져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한 손이 마비된다.」든지 「한쪽 팔이 무거워 들어 올릴 수 없다.」라는 암시를 주어 피최면자가
그것을 느끼게 될 때에야 비로소 믿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단계에서는 암시에 의해 신체의 반응을 지배할 수 있는데 이를 「운동 지배 단계」라고 한다.
중간 정도의 최면에서는 온몸이 나른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무통 상태가 된다.
이 단계에서는 양파를 사과라고 암시한 후 먹게 하면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미각 뿐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시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 이를 「감각 지배 단계」라고 한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는 기분이 매우 황홀해지고 몸이 공중에 떠 있는 부유감(浮遊感)을 느끼기도 하며 의식 작용은 완전히 둔해져 피최면자는 말문을 열기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상태에서는 「후최면암시」를 주기가 매우 용이한데 「후최면암시」란 어떤 특정한 암시가 최면 후에 실현될 것을 목적으로 최면 중에 주는 암시를 말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애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겨 있다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등의 암시나 「잊혀진다.」라는 건망 암시를 줌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기억 지배 단계」라고 한다.
연령 퇴행
깊은 최면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바로 퇴행이다.
암시에 의해 피최면자를 과거로 되돌려 그 시절에 경험한 것을 생각나게 하거나 그 때의 감정을 재 체험하는 것이다. 22세의 피최면자에게 「지금부터 내가 22부터 차례로 수를 세어 내려가면, 당신은 일년씩 젊어집니다.
그리고 내가 수세기를 멈추면 당신은 그 연령에서 체험한 것을 기억해 냅니다.
그때의 감정이나 생각까지도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라고 암시 한 뒤 5살 시점에서 수세기를 멈추었는데 피최면자가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으니 유치원 학예회에서 장기 자랑을 하는데 그동안 연습한 것을 잊어버려 나만 혼자 멀뚱멀뚱 서 있다는 것이다. 너무 부끄럽고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엄밀히 말한다면 퇴행에는 2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퇴행 한 연령의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떠올려서 그것을 현재의 관점(입장)으로 마치 극을 상영하는 것
같이 각색하여 태도나 말씨를 보이는 것이다. 피최면자는 고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두 번째는 실제로 본인이 퇴행 한 연령의 심리상태나 생리적 상태, 혹은 그 당시의 행동이나 습관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6세 때 일시적으로 틱장애;tic disorders를 갖고 있던 사람을 그 시점으로 퇴행하면 다시 틱장애가 나타나는 일이 있다.
시간 왜곡
우리는 누구나 시간을 인식하는 마음의 시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거나, 일에 몰두할 때, 영화를 볼 때에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이렇게 집중된 상태에서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려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지루한 강연을 듣고 있을 때는, 1시간이 3시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서 3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있으면 「언제 도착 하나」하며 따분해 할 것이다.
그러나 즐거운 길동무가 있으면 웃고 즐기는 사이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해 긴 여행도 지루하지 않다.
한 시간의 최면 상담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피최면자에게 「시간이 얼마나 지간 것 같느냐?」라고 물으면 「한 20분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리고는 시간이 1시간쯤 지난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며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라며 놀라곤 한다.
최면 상태에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최면 상태에 있었던 시간을 실제의 시간보다 약 40% 정도 짧게 느낀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명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최면 상태에는 단위 시간 에 들어오는 정보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뇌에서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수가 적어서 시간을 짧게 측정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뇌에서 측정하는 시간의 길이는 처리해야 할 정보의 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최면 중에 적절한 암시를 내리면, 시간을 왜곡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암시는 다음과 같다.
「실제의 1분이, 당신에게는 충분히 길게 느껴져…시간은 매우 , 매우 , 천천히 지나갑니다…이 깊고 , 평온한 최면 속에서는…5분이 1시간과 같이 느껴집니다…그리고 , 당신이 최면으로부터 눈을 떴을 때에는…하룻밤 푹 잔 뒤와 같이 상쾌해져, 기분이 상쾌하고 ……」
환각을 일으킨다
피최면자가 깊은 최면 상태까지 유도 되면 다양한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늘을 보니 정말 많은 별들이 떠 있네요, 보이는 별들을 가르켜보세요」 라고 하면 잇달아 별의 위치를 가리킨다. 이것은 시각의 환각이다.
「지금 당신은 횟집에 와 있습니다. 신선한 회가 나왔군요.」 라고 암시하면 회를 집어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이때, 「겨자를 너무 많이 찍었네요」 라는 암시를 주면 그야말로 괴로운 표정으로 입안에 든 것을 뱉어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것은 시각과 미각 양쪽 모두에 환각을 일으킨 것이다.
또, 칠판을 긁는 소리나, 유리창의 끼익- 하는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칠판을 긁고 있네요.」 라는 암시를 주면 귀를 틀어막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몸을 뒤틀기도 한다. 이것이 청각의 환각이다. 「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하군요. 참기 힘듭니다.」라는 암시를 받으면 고개를 돌리며 코를 쥐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헛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후각의 환각이다.
깊은 최면 상태에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암시에 의해 기쁨, 즐거움, 슬픔, 외로움, 무서움, 분노 등의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것을 「정동의 변화」 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일(학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벌써 밤이 깊어 가는 군요. 당신은 집에 홀로 있습니다. 외톨이에요. 서글프고 쓸쓸합니다.」 라는 암시를 주면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수면과는 다르다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이 「나는 최면이 되지 않은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면 최면 중에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것은 최면 상태에 푹 잠들어 의식을 잃은 채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면이 수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본래 hypnosis(최면)라는 어원은 히프노스(Hypnos/Hypnus)에서 나온 것이다. 히프노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잠의 신으로 등장하며, 뜻은 「잠」 혹은 「수면」으로 해석된다. 히프노스는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최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데, 이 지팡이에 닿으면 신이든 인간이든 금수든 초목이든 깊은 잠에 빠지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한다.
현재는 「무대 최면」 이나 과거의 「최면술」정도로만 번역되고 있는 「히프노티즘(hypnotism)」 은 바로 이 신의 이름에서 나왔다. 「최면(催眠)」이라는 한자어도 「잠을 재촉한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최면은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수면과는 여러 부분에서 다른점이있다.
첫째, 최면 상태에 외관상 보기에는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수면과는 구분되는 매우 독특한 상태로 아무리 깊은 최면 상태라 해도 수면과는 달리 의식이 소멸하는 일은 결코 없다.
하지만, 수면 상태에서는 의식도 함께 잠들어 의식 활동이 정지되어 버린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최면 상태에 최면자와 대화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수면과 달리 일부 의식 있어 현실감각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 그리고 최면 상태에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 스스로 깨어나게 되고 깊은 최면 상태에서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 한동안 자다가 혼자서 깨어나게 된다. 여기서 최면에서 깨어난다는 말은 잠에서 깨어난다는 의미와는 다르며 최면 상태라는 독특한 변화된 의식 상태에서 현재 의식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뜻을 말한다.
10. 최면의 종류
자기최면 상태로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최면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뿐더러 자기에게 적합한 유도 방법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최면은 암시된 관념에 주의가 집중된 상태이지만 그 주의 집중에 본인의 노력이 수반되어서는 최면 상태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즉, 수동적 주의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최면은 자기가 스스로 에게 유도 암시를 주기 때문에 수동적 주의 집중이 다소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므로 단시일 내에 자기 개선을 기대하며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타인 최면 에릭슨 최면
NLP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행동 패턴을 창출하기 위해 언어나 신체적인 모션 등의 다양한 기법이 연출되기 때문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분야에서 던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 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성공하게 한 법칙(패턴)이 있는 데 NLP는 출중한 그들이 사용한 행동 패턴을 찾아내서 그 과정을 프로그래밍한 방법이므로 과학인 것이다. 이 과정을 모델링(modeling)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해서 발견된 패턴, 기법이나 기술은 심리요법뿐만 아니라, 카운슬링, 교육, 스포츠,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이용하면 신속하고 놀라운 효과를 확실히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자율 훈련 독일에서는 교육과정과 임상 치료를 모두 건강 보험이 지불할 정도로 그 효과가 검증되어 있다. 이로써 그는 인류에게 이바지한 공로가 크게 인정되어 노벨상 후보로 추대되기도 했다. AT의 목표는 이완(Relaxation)을 잘 시킬 수 있는 데 있다. 그렇다고 단지 근육의 긴장을 푸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 단계의 연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심리적 내지 생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한편 내적 이완을 토대로 하여 연습자(이상자든 정상자든)가 전반적으로 정신이나,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상태가 된다. AT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아주 긴요하게 이용될 수 있다. 즉 생활상의 적응을 돕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극적으로 상쾌한 생활을 하기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것이 임상 상의 환자이고 제로의 조건에 있는 것이 정상자라고 생각한다면, 환자와 같이 마이너스 조건에 있는 사람을 제로의 조건까지 끌어올리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로의 조건에 있는 사람을 플러스 조건에까지 끌어올리게 할 수 있다. |